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49자)

마흔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10월 3일 토요일 아침 일곱 시, 홍대 골목은 전날 밤의 술 냄새와 아침 청소차의 물 냄새가 섞여 미끈거렸다. 나는 클럽 무명이 있는 건물 앞에서 셔터가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차 예선은 오후 네 시였고, 방송사 리허설은 열한 시였다. 일곱 시에 올 이유는 없었다. 숙소에서 잠이 안 왔을 뿐이었다.

셔터 옆 지하 계단 첫 칸에 누가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얹고, 검정 캐리어를 다리 옆에 세워 둔 채.

“안 늦었죠?”

이안이었다. 닷새 만이었다. 왼쪽 무릎에 살색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정형외과에서 붙여 주는 그 테이프였다. 이안의 얼굴은 닷새 동안 잠을 거의 못 잔 사람처럼 눈 밑이 거뭇했고, 입술이 터서 갈라져 있었다.

나는 어디 갔었냐고 묻고 싶었다. 강유찬 이사를 만났냐고, 7층에 갔냐고, 센터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했냐고. 그 물음 셋이 한꺼번에 목까지 올라왔다. 나는 그것을 다 삼키고 하나만 물었다.

“아침 먹었어요?”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 두 개와 바나나우유 하나를 사 왔다. 우리는 셔터가 올라갈 때까지 계단에 나란히 앉아 그것을 먹었다. 이안은 김밥 포장을 1, 2, 3 순서대로 정확히 뜯었다. 나는 늘 2번에서 김을 찢었다.

“매니저님은 그것도 못 해요?”

“저는 숫자 순서 지키는 거 학생들한테 시키기만 했어요.”

이안이 웃었다. 닷새 전에 식었던 무언가가 조금 데워지는 소리 같았다. 이안은 다 먹은 포장 비닐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기를 되풀이하면서, 캐리어 손잡이에 걸린 서산행 버스표 반쪽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나는 그 표를 보지 못한 척했다.

여덟 시 반에 셋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태희가 이안을 보자마자 뒤통수를 한 대 때렸고, 소담이 이안을 껴안으면서 동시에 욕을 했고, 예나는 이안의 테이프 감긴 무릎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봤다. 이안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됐다.”

예나가 말했다. 무엇이 됐는지 이번에는 다들 알았다.

*

오후 세 시 사십 분, 무대 뒤 계단에서 표창수를 만났다.

클럽 무명의 무대 뒤에는 대기실이 따로 없어서 비상계단이 대기실이었다. 콘크리트 계단참에 철제 의자 몇 개와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고, 위층에서 내려오는 환풍기 바람에 먼지 섞인 기름 냄새가 났다. 앞 순서 팀은 계단참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우리 넷은 그 아래 칸에서 숙희가 시킨 대로 무릎을 풀었다.

표창수는 위에서 내려왔다.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올 때마다 금시계가 철제 난간에 부딪혀 딱 딱 소리를 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사장님한테 허락받았어. 나 여기 단골이야. 80년대부터.”

거짓말 같았는데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표창수는 계단 중간에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오늘 일등 하면 상금 삼백이라며.”

“공연장마다 한 팀이요.”

“그거 나한테 넘겨.”

넷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앞 순서 팀이 거울 앞에서 우리 쪽을 흘끔거렸다.

“그 돈은 넷이 받는 거예요. 의상도 새로 맞춰야 하고, 3차는 상암까지 가야 하고…….”

“의상? 아가씨, 나는 지금 돈 이야기를 하는 거야. 차 대표가 나한테 진 빚이 일억 이천이라고 했지. 10월 31일까지 기다려 주는 대신 들어오는 돈은 다 나한테 와야지. 그게 상식이야. 싫으면 지금 파산 신청 넣어. 나는 블루웨이브 쪽이랑 따로 얘기하면 돼.”

“강 이사님이랑요?”

“그 양반 오늘 객석에 있어. 맨 앞줄에.”

