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5자)
사연 있는 팀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상암동 방송사 건물은 들어가는 데만 이십 분이 걸렸다. 10월 6일 화요일 오후 한 시 반, 1층 로비에서 출입증을 받고, 출입증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엘리베이터는 홀수 층에만 섰다. 회의실은 14층이었다. 13층에서 내려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갔더니 그 계단은 비상구라 밖에서 문이 안 열렸다. 다시 13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넷은 1층 로비 카페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전 미팅은 매니저 혼자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출입증을 목에 걸고 돌아서는데 태희가 경비원에게 콜센터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객님, 화장실은 어느 방향으로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경비원은 고객님 소리에 놀라서 손가락으로 세 번이나 방향을 가리켰다. 소담은 로비를 지나가는 아나운서를 보고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가 이안에게 옷자락을 잡혀 도로 앉았다. 예나는 무료로 나눠 주는 커피를 네 잔째 받고 있었다.
나는 13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출입증의 사진을 내려다봤다. 아침에 급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학원 그만둔 날 이후로 처음 찍은 증명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나는 학부모 상담 들어가기 전의 얼굴,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14층 회의실 앞 복도에는 의자가 여섯 개 놓여 있었고, 다른 기획사 매니저 둘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하나는 나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남자였는데, 앉자마자 내게 명함을 주고 내 명함을 달라고 했다. 나는 명함이 없었다. 그는 실망한 얼굴로 자기 명함을 도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그의 차례가 먼저였다. 그는 회의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서류 봉투를 꺼내 들고 일어섰다. 열린 문틈으로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희 막내가요, 할머니 손에 컸거든요. 할머니가 폐지를 주우세요. 그 리어카 끄는 장면 찍으시면 제가 할머니 설득해 놓을게요. 비 오는 날이 좋겠죠?”
옆자리의 다른 매니저가 휴대폰을 보던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매니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기 서류 봉투를 무릎 위에서 고쳐 쥐었다. 그 봉투에도 무언가가 들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빈손이었다. 출입증 줄만 손가락에 감고 있었다.
십오 분 뒤에 첫 번째 매니저가 나왔다. 비 오는 날로 날짜를 잡았다며 휘파람을 불었다.
*
14층 회의실은 유리벽이었다. 안에서 바깥이 다 보였고, 바깥에서 안이 다 보였다. 탁자 위에 생수병 하나와 팀별 자료 묶음이 놓여 있었다. 윤채아는 그 자료 묶음을 펼치지 않고 태블릿만 들고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저희 건물이 좀 미로예요. 앉으세요.”
윤채아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학원에서 제일 무서웠던 학부모들은 늘 목소리가 다정했다.
“「레이트」 2차 무대 봤어요. 좋았어요. 막내 첫 동작, 저희 편집팀이 벌써 잘라 놨어요. 근데 매니저님, 3차는 달라요. 3차는 홍대 지하가 아니라 방송이에요. 열여섯 팀이 와서 여덟 팀이 본선 가요. 그 여덟 팀은 다음 달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 아홉 시에 나가고요.”
그녀가 태블릿을 탁자 위에 눕혔다. 화면에 낯선 서류가 떠 있었다. 대표 차민기의 이름이 맨 위에 있었다.
“차 대표님이 7월에 저희한테 팀 소개 자료를 미리 보내셨어요. 시즌 기획 단계에 기획사들한테 받아 두는 거예요. 거기 이안 씨 가족 이야기가 한 쪽 있어요.”
나는 화면을 봤다. 몇 줄만 읽었다. 그 이상은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이 먼저 읽었다.
2019년, 충청남도 서산의 한 제지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이안의 아버지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회사는 안전 수칙을 어긴 개인의 잘못이라고 했고, 어머니가 혼자 사 년 동안 회사와 다퉜다. 2023년 겨울,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지금은 서산의 요양병원에 있다. 이안은 연습생 생활을 하며 밤에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병원비 일부를 보낸다.
대표의 글은 마지막 줄에서 이렇게 끝났다. 「방송용으로 매우 좋은 소재입니다.」
나는 태블릿을 윤채아 쪽으로 밀었다.
“이거, 이안 씨 동의 받은 자료예요?”
“그건 대표님이 받으셨겠죠.”
“대표님은 지금 어디 계신지도 몰라요.”
윤채아는 웃었다. 그 웃음에 날이 없었다. 그래서 더 곤란했다.
“매니저님, 제 계획 들어 보세요. 3차 무대 전에 이 분짜리 영상이 붙어요. 팀마다. 저희가 서산 요양병원에 가서 이안 씨가 어머님 앞에서 노래 한 곡 부르는 장면을 찍어요. 아버님 사진 앞에서 한마디 하고요. 그다음에 스튜디오 무대로 넘어가요. 그럼 시청자는 무대를 노래로 안 보고 이안 씨로 봐요. 심사위원도요.”
“안 합니다.”
“아직 다 말씀 안 드렸는데요.”
“다 안 들어도 돼요, 어머님. 안 합니다.”
윤채아의 눈썹이 올라갔다. 나는 방금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늦게 알아들었다. 삼 년 동안 이 탁자 건너편에 앉는 사람은 전부 어머님이었다.
“……PD님. 죄송합니다. 버릇이에요.”
“저 아직 미혼인데요.”
“저도 그렇게 부르면서 한 번도 확인 안 했어요.”
윤채아가 그 말에 처음으로 진짜 웃음 비슷한 것을 터뜨렸다가, 곧바로 거두었다.
*
윤채아가 생수병 뚜껑을 열었다. 마시지는 않았다. 열었다가 닫았다.
