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27자)

팔팔이의 규칙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나는 국수를 먹었다⁠.

맛은 없었다⁠. 따뜻한 물에 다시마가 스쳐 간 맛⁠, 면은 밥틀이 찍어 낸 것이라 너무 고르게 부드러웠다⁠. 그래도 나는 그릇을 들고 국물까지 마셨다⁠. 무늬가 계산대 너머에서 내 목울대가 오르내리는 것을 셌다⁠. 다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았을 때 말했다⁠.

“⁠한 끼⁠.⁠”

로비에 이 말이 울렸다⁠. 기라온은 입구에 선 채로 이 말을 들었다⁠. 이 사람의 얼굴에서 무언가 움직였는데⁠,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다시 셈하는 얼굴이었다⁠.

“⁠계약서대로 하면 해지는 통보하고 열흘 뒤예요⁠. 이달 말일까지 하세요⁠, 무늬 씨⁠.⁠”

“⁠그럼 이달 말일까지는 이 사람 밥 줘도 되는 거예요⁠?⁠”

“⁠검사 안 한 음식은 국보에게 못 들어가요⁠. 그건 계약이 아니라 박물관 규칙이에요⁠.⁠”

이 사람은 팔팔이를 불렀다⁠. 팔팔이가 계산대 옆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오늘부터 국보 반경 한 걸음 안으로 바깥 음식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들어오면 거둬요⁠.⁠”

“⁠명령을 받았습니다⁠.⁠”

기라온이 돌아섰다⁠. 로비를 반쯤 건넜을 때 이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 한 끼를 셀지 말지는 법정이 정해요⁠. 당신이 그 법정에 설 일은 없겠지만⁠.⁠”

*

팔팔이는 명령을 글자 그대로 지켰다⁠.

다음 날 밤⁠, 둑 경비 하나가 계산대에 기대어 주먹밥을 꺼내 먹으려 했다⁠. 팔팔이가 둥근 팔로 주먹밥을 낚아챘다⁠. “⁠바깥 음식입니다⁠. 거둡니다⁠.⁠” 경비는 내 반경 한 걸음 안에 서 있었다⁠. 다음 날 낮에는 손님으로 온 할머니가 내 손에 사탕 하나를 쥐여 주었는데⁠, 사탕이 내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팔팔이는 이 사탕을 몸통 안쪽 작은 서랍에 넣었다⁠. 서랍 안에는 이미 주먹밥 두 개와 떡 하나와 말린 과일 한 줌이 들어 있었다⁠.

사흘째 새벽 무늬가 국물 냄비를 들고 로비에 왔다⁠. 고친 국물을 맛봐 달라고 했고⁠, 팔팔이는 냄비를 통째로 거두려 했다⁠. 무늬가 냄비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덩치 큰 남자와 밥솥만 한 로비가 냄비 하나를 두고 로비 한가운데서 줄다리기를 했다⁠. 냄비 뚜껑이 덜컹거렸고 국물이 바닥에 튀었다⁠. 무늬가 졌다⁠. 팔팔이는 여든두 살이었지만 팔 힘은 기계였다⁠.

무늬가 빈손으로 서서 말했다⁠. “⁠저거 다시마 사흘 담근 거예요⁠.⁠”

“⁠거둡니다⁠.⁠”

“⁠서랍에 안 들어가잖아요⁠!⁠”

팔팔이는 냄비를 머리 위에 이고 로비 구석으로 가서 섰다⁠. 이날 밤 내내 팔팔이는 국물 냄비를 이고 있었고⁠, 밤손님들은 이 앞에서 묵념을 했다⁠.

*

이 주에 내 몸무게가 줄었다⁠. 바지 허리가 헐거워졌다⁠. 유리관 안 옷장에 재현해 둔 2026년 청바지였는데⁠, 처음 입었을 때는 단추가 빠듯했다⁠. 밥틀 죽 두 그릇과 시범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살면서 밤에는 계산대 앞에 서 있으니 당연했다⁠. 2026년에 나는 일흔한 킬로였다⁠.

