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759자)

유물입니다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본관 복도의 첫 문은 화장실이었다⁠.

급해서 그랬다⁠. 닷새 동안 유리관 안 원룸의 변기만 썼는데⁠, 그건 재현품이라 물이 내려가지 않고 밑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빨아들였다⁠. 나는 진짜 화장실을 쓰고 싶었다⁠. 문에 손바닥을 댔다⁠.

「⁠유물입니다⁠.⁠」

팔꿈치를 댔다⁠. 「⁠유물입니다⁠.⁠」 이마를 댔다⁠. 「⁠유물입니다⁠.⁠」 발바닥을 들어 대려는데 팔팔이가 내 발목 앞에 팔을 넣었다⁠.

“⁠국보의 발이 상합니다⁠.⁠”

“⁠국보가 지금 쌀 것 같습니다⁠.⁠”

팔팔이의 파란 불이 세 번 깜박였다⁠. 무언가를 셈하는 듯했다⁠. 그사이 뒤에서 구두 소리가 다가오더니⁠, 기라온이 내 어깨 너머로 손바닥을 문에 댔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건 내가 열어 준 거예요⁠.⁠”

나는 고맙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이 사람이 묵념을 할 것 같았다⁠.

*

박물관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컸다⁠. 조선관⁠, 고려관⁠, 삼국관이 있었고⁠, 문마다 손바닥 판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이 판들에 하나씩 손을 댔다⁠. 「⁠유물입니다⁠」가 계속 떴다⁠. 승강기 단추를 눌렀더니 단추가 아니라 판이었고⁠, 판은 또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문에 대고 마하로에게서 주워들은 2226년 말로 「⁠열어요⁠」라고 해 봤고⁠, 다음에는 편의점 말로 「⁠계산해 드릴게요⁠」라고 해 봤다⁠. 문은 둘 다 못 알아들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우리는 정문 앞에 닿았다⁠. 기라온은 내 뒤를 열 걸음쯤 떨어져 따라왔다⁠. 이 사람은 한 번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정문은 통유리였다⁠. 이 너머로 2226년의 서울이 있었다⁠.

내가 아는 한강은 다리 몇 개가 가로지르는 강이었다⁠. 유리 너머의 물은 강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넓었다⁠. 건너편이 아득했고⁠, 물 위에 불 켜진 배들이 떠 있었다⁠. 박물관 바로 앞을 높은 벽이 길게 가로막고 있었는데⁠, 이 벽 꼭대기를 따라 불빛이 끝없이 이어졌다⁠. 둑이었다⁠. 둑 위를 가느다란 선로가 달렸고⁠, 선로에 매달린 작은 전차가 소리 없이 미끄러졌다⁠. 남산은 물에 둘러싸여 섬처럼 서 있었다⁠.

정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짰다⁠. 혀끝에 소금이 닿는 것 같은 바람이었다⁠. 이백 년 전 서울에서는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였다⁠.

“⁠바다가 올라온 거예요⁠.⁠”

기라온이 내 옆에 와서 섰다⁠.

“⁠당신이 잠든 뒤 백오십 년 동안 바다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어요⁠. 도시는 둑 안으로 들어왔고요⁠. 둑 바깥에도 사람이 살아요⁠. 집을 잃은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은 이 말을 할 때 유리 너머의 둑을 보지 않고 내 얼굴을 봤다⁠.

“⁠나가고 싶으면 방법이 있어요⁠. 알려 줄게요⁠.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 사람은 법을 말했다⁠. 냉동에서 깨어난 사람이 시민이 되는 조항이었다⁠. 2226년 사람들은 이것을 「⁠깨어난 사람 조항⁠」이라고 불렀다⁠.

시민이 되려면 시민 법정에 서야 한다⁠. 법정에 서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 보관자가 주지 않은 밥⁠, 제 손으로 일해서 받은 밥을 스물한 끼 먹을 것⁠. 둘⁠, 이 끼니를 곁에서 본 시민 하나가 「⁠곁⁠」으로 설 것⁠. 곁은 국보 일로 법에 걸린 적이 일 년 안에 없어야 하고⁠, 내가 시민이 될 때까지 자기 몫의 절반을 나와 나눈다⁠. 법정이 청원을 받아들이면 이날부터 재판 날까지 보관자는 청원인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한다⁠.

