8화(5,550자)

야간 손님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돌아갈게요⁠.⁠”

순찰관의 손이 무늬의 손목에서 조금 느슨해졌다⁠. 기라온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해 뜨면요⁠. 오늘 밤 하나만 하고요⁠.⁠”

“⁠뭘요⁠?⁠”

“⁠편의점이요⁠. 여기서⁠, 하룻밤만⁠. 해 뜨면 제 발로 정문까지 걸어갈게요⁠. 그때까지 무늬 씨 손목 놔 주세요⁠.⁠”

기라온이 순찰관을 봤다⁠. 순찰관이 어깨를 들썩이며 기라온 쪽으로 턱을 들었다⁠. 기라온은 둑 위 전차 선로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 사람이 셈을 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나는 쉰다섯 날 동안 이 버릇을 다 외웠다⁠.

“⁠정문 앞에서 말해요⁠. 사람들 앞에서⁠. ‘⁠제 발로 돌아왔습니다⁠’라고⁠. 그럼 하룻밤 줄게요⁠.⁠”

나는 이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았다⁠. 할머니의 바가지 장면 다음에 붙일 장면이 필요했다⁠. 국보가 둑 바깥에서 물벼락을 맞고⁠, 스스로 박물관 품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이걸 좋아할 것이었다⁠. 그리고 6월 7일 자리는 더 비싸게 팔릴 것이었다⁠.

“⁠좋아요⁠.⁠”

순찰관이 무늬의 손목을 놓았다⁠. 무늬는 손목을 문지르지 않았다⁠. 바닥에 쏟아진 얼음을 손으로 쓸어 정어리 상자에 도로 담았다⁠.

*

해 질 녘부터 둑시장 사람들이 무늬의 천막 옆에 가게를 지었다⁠.

상인회장이 생선 상자 스무 개를 쌓아 진열대를 만들었다⁠. 순대 노점 주인이 판자 하나를 가져와 상자 두 개 위에 걸치자 계산대가 됐다⁠. 「⁠21세기 커피⁠」 상인은 자기 노점 깃발을 뜯어 뒷면에 숯으로 글씨를 썼다⁠. 「⁠둑시장 이십사 시⁠」 이십사 시간은 아니었다⁠. 해 뜰 때까지였다⁠. 아무도 이걸 따지지 않았다⁠.

진열대에는 노점 마흔두 곳이 저마다 하나씩 물건을 올렸다⁠. 분홍 떡볶이 한 그릇⁠, 팔뚝 순대 한 토막⁠, 닭 모양 두부튀김⁠, 커피 한 잔⁠, 말린 정어리 한 봉지⁠, 둑 마을에서 짠 그물 장갑⁠. 값은 각 노점 몫으로 받기로 했다⁠. 손님이 물건을 골라 오면 나는 소리로 계산하고 봉투에 담아 주고⁠, 손님은 이 노점 주인의 판에 손바닥을 댄다⁠. 나는 몫을 한 푼도 만지지 않는다⁠. 대신 노점 주인들이 돌아가며 내게 밥을 냈다⁠. 일한 값이었다⁠.

해가 지고 둑 위 불빛이 켜지자 나는 판자 계산대 뒤에 섰다⁠. 왼쪽 기둥 옆에 새 경비⁠, 오른쪽 기둥 옆에 팔팔이⁠. 무늬가 빈 깡통 두 개를 줄에 꿰어 천막 입구에 매달았다⁠. 사람이 들어오다 줄을 건드리면 깡통이 부딪쳐 소리를 냈다⁠. 딩동은 아니었다⁠. 덜그럭이었다⁠.

첫 손님이 줄을 건드렸다⁠. 덜그럭⁠.

“⁠어서 오세요⁠!⁠”

*

밤손님은 박물관 로비보다 거칠었다⁠. 둑 경비들은 순찰 도는 길에 들러 커피를 사 갔고⁠, 배 일꾼들은 그물 장갑을 사서 이 자리에서 껴 보고 손가락 길이를 투덜거렸다⁠. 밤 전차 기사가 박물관 로비에서처럼 계산대에 팔꿈치를 괴고 졸려 하길래 나는 이번에도 내버려 두었다⁠. 경비는 나를 알아보고 「⁠여기도 있어요⁠」라고 했다⁠.

