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60자)

치료 대기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새 경비의 손가락이 내 팔을 조였다⁠. 팔팔이의 둥근 팔이 이 손목을 덮은 채 버텼다⁠. 두 로봇 사이에서 내 팔꿈치 위의 살이 하얗게 눌렸다⁠.

“⁠국보의 팔 둘레가 눌렸습니다⁠. 국보 훼손입니다⁠.⁠”

팔팔이가 말했다⁠. 새 경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끈한 얼굴판에 기라온의 얼굴이 비쳤다⁠. 이 사람이 명령을 거두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놔요⁠. 걸어갈게요⁠.⁠”

내가 말했다⁠. 새 경비는 나를 보지 않고 기라온을 봤다⁠. 기라온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은빛 손가락이 풀렸다⁠. 팔팔이의 팔도 내려갔다⁠. 나는 젓가락을 주워 그릇에 걸쳐 두고 일어섰다⁠. 국수가 반쯤 남아 있었다⁠. 무늬가 이 그릇을 내려다보다가 앞치마 끈을 풀었다⁠.

이 일은 끝난 것 같았는데 끝나지 않았다⁠. 점심 줄에 서 있던 사람 하나가 손목 기계로 이 장면을 다 찍어 두었다⁠. 낡은 밥솥 같은 로봇이 은빛 로봇의 손목을 잡고 「⁠국보에 손대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이날 밤 이것이 둑 위 전차 안 화면마다 떴다⁠. 다음 날 아침 박물관 정문 앞 줄에서 누가 팔팔이 이름을 불렀고⁠, 줄 전체가 이 이름을 불렀다⁠. 마하로 말로는 사람들이 「⁠팔팔이를 녹이지 마라⁠」를 「⁠봉투 필요하세요⁠」 다음으로 많이 했다⁠.

기라온은 팔팔이를 녹이지 않았다⁠. 대신 정문 옆에 판을 하나 더 세웠다⁠. 「⁠21세기관 경비 팔팔이 — 전시 중⁠」 그리고 새 경비를 내 왼쪽에 붙였다⁠. 팔팔이는 오른쪽이었다⁠. 이날부터 나는 로봇 둘을 거느리고 다녔다⁠. 오른쪽 것은 나를 지켰고 왼쪽 것은 나를 막았다⁠. 화장실 앞에서 둘이 동시에 손바닥을 문에 대려다 부딪쳤다⁠. 손님들이 이 장면을 보려고 화장실 앞에 줄을 섰다⁠. 이 줄에서도 기라온은 관람료를 받았다⁠.

*

무늬는 사월 첫날 아침 박물관을 떠났다⁠.

정문 앞까지 배웅했다⁠. 나는 정문 밖으로 한 발도 못 나갔고⁠, 왼쪽의 새 경비가 문턱에 팔을 걸쳐 두었다⁠. 무늬는 큰 가방 두 개를 메고⁠, 다시마 담그던 통을 품에 안고 있었다⁠.

“⁠둑시장 가요⁠. 둑 바깥 강가에 옛맛 노점들이 모인 데가 있어요⁠. 어머니 가게가 거기 근처였어요⁠.⁠”

“⁠장사 돼요⁠?⁠”

“⁠정어리 국수요⁠. 다시마는 찬물에 담갔다 건지고⁠, 대가리 떼고 볶고⁠, 간장 반 숟가락⁠.⁠”

이 사람이 내 말을 그대로 따라 외웠다⁠. 그러고는 다시마 통을 고쳐 안았다⁠.

“⁠밖에서 기다릴게요⁠. 일곱째 끼는 내가 줘야죠⁠.⁠”

이 사람은 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어갔다⁠. 계단 위에서 한 번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정문 유리가 닫히면서 이 손을 잘랐다⁠. 내 끼니는 여섯에서 멈췄다⁠. 유리관 밥틀 죽과 시범 컵라면은 셀 수 없었고⁠, 보존 식사로 데려갈 구내식당도 이제 비었다⁠. 6월 7일까지 예순일곱 날이 남아 있었다⁠.