“⁠그리고 6월 7일은 문화유산 위원회가 정한 날이에요⁠. 국보 몸에 탈이 나면 내가 당길 수 있어요⁠. 늦출 수는 없고요⁠.⁠”

“⁠스물한 끼면⁠, 이레요⁠.⁠”

“⁠이레 동안 세 끼씩이면 그렇죠⁠. 그런데 당신 입에 들어가는 건 다 내 밥이에요⁠. 유리관 안의 밥틀도⁠, 시범 컵라면도⁠. 당신은 몫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사고⁠, 박물관 밖에는 내 허락 없이 못 나가요⁠.⁠”

나는 이 말을 머릿속으로 한 번 더 돌렸다⁠. 밥을 벌려면 밖에 나가야 하고⁠, 밖에 나가려면 이 사람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이 사람은 허락하지 않는다⁠. 문 하나가 닫혀 있는 게 아니라 문이 둥글게 말려 있었다⁠.

“⁠이걸 왜 알려 줘요⁠?⁠”

“⁠내가 만든 법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2224년에⁠, 국가 보관 창고가 당신 관을 폐기물로 녹이려고 했어요⁠. 녹인 건 하수구로 가요⁠. 그걸 유물로 지정해서 막은 사람이 나예요⁠.⁠”

이 사람이 몸을 돌렸다⁠.

“⁠따라와요⁠. 하나 더 보여 줄게요⁠.⁠”

*

지하 삼 층은 추웠다⁠. 복도 끝에 「⁠보존실⁠」이라고 적힌 두꺼운 문이 있었고⁠, 문 옆에 사람 얼굴 높이의 창이 나 있었다⁠. 창 안쪽은 하얀 서리가 끼어 흐렸다⁠. 기라온이 창 옆의 판에 손을 대자 서리가 천천히 걷혔다⁠.

방 안에 관이 두 개 있었다⁠. 길쭉한 쇠통에 유리 뚜껑이 덮인 것이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 내 것이었다⁠. 다른 하나에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일흔 넘은 노인이었다⁠. 볼이 패었고⁠, 왼쪽 눈썹 끝에 칼에 베인 것 같은 흉터가 있었다⁠. 서리 낀 유리 아래에서도 이 흉터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창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워서 이마가 따끔거렸다⁠.

순태 할아버지였다⁠.

봉천동 시장에서 사십 년 동안 「⁠순태네 분식⁠」을 한 사람이었다⁠. 새벽 네 시⁠, 다음 날 장사 재료를 다듬고 나면 내 편의점에 와서 컵라면 하나를 샀다⁠. 그리고 꼭 내 앞에서 물을 부었다⁠. 내가 부어 주면 “⁠물이 많다⁠, 총각⁠. 라면은 물이 반이야⁠”라고 하면서 다시 따라 냈다⁠. 실험실 대기실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할아버지는 폐가 굳는 병이라고 했다⁠. 고칠 수 있을 때까지 자는 거라고 했다⁠. 내가 들고 간 컵라면을 보더니 할아버지가 말했다⁠. 깨면 그거 반 나눠 먹자⁠, 물은 내가 맞춰 줄게⁠.

“⁠아는 사람이에요⁠?⁠”

“⁠제 손님이었어요⁠.⁠”

나는 창에서 이마를 뗐다⁠.