자정에 순대 노점 주인이 순댓국 한 그릇을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다⁠. 배양 고기 순대를 썰어 넣고 무늬의 국물을 부은 것이었다⁠. 순대를 썰다가 칼로 나를 가리키던 이 사람이었다⁠.

“⁠열두 끼요⁠. 다섯 시간 서 있었으니까⁠.⁠”

나는 계산대 뒤에 서서 이걸 먹었다⁠. 손님들이 내가 먹는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 새 경비가 그릇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팔팔이가 이 앞을 막았다⁠. 「⁠국보 식사 중입니다⁠. 기다리십시오⁠.⁠」 손님들이 묵념을 하고 기다렸다⁠.

새벽 한 시 반에 진상 손님이 왔다⁠. 배 일꾼이었고⁠, 술 냄새가 났다⁠. 2226년에도 술이 있었다⁠. 팔팔이는 커피를 집었다가 내려놓고⁠, 순대를 집었다가 내려놓고⁠, 계산대에 손바닥을 철썩 대며 「⁠옛사람이 왜 내 몫을 안 받냐⁠」고 소리쳤다⁠. 깡통이 덜그럭거렸다⁠. 새 경비가 한 걸음 나왔다⁠.

나는 손을 들어 새 경비를 멈췄다⁠. 이건 내 일이었다⁠. 2026년에 나는 이런 손님을 하룻밤에 둘씩 받았다⁠.

“⁠손님⁠, 커피 드릴까요⁠, 물 드릴까요⁠?⁠”

“⁠커피⁠.⁠”

“⁠커피는 잠 깨요⁠. 지금 깨시면 내일 배 못 타요⁠. 물 드릴게요⁠. 물은 공짜예요⁠.⁠”

나는 무늬의 물통에서 물을 한 컵 따라 계산대에 놓았다⁠. 남자가 나를 노려보다가 물을 마셨다⁠. 한 컵 더 줬다⁠. 세 번째 컵을 마시고 무늬는 판자 계산대에 이마를 대고 잠들었다⁠. 나는 무늬의 머리 밑에 그물 장갑을 하나 접어 넣어 주었다⁠. 장갑 값은 내가 이 노점에 일로 갚기로 했다⁠. 손님들이 이 장면을 보고 웃었다⁠. 진상 손님을 재우는 옛사람을 보며 2226년 밤손님들이 배를 잡았다⁠.

새벽 두 시에 「⁠21세기 커피⁠」 상인이 커피 한 잔과 온실 밀가루로 구운 빵 한 덩이를 가져왔다⁠.

“⁠열세 끼⁠. 빵은 덤이에요⁠.⁠”

“⁠덤이면 세면 안 되는데요⁠.⁠”

“⁠그럼 빵이 끼니고 커피가 덤이에요⁠.⁠”

나는 빵을 먹었다⁠. 커피는 진짜 2026년 맛이 났다⁠. 물을 바꿨다고 했다⁠.

새벽 세 시⁠, 깡통이 덜그럭거리고 짙은 회색 외투가 들어왔다⁠.

기라온이었다⁠. 박물관 로비에서 그랬듯 이 사람은 이 시간에 한 번 돌았다⁠. 천막 아래 노점 주인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췄다⁠. 이 사람은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진열대 앞으로 가서 말린 정어리 한 봉지를 집어 왔다⁠. 계산대에 봉지를 내려놓았다⁠.

“⁠어서 오세요⁠.⁠”

나는 삑 소리를 냈다⁠. 이 사람은 웃지 않았다⁠.

“⁠봉투 필요하세요⁠?⁠”

“⁠필요 없어요⁠.⁠”

이 사람은 상인회장의 판에 손바닥을 대고 봉지를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도 가지 않았다⁠. 판자 계산대 너머로 둑 바깥 쪽을 봤다⁠. 천막 틈으로 물에 잠긴 아파트 꼭대기들이 새벽빛에 검게 서 있었다⁠.