이 주에 나는 박물관 안에서 일곱 번째 끼를 벌어 보려고 했다⁠. 로비 손님 하나가 둑 마을에서 왔다며 신발 끈이 자꾸 풀린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계산대 밖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이 사람의 끈을 2026년 운동화 매듭으로 두 번 감아 묶어 주었다⁠. 이 사람이 고맙다며 품에서 찐 감자 하나를 꺼냈다⁠. 일한 값이었다⁠. 감자가 내 손에 닿기 직전⁠, 왼쪽에서 은빛 손이 이것을 집어 갔다⁠. 새 경비였다⁠. 팔팔이의 파란 불은 깜박이지 않았다⁠. 이날 아침 잰 내 무게는 줄지 않았다⁠. 감자는 이 길로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팔팔이처럼 서랍에 넣어 두지도 않았다⁠.

이튿날에는 청소 로봇의 바퀴에 낀 머리카락을 손으로 빼 주고⁠, 대신 청소 로봇이 바닥에서 주운 사탕을 받으려 했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니었다⁠. 새 경비가 이 사탕도 집어 갔다⁠.

사흘째 아침⁠, 정문과 로비 입구와 계산대 앞에 새 판이 걸렸다⁠.

「⁠국보에게 음식을 건네지 마십시오⁠. 국보 훼손 공모로 처벌받습니다⁠.⁠」

2026년 동물원 우리 앞에 붙어 있던 판과 글씨가 똑같았다⁠. 손님들은 판 앞에서 묵념을 하고 들어왔다⁠. 이날부터 아무도 내 손에 아무것도 쥐여 주지 않았다⁠. 아흔 넘은 껌 할아버지도 계산대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도로 뺐다⁠.

*

마하로도 21세기관에서 사라졌다⁠.

구내식당에서 녹음기를 켜지 않고 나간 다음 날⁠, 기라온이 이 사람을 지하 수장고로 보냈다고 했다⁠. 수장고 정리가 새 일이었다⁠. 녹음은 새로 온 젊은 학예사가 맡았는데⁠, 이 사람은 옛말을 하나도 몰라서 내가 「⁠헐⁠」이라고 할 때마다 도와 달라는 소리인 줄 알고 팔팔이를 불렀다⁠.

나흘 뒤 새벽 네 시⁠, 유리관 옆문이 열렸다⁠. 마하로였다⁠. 이 사람은 녹음기 대신 작은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새 경비는 네 시부터 사십 분 동안 충전해요⁠. 팔팔이는 충전 안 해요⁠. 여든두 살 기계라 몸통 안에 작은 원자 전지가 들어 있대요⁠.⁠”

“⁠어디 가요⁠?⁠”

“⁠수장고요⁠. 보여 줄 게 있어요⁠.⁠”

나는 이 사람을 따라갔다⁠. 팔팔이가 한 걸음 떨어져 따라왔다⁠. 「⁠국보 이동을 시작합니다⁠」라고 하려는 것을 내가 손바닥으로 이 입 자리를 덮어 막았다⁠. 팔팔이가 작게 말했다⁠. “⁠국보의 손바닥이 팔팔이에게 닿았습니다⁠. 국보 훼손은 아닙니다⁠.⁠”

*

수장고는 지하 이 층⁠, 보존실 바로 위였다⁠. 천장까지 닿는 선반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공기가 말라서 숨을 쉴 때마다 목이 따끔했다⁠. 마하로는 선반 사이를 오래 걸어 맨 안쪽 구석으로 갔다⁠. 거기 2026년의 골판지 상자 두 개가 비닐에 싸여 놓여 있었다⁠. 상자 옆구리에 「⁠겨울잠 연구소 — 지원자 소지품⁠」이라는 글씨가 바래 있었다⁠.

하나는 내 것이었다⁠. 비어 있었다⁠. 안에 있던 것은 다 위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휴대폰⁠, 조끼⁠, 그리고 소장품 1호⁠.

