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66자)

서산 요양병원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10월 11일 일요일 새벽 여섯 시 사십 분,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충청남도 서산으로 가는 고속버스는 반쯤 비어 있었다. 이안은 창가에, 나는 통로 쪽에 앉았다. 출발하고 이십 분쯤 지나자 나는 멀미를 시작했다. 이안이 가방에서 귤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까서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냄새 맡으세요. 엄마가 버스 탈 때 맨날 이랬어요.”

귤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멀미가 조금 가라앉았다. 이안은 그 귤을 나에게 다 먹이고, 자기는 껍질만 손에 쥐고 창밖을 봤다. 고속도로 옆 논에는 벼를 벤 그루터기가 줄지어 있었고, 아침 안개가 그 위에 낮게 깔려 있었다.

어제 밤 열한 시 오십 분, 이안이 윤채아 앞에서 「제가 말할게요」라고 한 뒤 인터뷰는 십 분 만에 끝났다. 윤채아는 이안의 조건을 다 듣지 않고 내일 서산에서 다시 이야기하자고만 했다. 이안은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에게 같이 가 달라고 했다. 셋에게는 말하지 않고 왔다. 아니, 이안이 말하고 왔다. 출발 전에 소담이 숙소 냉장고 당번표 맨 아래에 볼펜으로 한 줄을 써 넣는 것을 나는 봤다. 「일요일 — 이안 엄마 귤 담당」.

*

요양병원은 서산 시내에서 마을버스로 이십 분을 더 들어간 언덕 위에 있었다. 하얀 3층 건물이었고, 입구 옆에 휠체어 경사로가 길게 꺾여 올라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소독약 냄새와 미지근한 밥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복도 벽에는 손잡이 난간이 끝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난간을 잡고 걷는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보더니 이안의 이름을 불렀다.

“이안이 왔네. 엄마 휴게실에 있어.”

이안은 그 할머니에게 귤 두 개를 쥐여 주었다. 간호조무사 한 분,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 복도 청소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이안을 알았다. 이안은 그 사람들에게 귤을 하나씩 나눠 주며 걸었다. 휴게실 앞에 도착했을 때 봉지에는 귤이 세 개 남아 있었다.

이안의 어머니는 휴게실 창가에 휠체어를 대고 앉아 있었다. 쉰여섯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다. 오른손이 무릎 위에 힘없이 놓여 있었고, 왼손은 휠체어 팔걸이를 붙잡고 있었다. 휴게실 텔레비전에서는 아침 장터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이안이 앞에 쪼그려 앉자 어머니의 왼손이 팔걸이를 놓고 이안의 머리를 찾아왔다.

“엄마, 이분이 우리 매니저님.”

어머니가 나를 봤다. 입이 열렸는데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매」와 「니」 사이 어딘가의 소리였다. 나는 학원 첫 상담 날처럼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나혜주입니다.”

이번에는 어머님이라는 말이 버릇이 아니었다.

*

이안은 휴게실 구석 의자에 나를 앉혀 놓고 말했다. 어머니는 텔레비전 쪽으로 휠체어를 돌려 놓았다. 이안이 그렇게 했다. 엄마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안의 이야기는 PD의 태블릿에서 읽은 것과 같았는데, 같지 않았다.

2019년 겨울, 이안이 열여섯이던 해에 아버지가 제지 공장 야간 근무를 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회사는 아버지가 안전 덮개를 열고 손을 넣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덮개가 몇 달째 고장 나 있었다는 걸 알았다. 공장 동료들이 그렇게 말해 주었는데, 법원에서는 아무도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 년을 혼자 다녔다. 서산에서 대전까지, 대전에서 서울까지. 2023년 겨울, 다섯 번째 재판 날 아침에 어머니가 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졌다.

“그때 저 연습생 이 년 차였어요. 대표님이 그만두라고 할까 봐 회사에 말 안 했어요. 밤에 물류센터 나가서 상자 날랐어요. 새벽 네 시에 끝나면 첫차 타고 연습실 와서 자다가 언니들 오면 일어났어요.”