“⁠나 저기서 자랐어요⁠. 할머니네 바로 아래층⁠. 열두 살 때 둑이 터졌어요⁠. 그날 밤 할머니가 나를 업고 열한 층 계단을 올라갔어요⁠. 할머니 영감님은 우리 어머니를 데리러 다시 내려갔다가 안 올라왔고요⁠.⁠”

천막 아래가 조용했다⁠. 진상 손님이 계산대에 이마를 댄 채 코를 골았다⁠.

“⁠그 할머니를 불러서 나한테 물을 끼얹게 한 거예요⁠?⁠”

“⁠불렀다고는 안 할게요⁠. 국보가 둑시장에 온다고 알렸을 뿐이에요⁠. 할머니는 당신을 미워할 까닭이 있어요⁠. 그걸 사람들 앞에서 보이게 한 거예요⁠. 유리관 앞 사천 명은 그걸 몰라요⁠. 당신 라면이 맛있다는 것만 알아요⁠.⁠”

“⁠그래서 저를 천 년 동안 유리 안에 두면⁠, 사람들이 그걸 알게 돼요⁠?⁠”

“⁠당신이 유리 안에 있는 한⁠, 사람들은 당신 시대를 봐요⁠. 당신이 밖에서 국수를 말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당신 시대를 잊어요⁠. 그냥 국수 잘 마는 사람이 하나 생기는 거예요⁠.⁠”

이 사람은 외투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나갔다⁠. 깡통이 덜그럭거렸다⁠. 나는 이 소리 뒤에 「⁠안녕히 가세요⁠」를 했다⁠. 이 사람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

새벽 네 시⁠, 손님이 끊길 무렵 덜그럭 소리가 한 번 났다⁠.

두건을 깊이 쓴 손님이었다⁠. 키가 작았고 손을 소매 안에 넣고 있었다⁠. 진열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계산대 앞에 섰다⁠. 무늬의 노점에서 파는 컵라면⁠, 내가 낮에 정어리 국물 가루로 만들어 둔 것을 하나 집어 왔다⁠. 소매 밖으로 나온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어서 오세요⁠.⁠”

두건 아래 얼굴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삑 소리를 냈다⁠.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지 않았다⁠. 컵라면 뚜껑을 반쯤 열고 무늬의 주전자를 들었다⁠.

“⁠물 좀 많이 주세요⁠.⁠”

목소리를 알았다⁠. 녹음기를 쥔 손을 알았던 것처럼⁠.

“⁠라면은 물이 반이에요⁠.⁠”

나는 안쪽 선까지만 부었다⁠. 두건 쓴 손님은 이걸 받아 들고 계산대 끝 상자 위에 앉았다⁠. 삼 분을 기다리는 동안 이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사이 상인회장이 생선죽 한 그릇을 들고 와서 내 앞에 놓았다⁠.

“⁠열네 끼⁠. 저 진상 손님 재운 값이에요⁠.⁠”

나는 생선죽을 먹었다⁠. 두건 쓴 손님은 라면을 먹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일한 값으로 받은 그릇을 비우는 것을⁠,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그러고는 빈 그릇을 상자 위에 두고 소매 안에서 손을 꺼내 노점 판에 손바닥을 댔다⁠. 컵라면 값이었다⁠. 덜그럭⁠. 이 사람은 녹음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

해 뜨기 반 시간 전⁠, 마지막 손님이 왔다⁠.

깡통 줄을 건드리지 않고 천막 기둥 옆으로 들어왔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였다⁠. 둑 마을 할머니⁠. 빈손이었다⁠. 바가지도 없었다⁠.

천막 아래에 남아 있던 노점 주인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무늬가 솥 앞에서 국자를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진열대 앞으로 가서 물건 마흔두 개를 하나씩 봤다⁠. 오래 봤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집지 않고 계산대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제일 짠 거⁠.⁠”

나는 진열대를 봤다⁠. 말린 정어리가 제일 짰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한 건 이게 아니었다⁠. 나는 무늬의 솥에서 국물을 떠서 컵라면 하나에 부었다⁠. 정어리 국물에 소금 반 숟가락을 더 넣었다⁠. 할머니 집 부엌의 물보다는 덜 짤 것이었다⁠. 삼 분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이 삼 분 동안 계산대 앞에 서서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짜다⁠.⁠”

또 한 모금 마셨다⁠.