다른 상자는 순태 할아버지의 것이었다⁠. 마하로가 비닐을 벗기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 낡은 앞치마가 접혀 있었다⁠. 기름이 배어 군데군데 투명해진 흰 앞치마였다⁠. 이 위에 국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나는 국자를 들어 올렸다⁠. 스테인리스였는데 손잡이 한가운데가 닳아 반들반들했다⁠. 엄지가 얹히는 자리였다⁠. 사십 년 동안 같은 손가락이 같은 자리를 눌러 쇠가 엄지 모양으로 패어 있었다⁠. 나는 내 엄지를 거기 얹어 봤다⁠. 맞지 않았다⁠. 이 홈은 내 엄지보다 넓고 짧았다⁠. 순대를 썰고 떡볶이를 젓던 손가락이었다⁠.

국자 머리 안쪽에 칼끝으로 긁은 선이 하나 있었다⁠. 국자 높이의 반쯤 되는 자리였다⁠.

“⁠이건 뭐예요⁠?⁠”

마하로가 손전등을 비췄다⁠. 나는 알았다⁠. 라면은 물이 반이야⁠, 총각⁠.

“⁠물선이에요⁠. 라면 물을 여기까지 퍼 담으면 한 그릇이에요⁠.⁠”

나는 국자를 오래 쥐고 있었다⁠. 손잡이가 내 손바닥 온기로 미지근해질 때까지⁠. 마하로는 그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녹음기도 꺼내지 않았다⁠.

“⁠밑에 가요⁠.⁠”

이 사람이 말했다⁠.

*

보존실 문은 마하로의 손바닥에 열렸다⁠. 학예사는 보존실까지 열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찬 공기가 바닥을 타고 발등을 덮었다⁠. 이번에는 창 너머가 아니었다⁠. 나는 순태 할아버지의 냉동관 옆에 섰다⁠.

관의 머리맡에 손바닥만 한 쇠판이 박혀 있었다⁠. 서리가 덮여 있어서 마하로가 소매로 문질렀다⁠. 이 아래에서 이백 년 전 글씨가 나왔다⁠. 2026년의 회사가 새긴 것이었다⁠.

「⁠염순태 · 1951년생 · 특발성 폐섬유증 · 치료 대기 — 고칠 수 있게 되면 깨울 것⁠.⁠」

나는 이 글씨를 소리 내어 읽었다⁠. 마하로가 손전등을 쇠판에 댄 채로 말했다⁠.

“⁠폐가 딱딱하게 굳는 병이에요⁠. 이 시대에는 그 병이 나아요⁠. 시술 한 번이면 돼요⁠. 백 년쯤 전부터요⁠.⁠”

“⁠그럼 백 년 전에 깨웠어야죠⁠.⁠”

“⁠그때는 이 관이 창고에 있었어요⁠. 아무도 이 판을 안 읽었어요⁠.⁠”

나는 관 옆구리의 손바닥 판에 손을 댔다⁠. 열리지 않을 걸 알면서 댔다⁠. 판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유물입니다⁠.⁠」

유물이 유물을 열려고 한 것이었다⁠. 팔팔이가 내 손목 앞에 팔을 넣으려다 말았다⁠. 국보의 손이 상하는 일은 아니었다⁠.

“⁠박물관이 가져온 건 이 년 전이잖아요⁠. 마하로 씨는 읽었잖아요⁠.⁠”

이 사람이 대답하기 전에 보존실 문이 열렸다⁠. 기라온이 들어왔다⁠. 뒤로 충전을 다 마치지 못한 새 경비가 발소리 없이 따라왔다⁠. 보존실 문이 열리면 관장의 손목 기계가 울린다고⁠, 나중에 마하로가 말해 주었다⁠.

*

“⁠그 판은 나도 읽었어요⁠.⁠”

기라온이 순태 할아버지의 관 반대편에 섰다⁠. 우리 사이에 관이 하나 있었다⁠. 서리 낀 유리 아래 할아버지의 얼굴이 있었다⁠.

