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73자)

천 년 잠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법정에서 박물관까지는 박물관 짐차를 탔다⁠. 유물을 나르는 차라 창이 없었고⁠, 바닥에 바퀴 달린 받침이 박혀 있었다⁠. 새 경비 둘이 내 양옆에 앉았고⁠, 팔팔이는 짐칸 바닥에 서 있었다⁠. 차가 둑을 따라 달리는 동안 팔팔이의 몸통이 받침에 부딪혀 덜그럭거렸다⁠. 둑시장 깡통 소리 같았다⁠.

기라온은 맞은편에 앉았다⁠. 이 사람이 물병을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이 사람이 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병을 무릎 위에 세웠다⁠.

“⁠법정이 받아들이면 그때는요⁠?⁠”

“⁠그때부터는 내 손이 당신 몸에 못 닿아요⁠.⁠”

“⁠관장님이 그 규칙을 지킬 거라고 어떻게 믿어요⁠?⁠”

“⁠지금까지 내가 안 지킨 규칙이 하나라도 있었어요⁠?⁠”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규칙 안에서 나를 막았다⁠. 규칙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람을 미워하기가 어려웠다⁠.

“⁠꿈은 꿔요⁠? 보존 수면에서요⁠.⁠”

“⁠안 꿔요⁠. 천 년 동안 한 번도⁠.⁠”

보존과장이 운전석 쪽에서 대신 대답했다⁠. 이 말을 하고 왜인지 미안한 얼굴을 했다⁠. 나는 2026년 실험실 침대에 누울 때 꾼 꿈을 생각했다⁠. 일 년 뒤에 일어나 컵라면 뚜껑을 여는 꿈이었다⁠. 이 꿈은 이백 년 걸렸다⁠.

*

보존과장이 내민 컵은 쓴 냄새가 났다⁠.

“⁠위를 비우는 약이에요⁠. 다 마셔요⁠.⁠”

나는 마셨다⁠. 이백 년 동안 먹은 것 중에 제일 썼다⁠. 혀뿌리에서부터 쓴맛이 번져 목 안쪽 벽을 긁고 내려갔고⁠, 배 속에서 무언가가 뒤집혔다⁠. 나는 보존실 구석의 하얀 통 위에 엎드려 스물한 끼째 라면을 돌려주었다⁠. 법정 직원들이 사 준 라면이었다⁠. 끼니는 먹은 걸로 쳤다⁠. 돌려준 건 셈에 안 들어갔다⁠.

보존실은 석 달 전 창 너머로 봤을 때보다 밝았다⁠. 천장에 등이 여섯 개 켜져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내 것으로 새로 들인 보존관이 놓여 있었다⁠. 2026년 회사의 쇠통과 달랐다⁠. 유리로 된 길쭉한 알 같았고⁠, 안쪽 바닥에 내 몸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었다⁠. 홈은 정확했다⁠. 어깨 넓이까지 맞았다⁠. 팔팔이가 날마다 잰 내 모양으로 판 것이었다⁠.

“⁠누워요⁠.⁠”

기라온이 말했다⁠. 이 사람은 보존관 머리맡에 서 있었다⁠. 사흘 금식의 사흘째 아침이었다⁠. 입술이 하얗게 터 있었다⁠.

나는 누웠다⁠. 홈이 등에 꼭 맞았다⁠. 차가웠다⁠.

*

해는 다섯 시 십이 분에 떴다⁠. 보존실에는 창이 없었지만⁠, 보존과장의 손목 기계가 이 시각을 알렸다⁠. 이와 함께 보존관 발치에서 무언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찬 액이 발바닥을 적셨다⁠. 물보다 무거웠고⁠, 물보다 느리게 퍼졌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 때 처음에는 차가웠고⁠, 다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발가락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어졌다⁠. 액이 발등을 덮고 발목으로 올라왔다⁠.

