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06자)
대기실 열네 시간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10월 10일 토요일 아침 여덟 시, 상암동 방송사 B동 지하 2층 대기실 7호의 문에 「레이트」라는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글씨가 프린터 잉크가 모자라 세로로 줄이 가 있었다. 그 종이가 우리가 처음 받은 방송국 대기실 이름표였다. 소담이 사진을 열두 장 찍었다.
사전 인터뷰 녹화는 아침 아홉 시에 시작했다. 열여섯 팀이 순서대로 들어가 팀 소개와 개인 인터뷰를 찍었다. 3차 무대 전에 붙는 이 분짜리 영상 가운데, 사연 영상이 없는 팀은 이 인터뷰만으로 이 분을 채웠다. 우리는 열여섯 번째였다.
대기실은 창문이 없었다. 벽 한쪽이 거울이었고, 거울 둘레에 동그란 전구가 박혀 있었는데 열여덟 개 가운데 다섯 개가 나가 있었다. 냉장고에 생수가 열두 병 들어 있었다. 소파 하나, 접이식 의자 넷, 탁자 위에 김밥 다섯 줄과 바나나 한 송이. 에어컨은 누가 꺼도 다시 켜지는 중앙 냉방이었다.
“열네 시간.”
태희가 벽시계를 보며 말했다.
“고객님, 대기 시간은 열네 시간으로 예상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담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방에서 A4 용지를 꺼냈다. 「대기실 당번 — 어기면 사형」. 생수 담당, 김밥 담당, 「바나나 껍질 버리는 담당」. 예나가 바나나 담당이 되었다. 예나는 그 자리에서 바나나 두 개를 먹고 껍질 두 개를 들고 쓰레기통 앞에 섰다. 담당으로서 해야 할 일이 그것뿐이라는 듯 아주 오래 섰다.
*
오전에는 내가 수업을 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나올 질문은 뻔해요. 「왜 데뷔하고 싶어요?」 「힘들었던 순간은?」 「팀에게 한마디.」 학원에서 면접반 할 때 대학 교수들도 똑같은 걸 물었어요. 대답을 외우면 안 돼요. 외운 건 들켜요. 대신 한 문장에 사물 하나를 넣어요. 「힘들었다」 말고 「지하라 와이파이가 한 칸이었다」. 그럼 듣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요.”
“매니저님, 그거 교수님들한테 먹혔어요?”
“한 명 붙었어요. 열 명 중에.”
“그게 먹힌 거예요?”
“그 한 명이 의대였어요.”
소담이 박수를 쳤다. 태희는 손등에 「와이파이 한 칸」이라고 볼펜으로 적었다. 이안은 소파 끝에 앉아 무릎 테이프를 손톱으로 들춰 보고 있었다. 사전 미팅 다음 날부터 이안은 셋과 같이 웃었고 같이 연습했다. 그런데 휴대폰은 늘 화면을 아래로 엎어 두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본 숫자 3을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후 두 시에 메이크업 실장이 들어왔다. 열여섯 팀을 혼자 맡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넷의 얼굴을 한 번씩 보고 나서 나를 봤다.
“매니저님도 해 드려요?”
“저는 화면에 안 나와요.”
“나오세요. 인터뷰 때 매니저가 옆에 서 있으면 애들 표정이 펴져요.”
그녀는 내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두드리다가 손을 멈췄다.
“눈 밑이 애들보다 더 까매요. 몇 시간 자요?”
“바 마감이 열한 시라서요.”
“바요?”
“홍대에서 생맥주를 따라요. 거품이 아직 안 맞아요.”
메이크업 실장은 그 말을 농담으로 듣고 웃었다. 넷은 웃지 않았다.
오후 여섯 시에 순서표를 보니 아직 아홉 번째 팀이 찍고 있었다. 김밥은 오전에 다 먹었고, 방송국 지하 편의점은 일곱 시에 문을 닫았다. 저녁은 바나나 한 송이 남은 것을 다섯이 나눠 먹었다. 바나나 담당 예나는 껍질 다섯 개를 받아 들고 또 쓰레기통 앞에 섰다.
