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94자)

다음 전시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재판까지 열사흘이 있었다⁠. 이 열사흘 동안 아무도 내 몸에 손을 대지 못했다⁠.

보존실에서 몸을 녹인 다음 날 아침⁠, 나는 정문까지 걸어갔다⁠. 새 경비 둘이 따라왔지만 내 팔을 잡지 않았다⁠. 잡을 수 없었다⁠. 정문 판에 손바닥을 댔더니 「⁠국보 오주봉 — 보호자 동반⁠」이 떴다⁠. 팔팔이가 이 옆에 손바닥을 댔다⁠. 문이 열렸다⁠. 기라온은 관장실 창 앞에 서서 이걸 봤을 것이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제 발로 나가겠다고 말했었다⁠. 이 말을 지켰다⁠.

열사흘 동안 나는 무늬의 노점 뒷방에서 잤고⁠, 둑시장 솥 앞에 섰다⁠. 끼니는 더 세지 않았다⁠. 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먹었다⁠. 마하로는 둑 위 전차를 타고 법정과 둑시장 사이를 오갔다⁠. 학예사 일을 잃은 이 사람은 몫이 절반으로 줄었고⁠, 이 절반의 절반을 내게 나눠 주었다⁠. 나는 이 몫을 손바닥에 받을 수 없었다⁠. 국보의 손바닥은 몫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내 대신 둑 마을 할머니 집 아래 사내들에게 기둥 값을 냈다⁠.

순태 할아버지는 찾지 못했다⁠. 21세기관은 내가 나간 날부터 문을 닫았다⁠. 「⁠다음 전시 준비 중⁠」 유리관에는 하얀 천이 덮였다고 했다⁠. 박물관 사람 누구도 이 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마하로의 손바닥으로는 이제 박물관 문이 하나도 안 열렸다⁠.

*

6월 5일 아침 아홉 시 반⁠, 시민 법정 복도에서 기라온과 마주쳤다⁠.

이 사람은 복도 끝 창 앞에 서서 둑을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돌아섰다⁠. 마하로와 무늬가 내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팔팔이만 계속 미끄러져 와서 내 옆에 섰다⁠.

“⁠오늘 지면 보호도 끝나요⁠. 6월 7일은 못 늦춰요⁠. 이틀 뒤예요⁠.⁠”

“⁠금식은요⁠?⁠”

“⁠어제부터였어요⁠. 당신이 안 지켰죠⁠. 위는 보존과장이 비울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점심은 먹고 싶은 걸 먹어요⁠. 지면 그게 마지막이에요⁠.⁠”

이 사람은 이 말을 농담으로 하지 않았다⁠. 관장이 국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말이었다⁠. 나는 이걸 알았다⁠.

“⁠할아버지는요⁠?⁠”

이 사람이 손목 기계를 한 번 봤다⁠.

“⁠열 시 반이요⁠.⁠”

이 말만 남기고 이 사람은 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시각을 머릿속에 새겼다⁠. 열 시 반에 무엇이 오는지는 몰랐다⁠. 이 사람이 시각을 맞춰 두었다는 것만 알았다⁠.

*

6월 5일 아침 열 시⁠, 시민 법정 큰 방⁠.

천장이 높았고 벽이 하얬다⁠. 앞쪽 높은 자리에 판사가 앉았다⁠. 예순쯤 된 여자였고⁠, 둑 위 전차에서 금식실 문이 부서졌다는 소식을 봤다는 이 사람이었다⁠. 판사 뒤 벽에 커다란 화면이 걸려 있었다⁠. 증거를 띄우는 화면이라고 했다⁠.

방청석은 꽉 찼다⁠. 무늬가 앞치마 대신 어깨가 꽉 끼는 이 윗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상인회장⁠, 순대 노점 주인⁠, 「⁠21세기 커피⁠」 상인⁠. 충전 선 목걸이를 건 동호회 회장⁠. 지팡이를 짚은 껌 할아버지⁠. 법정 야간 직원 셋이 낮인데도 졸린 얼굴로 맨 뒷줄에 있었다⁠. 둑 마을 할머니는 방청석 맨 끝⁠, 문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빈 바가지를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다⁠.

나는 앞쪽 청원인 자리에 앉았다⁠. 마하로가 내 왼쪽⁠, 곁의 자리에 앉았다⁠. 팔팔이는 내 오른쪽에 섰다⁠. 맞은편 보관자 자리에 기라온이 앉았다⁠. 짙은 회색 외투⁠, 목까지 채운 단추⁠. 기라온 뒤에 보존과장이 앉았다⁠.

“⁠청원인은 이름을 밝히십시오⁠.⁠”

“⁠오주봉입니다⁠. 2026년 봉천동 편의점에서 야간을 섰습니다⁠. 지금은 국보입니다⁠.⁠”

방청석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가 판사의 눈길에 멎었다⁠. 법정에서는 모두 「⁠습니다⁠」를 썼다⁠. 2226년 사람들에게는 낯선 말이라 증인들은 혀가 자꾸 꼬였다⁠. 나는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네 해 동안 본사 점검 나온 사람에게 하루에 백 번씩 쓰던 말이었다⁠. 이 법정에서 「⁠습니다⁠」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나였다⁠.

