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03자)

정문 밖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마하로는 이틀 동안 유리관 앞에 왔다⁠.

첫날 이 사람은 문 앞에 서서 말을 꺼내려다가 그냥 갔다⁠. 이튿날 밤에는 옆문을 열고 들어와 원룸 의자에 앉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림 남산 타워를 보고 있었다⁠.

“⁠셋에 하나였어요⁠.⁠”

이 사람이 말했다⁠.

“⁠일흔다섯 살 몸을 깨우면⁠, 셋 중 하나는 심장이 다시 안 뛰어요⁠. 스물일곱 살은 백에 하나고요⁠. 박물관에 깨움 몫이 한 번밖에 없으면⁠, 살 사람을 깨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할 날이 길다는 것도 적었잖아요⁠.⁠”

이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려 벽을 봤다⁠. 연두색 꽃무늬 벽지였다⁠.

“⁠나 깨워 준 거 고마워해야 돼요⁠?⁠”

“⁠아니요⁠.⁠”

“⁠그럼 미안해해요⁠?⁠”

“⁠네⁠.⁠”

“⁠그것도 녹음해요⁠?⁠”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옆문이 열렸다 닫혔다⁠. 나는 이날 밤 꽃무늬 벽지의 꽃을 세다가 잠들었다⁠. 이백열한 송이에서 졌다⁠.

*

사흘째 아침⁠, 기라온이 나를 관장실로 불렀다⁠. 걷는 국보가 된 뒤로도 관장실은 처음이었다⁠. 사 층 끝 방이었고⁠, 창으로 둑이 보였다⁠. 벽에는 그림 하나 없었다⁠. 책상 위에 컵 하나⁠, 이 옆에 접힌 종이 한 장⁠. 무늬의 국물을 잰 검사관의 검사지였다⁠.

방에는 손님 둘이 먼저 와 있었다⁠. 하나는 무늬였다⁠. 앞치마 대신 깨끗한 윗옷을 입었는데 어깨가 꽉 껴서 팔을 못 내리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예순쯤 된 여자였다⁠. 손가락 마디가 굵고⁠, 손등에 생선 비늘이 한두 개 붙어 있었다⁠. 둑시장 상인회장이라고 했다⁠.

“⁠다음 주 장날에 국보님을 하루 빌리고 싶어요⁠.⁠”

상인회장이 말했다⁠. 2226년 말이었는데 나는 거의 다 알아들었다⁠. 한 달 사이에 귀가 트였다⁠.

“⁠둑시장은 달마다 한 번 「⁠옛맛 장날⁠」을 해요⁠. 옛날 음식 흉내 내는 노점들이 다 나와요⁠. 근데 우리가 내는 옛맛이 진짜 옛맛인지 아무도 몰라요⁠. 국보님이 와서 라면 한 솥만 끓여 주시면⁠, 그게 진짜니까요⁠.⁠”

“⁠대여료는요⁠?⁠”

기라온이 물었다⁠. 상인회장이 손바닥을 책상 위 판에 댔다⁠. 판에 숫자가 떴다⁠. 기라온이 이 숫자를 보고 눈썹을 조금 올렸다⁠.

“⁠둑시장 노점 마흔두 곳이 몫을 모았어요⁠.⁠”

“⁠박물관 전기 몫 한 달 치네요⁠.⁠”

기라온은 창밖의 둑을 한 번 보고 나를 봤다⁠. 나는 이 사람이 거절할 줄 알았다⁠. 이 사람은 거절하지 않았다⁠.

“⁠빌려 드릴게요⁠. 조건이 있어요⁠. 해 질 녘까지 정문 안으로 돌아와요⁠. 경비 둘이 같이 가요⁠. 국보는 시범만 하고 일하지 않아요⁠. 그리고 검사 안 한 음식은 국보 입에 안 들어가요⁠.⁠”

무늬가 무언가 말하려 했고⁠, 상인회장이 무늬의 팔꿈치를 잡았다⁠.

