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26자)
관객 일곱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9월 2일 오전 열 시 정각에 철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둘이었다.
앞선 사람은 회색 점퍼를 입은 쉰 살쯤의 남자였는데, 법원에서 나와 빚진 사람의 물건에 압류를 집행하는 집행관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 뒤에 선 사람은 밤색 가죽 재킷을 입고 손목에 금시계를 찼다. 그는 명함 대신 신분증 목걸이 같은 것을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렸다.
“한결대부 표창수 실장입니다. 차 대표 어디 있어요?”
“모릅니다.”
“다들 그러대.”
표창수는 신발을 벗었다. 강유찬과 달라서 나는 잠깐 놀랐다. 그는 양말 바람으로 장판 위를 걸으며 거울을 한 번 툭 치고, 노래방 기계를 한 번 툭 쳤다. 물건을 칠 때마다 집행관이 그 물건에 손바닥만 한 종이를 붙였다. 붉은 테두리 안에 압류물이라는 글씨와 법원 이름이 찍혀 있었다.
스피커 두 대, 앰프, 대표실 책상, 노래방 기계, 거울 벽 앞의 조명 두 개. 딱지가 붙을 때마다 넷은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마지막에 집행관이 연습실 보증금 반환 채권도 압류한다는 서류를 내밀었다. 서명란에 내 이름을 쓰라고 했다. 나는 대표 대행이라고 쓰고, 그 밑에 나혜주라고 썼다. 볼펜이 장판처럼 끈적했다.
“딱지 붙은 건 쓰셔도 돼요. 대신 밖으로 들고 나가거나 팔면 형사 처벌입니다.”
집행관은 그 말을 하루에 열 번은 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고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표창수는 남았다. 그는 노래방 기계 앞에 쪼그려 앉아 내가 어제 받은 점수가 아직 기계 안에 남아 있는지 화면을 켜 보다가, 아무것도 안 뜨자 시시하다는 듯 일어났다.
“아가씨가 대행이라며. 그럼 아가씨랑 얘기하면 되겠네. 차 대표가 우리한테 진 돈이 이자 빼고 일억 이천이야. 보증금 다 털어도 삼천이고. 나머지 구천은 어디서 나와?”
“회사에서 나와야죠.”
“이 회사에 뭐가 있는데?”
그가 연습실을 손으로 한 바퀴 그렸다. 거울, 장판, 딱지, 그리고 벽에 붙어 선 네 사람. 그 손이 네 사람 앞에서 멈췄다.
“사람밖에 없잖아. 근데 사람은 내가 못 팔아. 그건 저 블루웨이브 강 이사가 팔아 주겠대. 어제 전화 왔어. 센터 하나만 넘어가면 우리 빚 절반은 자기 회사가 메워 주겠다고.”
태희가 이안의 손목을 잡는 걸 봤다. 이안은 손을 빼지 않았다.
“그럼 남은 셋은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파산 신청하면 계약이고 뭐고 다 정리되니까, 각자 알아서 흩어지면 되는 거지.”
나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은행 앱을 열었다. 학원에서 삼 년 동안 매달 사십만 원씩 넣은 적금이 있었다. 만기까지 넉 달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 영국에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넣은 돈이었다. 학원을 그만둔 날부터 그 계획은 앱 속 숫자로만 남아 있었다.
“실장님, 이 건물 월세 석 달 밀렸죠? 건물주 할머니가 이번 주에 비워 달라고 하셨대요. 그렇게 되면 실장님이 압류한 집기도 길바닥에 나갑니다.”
“그래서?”
“제가 밀린 월세 두 달 치를 지금 낼게요. 대신 10월 31일까지 기다려 주세요. 그때까지 이 넷이 방송 본선에 오르면, 이 회사는 사람만 있는 회사가 아니라 방송에 나오는 팀이 있는 회사가 됩니다. 그럼 실장님이 받을 수 있는 돈도 달라지고요.”
표창수가 금시계를 손가락으로 돌렸다. 시계 줄이 손목뼈에 부딪쳐 딸깍딸깍 소리를 냈다.
“아가씨 돈이야?”
“제 돈이요.”
“왜?”
