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60자)
두 시의 컵라면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오후 두 시가 되면 나는 컵라면을 먹는다. 사천 명이 이걸 본다.
유리는 두께가 손가락 세 마디쯤 되고, 바깥에서 보면 내가 사는 방이 통째로 들어 있다. 2026년 봉천동의 원룸을 재현했다는데, 벽지는 연두색 꽃무늬고 침대는 두 사람이 누워도 될 만큼 넓고 창밖에는 그림으로 그린 남산 타워가 서 있다. 내 원룸은 그렇게 넓지 않았고 창밖에는 옆 건물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다. 원룸 옆에는 편의점 계산대가 붙어 있다. 이것만은 진짜 같다. 바코드 찍는 기계와 담배 진열장과 「봉투 필요하세요」라고 적힌 손글씨 쪽지까지 있는데, 이 쪽지는 내 글씨다. 내가 일하던 가게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유리 앞 설명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편의점 — 21세기인이 밤마다 불을 밝히던 작은 사당. 신도들은 새벽에 이곳을 찾아 세모난 의례 음식을 바쳤다.」
세모난 의례 음식은 삼각김밥이다. 바친 게 아니라 산 거다. 이 밑에는 「알바 — 사당을 지키던 하급 사제 계급.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이 의무였다」라고 적혀 있다. 밤을 새운 건 맞다. 기도는 했다. 사장님 전화 안 오게 해 달라고.
나는 계산대 앞에 놓인 접이식 탁자에 앉았다. 바깥에서 낮게 웅성거리던 소리가 뚝 그쳤다. 박물관이 재현해 준 컵라면이 탁자 위에 있었고, 뚜껑 위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뚜껑을 반쯤 열고 안쪽 선까지 물을 부었다. 사천 명이 동시에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유리를 넘어왔다. 물 붓는 걸 처음 보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뚜껑을 닫고 나무젓가락을 이 위에 얹었다. 삼 분.
삼 분 동안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코를 긁었다.
“국보에 손대지 마십시오.”
유리관 구석에 서 있던 경비 로봇이 미끄러지듯 다가와 내 손목 앞에 둥근 팔을 들이밀었다. 키는 내 가슴께까지 오고, 몸통은 오래 쓴 밥솥처럼 둥글고, 이마 한가운데에서 파란 불 하나가 깜박였다. 사람들은 이 로봇을 팔팔이라고 불렀다. 팔팔이라는 옛 기종이고, 여든두 해째 이 박물관을 지키는 중이라고 했다.
“내 코예요.”
“국보의 코입니다. 국보의 몸과 모양이 상하는 것을 막습니다.”
유리 너머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2226년 사람들은 「습니다」를 장례식과 법정에서만 쓴다고 했다. 팔팔이가 입만 열면 관람객들은 누가 돌아가신 줄 알고 묵념을 했다.
삼 분이 지났다. 나는 뚜껑을 떼어 반으로 접어 앞접시로 만들고, 면을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입으로 끌어올렸다. 후루룩.
유리 바깥에서 누가 비명을 질렀다. 앞줄에 선 남자 하나가 뒷걸음질 치다 뒷사람 발을 밟았다. 2226년 사람들은 소리를 내며 먹지 않는다. 밥틀이 몸에 맞춰 찍어 내는 죽 같은 밥을 숟가락으로 조용히 떠먹는다. 이들에게 후루룩은 짐승 소리이거나, 마하로의 말로는 「옛 제사 때 혼을 부르던 소리」로 연구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리보다 맛이 문제였다. 국물이 달았다. 설탕을 탄 미역국에 종이를 담가 둔 맛이었고, 면은 씹으면 젤리처럼 끊어지지 않고 이 사이에서 늘어났다. 박물관이 이백 년 전 조리법을 「복원」했다는데, 아무래도 누가 소금 대신 다른 하얀 가루를 넣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걸 다 먹었다. 닷새째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이것과, 아침저녁으로 들어오는 밥틀 죽 두 그릇뿐이었다.
*
시범이 끝나고 관람객이 빠지자, 유리관 옆문이 열리고 학예사 마하로가 들어왔다. 이 유리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관장 말고는 마하로 하나다. 서른두 살이고,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었고, 손에는 손바닥만 한 녹음기를 늘 쥐고 있다. 이 사람은 내 말투를 연구한다. 이백 년 전 녹음 자료로 2020년대 말을 배웠다는데, 배운 게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오늘 시범 완전 킹받았어요. 대박 감사해요.”
“킹받는 건 화났다는 뜻이에요.”
이 사람은 녹음기에 대고 무언가를 빠르게 말했다. 2226년 말이었다. 소리는 우리말인데 낱말이 절반쯤 바뀌어서, 나는 열 마디 중 여섯 마디쯤을 알아들었다.
“그럼 ‘헐’은요? 자료마다 뜻이 달라요. 놀랄 때, 슬플 때, 밥이 맛없을 때.”
