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40자)

본선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10월 17일 토요일, 상암동 방송사 A동 1층 대형 스튜디오는 천장이 너무 높아서 조명 걸린 철골이 밤하늘처럼 보였다. 객석은 이백 석이었다. 아침 아홉 시 첫 팀이 무대에 섰을 때 그 이백 석이 다 차 있었다. 저녁 일곱 시에는 백오십, 아홉 시에는 백, 열네 번째 팀이 끝난 밤 아홉 시 사십 분에는 칠십이 남았다. 방청객들은 휴대폰 시계를 보면서 막차 시간을 셌다.

「레이트」는 이번에도 열여섯 번째, 맨 끝이었다.

무대 뒤 대기 통로에서 넷이 새 의상을 입고 있었다. 망원시장 수선집 할머니가 엿새 동안 만든 옷이었다. 2차 예선 날 장바구니에 꽂혀 있던 그 반짝이는 천으로 소매 끝을 대고, 몸판은 시장 원단 가게에서 떼 온 검정 면으로 지었다. 바느질이 두 줄씩 박혀 있었다. 할머니는 한 줄로 박으면 춤추다가 터진다고 했다. 쉰 해 동안 시장에서 수선한 옷 가운데 무대에 올라가는 옷은 처음이라고 했다. 소담은 옷을 받자마자 안감에 붙은 작은 천 조각을 발견했는데, 거기 할머니 글씨로 「터지면 가져와」라고 수가 놓여 있었다.

금숙희는 통로 끝에서 넷의 자리를 마지막으로 정했다. 노란 테이프는 없었다. 숙희가 손가락으로 무대 바닥을 가리켰다.

“노래 시작 전에 말하는 일 분은 이안이 가운데. 노래 들어가면 첫 팔 초는 예나가 가운데. 이안은 반 박자에 오른쪽으로 빠져. 무릎 말고 골반으로 돌아.”

“됐다.”

예나가 말했다. 이안이 예나의 손바닥에 자기 손바닥을 한 번 쳤다.

*

밤 열 시 오 분, 열다섯 번째 팀이 무대를 내려오자 객석에서 의자 접히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칠십 가운데 스물쯤이 일어서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무대 옆에서 그걸 보던 조연출이 무전기에 대고 무어라 말했다. 방청객을 붙잡는 일을 하는 진행 요원은 열 시 퇴근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무대 옆 계단을 내려가 객석 앞에 섰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도 설명이 안 됐다. 학원에서 마지막 수업 오 분 전, 아이들이 가방을 싸기 시작할 때 늘 하던 일을 몸이 먼저 했다.

“자, 가방 내려놓으세요. 출석 부를게요.”

일어서던 스무 명이 멈췄다. 앉아 있던 쉰 명이 나를 봤다. 화장도 안 한 매니저가 마이크도 없이 객석 앞에 서서 출석을 부른다고 하니까, 다들 무슨 순서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맨 앞줄 빨간 점퍼 분, 이름이요?”

“……김정호요.”

“김정호 씨, 출석. 지금 가시면 결석 처리됩니다. 마지막 팀은 지각생이라서 이름이 「레이트」예요. 지각생이 열네 시간 기다렸어요. 사 분만 더 있어 주세요. 사 분 뒤에 막차 놓치시면 제가 택시비는 못 드리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확실하게 드릴게요.”

객석에서 웃음이 났다. 일어섰던 스무 명 중 열다섯이 도로 앉았다. 김정호 씨는 빨간 점퍼를 벗어 무릎에 덮었다. 맨 뒷줄에서 맹구현이 드럼 스틱 두 개를 머리 위로 들어 흔들었고, 그 옆의 숙희가 그의 팔을 끌어내렸다. 민재는 그 옆에서 콘솔 쪽만 보고 있었다. 방송사 음향 기사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얼굴이었다.