“⁠판판하다⁠.⁠”

이 사람은 컵을 두 손으로 들고 국물을 다 마셨다⁠. 면은 반을 남겼다⁠. 이가 성치 않은 사람이었다⁠. 빈 컵을 계산대에 놓고⁠, 할머니는 노점 판에 손바닥을 댔다⁠. 무늬가 「⁠안 받아요⁠」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손바닥을 떼지 않았다⁠.

“⁠고개는 들고 가라⁠.⁠”

이 사람이 말했다⁠. 그러고는 왔던 대로 천막 기둥 옆으로 나갔다⁠. 나는 할머니에게 「⁠또 오세요⁠」를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나간 뒤에 했다⁠. 빈 천막 기둥에 대고⁠.

무늬가 마지막 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끓인 라면이었다⁠. 물은 안쪽 선까지였다⁠.

“⁠열다섯 끼⁠.⁠”

*

해가 둑 위로 올라올 때 나는 정문 앞에 섰다⁠.

새 경비와 팔팔이가 양옆에 있었다⁠. 무늬와 상인회장이 둑 계단 아래까지 따라왔다가 거기서 멈췄다⁠. 정문 앞에는 손목 기계를 든 사람 다섯이 서 있었고⁠, 이 가운데 기라온이 있었다⁠. 둑시장에서 신발이 깨끗했던 두 사람도 있었다⁠. 순찰관 하나가 기라온 뒤에 서 있었다⁠.

“⁠말해요⁠.⁠”

기라온이 말했다⁠. 손목 기계 다섯이 내 얼굴을 향했다⁠.

“⁠제 발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기라온은 숙이지 않았다⁠. 나는 기계들이 내 얼굴에서 떨어지기 전에 한마디 더 했다⁠.

“⁠다음에는 제 발로 나갈 거예요⁠.⁠”

기계 하나가 흔들렸다⁠. 기라온이 순찰관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순찰관이 자기 판에 이 사람의 손바닥을 받았다⁠. 판이 초록빛으로 켜졌다⁠.

“⁠신고 거둬요⁠. 국보는 도난당한 적이 없어요⁠.⁠”

계단 아래에서 무늬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숨을 내쉬려다 말았다⁠. 기라온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의 얼굴은 하룻밤을 진 사람 얼굴이 아니었다⁠.

“⁠열다섯 끼라면서요⁠.⁠”

“⁠네⁠.⁠”

“⁠그 끼니를 본 시민이 누구예요⁠?⁠”

나는 계단 아래를 봤다⁠. 무늬⁠. 상인회장⁠. 순대 노점 주인⁠, 커피 상인⁠.

“⁠무늬 씨는 국보 도난으로 신고당했어요⁠. 거뒀어도 신고 한 번은 남아요⁠. 국보 일로 법에 걸린 사람은 일 년 동안 곁이 못 돼요⁠. 상인회장은 대여 위약금으로 몫이 묶였어요⁠. 그것도 국보 일이에요⁠. 둑시장 노점 마흔두 곳이 다 거기 묶였고요⁠.⁠”

정문 유리에 아침 해가 비쳤다⁠. 이 빛이 이 사람의 짧은 머리 끝을 하얗게 태웠다⁠.

“⁠처음부터 그거였어요⁠? 대여도⁠, 둑 마을도⁠, 신고도⁠.⁠”

“⁠당신이 밖에서 끼니를 벌 줄은 알았어요⁠. 무늬 씨는 국물만 보면 손해를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그럼 그 끼니를 본 사람을 다 국보 일에 묶어 두면 돼요⁠.⁠”

이 사람이 정문 판에 손바닥을 댔다⁠. 정문이 열렸다⁠.

“⁠들어와요⁠. 제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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