“셋 다 맞아요. 지금 제 기분이 헐이에요.”
나는 원룸 쪽 싱크대에 달린 물꼭지에 손바닥을 댔다. 2226년에는 물도 문도 밥틀도 손바닥을 대야 열린다. 꼭지 위의 작은 화면이 초록빛으로 켜지더니 글자를 띄웠다.
「유물입니다.」
닷새째 같은 글자였다. 마하로가 자기 손바닥을 대 주자 물이 나왔다. 나는 컵에 물을 받으면서 이 사람의 손바닥을 봤다. 시민은 다달이 손바닥에 「몫」을 받는다. 돈이라는 말은 없어졌고, 카드도 현금도 없고, 사람들은 밥값을 손바닥으로 낸다. 내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국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말하면 짧다. 2026년 2월,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고 빚이 삼천만 원이었다. 원룸 보증금을 사기로 날렸다. 「겨울잠 연구소」라는 회사가 냉동 수면 실험에 지원자를 받았다. 일 년 자고 일어나면 삼천만 원. 나는 편의점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이 가게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서 실험실에 들고 갔다. 일 년 뒤에 일어나서 먹으려고.
회사는 반년 뒤에 망했다고 마하로가 말했다. 냉동관은 창고로 넘어갔고, 창고는 또 다른 창고로 넘어갔고, 이백 년이 흘렀다. 2224년 국가 보관 창고가 오래된 냉동관을 폐기물로 녹이려 할 때, 누군가 이것을 유물로 지정해 박물관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올해 2월 말, 박물관은 그중 하나를 깨웠다. 나였다.
내가 들고 간 컵라면은 지금 유리관 바로 바깥, 작은 유리 상자 안에 따로 서 있다. 설명판에는 「소장품 1호 — 국보의 부장품. 긴 잠에 들며 품은 의례 음식. 뚜껑의 글씨는 기도문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뚜껑의 글씨는 「뜨거운 물을 안쪽 선까지 붓고 3분」이다. 이 컵라면은 나보다 경비가 셋 더 붙어 있다.
“나 언제 나가요?”
마하로가 녹음기를 내렸다. 잠깐 무언가를 고르는 얼굴이었다.
“관장님이 오실 거예요. 그 얘기는 관장님이 하신대요.”
*
관장 기라온은 박물관 문을 닫은 뒤 일곱 시에 왔다.
쉰두 살이라고 했는데, 머리를 귀 밑까지 짧게 쳐서 더 단단해 보였다. 짙은 회색 외투에서 바닷바람 냄새가 났다. 2226년 서울 공기에는 늘 짠 냄새가 섞여 있다는 걸 나는 이 외투로 처음 알았다. 이 사람은 유리관 문을 손바닥으로 열고 들어와 내 원룸 의자에 앉았다. 내 의자인데 내가 서 있었다.
“오늘 사천백이십 명이 왔어요.”
이 사람의 말은 「요」로 끝났지만 높임이라기보다 못을 박는 소리 같았다. 2226년에는 높임이 「요」 하나로 줄었다고 마하로가 말했다.
“당신이 오기 전에 21세기관의 하루 관람객은 열한 명이었어요. 박물관은 올해 말에 문을 닫기로 날을 받아 둔 처지였고요. 지금은 다른 관 사람들까지 당신을 보러 와요.”
“축하드려요. 그럼 저는 언제 나가요?”
“안 나가요.”
이 사람이 외투 주머니에서 얇은 판 하나를 꺼내 탁자에 세웠다. 판 위에 그림이 떴다. 이 유리관이었다. 유리관 안에 내가 있었다. 그림 아래 숫자가 바뀌었다. 2227, 2228, 2229. 숫자가 바뀌는 동안 유리관 안의 나는 늙지 않았다. 숫자가 3226이 되었을 때도 나는 스물일곱 살의 얼굴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천 년 전시예요.”
기라온은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깨어난 지 백 날째 되는 6월 7일, 나를 보존 수면에 재운다. 보존 수면은 이 시대의 냉동인데, 이백 년 전 회사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했다. 그리고 해마다 봄, 한 달씩 깨워 전시한다. 한 달 동안 나는 이 유리관에서 컵라면을 먹고, 다시 잠든다. 열한 달 자고 한 달 깨면 몸은 한 해에 한 달만 늙는다. 이것도 보존 처리로 거의 멈춘다.
“당신은 천 번의 봄을 봐요. 스물일곱 살로.”
“싫은데요.”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에요. 냉동에서 깨어난 사람은 보관자의 보호를 받고, 보관 방법은 보관자가 정해요. 보관자는 나예요.”
“저 사람이에요. 국보 말고.”