*

증인들이 차례로 섰다⁠.

무늬가 먼저였다⁠. 증인 자리에 서서 손바닥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구내식당에서 여섯 끼를 주었습니다⁠. 국물을 잡아 준 값⁠, 그릇 서른 개를 씻은 값입니다⁠. 장날에 두 끼⁠, 노점 뒷방에서 세 끼⁠, 둑시장 하룻밤에 마지막 한 끼⁠, 그리고 법정 로비 앞에서 끓인 국물도 제 솥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잡은 국물로 제 가게는 하루 백 그릇을 팝니다⁠. 제가 이 사람에게 진 빚이 더 큽니다⁠.⁠”

순대 노점 주인과 커피 상인과 상인회장이 하룻밤의 네 끼를 하나씩 말했다⁠. 다섯 시간 선 값⁠, 진상 손님을 재운 값⁠. 커피 상인은 빵이 끼니이고 커피가 덤이었다는 대목에서 혀가 꼬여 「⁠커피가 끼니입니다⁠」라고 했다가 고쳤다⁠. 방청석이 웃었다⁠.

법정 야간 직원 하나가 일어나 스물한 번째 끼니를 말했다⁠. 직원은 「⁠후루룩⁠」을 증언 중에 소리로 흉내 냈고⁠, 판사가 이 소리에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둑 마을 할머니가 일어섰다⁠. 방청석 맨 끝 자리에서 증인 자리까지 걸어오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증인 자리에 서서 「⁠습니다⁠」를 쓰지 않았다⁠. 판사가 이걸 고치지 않았다⁠.

“⁠우리 집이 지금 열두 층 꼭대기에 붙어 있다⁠. 열한 층에서 한 칸 올라갔다⁠. 그날 새벽 사내 하나가 모자랐는데 저 옛사람이 빈자리를 붙들었다⁠. 미역국은 내가 끓였다⁠. 소금은 안 넣었다⁠.⁠”

이게 다였다⁠. 할머니는 다시 방청석 맨 끝으로 걸어갔다⁠. 나를 보지 않았다⁠.

껌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증인 자리로 나오려 했다⁠. 판사가 할아버지를 멈췄다⁠.

“⁠증인께서는 청원인의 끼니를 보셨습니까⁠?⁠”

“⁠못 봤습니다⁠.⁠”

“⁠그러면 증언할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또 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게 서른 해 만이었습니다⁠.⁠”

“⁠끼니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한테는 끼니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말을 하고 도로 앉았다⁠. 판사는 이 말을 기록하라고 하지 않았다⁠. 지우라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청원인 자리에서 그쪽을 보지 못했다⁠. 보면 「⁠습니다⁠」가 안 나올 것 같았다⁠.

팔팔이가 「⁠기계 증언⁠」을 했다⁠. 판사가 팔팔이를 증인 자리에 세우자 법정 안 사람들이 일제히 묵념을 했다⁠. 팔팔이는 깨어난 날부터 오늘까지 내 무게를 하루씩 읽었다⁠. 백 날 치였다⁠. 줄어든 날과 되돌아온 날이 있었다⁠. 되돌아온 날은 다 박물관 바깥 밥을 먹은 날이었다⁠. 팔팔이가 마지막에 덧붙였다⁠.

“⁠국보의 무게는 오늘 아침 깨어난 날과 같습니다⁠. 국보 훼손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하로가 곁으로서 말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본 끼니 넷을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했다⁠.

“⁠작년 겨울⁠, 깨울 한 사람을 고른 것은 나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전시하기 좋다는 것을 까닭으로 적었습니다⁠. 그 까닭은 틀렸습니다⁠. 이 사람은 전시하기 좋은 사람이 아니라 국물을 잘 잡는 사람입니다⁠.⁠”

*

기라온이 일어섰다⁠.

“⁠보관자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의 「⁠습니다⁠」는 화가 난 소리가 아니었다⁠. 정확한 소리였다⁠.

“⁠첫째⁠, 구내식당의 여섯 끼는 박물관 경비 팔팔이가 국보를 데려가 먹인 것입니다⁠. 팔팔이는 박물관의 경비입니다⁠. 보관자의 손이 국보를 밥 앞에 데려간 것입니다⁠.⁠”

판사가 무늬를 봤다⁠. 무늬가 손을 들었다⁠.

“⁠밥은 제 것이었습니다⁠.⁠”

“⁠둘째⁠, 장날의 두 끼는 대여 중에 먹은 것입니다⁠. 대여료는 박물관이 받았습니다⁠. 국보가 그날 둑시장에 있었던 것은 보관자가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상인회장이 방청석에서 「⁠우리가 낸 몫은 아직 묶여 있습니다⁠」라고 했다⁠. 판사가 손을 들어 막았다⁠.