“⁠깨워요⁠. 이분도⁠.⁠”

“⁠깨우는 데 박물관 한 해 치 몫이 들어요⁠. 당신을 깨우느라 이미 썼고요⁠. 그리고 일흔다섯 살 몸은 깨우다가 심장이 멈출 수 있어요⁠. 깨워도 전시할 수 있는 날이 길지 않고요⁠.⁠”

“⁠전시하려고 깨우는 거 말고요⁠.⁠”

“⁠그럼 깨울 이유가 없어요⁠.⁠”

“⁠그럼 누가 깨울 수 있어요⁠? 박물관 말고⁠.⁠”

“⁠시민이요⁠. 같은 실험에서 깨어난 사람이 시민이 되면⁠, 같이 잠든 사람을 깨워 달라고 청원할 수 있어요⁠. 그 값은 도시가 내요⁠.⁠”

이 사람은 거기서 말을 끊고 나를 봤다⁠. 같은 실험에서 깨어난 사람은 이 도시에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시민이 되면요⁠. 될 일은 없겠지만⁠.⁠”

기라온은 창 옆의 판에서 손을 뗐다⁠. 서리가 다시 유리를 덮었다⁠. 순태 할아버지의 얼굴이 하얗게 지워졌다⁠.

*

해 뜨기 한 시간 전⁠, 나는 21세기관으로 돌아왔다⁠. 팔팔이가 한 걸음 떨어져 따라왔고 기라온이 뒤에 왔다⁠. 이 사람이 문을 열어 주었다⁠. 물론 그건 안 쳤다⁠.

유리관 앞을 지나는데⁠, 재현 편의점의 출입문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관 안 계산대에서 바깥 전시실 쪽으로 난 유리문이었다⁠. 닷새 동안 나는 이 문을 안에서만 봤다⁠. 안쪽에는 손잡이도 판도 없었다⁠. 바깥에서 보니 문 위에 손톱만 한 검은 상자가 붙어 있었다⁠. 설명판에는 「⁠복원한 2026년 출입문 — 특별한 날 문 열림을 시연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이 상자를 알았다⁠. 사람이 다가가면 알아서 열리는 감지기였다⁠. 손바닥을 보지 않는다⁠. 사람인지 국보인지도 안 본다⁠. 그냥 움직이는 게 오면 연다⁠.

나는 문 앞으로 걸어갔다⁠.

딩동⁠, 하는 소리가 났다⁠. 이백 년 전 내가 하루에 천 번씩 듣던 소리였다⁠. 문이 양옆으로 미끄러졌고⁠, 천장의 작은 스피커에서 녹음된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어서 오세요⁠.⁠」

뒤에서 기라온이 걸음을 멈췄다⁠.

“⁠손으로 열라고 했어요⁠.⁠”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문이 닫혔다⁠. 나는 감지기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딩동⁠.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제 손으로 열었습니다⁠.⁠”

팔팔이 앞이라 그랬는지 「⁠습니다⁠」가 나왔다⁠. 전시실 구석의 청소 로봇이 멈췄다⁠. 기라온은 꽤 오래 이 문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내일 시범은 없어요⁠. 밥은 넣어 줄게요⁠.⁠”

이 사람은 약속을 지켰다⁠. 이 점이 나는 더 무서웠다⁠.

*

시범이 없는 날⁠, 사천 명이 왔다가 돌아갔다⁠. 나는 유리관 안 침대에 앉아 이들을 봤다⁠. 사람들은 유리에 손바닥을 대고 서 있다가 두 시가 지나도 내가 탁자로 가지 않자 웅성거렸다⁠. 누군가 유리를 두드렸고 팔팔이가 바깥으로 나가 「⁠국보에 손대지 마십시오⁠」라고 했고⁠, 사람들이 묵념을 했다⁠. 오후 세 시쯤 마하로가 와서 박물관이 오늘 관람료를 돌려주느라 한 달 치 전기 몫을 썼다고 했다⁠.

이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내 손에 쥔 게 무엇인지 알았다⁠. 시범은 이 사람이 나를 부리는 끈이었지만⁠, 이 사람이 나 없이는 못 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기라온이 왔을 때 나는 말했다⁠.

“⁠시범 할게요⁠. 대신 제 식으로요⁠. 라면 국물에 설탕 빼고 소금 넣어 주세요⁠. 고춧가루도요⁠. 물은 오백오십⁠, 제가 부을게요⁠.⁠”

이 사람은 내 얼굴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소금은 위원회 검사를 받아야 해요⁠. 고춧가루는 온실에서 한 해에 몇 근 안 나와요⁠.⁠”

“⁠그럼 어제처럼 앉아 있을게요⁠. 사천 명 앞에서요⁠.⁠”

“⁠하루 더 돌려주면 박물관은 전기 몫이 모자라요⁠. 그걸 알고 하는 말이죠⁠.⁠”

“⁠네⁠.⁠”

이 사람이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웃었다기보다 입꼬리 한쪽이 한 번 당겨졌다⁠.