“⁠법정은요⁠?⁠”

“⁠해 뜬 뒤에 정한다고 했죠⁠. 해는 떴고⁠, 판사는 아직 안 왔어요⁠.⁠”

기라온이 손목 기계를 들여다봤다⁠. 화면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마하로는 법정에 남았다⁠. 무늬도 남았다⁠. 법정 로비에서 새 경비들이 나를 들어 올렸을 때⁠, 마하로는 창구 앞을 떠나지 않았다⁠. 「⁠판사님 오실 때까지 여기 있을게요⁠」라고 했다⁠. 이 말이 내가 들은 이 사람의 마지막 말이었다⁠.

액이 종아리를 덮었다⁠.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무거워졌다⁠.

“⁠국보의 무게를 다시 잽니다⁠.⁠”

팔팔이였다⁠. 보존관 옆에 서 있었다⁠. 찌그러진 팔 하나가 덜렁거렸다⁠.

“⁠국보의 무게가 사흘 동안 이 킬로그램 줄었습니다⁠. 국보 훼손입니다⁠.⁠”

“⁠보존은 훼손이 아니에요⁠.⁠”

기라온이 말했다⁠. 팔팔이의 파란 불이 기라온 쪽으로 돌았다⁠.

“⁠보존은 훼손이 아닙니다⁠. 팔팔이도 압니다⁠.⁠”

“⁠그럼 비켜요⁠.⁠”

“⁠그러나 국보는 상한 모양으로 잠듭니다⁠. 이 킬로그램 줄어든 모양으로 천 년 동안 보존됩니다⁠. 상한 모양이 천 년 동안 이어집니다⁠. 천 년 동안 이어지는 훼손입니다⁠.⁠”

보존과장이 들고 있던 판을 떨어뜨렸다⁠. 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보존실에 울렸다⁠. 기라온이 팔팔이를 봤다⁠. 처음으로 이 사람이 무언가를 셈하지 못하는 얼굴을 했다⁠.

“⁠국보의 모양을 되돌린 뒤에 잠드십시오⁠.⁠”

팔팔이가 보존관 뚜껑 위로 올라갔다⁠. 밥솥 같은 몸통이 유리 뚜껑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뚜껑이 끝까지 닫히지 않고 손가락 두 마디만큼 들렸다⁠. 뚜껑과 관 사이 틈에서 찬 공기가 새어 나갔다⁠. 발치에서 흐르던 액의 소리가 느려졌다⁠.

“⁠뚜껑이 안 닫혀요⁠.⁠”

보존과장이 말했다⁠.

“⁠닫히지 않으면 액이 절반 빠르기로 들어가요⁠. 얼어붙는 데 두 배가 걸려요⁠.⁠”

“⁠새 경비⁠.⁠”

기라온이 불렀다⁠. 은빛 로봇 둘이 팔팔이의 몸통을 양쪽에서 잡았다⁠. 들어 올리려 했다⁠. 팔팔이는 들리지 않았다⁠. 여든두 살 기계는 몸통 안에 원자 전지를 품고 있었고⁠, 이게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은빛 손가락이 몸통을 미끄러졌다⁠. 보존과장이 벽에 걸린 쇠막대를 가져와 팔팔이 몸통 밑에 끼웠다⁠. 지렛대로 들어 올릴 생각이었다⁠. 막대가 휘었다⁠. 팔팔이가 말했다⁠. “⁠팔팔이의 모양이 상합니다⁠. 팔팔이는 국보가 아니므로 괜찮습니다⁠.⁠” 보존과장이 휜 막대를 들고 서서 「⁠제발 그 밥솥 좀⁠」이라고 했다⁠. 팔팔이는 「⁠팔팔이는 밥솥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무늬가 배에서 「⁠밥솥은 왜 이렇게 무거워요⁠」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웃었다⁠. 웃을 때 가슴께까지 올라온 액이 출렁였다⁠.

*

기라온의 손목 기계가 울렸다⁠. 판사가 아니었다⁠. 정문이었다⁠.

