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62자)
추석에 안 내려간 사람들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망원동 주민센터 2층 에어로빅실은 아침 아홉 시에도 이미 땀 냄새가 났다. 앞 시간에 중년 주부반이 「무조건」에 맞춰 한 시간을 뛰고 나간 자리였다. 바닥은 연습실 장판보다 훨씬 좋은 나무 마루였고, 한쪽 벽에는 「즐겁게 운동합시다 — 망원2동」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거울 위쪽 구석에 누가 붙여 놓은 트로트 가수 사진이 햇볕에 바래 있었다.
9월 22일 화요일, 금숙희는 그 현수막 아래에서 우리 다섯을 일렬로 세웠다. 다섯이었다. 나도 있었다.
“매니저, 왜 뒤로 빠져.”
“저는 보기만 하려고…….”
“보기만 하면 몰라. 애들이 어디가 아픈지 알려면 같은 데가 아파 봐야 돼. 운동화 끈 묶어.”
숙희는 우리 다섯에게 아무 동작도 가르치지 않고 그냥 걷게 했다. 거울 앞에서 저쪽 끝까지, 다시 이쪽 끝까지. 열 번을 왕복하자 숙희가 손뼉을 한 번 쳤다.
“권태희, 오른발 바깥쪽으로 디뎌. 발목 한 번 접질린 적 있지? 박소담, 넌 걸을 때 숨을 참아. 성악 한 애들이 그래. 서이안, 무릎. 왼쪽 무릎이 안쪽으로 돌아가. 도예나.”
예나가 멈췄다. 숙희가 예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봤다.
“넌 됐어.”
“됐다.”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희의 「됐어」와 예나의 「됐다」가 한 번 부딪쳤는데, 둘 다 그 말에 만족한 얼굴이었다. 나는 부산 사람과 90년대 백댄서 단장 사이에 통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그리고 매니저.”
“네.”
“매니저는 걷는 게 칠판에 판서하는 거 같아. 한 발 한 발 또박또박. 너는 평생 앞을 보고 걸어 본 적이 없지? 늘 등 뒤에 학생들이 있었지?”
맞는 말이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소담이 거울 속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날부터 아침 아홉 시는 주민센터, 오후는 연습실, 저녁 여섯 시부터는 클럽 무명의 바였다. 맹구현은 내가 생맥주 거품을 너무 많이 낸다고 첫날 세 번 소리를 질렀다. 둘째 날에는 거품이 너무 적다고 소리를 질렀다. 셋째 날에는 소리를 안 질렀는데, 그게 칭찬인지 포기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셋째 날 밤 열한 시,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내가 맥주잔을 닦고 있을 때 맹구현이 바 끝에 앉았다. 그는 드럼 스틱 대신 젓가락으로 바 상판을 두드리다가 그것도 멈췄다.
“누님 무릎은 괜찮대?”
“직접 여쭤보세요.”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지. 그 사람은 무릎에 핀 박던 날도 괜찮다고 했어. 97년에 가요 프로 생방송 리허설하다가 무대 턱에 걸렸거든. 그 무대 뒤에서 북 치던 게 나였고.”
맹구현은 잔 하나를 집어 내가 닦은 자리를 손톱으로 긁어 보았다. 얼룩은 없었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바 뒤 선반에서 먼지 앉은 위스키 병을 꺼내 소매로 닦았다.
“2차 무대, 그 애들한테 준다. 방송사에 명단 넣었어.”
“사장님이 정하신 거예요, 누님이 정하신 거예요?”
“그걸 왜 물어.”
“나중에 감사 인사를 누구한테 먼저 드려야 할지 알아야 해서요.”
“누님한테 먼저 해. 안 그러면 나 또 혼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거품 양이 딱 맞는 생맥주를 한 잔 따라서 맹구현 앞에 놓았다. 맹구현은 마시지 않고 한참 들여다만 보다가, 결국 한 모금에 비웠다.
*
추석 연휴는 9월 24일 목요일부터였다.