그런데 올여름 병원이 비용을 올렸다. 보험이 안 되는 재활 치료가 늘었다.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로는 모자랐다. 이안은 8월 첫 주 블루웨이브 공개 오디션에 혼자 갔다.

“강 이사님이 바로 계약하자고 했어요. 계약금이랑 월급 이야기를 하는데, 그거면 엄마 병원비가 됐어요. 근데 제가 나가면 회사가 망하잖아요. 대표님이 저 하나 보고 버티던 회사였으니까요. 언니들이 빚만 남을 거잖아요. 그래서 이사님한테 부탁했어요. 회사에 먼저 돈을 넣어 달라고. 대표님이 그 돈으로 언니들 데리고 버틸 줄 알았어요.”

이안은 손에 쥔 귤껍질을 손톱으로 잘게 뜯었다. 휴게실 바닥에 주황색 조각이 떨어졌다.

“대표님은 도망가고 나서 한 번 전화했어요. 울면서요. 미안하다고. 그래서 제가 서류 이야기를 했어요. 위임장 보내 달라고. 그게 대표님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매니저님은 첫날 오셨잖아요. 첫날 오신 분한테, 제가 이 회사 망하게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매니저님은 제 편 들어 주실 거잖아요. 강 이사님 앞에서 제 대답을 먼저 해 주셨듯이.”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안이 맞았다.

“이안 씨,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사연 영상 안 해도 돼요. 이안 씨가 하기 싫은 걸 하게 두려고 제가 그 회의실에서 거절한 게 아니에요.”

“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눈꼬리가 내려가 있어서 웃지 않아도 웃는 것처럼 보이던 얼굴이, 그때는 웃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PD님이 하자는 대로 하기 싫은 거예요. 엄마 얼굴 찍고, 아빠 사진 앞에 세우고, 피아노 깔고. 그건 싫어요. 근데 제 입으로 말하는 건 하고 싶어요. 엄마는 일요일 저녁 아홉 시에 저 텔레비전으로 노래 프로그램 봐요. 거기 제가 나와서, 우리 아빠 공장 덮개 고장 나 있었다고, 우리 엄마 사 년 동안 버스 타고 다녔다고 말하는 걸 엄마가 들었으면 좋겠어요. 법원에서 아무도 안 해 준 말을요.”

“이안 씨가 그걸 방송에서 말하면, 그 회사 이름이 나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낼 거예요. 그다음 일은 이안 씨가 감당해야 돼요.”

“알아요.”

“강 이사님은 그걸 또 점수로 셀 거고요.”

“그것도 알아요.”

이안은 귤껍질 조각을 손바닥에 모아 쥐었다.

“매니저님. 이번엔 제가 정해요. 그러니까 매니저님이 같이 있어 주세요. 정하는 거 옆에서요.”

*

윤채아는 정오에 왔다. 승합차 한 대와 카메라 감독 하나, 조연출 하나를 데리고.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 감독이 트렁크에서 삼각대를 꺼내는 동안 윤채아가 내렸다. 주말인데도 검은 니트를 입고 있었다. 열네 시간을 버틴 다음 날 아침이었는데, 그녀의 얼굴은 어제보다 덜 지쳐 보였다. 좋은 그림을 찍으러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안은 현관 경사로 아래에서 그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안의 한 걸음 뒤에 섰다. 옆이 아니라 뒤에.

“이안 씨, 와 줘서 고마워요. 동선부터 볼게요. 휴게실 창가가 빛이 좋다던데요, 거기서 어머님이랑…….”

“PD님, 카메라는 병원 문 안으로 못 들어와요.”

윤채아가 말을 멈췄다. 삼각대를 펴던 카메라 감독도 손을 멈췄다.