“⁠좋아요⁠.⁠”

손님들이 나간 뒤 기라온이 나를 남겼다⁠. 이 사람은 책상 위 컵을 손에 쥐고 창 쪽으로 걸어갔다⁠.

“⁠밖에 나가 봐요⁠. 다들 당신을 귀하게 보는 줄 알죠⁠. 둑 바깥에는 안 그런 사람들이 살아요⁠.⁠”

“⁠관장님은요⁠? 저 귀하게 봐요⁠?⁠”

이 사람은 창밖을 본 채 컵을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당신을 정확하게 봐요⁠.⁠”

*

장날 아침 아홉 시⁠, 정문이 열렸다⁠.

문턱을 넘을 때 나는 발을 한 번 멈췄다⁠. 왼쪽에서 새 경비가⁠, 오른쪽에서 팔팔이가 같이 멈췄다⁠. 정문 바깥 돌바닥은 박물관 안 바닥보다 거칠었고⁠, 밤새 내린 비에 젖어 있었다⁠. 신발 밑창으로 차가운 물기가 스몄다⁠. 쉰한 날 만에 처음 밟는 바깥이었다⁠. 이백 년 만이라고 해도 됐다⁠.

바람이 불었다⁠. 정문 유리 틈으로 맡던 짠 냄새가 이번에는 한꺼번에 얼굴로 몰려왔다⁠. 혀끝에 소금기가 앉았다⁠. 나는 입을 벌리고 숨을 크게 쉬었다⁠. 무늬가 계단 아래에서 손을 흔들었다⁠.

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백스물두 칸이었다⁠. 다 올라가자 둑 위 선로에 전차가 서 있었다⁠. 전차 문 옆에 손바닥 판이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손을 댔다⁠. 「⁠유물입니다⁠」가 뜰 줄 알았다⁠.

판이 노랗게 켜졌다⁠.

「⁠국보 오주봉 — 보호자 동반⁠.⁠」

처음 보는 글자였다⁠. 나는 이 글자 앞에서 한참 서 있었고⁠, 전차가 문을 연 채 기다렸다⁠. 팔팔이가 판에 손바닥을 대자 글자가 바뀌었다⁠. 「⁠보호자 확인 — 탑승하십시오⁠.⁠」 전차 안 손님들이 일제히 묵념을 했다⁠. 판까지 「⁠습니다⁠」를 썼다⁠.

*

둑 위에서 바깥쪽을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이게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했다⁠.

바다였다⁠. 둑 바깥으로 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이 물 위로 회색 기둥 같은 것들이 줄지어 솟아 있었다⁠. 기둥 꼭대기마다 창문이 있었다⁠. 창문은 대부분 깨져 있었다⁠. 기둥 하나의 꼭대기에 녹슨 글자가 남아 있었다⁠. 2026년에 텔레비전 광고에서 매일 보던 아파트 이름이었다⁠.

물에 잠긴 아파트였다⁠. 이십 층⁠, 삼십 층짜리가 꼭대기 몇 층만 물 위에 내놓고 서 있었다⁠. 이 사이사이 물 위에 나무 기둥을 박아 올린 작은 집들이 붙어 있었고⁠, 집과 집 사이에 판자 다리가 걸려 있었다⁠. 빨래가 걸려 있었다⁠. 아이 하나가 판자 다리 위를 뛰어갔다⁠.

“⁠둑 마을이에요⁠.⁠”

무늬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우리 어머니 가게가 저기 있었어요⁠. 저 아파트 이 층이요⁠. 지금은 물속이에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1세기관 유리 상자 안의 빨대 병이 생각났다⁠. 「⁠바다를 막은 물건⁠」 설명판의 나머지 줄을 나는 이때 읽지 않았다⁠.