“다들 집에 안 가요?”
23일 밤, 연습실에서 내가 물었다. 넷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저마다 달랐는데, 모두 길게 말하지 않았다.
태희는 집에 가면 엄마가 콜센터 재입사 공고를 출력해 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작년 추석에는 그 종이가 냉장고에 붙어 있었다고. 소담은 성악과 등록금 대출이 아직 천이백 남았는데, 집에 가면 아빠가 그 숫자를 식탁에서 소리 내어 말한다고 했다. 이안은 서울에 할 일이 있다고만 했다.
예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태희가 예나 쪽을 봤다가 말을 삼켰다.
“그럼 연휴 나흘 동안 춤 다시 짜자. 처음부터.”
숙희는 주민센터 열쇠를 갖고 있었다. 연휴 동안 에어로빅실은 비어 있었고, 숙희는 주민센터 직원에게 「춤추는 애들 무릎 보호 봉사」를 한다고 말해 두었다고 했다.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 동안, 우리는 해가 지면 주민센터에 들어가서 해가 뜨면 나왔다. 형광등은 반만 켰다. 다 켜면 바깥에서 보인다고 숙희가 말했는데, 그 말에 우리는 무슨 금고털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숙희의 지도는 내 방식과 정반대였다. 나는 쪼개서 가르쳤다. 문장 성분, 빗금, 혀의 위치. 숙희는 쪼개지 않았다. 동작 하나를 백 번 시켰다. 백 번째에 몸이 그 동작을 외우면 그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머리로 외운 건 무대에서 까먹어. 긴장하면 머리가 하얘지거든. 몸으로 외운 건 안 까먹어. 몸은 긴장 안 해.”
새벽 세 시, 소담이 마루에 큰대자로 누워서 천장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 몸도 긴장해요. 지금 제 종아리가 긴장해서 쥐가 났어요.”
“그건 긴장이 아니라 게으름이야.”
소담이 일어나서 다시 섰다. 종아리를 주먹으로 두 번 치고. 나는 그 옆에서 같은 동작을 아흔일곱 번째 하고 있었는데, 숙희는 내 동작만은 세지 않았다. 세면 내가 그만둘 것 같아서라고 했다.
*
추석 당일 밤에는 숙희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왔다. 동그랑땡과 동태전과 꼬치전이 은박지에 싸여 아직 따뜻했다. 그 뒤로 맹구현이 막걸리 두 병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둘이 같은 차로 왔다는 것을 아무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에어로빅실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았다. 전 기름 냄새가 땀 냄새를 덮었다. 막걸리는 숙희와 맹구현과 태희만 마셨다. 소담은 성대를 지킨다고 안 마셨고, 이안은 그냥 안 마셨고, 예나는 막걸리를 처음 본다는 얼굴로 냄새만 맡았다.
그때 예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엄마」라고 떠 있었다. 예나는 휴대폰을 보다가 일어나서 복도로 나가려 했다. 태희가 그 손목을 잡았다.
“여기서 받아. 우리 조용히 있을게.”
예나가 한참 서 있다가 앉았다. 스피커폰을 눌렀다. 부산 말이 마루 위로 쏟아졌다. 밥은 묵었나, 송편은 묵었나, 회사에서 명절 보너스는 주더나. 예나는 단어 하나씩으로 대답했다. 묵었다. 묵었다. 줬다.
“그래, 니 합격한 회사가 좋은 데구나. 엄마는 명절에 안 와도 된다. 니 거서 잘하는 게 엄마는 제일 좋다. 동네에서 다 니 이야기 한다. 우리 예나 서울 가서 연예인 된다꼬.”
예나는 휴대폰을 무릎에 올려 둔 채 마루를 봤다. 전화를 끊기 전에 예나가 처음으로 단어 하나보다 긴 말을 했다.
“엄마, 내 시월에 방송 나온다. 진짜다.”