여덟 시쯤 화장실에 가다가 복도 모니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편집실에서 시험 삼아 띄워 둔 화면이었다. 비 오는 골목에서 할머니 한 분이 폐지 실은 리어카를 끌었고, 그 옆에서 우비 입은 남자 연습생이 리어카 손잡이를 같이 잡았다. 빗소리 위로 피아노 소리가 깔렸다. 사전 미팅 복도에서 휘파람을 불던 매니저의 팀이었다. 모니터 앞을 지나던 방송국 직원 둘이 멈춰 서서 끝까지 봤다. 하나는 코를 훌쩍였다. 나는 그 직원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윤채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화면은 사람을 멈춰 세웠다. 나는 화면이 꺼질 때까지 그 앞을 떠나지 못하다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잊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
밤 열 시 십 분, 열세 번째 팀이 녹화를 마쳤다는 방송이 복도에 나왔다. 대기실 문이 열렸다. 노크는 없었다.
강유찬이 들어왔다. 남색 정장이 아니라 회색 니트였고, 목에 심사 자문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구두는 그대로였다. 대기실 바닥은 장판이 아니라 회색 타일이었다. 예나가 「신발」이라고 말하려다 바닥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윤 PD가 「레이트」를 맨 끝에 놨다길래요. 자문 회의 끝나고 잠깐 들렀어요.”
“인터뷰 직전입니다. 나가 주세요.”
“오 분이면 돼요. 대행님 말고 넷한테 할 말이 있어서.”
나는 그의 앞을 막고 섰다. 그는 나를 지나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선 채로 내 어깨 너머 넷을 봤다. 키가 커서 내 어깨가 그의 시선을 막지 못했다.
“태희 씨, 소담 씨, 예나 씨. 세 분은 차 대표가 왜 사라졌는지 아세요?”
“그만하세요.”
“8월 초에 이안 씨가 저를 먼저 찾아왔어요. 블루웨이브 공개 오디션에 혼자 왔죠. 회사에 말 안 하고. 노래를 듣고 제가 바로 계약하자고 했어요. 이안 씨는 조건을 걸었고요. 자기가 블루웨이브로 가는 대신, 스타라이트가 남은 셋을 데리고 버틸 수 있게 계약금을 회사에 먼저 넣어 달라고요. 셋이 빚더미에 남지 않게.”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중앙 냉방 바람 소리만 들렸다.
“그래서 차 대표한테 3천만 원을 넣었어요. 이안 씨가 부탁한 돈이에요. 차 대표는 그 돈을 들고 사라졌고요. 이안 씨는 그 뒤로도 차 대표랑 연락을 했어요. 위임장이 퀵으로 왔다죠? 이안 씨가 대표한테 서류 이야기를 해 줬으니까 온 거예요.”
나는 이안을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대신 셋을 봤다. 태희가 소파에서 일어나 있었다. 소담은 들고 있던 당번표 종이를 반으로 접고 있었다. 예나는 바나나 껍질 다섯 개를 아직 손에 쥐고 있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건, 3차가 다음 주라서예요. 이안 씨는 지금 이 팀에 빚진 마음으로 무대에 서요. 빚진 마음으로 서면 점수가 안 나와요. 저는 이안 씨가 어디서든 데뷔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든 우리 회사에서든. 근데 여기서는 안 될 거예요. 심사 자문으로서 하는 말이에요.”
“나가세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강유찬이 처음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이사님은 지금 이안 씨가 넷 중에 하나만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라는 걸 셋한테 알리려고 오신 거예요. 그래야 셋이 이안 씨를 놓아줄 테니까요. 그게 이사님 자문이에요?”
“대행님은 이안 씨가 그 부탁을 왜 했는지 아세요?”
나는 알았다. 사흘 전 PD의 태블릿에서 읽었다. 서산의 요양병원, 물류센터 야간 아르바이트, 병원비. 그 말을 강유찬 앞에서 꺼내는 순간 그것은 이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강유찬과 나의 싸움 도구가 될 것이었다.