나흘째 새벽 세 시⁠, 손님이 끊긴 사이에 나는 팔팔이에게 물었다⁠.

“⁠팔팔아⁠. 너 제일 첫 번째 규칙이 뭐야⁠?⁠”

“⁠국보의 몸과 모양이 상하는 것을 막습니다⁠.⁠”

“⁠관장님 명령이랑 그 규칙이 부딪치면⁠?⁠”

파란 불이 길게 한 번 켜졌다⁠.

“⁠첫 규칙이 앞섭니다⁠. 첫 규칙은 팔팔 계열의 회로에 박혀 있습니다⁠. 명령으로 지우지 못합니다⁠.⁠”

나는 이 말을 되새겼다⁠. 기라온이 팔팔이에게 내리는 명령은 다 이 위에 얹히는 것이었다⁠. 밑에 깔린 것은 하나였다⁠.

“⁠그럼 내 모양은 누가 재⁠?⁠”

“⁠팔팔이가 잽니다⁠. 국보가 깨어난 날부터 날마다 키와 둘레와 무게를 잽니다⁠.⁠”

“⁠지금 재 봐⁠.⁠”

팔팔이의 파란 불이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훑고 내려갔다⁠. 이마가 따뜻해졌다가 식었다⁠. 팔팔이가 말했다⁠.

“⁠국보의 무게가 깨어난 날보다 사 킬로그램 줄었습니다⁠. 허리둘레가 칠 센티미터 줄었습니다⁠.⁠”

“⁠그건 모양이 상한 거야⁠, 안 상한 거야⁠?⁠”

파란 불이 깜박이지 않고 켜진 채로 있었다⁠. 팔팔이가 생각할 때 그랬다⁠. 꽤 길었다⁠. 로비 천장에서 환기구가 한 번 돌아가고 멈출 만큼⁠.

“⁠국보 훼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상한 모양을 되돌립니다⁠. 국보의 무게를 되돌리려면 먹어야 합니다⁠.⁠”

“⁠관장님이 바깥 음식 막으라고 했잖아⁠.⁠”

“⁠첫 규칙이 앞섭니다⁠.⁠”

팔팔이가 몸을 돌려 로비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사흘 전부터 머리에 이고 있던 국물 냄비를 내려 내 앞 계산대에 놓았다⁠. 몸통 서랍이 열렸다⁠. 주먹밥 두 개⁠, 떡 하나⁠, 말린 과일 한 줌⁠, 사탕 하나가 계산대 위로 굴러 나왔다⁠.

“⁠보존 식사입니다⁠.⁠”

나는 주먹밥을 하나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이건 손님들 거였다⁠. 내가 일해서 받은 게 아니었다⁠. 이걸 먹으면 몸무게는 늘어도 끼니는 하나도 안 늘었다⁠.

“⁠팔팔아⁠. 보존 식사는 어디서 먹어도 돼⁠?⁠”

“⁠국보의 모양을 되돌리는 곳이면 됩니다⁠.⁠”

“⁠구내식당은⁠?⁠”

*

이날부터 새벽 세 시마다 팔팔이가 나를 구내식당으로 데려갔다⁠. 「⁠보존 식사 이동⁠」이라고 했다⁠. 구내식당 문은 팔팔이의 손바닥이 열었다⁠.

무늬는 매일 새벽 거기서 기다렸다⁠. 첫날 내 앞에 새로 끓인 국물을 내려놓았는데⁠, 말린 정어리가 들어가 있었다⁠. 2226년 바다에는 정어리가 많다고 했다⁠. 둑 바깥 물이 따뜻해져서 그렇다고⁠. 정어리 대가리를 떼어 마른 팬에 볶는 냄새가 식당을 채우자 무늬가 코를 손으로 막았다가 놓았다가 했다⁠. 이 시대 사람에게는 이 냄새가 너무 진했다⁠.