나는 계단 위쪽 문틈으로 객석을 봤다. 조명이 아직 객석을 비추고 있었다. 맨 앞줄 가운데, 남색 정장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구두 끝이 무대 턱에 닿을 것 같았다.

나는 넷을 봤다. 태희는 표창수를, 소담은 나를, 예나는 이안을, 이안은 아무도 보지 않고 무릎 테이프만 보고 있었다.

“넘길게요.”

“매니저님!”

소담이 소리쳤다. 나는 소담 쪽을 보지 않았다. 학원에서 원장이 환불을 거절할 때 학부모가 우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뒷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나는 원장 옆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그만둔 학원이었는데, 지금 나는 넷이 받을 돈을 넷 앞에서 넘겨주고 있었다.

“대신 실장님, 오늘 받으시면 31일까지는 다시 오지 마세요. 한 번도요. 넷이 연습하는 데 실장님 시계 소리가 들리면 안 돼요.”

표창수가 금시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딱 딱 소리가 멈췄다.

“일등 하면 이야기지. 아가씨네 팀은 셋 중에 셋째 순서잖아. 앞 팀 둘이 버스 대절해서 팬을 육십 명 데리고 왔던데.”

그는 계단을 올라갔다. 이번에는 시계가 난간에 부딪히지 않았다.

*

네 시 정각에 객석 조명이 꺼졌다. 백 석이 다 찬 지하 3층은 사람 체온으로 후끈했고, 숨 쉴 때마다 남의 향수와 땀이 섞인 공기가 목으로 넘어왔다.

나는 바 안에서 셌다. 앞치마를 두르고, 생맥주 거품을 맞추면서. 셀 수밖에 없었다. 「레이트」를 보러 왔다고 입구에서 말한 사람들을 맹구현이 손가락으로 세어서 내게 신호를 보내 주었다.

건물주 할머니와 경로당 친구들 넷이 맨 먼저 왔다. 이번에는 다섯이 아니라 열둘이었다. 경로당에서 소문이 났다고 했다. 태희의 콜센터 동기는 이번에 둘을 더 데려왔다. 「월요일 세 시에 누가 퇴근해」라고 답장했던 사람들이었는데, 토요일 네 시는 퇴근할 필요가 없었다. 소담의 성악과 후배 둘은 소담을 놀렸던 그 동기를 끌고 왔다. 동기는 맨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난 월요일 밴드 멤버 셋은 오늘 공연이 없는데도 왔다.

그리고 망원시장이 왔다.

배달 기사가 헬멧을 들고 들어왔는데, 그 뒤로 같은 조끼를 입은 배달 기사 여섯이 줄줄이 따라왔다. 단톡방에 「망원시장 앞 그 가수들」이라고 올렸다고 했다. 시장 앞에서 손잡고 있던 대학생 둘이 왔는데, 이번에는 남자 쪽이 휴대폰을 당당하게 들고 있었다. 떡집 사장님 부부가 떡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상인회 총무는 정육점, 생선가게, 반찬가게 사장님 넷을 데리고 왔다. 순댓국집 아저씨는 얼굴이 이미 빨갰다.

누렁이도 왔다. 계단 입구에서 맹구현이 막았는데, 순댓국집 아저씨가 이 개가 첫 관객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결국 계단 중간까지는 들어왔다. 거기 앉아서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파 할머니가 들어왔다. 꽃무늬 조끼에 장바구니를 끌고. 바구니에 이번에는 대파가 아니라 반짝이는 천이 접혀 꽂혀 있었다. 할머니는 시장 안에서 수선집을 한다고 했다. 쉰 해째라고.

마흔이었다. 맹구현이 손가락 넷을 펴고, 그다음에 주먹을 쥐었다. 나는 생맥주를 따르다 말고 손을 멈췄다. 거품이 잔을 넘쳐 손등으로 흘렀다. 시장 앞 일곱 가운데 편의점 알바생은 콘솔 뒤에 있었으니 관객으로 안 셌고, 그러면 여섯이 다시 왔다. 누렁이까지 쳐서.