“매니저님, 학원 강사 하셨다면서요.”
“네.”
“그럼 아실 거예요. 공부 잘하는 애는 많아요. 근데 선생님이 기억하는 애는 따로 있죠. 사연 있는 애요. 아빠 없는 애, 집이 어려운 애, 그런데 버티는 애. 방송도 똑같아요. 노래 잘하는 팀은 열여섯 팀이 다 노래를 잘해요. 그중에 시청자가 기억하는 팀이 본선에 가요.”
“제가 기억하는 애들은 사연 있는 애들이 아니었어요. 자기 사연을 남이 먼저 꺼낼까 봐 숙제를 열심히 해 온 애들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학원을 그만둔 날을 떠올렸다. 원장이 부모 이혼한 중학생의 상담 내용을 다른 학부모들에게 걱정하는 척하며 흘렸고, 그 아이는 다음 달에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상담을 한 사람이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만 말한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사직서를 썼다. 윤채아에게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도 내 것이 아니었다.
“이안 씨가 저한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한 번도요. 제가 몰랐던 걸 지금 PD님 화면으로 알았어요. 이안 씨가 저한테도 안 한 이야기를, 제가 먼저 방송에 내줄 수는 없어요.”
“이안 씨 본인이 하겠다고 하면요?”
“그건 이안 씨가 정해요.”
나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었다.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이안이 했던 말이었다.
윤채아가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넘겼다. 열여섯 팀의 이름이 줄지어 있는 녹화 순서표가 떠올랐다. 「레이트」는 일곱 번째에 있었다. 그녀가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끌어 맨 아래로 내렸다.
“그럼 「레이트」는 열여섯 번째로 녹화해요. 녹화가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하니까 열여섯 번째면 밤 열 시쯤이에요. 그 시간이면 심사위원들 지쳐 있어요. 방청객도 반은 가고요. 그리고 사연 영상이 없는 팀은 편집 때 분량이 제일 먼저 잘려요. 무대 하나만 나가요. 그것도 앞부분 삼십 초만 나갈 수도 있고요.”
“그게 원칙이에요?”
“그게 방송이에요.”
윤채아가 일어섰다. 회의 끝이라는 뜻이었다. 문 쪽으로 가다가 그녀가 돌아섰다. 목소리에서 다정함이 처음으로 한 겹 벗겨졌다.
“저도 연습생이었어요. 열아홉에서 스물넷까지. 데뷔 못 했어요. 저랑 같이 있던 애 하나가 아빠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하고 데뷔했어요. 걔 아빠는 그 뒤로 이 년을 더 사셨고요. 저는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 아저씨는 딸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보고 돌아가셨어요.”
나는 그 말에 바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윤채아도 내 대꾸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매니저님. 이번 3차 심사 자문 맡으신 블루웨이브 강유찬 이사님이 이안 씨를 아주 좋게 보세요. 사연 영상 이야기도 사실 그분이 먼저 꺼내셨어요.”
*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유리벽 바깥 복도는 에어컨이 너무 세서 팔에 소름이 돋았다. 바닥은 회색 카펫이었는데, 발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누가 서 있는 것을 보기 전까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문 바로 옆, 유리벽이 끝나고 흰 벽이 시작되는 자리에 이안이 기대 서 있었다.
목에 내 것과 똑같은 방문자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로비에서 어떻게 받았는지 나는 몰랐다. 태희가 콜센터 목소리로 받아 줬을 것이다. 이안은 팔짱을 끼지도 않고 휴대폰을 보지도 않고, 두 손을 등 뒤의 벽에 붙인 채 서 있었다. 유리벽이었다. 안에서 바깥이 다 보였고, 바깥에서 안이 다 보였다. 소리는 문틈으로 다 새어 나왔을 것이다.
“언제부터 있었어요?”
“엘리베이터가 홀수 층만 서서요. 매니저님이 13층에서 헤매실 때 저는 짝수 층 서는 엘리베이터 타고 먼저 올라왔어요.”
처음부터였다.
이안은 출입증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감았다가 풀었다가, 다시 감았다. 그 손가락 끝이 하얬다.
“우리 아빠 이야기, 그 서류에 어떻게 적혀 있었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표가 마지막 줄에 쓴 말이 혀끝에 있었다. 그 말을 이안에게 들려줄 수는 없었다.
“대표님이 쓰셨죠? 방송에 쓰기 좋다고.”
이안은 내 얼굴에서 대답을 읽었다. 나는 늘 얼굴로 대답을 들켰다. 학원 아이들도 그걸 알았다.
이안은 한동안 회색 카펫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등을 벽에서 뗐다.
“매니저님. 아까 그 말, 이안 씨가 정한다는 거요.”
“네.”
“그거 편의점에서 제가 한 말이잖아요.”
“네.”
“그 말 듣고 저 좀 울 뻔했어요. 근데 PD님 말도 하나는 맞아요.”
이안이 출입증 줄을 손가락에서 풀었다. 줄이 손가락 모양대로 꼬불꼬불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 엄마, 텔레비전 보는 거 좋아해요. 병원 휴게실 텔레비전으로 일요일 저녁 아홉 시에 노래 프로그램을 봐요. 말은 잘 못 하시는데, 노래 나오면 손가락으로 박자를 쳐요.”
이안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뒤따라갔다. 이번에는 짝수 층에만 서는 엘리베이터가 14층에서 문을 열었다. 둘이 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이안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블루웨이브 강유찬」이라는 이름과 함께, 아직 읽지 않은 메시지 숫자 3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