심사위원석 셋은 작곡가 하나, 안무가 하나, 가수 하나였다. 그 뒤 한 칸 높은 자리에 강유찬이 앉아 있었다. 자문석이었다. 그는 내 출석 부르기를 보면서 아주 조금 웃었다. 편의점 파라솔에서 「좋은 선생님이실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와 같은 웃음이었다.

*

밤 열 시 십이 분. 무대 조명이 꺼지고 가운데 한 점에만 빛이 떨어졌다. 그 점에 이안이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셋은 이안의 뒤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무대 옆 모니터에 초시계가 떴다. 일 분. 윤채아가 조정실 유리창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레이트」의 서이안입니다.”

이안의 목소리는 노래할 때보다 낮았다.

“2019년 겨울에 우리 아빠가 공장에서 일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기계 덮개가 몇 달째 고장 나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그 말을 하려고 사 년 동안 버스를 탔습니다. 서산에서 대전까지, 대전에서 서울까지요. 아무도 그 말을 법정에서 다시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합니다. 덮개는 고장 나 있었습니다.”

초시계가 삼십 초를 지났다. 객석이 조용했다. 김정호 씨가 무릎 위의 점퍼를 두 손으로 쥐었다.

“우리 엄마는 지금 말을 잘 못 하십니다. 대신 노래가 나오면 손가락으로 박자를 칩니다. 오늘 부를 노래는 박자가 쉽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골랐습니다. 엄마가 다음 달 일요일 저녁 아홉 시에 병원 휴게실에서 이걸 보시면, 따라 칠 수 있게요.”

초시계가 오십 초에서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이안이 마이크를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저는 오늘 동정표가 아니라 점수를 받고 싶습니다. 노래 듣고 주세요.”

오십구 초였다.

조명이 바뀌었다. 무대 가운데 빛이 예나에게로 옮겨 갔다. 이안이 반 박자에 오른쪽으로 빠졌다. 무릎이 아니라 골반으로 돌았다. 예나의 오른팔이 객석을 향해 곧게 뻗었다가 손목이 꺾이며 떨어졌다. 칠십 명의 객석 위로 반짝이는 소매 끝이 한 줄로 그어졌다.

노래는 쉬운 박자였다. 쿵, 짝, 쿵쿵, 짝. 이안이 말한 그대로였다. 태희의 랩이 빗금에서 숨을 쉬었고, 소담의 고음이 높은 철골까지 올라갔다. 이안의 서술어는 객석 맨 뒤까지 떨어졌다. 나는 객석 앞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박자를 치고 있었다. 쿵, 짝, 쿵쿵, 짝. 둘러보니 김정호 씨도, 그 옆자리의 대학생도, 맨 뒷줄의 숙희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맹구현은 스틱으로 의자 등받이를 쳤다.

노래가 끝났다. 칠십 명이 박수를 쳤다. 칠십 명이 치는 박수가 이백 석짜리 스튜디오를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막차를 포기한 사람들의 박수는 소리가 달랐다.

*

결과는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나왔다. 열여섯 팀이 무대 위에 줄을 섰고, 사회자가 본선 진출 여덟 팀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첫 번째로 불린 팀은 비 오는 골목의 리어카 영상을 붙인 팀이었다. 휘파람을 불던 매니저가 객석 옆에서 두 팔을 들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레이트」는 불리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태희가 이안의 손을, 소담이 예나의 손을 잡는 게 보였다. 소담의 다른 손이 의상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대기실 바닥에 떨어졌던 그 당번표일 것이었다.

“마지막 여덟 번째 본선 진출 팀은…….”

사회자가 멈췄다. 방송이 늘 하는 그 멈춤이었다. 나는 그 멈춤이 삼 초인지 삼십 초인지 알 수 없었다.

“「레이트」입니다.”