이 사람이 화면을 들어 보였다⁠. 내게 보여 주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들어 올렸다⁠. 화면에 정문 앞이 비쳤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맨 앞에 큰 덩치의 무늬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었고⁠, 이 옆에 상인회장⁠, 순대 노점 주인⁠, 「⁠21세기 커피⁠」 상인이 있었다⁠. 둑시장 깃발 몇 개가 보였다⁠. 뒤로 둑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빈 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뒤에는 「⁠천 년 잠⁠」 자리를 사 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6월 7일에 오려던 사람들이 오늘 아침 전차 화면을 보고 왔다⁠. 이들 중 일부는 「⁠잘 자라⁠」고 외쳤고⁠, 일부는 「⁠깨워⁠」라고 외쳤다⁠. 두 소리가 섞여서 화면 너머로 웅웅거렸다⁠. 앞줄에 충전 선 목걸이를 다시 건 동호회 회장이 있었다⁠. 무늬는 「⁠헐⁠」이라고 쓴 판을 들고 있었다⁠.

“⁠정문 열어 달래요⁠.⁠”

보존과장이 말했다⁠.

“⁠안 열어요⁠.⁠”

기라온이 손목 기계를 내렸다⁠. 액이 내 쇄골까지 올라왔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액을 밀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굳는 게 보였다⁠.

“⁠관장님⁠.⁠”

이 사람이 보존관 안을 내려다봤다⁠. 들린 뚜껑 틈으로 이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터진 입술⁠, 짧은 머리⁠, 목까지 채운 외투 단추⁠.

“⁠제가 이기면 관장님은 둑 마을 애들한테 뭐라고 해요⁠?⁠”

기라온은 입을 열지 않았다⁠.

“⁠바다 올린 시대 사람이 국수 잘 말아서 시민이 됐다고 해요⁠?⁠”

“⁠그렇게 말하겠죠⁠. 그리고 애들은 다음 날 당신 국수를 먹으러 가요⁠. 그걸로 끝이에요⁠. 당신 시대가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안 봐요⁠.⁠”

“⁠그럼 그렇게 말하지 말고요⁠.⁠”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액이 턱 밑에서 찰랑였다⁠. 쇠 맛이 났다⁠. 둑시장에서 맞은 바닷물과 비슷했다⁠. 덜 짰다⁠.

“⁠그 사람이 할머니 집 기둥을 한 칸 올렸다고 해요⁠. 그 기둥은 둑 바깥에 있으니까 애들이 가서 보면 돼요⁠. 유리관 안에는 국수 마는 사람밖에 없어요⁠. 천 년 동안요⁠. 그게 더 잊어버리기 쉬워요⁠.⁠”

기라온의 입술이 한 번 움직였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보존과장이 「⁠관장님⁠」 하고 불렀다⁠. 액이 내 아랫입술에 닿았다⁠.

이때 이 사람의 손목 기계가 다시 울렸다⁠.

*

이번에는 정문이 아니었다⁠. 화면이 노랗게 켜졌다⁠. 이 사람이 이것을 읽었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이 사람의 눈이 글자를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 움직였다⁠. 그러고는 손목을 내 쪽으로 돌렸다⁠. 들린 뚜껑 틈으로 글자가 보였다⁠.

「⁠청원 받아들임 — 깨어난 사람 조항⁠. 재판 6월 5일⁠. 이 시각부터 보관자는 청원인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함⁠.⁠」

“⁠빼요⁠.⁠”

기라온이 말했다⁠. 보존과장이 이 사람을 봤다⁠.

“⁠지금이요⁠?⁠”

“⁠지금 이 국보 몸에 들어가는 건 내 손이에요⁠. 법정이 받아들였어요⁠. 규칙은 규칙이에요⁠. 빼요⁠.⁠”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보존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기라온의 몸 어디에도 내 몸에 닿을 수 있는 데가 없게 하려는 것 같았다⁠.