*

둑시장은 둑 바깥쪽 비탈⁠, 물가 바로 위에 천막을 줄줄이 친 시장이었다⁠. 장날이라 천막이 둑 끝까지 이어졌고⁠, 노점마다 「⁠옛맛⁠」 깃발이 걸렸다⁠. 나는 노점 앞을 하나씩 지나가며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분홍색 떡볶이가 있었다⁠. 단맛이 났다⁠. 순대 노점은 배양 고기로 소를 채웠는데⁠, 순대가 사람 팔뚝만 했다⁠. 「⁠옛날 치킨⁠」 노점에서는 닭 모양으로 찍어 낸 두부를 튀기고 있었다⁠. 「⁠21세기 커피⁠」 노점 앞에서 상인이 시커먼 물을 작은 잔에 따라 주며 「⁠옛사람들은 이걸 하루에 다섯 잔씩 마시고 잠을 잊었다⁠」고 설명했다⁠. 그건 맞았다⁠.

무늬의 노점은 시장 한가운데 있었다⁠. 「⁠무늬네 정어리 국수⁠」 천막 아래 큰 솥 두 개에서 김이 올랐다⁠. 냄새가 났다⁠. 다시마와 볶은 정어리와 맑은 간장 냄새였다⁠. 둑시장에서 이 냄새가 나는 천막은 하나뿐이었다⁠.

시범은 열 시에 시작했다⁠. 상인회장이 노점 앞에 상자를 쌓아 무대를 만들었다⁠. 나는 큰 솥에 물을 붓고⁠, 마하로가 예전에 온실에서 구해 준 고춧가루와 같은 것을 무늬가 둑시장 몫을 털어 사 왔다⁠. 라면 서른 개를 솥에 넣었다⁠. 면이 풀리는 동안 나는 국자로 국물을 저었다⁠. 순태 할아버지의 국자가 아니었지만⁠, 국자 머리 안쪽 반쯤에 나는 손톱으로 선을 하나 그어 두었다⁠.

“⁠한 그릇은 여기까지예요⁠. 물이 반이에요⁠.⁠”

사람들이 국자를 들여다봤다⁠. 이백 명쯤 모였다⁠. 박물관 유리관 앞 사천 명보다 적었는데⁠, 이 사람들은 유리 없이 내 앞에 있었다⁠. 앞줄 남자의 입김이 내 손등에 닿았다⁠.

시범이 끝날 무렵 「⁠21세기 커피⁠」 노점 상인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이 사람도 컵라면을 하나 들고 있었다⁠. 자기 노점에서 「⁠옛날 컵라면⁠」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것이었다⁠.

“⁠이게 진짜인지 저게 진짜인지 국보가 어떻게 알아요⁠? 국보가 자기 거만 진짜라고 하면 끝이에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상인회장을 봤다⁠. 상인회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눈 감고 먹어 봐요⁠. 사람들이⁠.⁠”

그렇게 판이 벌어졌다⁠. 그릇 두 개에 국물을 나눠 담고⁠, 앞줄 사람 열 명이 눈을 가리고 차례로 한 숟가락씩 떠먹었다⁠. 첫 사람이 상인의 그릇을 먹고 「⁠달다⁠」고 했고⁠, 내 그릇을 먹고는 기침을 했다⁠. 두 번째 사람은 내 그릇을 먹고 눈가리개를 벗더니 한 숟가락을 더 떴다⁠. 세 번째 사람은 상인의 그릇을 먹고 「⁠이건 우리 집 밥틀 맛이다⁠」라고 했다⁠. 열 명 중 아홉이 내 그릇을 한 번 더 먹으려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상인의 아들이었다⁠.

상인은 자기 컵라면을 내려다보다가 뚜껑에 적힌 글씨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뜨거운 물을 붓고 오래 기다릴수록 맛이 깊어진다⁠」 박물관 상점에서 파는 재현품을 베꼈다고 했다⁠. 이 사람은 이날 오후 무늬의 줄 맨 끝에 섰다⁠.

