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43자)

월요일 오후 세 시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9월 20일 일요일 오후 한 시 오십 분, 이안은 연습실 거울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표실 합판 칸 안에서 노트북을 켜 둔 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문틈으로 이안의 등이 보였다. 이안은 바닥에 앉아 왼쪽 다리를 뻗고 상체를 숙였다가, 오른쪽 다리로 바꿨다. 장판에 손바닥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쩍쩍 났다. 벽시계 초침이 두 시를 지나가는 동안, 이안은 한 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뒤집어 거울 쪽에 엎어 놓았다.

두 시 십 분에 이안이 일어났다. 나는 숨을 멈췄다. 이안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와 다시 앉았다.

두 시 반에 나는 숨을 쉬었다. 이틀 전 빨래 바구니에서 나온 명함은 이안의 바지 주머니에 도로 넣어 두었다. 이안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어느 쪽이든 그날 오후 이안은 블루웨이브 7층에 가지 않았고, 나는 왜 안 갔냐고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지난번 편의점 앞처럼 내가 먼저 답을 말해 버릴 것 같았다.

1차 합격 문자는 9월 18일에 와 있었다. 「넥스트 스테이지」 2차 예선은 10월 3일, 홍대의 지정 공연장 여섯 곳에서 동시에 열린다고 했다. 각 공연장 사장이 자기 무대에 세울 팀을 고르고, 그날 객석에 앉은 관객이 그 자리에서 표를 던진다. 무대를 못 구한 팀은 그대로 떨어진다. 방송사는 공연장 명단만 보내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여섯 곳 가운데 다섯 곳은 이미 자리가 찼다. 남은 한 곳이 「클럽 무명」이었다.

*

클럽 무명은 홍대 골목 안쪽 건물 지하 3층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지고 차가워졌다. 벽마다 밴드 포스터가 겹겹이 붙어 있었는데, 맨 위 것이 2019년이었고 그 밑으로 내려갈수록 종이가 누렇게 바래 손으로 쓸면 바스러졌다. 맥주와 먼지와 오래된 케이블 고무가 데워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사장 맹구현은 바 안쪽에서 드럼 스틱 두 개로 바 상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머리가 반쯤 벗어져 있었고 남은 머리를 뒤로 묶었다. 쉰여덟이라고 했다. 우리가 들어가도 그는 스틱을 멈추지 않았다.

“「넥스트 스테이지」 2차 자리 때문에 왔습니다. 「레이트」라는 팀이에요. 넷이고요.”

“아이돌?”

“네.”

“우린 밴드 하는 데야.”

“방송사 명단에 사장님 공연장이 있던데요.”

“방송사가 돈을 준다길래 이름만 빌려줬지. 아이돌 데려오라고는 안 했어.”

스틱이 바 상판을 따다닥 두드렸다. 탁자 위에 놓인 맥주병이 그 박자에 맞춰 조금씩 떨렸다.

나는 넷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 데려왔으면 맹구현이 넷을 보기도 전에 쫓아냈을 것이다. 학부모 상담에서 처음 십 분 동안 아이를 옆에 앉히지 않는 이유와 같았다.

“사장님, 이 무대 월요일 오후에는 비어 있죠?”

“월요일 오후에 누가 홍대 지하 3층에 와.”

“저희가 올게요. 이번 주 월요일 오후 세 시요. 관객 데리고 와서 한 번 서 볼게요. 그거 보고 정해 주세요.”

맹구현이 스틱을 멈췄다. 처음으로 나를 봤다.

“월요일 오후 세 시에 관객을 서른 명 채우면 2차 때 우리 무대 줄게. 못 채우면 끝이야. 그리고 대관료 오십만 원은 따로 내.”

오십만 원은 내 통장에 없었다. 적금 깬 돈은 건물주 할머니에게 넘어갔고, 남은 것으로 넷의 한 달 식비와 교통비를 맞춰 둔 참이었다. 나는 바 상판을 봤다. 끈적한 맥주 자국 위에 컵 받침 자국이 동그랗게 겹쳐 있었고, 냅킨 통은 비어 있었고, 바 뒤 선반의 술병마다 먼지가 앉아 있었다.