“⁠셋째⁠, 둑시장 하룻밤의 네 끼⁠. 해 질 녘부터 해 뜰 때까지 네 번 먹은 것을 끼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간식입니다⁠.⁠”

판사가 나를 봤다⁠. 청원인이 대답할 차례였다⁠.

“⁠2026년에는 야간 근무하는 사람이 밤에 세 끼를 먹었습니다⁠. 저녁 먹고 출근해서 자정에 한 끼⁠, 새벽 세 시에 한 끼⁠, 퇴근하기 전에 한 끼⁠. 그걸 야식이라고 했는데⁠, 야간 알바한테는 그게 끼니였습니다⁠. 낮에 자니까요⁠. 둑 경비분들께 물어보십시오⁠. 지금도 그렇게 먹을 겁니다⁠.⁠”

방청석 뒷줄에서 둑 경비 하나가 「⁠맞습니다⁠」라고 했다⁠. 혀가 꼬여 「⁠맞십니다⁠」로 나왔다⁠. 사람들이 웃었다⁠. 판사도 이번에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기라온은 웃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이 법정에서 가장 큰 것을 마지막에 꺼냈다⁠.

“⁠넷째⁠. 그리고 이것이 전부입니다⁠. 국보는 물건입니다⁠. 문화유산법은 국보를 사람의 손으로 지키는 물건으로 정합니다⁠. 물건은 일하지 않습니다⁠. 물건이 일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은 것이 받은 밥은 품삯이 아닙니다⁠. 그러면 스물한 끼는 하나도 없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마하로의 손이 내 옆에서 주먹을 쥐었다⁠. 판사가 기라온을 오래 봤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나는 대답하려고 숨을 들이쉬었다⁠.

이때 판사 뒤 화면이 켜졌다⁠.

*

기라온이 손목 기계를 화면 쪽으로 들고 있었다⁠.

“⁠판사님⁠, 증거 하나를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늘 열 시 반⁠, 국립박물관 21세기관이 다음 전시를 열었습니다⁠.⁠”

판사가 허락하기 전에 화면에 그림이 떴다⁠. 기라온은 이 시각을 맞춰 두었다⁠. 이 사람은 늘 정확했다⁠.

21세기관이었다⁠. 유리관이었다⁠. 내가 백 날 가까이 살던 이 유리관⁠. 연두색 꽃무늬 벽지와 그림으로 그린 남산 타워가 그대로 있었다⁠. 편의점 계산대만 빠져 있었다⁠. 이 자리에 길쭉한 쇠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2026년 회사의 냉동관이었다⁠. 유리 뚜껑에 서리가 끼어 있었다⁠. 서리 아래로 볼이 팬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왼쪽 눈썹 끝에 흉터가 있었다⁠.

냉동관 뚜껑 위에 국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손잡이 한가운데가 엄지 모양으로 팬 국자였다⁠. 이 옆⁠, 작은 유리 상자 안에 소장품 1호가 서 있었다⁠. 내가 마지막 근무 날 사서 실험실에 들고 간 컵라면⁠. 반은 할아버지 몫이었다⁠.

유리관 앞에 새 설명판이 서 있었다⁠.

「⁠다음 전시 — 잠든 21세기인⁠. 2026년의 분식집 주인⁠. 그는 고칠 수 있게 되면 깨워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를 깨우지 않음으로써 지킨다⁠.⁠」

이 아래에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있었다⁠. 「⁠문화유산 위원회 지정 — 잠든 국보⁠. 깨우는 것은 훼손이다⁠.⁠」

화면 속 유리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사천 명쯤이었다⁠. 이들은 서리 낀 노인의 얼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방청석에서 누가 숨을 들이켰다⁠. 무늬였다⁠. 마하로의 주먹이 풀렸다가 다시 쥐어졌다⁠. 팔팔이의 파란 불이 화면 쪽으로 돌았다⁠. 국자가 화면 가득 커졌다가 작아졌다⁠.

기라온이 손목 기계를 내리고 판사를 봤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판사님⁠, 이 청원인은 지난 4월 보존실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시민이 되면 같은 실험의 냉동자를 깨워 달라고 청원하겠다고⁠. 오늘 아침부터 그 냉동자는 잠든 국보입니다⁠. 깨우는 것은 훼손입니다⁠. 국보를 훼손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이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보관자 자리의 선을 넘지 않는 데까지만⁠.

“⁠묻겠습니다⁠. 시민이 되는 날 국보를 깨뜨리겠다는 사람이 이 도시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까⁠?⁠”

법정 안 모든 눈이 나를 향했다⁠. 판사도⁠, 무늬도⁠, 마하로도⁠, 맨 끝 자리의 할머니도⁠. 화면 속 사천 명은 아직 노인의 얼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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