그리고 나는 일했다⁠. 시범은 솥 하나로 끝났지만⁠, 이후로 무늬의 노점 앞에 줄이 이어졌다⁠. 나는 솥 앞에 서서 무늬 대신 국물을 잡았고⁠, 그릇을 건넸고⁠, 「⁠맛있게 드세요⁠」를 했다⁠. 새 경비가 내 옆에 서서 「⁠국보는 일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무시했다⁠. 손님이 몰리자 새 경비는 이 말을 하다가 국물 그릇을 든 손님들에 밀려 천막 기둥 뒤로 밀려났다⁠.

점심이 지나자 무늬가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내 앞에 놓았다⁠.

“⁠일곱 끼요⁠. 내가 준다고 했잖아요⁠.⁠”

새 경비가 기둥 뒤에서 미끄러져 나와 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손목을 둥근 팔이 덮었다⁠.

“⁠국보의 무게가 깨어난 날보다 사 킬로그램 적습니다⁠. 국보 훼손입니다⁠. 보존 식사입니다⁠.⁠”

팔팔이였다⁠. 팔팔이는 새 경비의 손목을 잡은 채 나를 향해 파란 불을 깜박였다⁠.

“⁠국보 식사 중입니다⁠. 기다리십시오⁠.⁠”

나는 먹었다⁠. 국물까지 다 먹는 동안 두 로봇은 천막 아래에서 손목을 맞잡고 서 있었다⁠. 둑시장 사람들이 이 둘을 둘러싸고 구경했다⁠. 누가 「⁠옛맛 장날 최고의 시범⁠」이라고 했다⁠.

해가 기울 무렵⁠, 솥 두 개를 다 비우고 설거지를 마친 내 앞에 무늬가 두 번째 그릇을 놓았다⁠. 「⁠여덟 끼⁠.⁠」 이때 팔팔이는 이미 새 경비를 붙잡고 있었다⁠. 상인회장이 이 장면을 팔짱 끼고 지켜보다가 말했다⁠.

“⁠나도 봤어요⁠. 일곱이랑 여덟⁠.⁠”

*

여덟째 그릇의 국물을 반쯤 마셨을 때 시장 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람들이 천막 사이로 밀려왔다⁠. 둑 바깥쪽 계단으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옷이 젖어 있었고⁠, 신발 대신 고무를 발에 감은 사람도 있었다⁠. 손에 나무판을 든 사람이 있었는데⁠, 판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바다를 올린 사람⁠」 다른 판에는 「⁠탄소 세대는 유리 안에⁠」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 사이에 손목 기계를 든 사람이 둘 섞여 있었다⁠. 옷이 젖지 않았고 신발이 깨끗했다⁠. 둘은 사람들보다 먼저 천막 아래로 들어와 기계를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국보님⁠, 바다를 올린 시대 사람으로서 둑 마을에 한 말씀 하세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국수 그릇을 내려다봤다⁠. 둘은 내 얼굴을 찍고⁠, 내가 든 그릇을 찍고⁠, 이 그릇 너머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찍었다⁠. 이들은 둑 마을 사람들이 언제 올지 아는 것처럼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늬가 솥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보다 먼저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 하나가 걸어 나왔다⁠. 여든은 넘어 보였다⁠. 허리가 굽었고⁠, 두 손에 나무 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바가지 안에 물이 찰랑였다⁠. 할머니가 내 앞에 섰다⁠. 천막 아래가 조용해졌다⁠.

“⁠네가 그 옛사람이냐⁠?⁠”

“⁠네⁠.⁠”

“⁠라면이 맛있다며⁠.⁠”

“⁠네⁠.⁠”

할머니가 바가지를 들어 보였다⁠. 물에서 비린내와 쇠 냄새가 났다⁠.

“⁠이건 우리 집 물이다⁠. 너네 때 지은 아파트 칠 층⁠, 우리 집 부엌까지 들어찬 물이야⁠. 이게 우리 집 맛이다⁠.⁠”

할머니의 손이 바가지를 높이 들었다⁠. 팔팔이가 파란 불을 깜박였지만 새 경비를 붙잡은 팔을 풀지 못했다⁠. 나는 국수 그릇을 든 채 서 있었다⁠.

바닷물이 내 얼굴에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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