*

앞 두 팀의 팬 육십 명은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첫 팀이 나왔을 때 응원봉 서른 개가 같은 색으로 흔들렸고, 둘째 팀 때 또 서른 개가 다른 색으로 흔들렸다. 우리 쪽 마흔에게는 응원봉이 없었다. 떡 상자와 헬멧과 장바구니가 있었다.

「레이트」가 무대에 올랐다. 첫 팔 초였다.

전주가 시작되기 전, 조명이 무대 가운데 한 점에만 떨어졌다. 그 점에 예나가 서 있었다. 예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첫 박자에 고개를 들었다. 숙희가 나흘 밤 동안 백 번씩 시킨 첫 동작이었다. 오른팔이 객석 쪽으로 곧게 뻗었다가 손목이 꺾이며 떨어졌는데, 그 손끝이 맨 앞줄 응원봉 사이로 똑바로 날아들었다. 응원봉 서른 개가 흔들림을 멈췄다. 칠이 벗겨진 나무 무대에서 예나의 운동화 밑창이 끽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민재의 저음과 같은 박자에 떨어졌다.

그다음에 오른쪽 끝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명이 가운데 예나를 비추는 동안 이안은 반쯤 어둠 속에 있었다. 소리는 어디 서 있든 나왔다. 숙희의 말이 맞았다. 어둠 속에서 나온 소리는 오히려 더 멀리 갔다. 「기다렸어」의 서술어가 객석 맨 뒤까지 떨어졌고,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소담의 동기가 팔을 풀었다.

태희의 랩은 빗금마다 숨을 쉬었다. 소담의 고음이 천장까지 올라갔을 때 경로당 할머니 한 분이 박수를 치다가 이번에도 틀니를 고쳐 끼웠다. 배달 기사 일곱이 헬멧을 머리 위로 들어 흔들었다. 그건 응원봉보다 컸다.

맨 앞줄의 강유찬은 다리를 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박수도 치지 않았다. 다만 이안이 고음을 지르는 대목에서, 꼰 다리를 풀었다.

투표는 객석 의자 밑에 붙은 종이에 팀 이름을 적어 상자에 넣는 식이었다. 방송사 직원 둘이 상자를 들고 객석을 돌았다. 다 걷고 무대 옆에서 세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 그 이십 분 동안 나는 생맥주를 서른 잔 따랐다. 거품이 하나도 안 맞았다.

「레이트」가 1위였다. 앞 두 팀 팬 가운데서도 서른 표 가까이가 우리 쪽으로 왔다고, 방송사 직원이 결과를 맹구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넷이 무대 위에서 서로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숙희는 무대 옆 어둠 속에서 팔짱을 낀 채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대파 할머니는 장바구니에서 반짝이는 천을 꺼내 흔들었다. 수선집에서 넷의 무대 의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계단 중간의 누렁이가 그 소리에 맞춰 한 번 짖었다.

*

상금 삼백만 원은 그날 저녁 방송사 직원이 보낸 확인서와 함께 표창수에게 넘어갔다. 표창수는 객석 맨 뒤에서 확인서를 받아 접어 넣고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금시계 소리는 끝까지 나지 않았다.

다들 떠나고 바 정리를 하는데 누가 바 앞에 섰다. 서른 중반쯤의 여자였다. 검은 니트에 방송사 출입증을 목에 걸었고, 손에는 메모 패드 대신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공연 내내 객석 맨 끝 벽에 기대 서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관객으로 세지 않았다.

“「넥스트 스테이지」 연출 윤채아예요. 「레이트」 매니저님 맞으시죠?”

“네.”

그녀는 명함을 바 위에 놓았다. 내가 닦지 못한 맥주 자국 바로 옆에.

“축하드려요. 3차는 상암 스튜디오에서 녹화해요. 그 전에 팀마다 사전 미팅을 한 번 하는데요.”

그녀는 태블릿 화면을 한 번 넘기더니, 화면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고 자기 쪽으로만 기울인 채 말했다.

“서이안 씨 어머님 일, 매니저님은 알고 계세요?”

나는 몰랐다. 출근 한 달 이틀째였다. 이번에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않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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