“대관료 대신 제가 한 달 동안 바를 볼게요. 평일 저녁 여섯 시부터 열한 시까지요.”

“술은 따를 줄 알아?”

“학원에서 삼 년 동안 학부모님들한테 커피를 따랐어요. 한 번도 안 흘렸어요.”

“그거랑 그거랑 같아?”

“상대가 더 무서웠어요.”

맹구현이 웃지 않았다. 대신 스틱 하나를 내게 던졌다. 받는 데 실패했다. 스틱이 바닥을 굴러 냉장고 밑으로 들어갔다.

“내일 저녁 여섯 시. 그거 꺼내 놓고 시작해.”

*

월요일 오후 세 시까지 관객 서른을 모으는 일은, 시험 전날 단어 삼천 개를 외우는 일과 비슷했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해 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태희는 콜센터 시절 동기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답장이 일곱 개 왔는데 그중 여섯이 「월요일 세 시에 누가 퇴근해」였다. 소담은 성악과 동기들에게 연락했다가 그중 한 명에게 학교 그만둔 애가 무슨 아이돌이냐는 말을 들었다. 소담은 그 말을 웃으면서 전해 줬다. 휴대폰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예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부산 집에 오디션에 붙었다고만 말해 둔 터라 누구에게도 공연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다고, 태희가 나중에 대신 말해 줬다.

이안은 연습실 계단 위에서 망원동 골목을 내려다보며 오래 휴대폰을 들고 있다가 결국 아무 데도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에 갔다. 한민재는 카운터에서 컵라면 진열을 고치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세 시에 쉬어요?”

“월요일은 야간이라 낮엔 자요.”

“홍대에서 공연해요. 음향 좀 봐 줄 수 있어요?”

“저 그냥 편의점 알바인데요.”

“작곡과 휴학생이라면서요. 저음 다 날아가는 거 귀에 걸린다면서요.”

민재는 대답 대신 컵라면 하나를 진열대에 거꾸로 꽂았다가 다시 바로 꽂았다.

*

9월 21일 월요일 오후 세 시, 클럽 무명의 객석 백 석 중 열넷이 찼다.

나는 맨 앞에서 뒤돌아 앉아 셌다. 태희의 콜센터 동기 하나, 반차를 냈다고 했다. 소담의 성악과 후배 둘, 선배를 놀린 동기 대신 사과하러 왔다면서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건물주 할머니와 할머니가 끌고 온 경로당 친구 넷. 오토바이 헬멧을 무릎에 올린 배달 기사, 시장 앞에서 경적을 두 번 울렸던 그 사람이었다. 저녁 공연을 하러 일찍 와서 기타 줄을 갈던 밴드 멤버 셋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대를 넘겨주고 객석 둘째 줄에 앉아 귤껍질을 깠다. 맹구현이 바 안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것도 하나로 셌다. 그리고 객석 맨 뒷줄 구석, 조명이 닿지 않는 자리에 예순은 넘어 보이는 여자가 하나 앉아 있었다. 짧게 자른 은발에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리를 꼬지 않고 무릎을 붙인 채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맹구현까지 열넷. 서른에서 열여섯이 모자랐다.

넷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 바닥은 검은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나무가 드러나 있었고, 조명은 붉은색 하나와 흰색 하나뿐이었다. 맹구현은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아날로그 콘솔이었는데, 페이더 몇 개에 테이프가 붙어 있고 그 위에 「건들지 마」라고 적혀 있었다.

첫 곡 전주가 나왔다. 열넷짜리 박수가 지하 3층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이안이 첫 소절을 부르고, 태희가 랩을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스피커에서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반주가 끊겼다. 마이크도 같이 죽었다. 무대 위 넷의 입이 움직이는데 소리가 없었다. 건물주 할머니가 보청기를 툭툭 쳤다.

맹구현이 콘솔 밑으로 머리를 넣고 욕을 했다. 케이블을 뽑았다 꽂았다. 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담이 무대 끝에서 나를 봤다. 시장 앞에서 블루투스 스피커가 꺼졌을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넷이 또 반주 없이 이어 가면 오늘 관객 열넷은 사정을 봐 주는 박수를 칠 것이고, 맹구현은 그 박수를 보고 고개를 저을 것이었다. 사정을 봐 주는 박수로는 무대를 못 얻었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고 초록 조끼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한민재였다. 조끼 위에 백팩을 메고, 머리가 베개 모양으로 눌려 있었다.