전화가 끊겼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숙희가 동그랑땡 하나를 예나 그릇에 놓았고, 맹구현이 막걸리 잔을 예나 쪽으로 밀었다가 숙희에게 손등을 맞았다. 예나는 동그랑땡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볼이 부풀어서 우는지 씹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시월에 방송에 나올 수 있는지 아직 몰랐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이 일이 내 적금보다 무거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
센터 이야기는 27일 새벽 다섯 시에 나왔다. 나흘째, 마지막 밤이었다.
숙희가 새로 짠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 본 뒤였다. 넷 다 땀에 젖어 바닥에 앉아 있었고, 창문 밖이 남색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 숙희는 마루에 테이프를 꺼내 놓았다. 넷의 자리를 새로 표시할 노란 테이프였다.
숙희가 가운데에 X자를 붙였다. 그리고 말했다.
“도예나, 여기.”
예나가 움직이지 않았다. 셋이 이안을 봤다. 이안은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들었다.
“2차 예선은 클럽이야. 백 석짜리 지하 3층. 객석이 무대에 가까워. 관객은 첫 팔 초 안에 표를 정해. 그 팔 초는 노래가 아니라 몸이 정해. 첫 동작에 예나가 가운데 서야 돼. 이안이 노래는 제일 잘하지. 그러니까 노래는 옆에서 해. 소리는 어디 서 있든 나와.”
“센터는 제 자리예요.”
이안이 일어섰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숙희가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나도 알았고 이안도 알았다.
“자리는 무대가 정하는 거야.”
“대표님이 무조건이라고 하셨어요. 이 팀은 제가 센터여야 된다고요.”
“그 대표, 지금 어디 있는데?”
이안의 입이 닫혔다. 숙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말이 에어로빅실 전체에 들렸다.
“네 왼쪽 무릎은 지금 안쪽으로 돌아가 있어. 지난 나흘 동안 그 무릎으로 첫 동작을 서른 번 했고, 서른 번 다 반 박자 늦었어. 내가 내 무릎에 핀을 두 개 박았거든. 나 같은 무릎이 하나 더 생기는 꼴은 못 봐. 2차는 예나가 가운데 서. 3차는 그때 가서 다시 봐.”
이안이 나를 봤다. 처음이었다. 이안이 무엇을 정해 달라는 얼굴로 나를 본 것은.
나는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이안 대신 답을 말했다가 「그건 제가 정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이안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식었다.
“알겠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예나 쪽으로 걸어가서, 예나의 등을 손바닥으로 한 번 밀어 가운데 X자 위에 세웠다. 그러고는 자기 자리로 정해진 오른쪽 끝에 섰다. 숙희가 붙인 노란 테이프 위에.
그 뒤로 해가 다 뜰 때까지 한 번 더 맞췄다. 이안은 반 박자도 늦지 않았다. 무릎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숙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
27일 일요일, 연휴 마지막 날 낮에는 다들 숙소에서 잤다. 나도 연습실 대표실 합판 칸에 매트를 깔고 잤다. 오후 다섯 시에 깨서 휴대폰을 보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이안의 휴대폰으로 강유찬이 보낸 것이 아니라, 강유찬이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연휴 잘 보내셨어요? 센터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연휴 내내 주민센터 에어로빅실에 있었던 사람은 우리 다섯과 숙희, 맹구현뿐이었다.
저녁 아홉 시, 연습 시간이 되었는데 이안이 내려오지 않았다. 숙소에 올라가 봤다. 작은방 이층 침대 아래 칸이 비어 있었다. 이불이 각 맞춰 개어져 있었고, 베개 위에 귤껍질 하나가 말라 있었다. 시장 앞에서 대파 할머니에게 받은 귤이었다. 이안은 그 껍질을 열흘 넘게 베개맡에 두고 있었다.
침대 밑에 늘 있던 이안의 검정 캐리어가 없었다. 화장실 컵에 꽂혀 있던 칫솔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대표의 전화에서 듣던 그 목소리와 같았다.
2차 예선은 엿새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