나는 일했다⁠. 국물 간을 봤고⁠, 다시마 담그는 시간을 맞췄고⁠, 온실 콩으로 담갔다는 맑은 간장을 반 숟가락씩 넣어 가며 무늬 혀에 맞췄다⁠. 일이 끝나면 무늬가 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내 앞에 놓았다⁠. 일한 값이었다⁠. 무늬가 그릇을 놓을 때마다 소리 내어 셌다⁠.

“⁠두 끼⁠.⁠”

이틀째 새벽에는 설거지를 했다⁠. 2226년 식당에는 설거지 기계가 있었지만 무늬는 기계가 그릇 이를 갈아 먹는다고 손으로 씻었다⁠. 그릇 서른 개를 씻은 값으로 비빔국수를 받았다⁠. 고춧가루는 무늬가 자기 몫을 털어 온실에서 한 숟가락 사 왔다⁠. 맛을 보다가 울었다⁠. 울면서 계속 먹었다⁠. 혀가 아프다고 하면서 그릇을 내려놓지 않았다⁠.

“⁠세 끼⁠.⁠”

사흘째 점심에 기라온이 사람을 하나 데리고 구내식당에 왔다⁠. 문화유산 위원회에서 나온 음식 검사관이라고 했다⁠. 마른 체구에 흰 장갑을 낀 남자였고⁠, 손에 숟가락 모양의 은빛 막대를 들고 있었다⁠.

“⁠이 식당 국물을 재 보세요⁠. 국보에게 들어가는 음식이에요⁠.⁠”

검사관이 막대를 국물 냄비에 담갔다⁠. 막대 끝에서 숫자가 떴다⁠. 이 사람이 눈썹을 올렸다⁠.

“⁠소금이 국보 기준의 열 배예요⁠.⁠”

“⁠그럼 됐어요⁠.⁠”

기라온이 돌아서려는데 검사관이 막대를 빼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떠먹었다⁠. 검사는 원래 막대로 하는 거였다⁠. 이 사람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한 숟가락을 더 떴다⁠. 세 번째 숟가락을 뜰 때 기라온이 이 사람의 이름을 불렀는데⁠, 이 사람은 대답 대신 무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한 그릇 줘요⁠. 국수 넣어서요⁠.⁠”

검사관은 이날 두 그릇을 먹고 갔다⁠. 나가면서 검사지에 「⁠국보 부적합 — 소금 기준 열 배⁠」라고 적었고⁠, 이 밑에 작은 글씨로 「⁠본인은 적합⁠」이라고 덧붙였다⁠. 기라온은 이 검사지를 접어 외투 안쪽에 넣었다⁠. 웃지 않았다⁠. 이 사람은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넣어 두었다⁠.

나흘째 새벽에는 마하로가 구내식당에 왔다⁠. 로비 녹음기를 걷다가 정어리 볶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 사람은 식당 구석에 녹음기를 내려놓고⁠, 내가 무늬에게 다시마 건지는 때를 설명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들었다⁠. 다 듣고 나서 이 사람이 말했다⁠.

“⁠이 끼니들⁠, 법정 가면 다툼이 나요⁠. 보존 식사 이동은 팔팔이가 데려온 거고⁠, 팔팔이는 박물관 거예요⁠. 관장님은 이걸 보관자가 준 밥이라고 할 거예요⁠.⁠”

“⁠밥은 무늬 씨 거고⁠, 일은 제가 했어요⁠.⁠”

“⁠알아요⁠.⁠”

“⁠그럼 그 법정에서 마하로 씨가 그렇게 말해 줄래요⁠?⁠”

이 사람이 녹음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녹음 단추 위에서 멈췄다⁠.

“⁠나는 관장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녹음기를 켜지 않은 채 들고 나갔다⁠. 식당 구석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이 사람이 무언가를 녹음하지 않고 간 것을 봤다⁠.