“⁠고칠 수 있게 되면 깨운다는 약속은 그 회사가 한 거예요⁠. 그 회사는 이백 년 전에 망했어요⁠. 나는 그 회사가 아니에요⁠.⁠”

“⁠그래도 고칠 수 있잖아요⁠.⁠”

“⁠고칠 수 있어요⁠. 깨우는 데 박물관 한 해 치 몫⁠, 고치는 데 반년 치 몫이 들어요⁠. 그 몫은 없어요⁠. 그러니까 거래를 해요⁠.⁠”

이 사람이 관 위에 손을 얹었다⁠. 유리에 이 사람의 손바닥 자국이 하얗게 번졌다⁠.

“⁠6월 7일 의식에서⁠,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스스로 말해 줘요⁠. 천 년 잠에 들겠다고⁠. 웃으면서요⁠. 그러면 의식 자리 몫으로 깨움 값이 나와요⁠. 내년 봄⁠, 당신이 깨어날 때 순태 씨도 같이 깨워서 고쳐요⁠. 그리고 둘이 같은 유리관에 서는 거예요⁠. 봄마다 그 컵라면 반씩 나눠 먹으면서요⁠. 사람들이 좋아할 거예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이 그림을 봤다⁠. 봄의 유리관⁠, 순태 할아버지가 내 컵라면에서 물을 따라 내는 손⁠, 「⁠물이 많다⁠, 총각⁠」 천 번의 봄 동안 할아버지는 일흔다섯 살이고 나는 스물일곱 살이다⁠. 둘 다 늙지 않는다⁠. 그건 나쁜 그림이 아니었다⁠.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박수를 받았고⁠, 밥이 들어왔고⁠, 할아버지가 살았다⁠. 내가 할 일은 「⁠네⁠」 한마디였다⁠.

“⁠한 번 깨웠다 재울 때마다 몸이 조금씩 닳아요⁠.⁠”

마하로가 말했다⁠. 기라온이 이 사람을 봤다⁠.

“⁠천 번을 깨우고 재우면 천 번 닳아요⁠. 스물일곱 살 몸은 버티지만 일흔다섯 살 몸은 몇 번이나 버틸지 몰라요⁠. 관장님도 아시잖아요⁠.⁠”

기라온은 마하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국자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국자를 수장고에서 그대로 들고 내려온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싫어요⁠.⁠”

“⁠뭐가요⁠?⁠”

“⁠거래요⁠. 제가 시민이 될게요⁠. 시민이 돼서 깨워 달라고 청원할게요⁠. 도시 몫으로요⁠. 할아버지는 그냥 깨어나서 그냥 늙으면 돼요⁠. 국자 들고 다시 장사하든가⁠, 둑시장 가서 무늬 씨 국물 물을 고쳐 주든가⁠.⁠”

“⁠당신 끼니는 여섯이에요⁠.⁠”

기라온의 목소리는 낮아지지도 높아지지도 않았다⁠.

“⁠밖에 나갈 길도 없고⁠, 곁에 설 사람도 없어요⁠. 6월 7일이 먼저 와요⁠. 그날 당신은 잠들고⁠, 순태 씨는 깨울 몫이 없어서 계속 자요⁠. 당신이 지금 거절하는 건 순태 씨 몫이에요⁠.⁠”

“⁠그래도 싫어요⁠.⁠”

이 사람이 관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 자국이 유리 위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 대신 마하로를 보며 말했다⁠.

“⁠그럼 하나만 알고 가요⁠. 작년 겨울⁠, 박물관에 깨움 몫이 한 사람 치밖에 없었어요⁠. 둘 중 누구를 깨울지 정하는 자리가 있었고요⁠. 일흔다섯 살 순태 씨는 깨우다 멈출 수 있고 전시할 날도 짧다⁠, 스물일곱 살 청년을 깨우자⁠. 그 보고서를 쓴 사람이 누군지 물어봐요⁠.⁠”

마하로의 손전등이 아래로 처졌다⁠. 빛이 쇠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마하로를 봤다⁠. 이 사람은 나를 보지 않고 순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맞아요⁠.⁠”

이 사람이 말했다⁠.

“⁠내가 골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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