“⁠좋아요⁠. 당신 식으로 해요⁠. 대신 오늘부터 이 유리관 안에서 하는 말은 전부 녹음해요⁠. 시범 때도⁠, 잘 때도⁠.⁠”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몰랐다⁠. 녹음이야 마하로가 닷새째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기라온은 마하로를 불렀다⁠.

*

이날 두 시⁠, 유리관 앞에는 사천삼백 명이 왔다⁠. 어제 돌아간 사람들이 다 다시 온 것 같았다⁠.

나는 먼저 편의점 문 앞에 섰다⁠. 딩동⁠. 「⁠어서 오세요⁠.⁠」 나는 녹음 목소리를 따라 소리 내어 말했다⁠. “⁠어서 오세요⁠!⁠” 이백 년 묵은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겹쳤고⁠, 유리 밖 사람들이 웃었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비명도 묵념도 아니었다⁠.

다음 계산대 뒤에서 컵라면을 꺼냈다⁠. 마하로가 온실에서 구해 온 고춧가루 한 꼬집과 진짜 소금으로 다시 만든 국물 가루였다⁠. 나는 물을 안쪽 선까지 정확히 부었다⁠. 순태 할아버지라면 조금 따라 냈을 것이다⁠. 나는 따라 내지 않았다⁠. 뚜껑을 닫고⁠, 젓가락을 얹고⁠, 계산대 위 시계를 가리켰다⁠. 사천삼백 명이 시계를 봤다⁠. 삼 분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 김이 올라왔다⁠. 매운 냄새가 유리 위쪽 숨구멍으로 빠져나가 앞줄 사람들의 코에 닿았다⁠. 누가 재채기를 했고⁠, 이 옆 사람도 했고⁠, 재채기가 파도처럼 뒷줄로 번져 갔다⁠. 나는 면을 들어 올려 길게 빨아들였다⁠. 후루룩⁠. 이번에는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앞줄의 남자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침을 삼켰다⁠.

국물을 마셨다⁠. 짰다⁠. 매웠다⁠. 2026년 새벽 네 시의 맛이었다⁠. 나는 이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박수가 터졌다⁠.

눈을 떴을 때 기라온이 유리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 사람은 마하로에게서 소리를 키우는 작은 막대를 받아 들고 유리 앞에 섰다⁠. 마이크였다⁠.

“⁠오늘 와 주신 분들께 알립니다⁠.⁠”

「⁠습니다⁠」였다⁠. 사천삼백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국보 오주봉은 깨어난 지 백 날째 되는 6월 7일⁠, 첫 「⁠천 년 잠⁠」에 듭니다⁠. 잠드는 자리를 이 유리관 앞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자리는 오늘부터 박물관 문 앞에서 팝니다⁠. 내년 봄⁠, 그는 오늘과 같은 얼굴로 다시 이 문을 열 것입니다⁠. 그다음 봄에도⁠, 천 번째 봄에도⁠.⁠”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큰 박수를 쳤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이 소리가 번져 사천삼백 명이 내 이름을 부르며 손뼉을 쳤다⁠. 이들은 내가 영원히 잠드는 것을 축하하고 있었다⁠. 내가 스물일곱 살로 천 년 동안 컵라면을 먹는 것을⁠.

기라온이 마이크를 내게 내밀었다⁠.

“⁠국보님⁠, 한 말씀 하세요⁠.⁠”

나는 아직 국물이 남은 젓가락을 든 채 마이크를 받았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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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26· 2화

    국보가 된 사람은 박물관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 백로하작가2026.10.27

      원칙대로라면 못 나가요. 국보는 반출 허가가 있어야 하거든요. 사람인데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이 작품의 웃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