“이거 뭐예요? 아직 아날로그 쓰세요?”

“넌 뭐야.”

“음향이요. 저기 매니저님이 부른.”

민재는 맹구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콘솔 뒤로 들어가 백팩에서 노트북과 손바닥만 한 오디오 장비를 꺼냈다. 케이블 하나를 뽑아 자기 장비에 꽂고, 다른 하나를 콘솔의 다른 구멍에 꽂고, 테이프에 「건들지 마」라고 적힌 페이더를 건드렸다. 맹구현이 무어라 소리를 질렀는데, 그 순간 스피커에서 이안의 숨소리가 돌아왔다.

이안이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마이크로 그 숨이 지하 3층 전체에 들렸다. 이안은 처음부터 다시 불렀다.

이번 소리는 시장 앞과도, 연습실과도 달랐다. 민재가 반주를 자기 노트북에서 다시 틀었는데, 저음이 바닥에서 올라와 객석 의자를 흔들었다. 내 등 뒤 플라스틱 의자가 발밑에서 웅웅 울렸다. 태희의 랩이 빗금 자리에서 정확히 숨을 쉬었다. 소담의 고음은 혀를 뒤로 당긴 소리로 천장까지 올라갔다. 예나가 무대 앞으로 나와 회전을 했는데, 칠이 벗겨진 나무 바닥에서 운동화 밑창이 끽 소리를 냈다.

두 곡을 마치자 열넷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사정을 봐 주는 박수가 아니었다. 경로당 할머니 한 분이 손뼉을 치다가 틀니를 고쳐 끼웠다.

나는 콘솔 쪽을 봤다. 민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고, 맹구현은 그 옆에 서서 민재가 건드린 페이더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보다가 테이프를 떼서 구겨 버렸다.

*

공연이 끝나고 바에서 맹구현과 마주 앉았다. 넷은 무대 위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열넷이야.”

“알아요.”

“서른이라고 했어.”

“알아요.”

“알면 왜 앉아 있어?”

“사장님이 아직 끝이라고 안 하셨으니까요.”

맹구현은 드럼 스틱 한 짝으로 바 상판을 길게 한 번 긁었다. 나무 결을 따라 드르륵 소리가 났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끝이라고 하지 마, 구현아.”

객석 맨 뒷줄의 은발 여자였다. 언제 바 앞까지 왔는지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맹구현이 스틱을 떨어뜨렸다. 스틱이 바닥을 굴러 냉장고 밑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스틱이 들어간 바로 그 자리였다.

“누님이 여긴 왜 와.”

“전남편 가게에 전처가 오면 안 되니?”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까이서 보니 눈가 주름이 깊었고 목이 길었다. 몸 전체가 오래된 철사처럼 곧았다.

“금숙희. 90년대에 가수들 뒤에서 백댄서 단을 했어. 지금은 망원동 주민센터에서 에어로빅 가르치고. 건물주 순자 언니가 가 보라고 해서 왔어.”

그녀는 무대 위의 넷을 턱으로 가리켰다.

“노래는 됐어. 춤은 엉망이고. 막내 하나 빼고 셋이 다 박자를 발로 세. 발로 세면 무릎 나가. 저렇게 이 년 추면 저 센터는 서른 전에 무릎에 핀 박아.”

“그럼…….”

“내일 아침 아홉 시, 주민센터 이 층 에어로빅실. 매니저도 와. 매니저가 춤을 모르면 애들 다리가 부러져.”

맹구현이 바 아래에서 스틱을 찾으며 중얼거렸다.

“누님, 2차 무대는 아직 내가 준다고 안 했어.”

“그럼 줘.”

맹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 밑에서 스틱 두 짝을 꺼내 바 위에 나란히 놓았다. 그러고는 내 앞에 앞치마 하나를 던졌다. 이번에는 받았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월요일 오후 세 시 ·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