사흘째와 나흘째⁠, 구내식당 앞에 처음으로 줄이 이어졌다⁠. 낮에 로비에서 라면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옆 식당으로 몰려왔다⁠. 무늬의 밥틀 죽은 여전히 안 팔렸고⁠, 정어리 국수는 점심 한 끼에 백 그릇이 나갔다⁠. 나는 새벽마다 다음 날 국물을 잡아 주었다⁠. 네 끼⁠, 다섯 끼⁠.

닷새째 새벽⁠, 무늬가 여섯 번째 그릇을 내려놓으며 셌다⁠.

“⁠여섯 끼⁠.⁠”

그리고 이 사람은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앞치마로 손을 닦았다⁠.

“⁠내 어머니가 둑 마을에서 국숫집을 했어요⁠. 바다가 들어오기 전에요⁠. 그 국수 맛을 나는 몰라요⁠. 너무 어릴 때 가게가 물에 잠겼으니까⁠. 근데 이 국물을 먹으니까⁠, 그 맛이 이랬겠다 싶어요⁠.⁠”

나는 이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서 국물을 마셨다⁠. 팔팔이가 식당 문 옆에 서서 내 무게를 쟀다⁠. “⁠국보의 무게가 일 킬로그램 되돌아왔습니다⁠.⁠”

*

기라온은 이 닷새 동안 검사관을 데려온 날 말고는 한 번도 식당에 오지 않았다⁠. 막지도 않았다⁠. 막지 않은 까닭은 엿새째에 알았다⁠.

엿새째 아침⁠, 이 사람이 구내식당에 왔다⁠. 무늬가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부터는 식당 자리를 비워야 했다⁠. 기라온은 국수를 먹고 있는 내 맞은편에 섰다⁠.

“⁠팔팔이를 녹이기로 했어요⁠.⁠”

젓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여든두 살이에요⁠. 고칠 부품도 없고⁠, 낡은 첫 규칙 때문에 관장 명령을 안 들어요⁠. 국보 경비가 국보를 관장 말보다 앞세우면 그건 경비가 아니에요⁠. 새 경비가 오늘 와요⁠. 팔팔이는 내일 아침에 녹여요⁠.⁠”

팔팔이는 식당 문 옆에 서 있었다⁠. 파란 불이 한 번 깜박였다⁠.

“⁠팔팔이 훼손 예정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라온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팔팔이 쪽을 보지 않았다⁠.

“⁠팔팔이가 훼손되면 국보의 모양은 누가 잽니까⁠?⁠”

“⁠새 경비가 재요⁠.⁠”

“⁠새 경비도 첫 규칙이 있습니까⁠?⁠”

기라온이 그제야 팔팔이를 봤다⁠.

“⁠새 경비의 첫 규칙은 관장의 명령을 따르는 거예요⁠.⁠”

이 말을 하고 이 사람이 식당 문을 향해 손짓했다⁠. 문이 열리고⁠, 키가 사람만 한 은빛 로봇이 들어왔다⁠. 팔다리가 길고 얼굴 자리는 매끈한 판이었다⁠. 걸음에 소리가 없었다⁠. 뒤에 흰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따라 들어왔다⁠. 지하 보존실 일을 맡은 보존과장이라고 했다⁠.

“⁠국보를 유리관으로 모셔요⁠. 오늘부터 보존 식사는 없어요⁠.⁠”

새 경비가 내 옆으로 왔다⁠. 길쭉한 손가락이 내 팔꿈치 위를 감쌌다⁠. 차가웠고⁠,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젓가락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식탁에 떨어졌다⁠. 무늬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이때 팔팔이가 움직였다⁠. 밥솥 같은 몸이 바닥을 미끄러져 와서 새 경비와 나 사이로 파고들었다⁠. 둥근 팔이 새 경비의 손목을 덮었다⁠.

“⁠국보에 손대지 마십시오⁠.⁠”

새 경비의 매끈한 얼굴판이 팔팔이를 내려다봤다⁠. 은빛 손가락은 내 팔을 놓지 않았고⁠, 팔팔이의 팔도 이 손목을 놓지 않았다⁠. 두 로봇 사이에서 내 팔이 끼어 있었다⁠. 구내식당 안에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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