“사람인 국보예요. 2026년에 당신이 손도장을 찍은 계약서에는 ‘깨어날 때까지 보관 주체가 신체를 맡는다’고 적혀 있었어요. 회사가 망하고 그 주체는 나라가 됐고, 나라는 박물관에 맡겼어요. 그리고 하나 더. 보존 수면 앞 사흘은 물만 마셔요. 6월 4일부터예요. 미리 알고 있어요.”
이 사람은 일어나서 탁자 위 빈 컵라면 그릇을 내려다봤다. 국물이 조금 남아 있었고, 거기 아직 단 냄새가 났다.
“내일 두 시에도 시범이 있어요.”
“안 해요.”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온 것에 놀랐다. 편의점에서 네 해 동안 나는 누구에게도 「안 해요」라고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진상 손님에게도, 새벽 세 시에 담배 한 갑 사러 와서 반말하던 남자에게도, 점장에게도.
기라온은 화를 내지 않았다. 이 사람은 원룸 벽에 붙은 밥틀 앞으로 가서 자기 손바닥을 댔다. 밥틀 화면에 무언가가 떴고, 이 사람이 손가락으로 두 번 눌렀다. 화면이 꺼졌다.
“국보에게는 검사한 음식만 들어가요. 검사는 내가 해요. 시범을 하면 밥이 들어오고, 안 하면 안 들어와요. 당신 손바닥으로는 이 유리관 안에서 물 한 컵도 안 나와요.”
이 사람이 나가면서 문을 손바닥으로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리 전체를 한 번 울렸다.
*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왔다. 나는 원룸 침대에 누워 그림으로 그린 남산 타워를 보며 2026년의 편의점을 생각했다. 새벽 세 시면 폐기 도시락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바구니에 쓸어 담던 손이 기억났다. 이 도시락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유리관 아래쪽 벽에서 무언가 딸깍 열렸다.
청소 로봇이었다. 납작한 원반 같은 것이 무릎 높이의 작은 문으로 들어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닷새 동안 내가 잠든 사이에 이것이 드나든 모양이었다. 작은 문은 청소 로봇이 들어온 뒤에도 열려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굴러 내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문은 내 어깨보다 조금 좁았다. 청소 로봇이 원룸을 한 바퀴 돌고 편의점 계산대 밑을 닦고 다시 작은 문으로 향할 때, 나는 뒤에 붙어 머리부터 밀어 넣었다. 어깨가 걸렸다. 한쪽 어깨를 먼저 빼고 숨을 내쉬어 가슴을 줄이고 다른 쪽을 비틀어 넣자, 유리관 바깥 바닥의 찬 기운이 뺨에 닿았다. 바닥에서 소독약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나왔다. 닷새 만에 처음으로 유리가 없는 공기였다.
21세기관은 불이 꺼져 있었고, 유리 상자들이 비상등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이 사이를 맨발로 걸었다. 첫 번째 상자 안에는 금 간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기도 석판 — 21세기인은 하루 아홉 시간 이것을 들여다보며 먼 곳의 신과 대화했다」 아홉 시간은 좀 적게 잡았다. 다음 상자에는 택배 상자가 있었다. 「제물 상자 — 문 앞에 놓아두면 밤사이 신이 가져간다고 믿었다」 다음에는 플라스틱 빨대가 수십 개 꽂힌 유리병이 있었다. 설명판은 길었는데, 첫 줄만 읽었다. 「바다를 막은 물건」
나는 이 줄 앞에서 조금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전시실 끝에 높은 문이 있었다. 양쪽으로 미는 쇠문이었고, 손잡이 대신 손바닥 크기의 판이 박혀 있었다. 나는 이 앞까지 가서 손을 들었다.
“해 봐요.”
문 옆 어둠에서 목소리가 났다. 기라온이었다. 이 사람은 외투를 입은 채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고, 이 발치에서 팔팔이의 파란 불이 깜박였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청소 로봇 문은 일부러 열어 두라고 했어요. 당신이 언제 나오나 보려고.”
나는 손을 든 채로 서 있었다. 내 손바닥이 문 판에서 한 뼘 떨어져 있었다.
“내기해요.”
기라온이 벽에서 등을 뗐다.
“해 뜨기 전까지, 이 박물관 안에 있는 문 중에서 하나라도 당신 손으로 열면 내일 두 시 시범은 없어요. 밥도 그냥 넣어 줄게요. 못 열면 해 뜨는 대로 유리관에 돌아가고, 내일부터 시범은 하루 두 번이에요.”
이 사람은 내 앞으로 와서 자기 손바닥을 쇠문 판에 댔다. 쇠문이 낮게 울리며 양쪽으로 갈라졌다. 문 너머로 박물관 본관의 긴 복도가 보였다. 복도 끝 어딘가에서 바닷바람이 들어오는지, 짠 냄새가 내 얼굴까지 왔다.
“이 문은 내가 열어 준 거니까 안 쳐요. 여기서부터예요.”
팔팔이가 내 옆에 붙어 섰다. “국보 이동을 시작합니다.”
나는 맨발로 문턱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