“이안 씨가 말할 때까지 저는 몰라요.”
강유찬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들어올 때처럼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복도에서 열네 번째 팀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
태희가 먼저 말했다. 콜센터 목소리가 아니었다.
“너 우리 버리고 가려고 했어?”
이안은 소파 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버리려고 한 거 아니야. 돈 넣으면 회사가 버틸 줄 알았어. 대표님이 그 돈으로 언니들 계약 지켜 줄 줄 알았어.”
“그래서 대표님이 도망갔잖아!”
소담이었다. 소담은 반으로 접은 당번표를 다시 반으로 접고 있었다. 종이가 두꺼워져서 더 이상 접히지 않았다.
“그 돈 때문에 그 사람이 도망간 거잖아. 그 돈 때문에 압류 딱지가 붙고, 매니저님 적금이 날아가고, 우리 상금이 사채업자한테 갔잖아. 근데 넌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우리랑 같이 반찬 당번 했어? 계란 사 오고?”
“계란은 예나가 다 먹었잖아.”
이안이 작게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안 자신도.
태희가 대기실 벽에 등을 기댔다. 거울 둘레 전구 가운데 나간 것 다섯 개가 태희의 얼굴 옆에서 까맣게 비어 있었다.
“나도 할 말 있어.”
셋이 태희를 봤다.
“나 작년부터 다른 데 오디션 다녔어. 세 군데. 몰래. 다 떨어졌고. 너희한테 말 안 했어. 사 년 버틴 맏언니가 다른 데 기웃거린다고 하면, 너희가 다 흩어질까 봐.”
소담의 손에서 접힌 당번표가 바닥에 떨어졌다. 소담은 그것을 줍지 않았다. 누구를 먼저 탓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었다. 화장한 얼굴로. 인터뷰 때 애들 표정이 펴진다는 그 얼굴로.
그때 예나가 쓰레기통 앞에서 돌아섰다. 손에 바나나 껍질 다섯 개를 쥔 채였다.
“내는 부산에서 왔다.”
넷이, 그리고 나도 예나를 봤다.
“아빠는 배 탄다. 엄마는 횟집 한다. 내 고등학교 졸업할 때 엄마가 회 썰던 칼 놓고 서울 가라 했다. 춤추라고. 내는 서울 와서 오디션 열한 개 떨어졌다. 열두 번째가 여기였다. 대표는 내 춤 안 보고 내 키만 봤다. 근데 언니들은 내 춤 봤다. 첫날 이안 언니가 내 발목 보고 테이프 감아 줬다. 태희 언니는 내 사투리 안 고치라 했다. 소담 언니는 계란 내가 다 먹어도 당번에서 안 뺐다.”
예나가 숨을 한 번 쉬었다. 예나가 이렇게 긴 말을 하는 것을 셋은 사 년, 삼 년, 사 년 반 동안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 거짓말했다. 내도 했다. 엄마한테 회사 합격했다꼬. 다 똑같다. 근데 우리 오늘 저 문 열고 안 나가면, 그 거짓말 다 진짜로 거짓말 된다. 나가면, 아직 모른다.”
예나는 바나나 껍질 다섯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하나씩. 다섯 번.
“됐다.”
*
밤 열한 시 오십 분, 열여섯 번째 순서가 왔다. 조연출이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강유찬과 달리 그는 노크를 했다.
넷이 일어났다. 태희가 바닥에 떨어진 당번표를 주워 소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소담이 그것을 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안은 맨 뒤에서 일어났다. 무릎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복도 끝 인터뷰 세트장 앞에 윤채아가 서 있었다. 열네 시간을 같이 버틴 얼굴이었다. 그녀는 태블릿을 들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트」, 개인 인터뷰 질문은 똑같아요. 「왜 데뷔하고 싶어요?」 짧게 부탁드려요.”
이안이 넷 가운데 앞으로 나왔다. 셋을 지나서, 나를 지나서, 윤채아 앞에 섰다.
“PD님. 사연 영상이요.”
윤채아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멈췄다.
“제가 말할게요. 대신 제가 정한 대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