보존과장이 판을 주워 눌렀다⁠. 발치에서 흐르던 소리가 거꾸로 바뀌었다⁠. 액이 빠져나갔다⁠. 내 입술에서⁠, 턱에서⁠, 쇄골에서⁠. 팔팔이가 뚜껑 위에서 내려왔다⁠. 새 경비 둘은 손을 내리고 섰다⁠. 관장이 손을 대지 못하는 국보에게 관장의 경비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뚜껑이 열렸다⁠. 보존과장이 따뜻한 천을 내 몸에 덮었다⁠. 팔팔이가 곧바로 무게부터 읽었다⁠. “⁠국보의 무게가 이 킬로그램 줄었습니다⁠. 되돌리십시오⁠.⁠” 나는 대답하려고 했는데 이가 딱딱 부딪혀서 말이 안 나왔다⁠.

몸이 녹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발가락이 먼저 돌아왔다⁠. 다음에 아팠다⁠. 바늘 천 개가 발가락 하나하나를 안쪽에서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게 좋았다⁠. 아픈 건 내 발이었다⁠. 눈썹에 낀 서리가 녹아 눈으로 흘러들었다⁠. 짜지 않았다⁠.

그사이 보존실 문을 누가 두드렸다⁠. 손바닥 판을 대는 소리가 아니라 주먹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보존과장이 기라온을 봤고⁠, 기라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팔이가 문으로 미끄러져 가서 제 손바닥을 판에 댔다⁠.

마하로가 들어왔다⁠. 머리 끈이 풀려 있었고 신발 한 짝이 젖어 있었다⁠. 뒤이어 무늬가 냄비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둘은 정문이 아니라 물길 문으로 왔다고 했다⁠. 정문 앞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마하로는 내 앞에 와서 섰는데⁠, 손을 어디 둘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결국 내 어깨에 두른 천 끝을 잡았다⁠.

“⁠판사님이 다섯 시 사십 분에 오셨어요⁠. 법정 문은 여섯 시에 열리는데⁠, 계단에서 기다렸다가 붙잡았어요⁠. 판사님이 둑 위 전차 화면에서 그 소식을 봤대요⁠. 금식실 문이 부서졌다는 거요⁠.⁠”

“⁠팔팔이가 유명해졌네요⁠.⁠”

“⁠국보의 무게가 이 킬로그램 적습니다⁠.⁠”

팔팔이가 말했다⁠. 무늬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정어리 국수였다⁠. 법정 로비에서 끓이고 남은 국물이라고 했다⁠. 나는 이 그릇을 받아 들었다⁠. 끼니로 세지 않아도 되는 첫 그릇이었다⁠. 그냥 배가 고파서 먹었다⁠. 기라온은 문 옆에서 이 냄새를 맡았다⁠. 이 사람의 배가 울었다⁠. 나는 이번에도 이 소리를 모르는 척했다⁠.

*

나는 천을 두른 채 보존관 가장자리를 잡고 일어나 앉았다⁠. 보존실이 한 바퀴 돌았다가 멈췄다⁠. 기라온은 문 옆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주머니 안에 있었다⁠.

나는 보존실 저쪽을 봤다⁠. 석 달 전 창 너머로 처음 봤던 자리였다⁠. 2026년 회사의 쇠통 두 개가 놓여 있던 자리⁠. 하나는 빈 내 것이었고⁠, 하나에는 왼쪽 눈썹 끝에 흉터가 있는 노인이 누워 있었다⁠.

거기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서리 자국만 남아 있었다⁠. 길쭉한 쇠통 모양으로⁠, 하얗게⁠. 이 가장자리를 따라 바퀴 자국 두 줄이 문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쇠판을 박았던 머리맡 자리의 서리가 조금 더 두꺼웠다⁠.

“⁠할아버지 어디 갔어요⁠?⁠”

내 목소리가 이 사이에서 떨렸다⁠. 기라온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재판 날 보여 줄게요⁠.⁠”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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