나는 답을 못 했다. 정확히는 답이 너무 길어서 그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없었다. 어제 아침 아홉 시 오십 분, 날짜 지난 우유와 반쯤 떨어진 「테」 자와 X자 넷부터 설명해야 했다.
“제가 오늘 아침 문을 열었으니까요.”
표창수가 처음으로 웃었다. 비웃는 건지 정말 웃긴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웃음이었다.
“10월 31일. 하루도 안 넘겨. 그날 오후 다섯 시에 내가 이 문 앞에 서 있을 거야.”
그는 양말 바람으로 철문까지 걸어가 구두를 신었다. 끈까지 묶고 올라갔다. 나는 적금 해지 버튼을 눌렀다. 「정말 해지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예」를 누르는 데 사 초가 걸렸다.
*
“버스킹 하자.”
표창수가 나간 지 십 분 뒤에 태희가 말했다. 넷은 모두 바닥에 앉아 있었다. 소담은 딱지 붙은 스피커를 무슨 문상 온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방송사에 1차 서류 낼 때 공연 영상을 붙여야 하잖아요. 연습실 영상은 안 돼요. 관객이 있는 영상이어야 돼요. 대표님이 그거 하자고 하다가 맨날 다음 주로 미뤘어요.”
“관객은 어디서 데려와요?”
“길에 있잖아요, 길에.”
문제는 스피커였다. 딱지 붙은 스피커는 들고 나가면 형사 처벌이었다. 소담이 자기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스트랩에 「성악과 23학번 정기 연주회」라는 글씨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볼륨을 끝까지 올렸더니 반주가 깡통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걸로 망원시장 앞을 덮겠다고?”
“매니저님 목소리로 반주하실래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토요일까지 사흘이 남았다. 사흘 동안 넷은 연습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먼저 1층 세탁소 안쪽 방에 사는 건물주 할머니에게 밀린 월세 두 달 치를 이체하고, 이체 화면을 직접 보여 드렸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이마에 올렸다 내렸다 하며 숫자를 세 번 셌다. 다림질 증기가 커튼 너머에서 쉭쉭 올라왔고, 방 안에는 뜨거운 천 냄새가 가득했다.
“차 사장 대신 아가씨가 낸 거야?”
“네.”
“그 사람이 아가씨한테 얼마 줬는데?”
“아직 한 푼도요.”
할머니는 나를 오래 보다가, 다림판 옆 바구니에서 비닐에 싼 와이셔츠 하나를 꺼내 내 쪽으로 밀었다. 석 달 전에 누가 맡겨 놓고 안 찾아간 옷이라고 했다. 공연할 때 하나는 남자 셔츠 입은 애가 있어야 멋있다면서. 그 셔츠는 그날 저녁 태희 차지가 됐다.
그다음에 망원시장 상인회 사무실을 찾아가 토요일 오후 네 시부터 삼십 분 동안 정문 옆에서 공연해도 되는지 물었다. 상인회 총무는 시끄러우면 바로 끈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소담의 스피커를 보더니 그 조건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보컬 지도라는 것을 해 봤다. 내 방식대로.
“소담 씨, 그 고음에서 소리가 목에 걸려요. 영어로 치면 R 발음을 혀끝 말아서 내는 거랑 같아요. 혀를 말지 말고 뒤로 당겨요. 목구멍 뒤쪽에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매니저님, 그거 성악과 일 학년 때 교수님이 한 말이랑 거의 똑같아요.”
“그래요?”
“근데 교수님은 음이 맞았어요.”
이안에게는 가사를 문장 성분으로 쪼개 줬다. 이안의 노래는 정확했는데 가사가 다 같은 무게로 나왔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가사 한 줄을 적고 주어에 동그라미, 서술어에 밑줄을 쳤다.
“이 문장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너를」이 아니라 「기다렸어」예요. 서술어에 힘을 줘요. 한국어는 끝에 진심이 있어요.”
이안은 한참 화이트보드를 보다가 한 번 불러 봤다. 「기다렸어」가 이전과 다르게 떨어졌다. 태희가 박수를 쳤고, 소담은 분하다는 얼굴로 “왜 저게 먹혀”라고 중얼거렸다. 예나는 그날 저녁 화이트보드 구석에 매직으로 작게 「서술어」라고 써 놓았다. 다음 날 보니 그 옆에 하트가 그려져 있었는데, 예나는 자기가 안 그렸다고 했다.