넷이 무대 위에서 주저앉았다. 동시에. 숙희가 한 번도 그렇게 맞춰 보라고 시킨 적 없는 동작이었는데 박자가 정확히 맞았다. 객석의 김정호 씨가 빨간 점퍼를 머리 위로 휘둘렀다. 맹구현이 스틱 하나를 떨어뜨렸고, 그 스틱이 객석 의자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

녹화가 끝난 스튜디오 복도는 케이블이 바닥에 뱀처럼 깔려 있었다. 넷은 대기실에서 숙희와 맹구현에게 붙잡혀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가 복도 끝에서 강유찬을 만났다. 그는 내가 지나갈 자리를 막지 않고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멈췄다.

“축하드려요, 대행님.”

“감사합니다. 점수를 주신 건 아니시죠? 자문이시니까.”

“자문은 점수를 안 줘요. 대신 심사위원들한테 한마디씩 하죠. 저는 이번에 「레이트」를 올리자고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바로 믿지 않았다. 그는 내가 믿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안 씨 일 분, 좋았어요. 동정표 말고 점수 달라는 마지막 줄. 그 한 줄로 이안 씨 값이 오늘 두 배가 됐어요. 본선 여덟 팀에 든 신인이니까요. 우리 회사 계약금도 두 배로 올릴 생각이에요.”

“이안 씨는 「레이트」로 본선 나갑니다.”

“「넥스트 스테이지」 규정 읽어 보셨어요? 본선 첫 녹화 전까지 멤버 소속 변경이 허용돼요. 큰 회사로 옮긴 멤버가 원래 팀 이름 그대로 본선에 나갈 수 있어요. 기획사 둘이 같이 이름을 올리는 거죠. 그럼 「레이트」는 본선에 나가요. 이안 씨는 블루웨이브 연습생으로 나가고요. 셋도 같이 무대에 서요. 대행님이 원하는 것도 다 되고, 제가 원하는 것도 다 돼요.”

“이안 씨가 원하는 건요?”

강유찬이 벽에서 등을 뗐다.

“그건 이안 씨가 정하죠. 대행님 말씀대로.”

그는 케이블을 밟지 않으려고 발끝을 들고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에 또각또각 울렸다.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화장실에 가는 것을 또 잊었다.

*

새벽 한 시, 우리는 망원동으로 돌아왔다. 숙희와 맹구현은 같은 차로 갔다. 이번에도 아무도 묻지 않았다. 숙소 앞 골목에서 넷이 계단을 올라가다가 이안이 멈췄다.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계란 사 와야 돼요. 내일 제 당번이에요.”

“내가 같이 가.”

태희가 말했다.

“아니야, 언니. 혼자 갈게. 잠깐이면 돼.”

이안은 계단을 내려가 길을 건너갔다.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나는 연습실 철문을 열고 들어가 노래방 기계 옆에 털썩 앉았다. 압류 딱지가 붙은 기계였다. 10월 31일까지 열사흘이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 다섯 시에 표창수가 문 앞에 설 것이었다. 본선에 올랐으니 이제 그에게 보여 줄 것이 생겼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노래방 기계에 등을 기댔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휴대폰 진동에 깬 것은 새벽 두 시 이십 분이었다. 한민재였다. 편의점 야간 근무 중이라고 했다.

「매니저님, 그 아가씨 계란 안 사 갔어요. 한 시 반에 편의점 앞에 검은 차 와서 탔어요. 그리고 이거.」

링크가 하나 붙어 있었다. 연예 소식 게시판의 글이었다. 제목은 이랬다. 「넥스트 스테이지 본선 진출 신인 서이안, 녹화 끝나자마자 블루웨이브 사옥 연습실로」.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강남의 유리 건물 1층 출입구, 그 위에 블루웨이브의 파란 간판이 불을 켜고 있었다. 그 아래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검정 면에 소매 끝이 반짝이는 옷이었다. 바느질이 두 줄씩 박힌 옷이었다.

사진 속 시각은 새벽 두 시 오 분이었다. 글에 달린 댓글은 벌써 이백 개가 넘어 있었다.

나는 숙소 3층에 전화를 걸었다. 태희가 받았다. 잠에서 막 깬 목소리였다.

“태희 씨. 이안 씨 들어왔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이층 침대 아래 칸 이불을 들추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본선 ·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