“엄마 얼굴은 안 나가요. 아빠 사진도 안 나가요. 피아노도 안 깔아요. 영상은 찍으셔도 돼요. 제가 타고 온 버스 정류장이랑, 이 언덕 길이랑, 제 뒷모습이요. 그리고 3차 무대에서 노래 시작하기 전에, 제가 마이크 들고 직접 말할게요. 영상으로 말고, 무대 위에서요.”

“이안 씨, 그러면 그림이 없어요.”

“그림 말고 소리로 하세요. 제 소리요. 그건 잘하잖아요, 제가.”

윤채아는 이안을 한참 봤다. 그녀의 시선이 이안의 어깨 너머로 나에게 왔다가, 다시 이안에게 돌아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차장 아스팔트가 정오 햇볕에 데워져 운동화 밑창으로 열기가 올라왔다. 어디선가 병원 식당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무대에서 말하는 건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예요. 저희가 잘라 낼 수 있어요.”

“자르시면 저 노래 안 해요. 그 자리에서 내려와요.”

“그럼 떨어져요.”

“그래도 돼요.”

이안은 그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대신 왼쪽 무릎이 아주 조금 떨렸다. 정형외과 테이프가 감긴 그 무릎이었다. 나는 그 떨림을 봤고, 윤채아도 봤다.

윤채아가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확인했다. 시간인지, 메시지인지. 그러고는 카메라 감독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삼각대를 접으라는 뜻이었다.

“일 분이요. 무대에서 이안 씨가 말하는 시간은 딱 일 분. 그걸 넘기면 저도 못 막아요. 편집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하니까요. 일 분 안이면, 제가 지킬게요.”

“녹화 순서는요?”

내가 처음으로 물었다. 윤채아가 나를 봤다.

“맨 끝이요. 그대로. 그건 제가 이안 씨한테 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매니저님.”

그녀는 승합차에 오르기 전에 언덕 길을 한 번 내려다봤다. 이안이 아침에 마을버스에서 내려 걸어 올라온 길이었다. 그녀는 카메라 감독에게 그 길만 찍고 가자고 말했다. 이안의 뒷모습과 함께.

*

오후 두 시, 휴게실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노래를 청했다. 이안 말고 나에게.

“서울서 온 아가씨도 가수여?”

“아니요, 저는 매니저…….”

“매니저면 노래를 더 잘하겠네. 가수를 가르치니께.”

휴게실 노인들이 모두 나를 봤다. 이안이 입을 막고 어깨를 떨었다. 휠체어 열두 대가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빠져나갈 길도 없었다. 나는 「렛 잇 비」를 불렀다. 반주 없이. 발음은 교재대로, 음은 외계인으로.

노래가 끝났다. 점수를 매기는 기계는 없었다. 할아버지들이 박수를 쳤다. 한 분은 휠체어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리고 창가의 휠체어에서, 이안의 어머니가 왼손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 노래에 맞춘 박자가 아니었다. 내 노래는 박자가 없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이안이 내 노래 밑에 작게 깔아 준 허밍의 박자를 치고 있었다. 이안은 내 노래가 무너질 때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음을 잡아 주었는데, 나는 그걸 노래가 끝나고 어머니의 손가락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안이 어머니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어머니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아주 천천히, 한 글자씩.

“이, 안, 아.”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왼손을 자기 두 손으로 감싸고, 그 손가락이 계속 박자를 치게 두었다.

*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안은 휴대폰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었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했다. 서산 시내를 빠져나갈 때쯤 이안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일 분이면 몇 글자예요?”

“천천히 말하면 이백오십 자쯤이요.”

“이거 서술어 어디에 힘 줘요?”

화면에 다섯 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었다. 주어에 동그라미를 칠 데가 없었다. 문장마다 주어가 「우리 엄마」와 「우리 아빠」였다. 마지막 줄만 주어가 「저」였다.

창밖으로 그루터기 논이 지나갔다. 해가 기울어 안개 대신 금색 먼지가 논 위에 떠 있었다. 3차 녹화는 엿새 뒤였다. 열여섯 팀 가운데 맨 끝 순서, 밤 열 시. 이안이 무대에서 말할 시간은 일 분이었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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