*
9월 5일 토요일 오후 네 시, 망원시장 정문 옆은 떡집 찜기에서 올라온 김과 생선가게 얼음 녹은 물 냄새로 축축했다. 시장 바구니를 끄는 바퀴 소리, 오토바이 배달통 닫히는 소리, 호객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그 한쪽에 넷이 섰다. 연습복 위에 각자 제일 멀쩡한 셔츠를 걸치고, 바닥에 소담의 스피커를 놓고.
첫 곡의 전주가 나왔다. 시장 소음에 삼 분의 일쯤 먹혔다.
나는 휴대폰을 세로로 들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세기 시작했다.
하나.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던 할머니가 섰다. 파마머리에 꽃무늬 조끼를 입고, 바구니에 대파가 꽂혀 있었다.
둘. 배달 오토바이가 시동을 켜 둔 채 멈췄다. 헬멧 쓴 기사가 다리를 땅에 짚고 고개만 이쪽으로 돌렸다.
셋, 넷. 손을 잡은 대학생 둘. 남자 쪽이 휴대폰을 들었다가 여자 쪽 눈치를 보고 내렸다.
다섯. 시장 안 순댓국집에서 나온, 얼굴이 빨간 아저씨. 그는 박자와 상관없이 박수를 쳤다.
여섯. 길 건너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알바생. 초록 조끼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담배를 끄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일곱. 아저씨 발밑에 와서 앉은 누렁이 한 마리. 줄이 없었고, 목에 시장 정육점 이름이 새겨진 방울을 달고 있었다.
“개는 빼요.”
곡과 곡 사이에 태희가 이를 악문 채 작게 말했다.
“왜요? 끝까지 들었는데.”
“매니저님은 개를 관객으로 셀 거예요?”
“앉아서 들은 관객이에요. 저 아저씨보다 집중했어요.”
두 번째 곡 중간에 스피커가 꺼졌다. 배터리였다. 소담의 얼굴이 하얘졌다. 대학생 둘이 가려고 몸을 돌렸다. 배달 기사가 헬멧 끈을 고쳐 맸다.
이안이 먼저 노래를 이었다. 반주 없이. 이안이 첫 소절을 부르고 나자 소담이 화음을 얹었고, 태희가 손뼉으로 박자를 만들었고, 예나가 그 박자에 맞춰 반주 없는 춤을 췄다. 반주가 사라지자 이상하게 시장 소음도 한 겹 가라앉은 것 같았다. 떡집 사장님이 찜기 뚜껑을 열려다 말고 들고 있었다.
이안이 「기다렸어」를 불렀다. 서술어에 힘을 줘서.
대파 꽂힌 바구니의 할머니가 그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는 바구니 안을 뒤적이더니 귤 네 개를 꺼내 하나씩 넷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다섯 번째 귤은 없어서 나에게는 대파 한 뿌리를 줬다.
“저 키 작은 아가씨. 목소리가 우리 막내딸 시집갈 때 같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안은 귤을 두 손으로 받았다.
삼십 분이 지나 관객이 흩어졌다. 배달 기사는 떠나기 전에 경적을 짧게 두 번 울렸다. 편의점 알바생은 담배를 다 태우고 들어가면서 내 쪽을 보고 소리가 형편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라 화도 안 났다. 누렁이는 끝까지 남아 있다가 순댓국집 아저씨를 따라갔다.
*
연습실에는 와이파이가 한 칸이라 영상을 올리려면 계단 중간에 앉아야 했다. 나는 세 번째 계단에 쪼그려 앉아, 오늘 찍은 삼십 분짜리 영상을 처음부터 돌려 보며 잘라 낼 자리를 골랐다. 손에 든 대파가 자꾸 무릎을 찔렀다.
반주가 끊기고 이안이 혼자 노래를 이어 가는 대목에서 나는 화면을 멈췄다. 방송사에 붙일 장면은 여기였다.
그 장면을 확대하다가 이안 어깨 너머, 길 건너편에 서 있는 검은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뒷좌석 창이 반쯤 내려가 있었다. 그 안에 남색 정장이 앉아 있었다. 손가락 두 개로 창틀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박자가 이안의 노래와 정확히 맞았다.
여덟이었다. 나는 세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