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39자)
노래방 점수 62점
망한 기획사 연습생 넷으로 데뷔시키기 · 오세림
2026년 9월 1일 아침 아홉 시 오십 분, 나는 망원동 세탁소 옆 계단을 세 번째로 내려가고 있었다. 구인 사이트에 적힌 주소는 분명 이 건물 지하 1층이었는데, 계단 끝 철문에 붙은 시트지 글씨 「스타라이트 엔터테인먼트」에서 「테」 자가 반쯤 떨어져 나가 처음 두 번은 다른 회사인 줄 알았다. 문 앞에는 우유 두 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집어 들어 보니 날짜가 사흘 지나 있었다.
초인종이 없어서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택배는 거기 두고 가세요!”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택배가 아니라고 철문에 대고 외치는 것도 이상해서, 나는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지 않았다.
지하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오래된 장판에 밴 발 냄새와 땀 냄새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누가 방금 뜯은 컵라면 수프 냄새가 얹혀 있었다. 한쪽 벽이 통째로 거울이었다. 거울 앞 바닥에 청테이프로 붙인 X자 넷이 있었고, 그 X자 위에 여자 넷이 저마다 다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나는 컵라면을 들고 있었고, 하나는 다리를 일자로 찢은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하나는 눈을 감고 “이—” 소리를 길게 끌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나를 보던 사람이 물었다. 회색 후드에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넷 중에서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늘부터 출근하는 매니저 나혜주입니다. 대표님이 열 시까지 오라고 하셔서요.”
넷이 동시에 서로를 봤다. 컵라면을 든 사람이 젓가락을 국물에 꽂아 두었다.
“언니, 대표님이 사람을 뽑았대.”
“월급은 뭘로 주려고.”
후드가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운동화를 벗었다. 학원에서 삼 년 일하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첫날 들은 불길한 말은 일단 못 들은 척하는 것이었다.
*
대표실은 연습실 구석을 합판으로 막아 만든 칸이었다. 문을 열자 책상에 노트북이 없었다. 충전기만 콘센트에 꽂힌 채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고, 서랍 네 개가 전부 반쯤 열려 있었다. 벽 달력은 8월에 멈춰 있었는데, 29일 칸에만 빨간 펜 동그라미가 두 겹으로 쳐져 있었다.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를 끝까지 듣고 끊었다. 문자를 보냈고, 카카오톡을 보냈다. 말풍선 옆의 숫자 1은 지워지지 않았다.
“토요일부터 안 받으세요.”
후드가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권태희예요. 여기서 제일 오래 있었어요. 사 년.”
“사 년이요?”
“스물셋에 들어와서 지금 스물일곱이요. 그 전엔 카드사 콜센터에 있었고요.”
태희는 그 말을 하면서 문틀에 붙은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었다. 오래 긁어서 스티커 귀퉁이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연습실로 돌아가자 나머지 셋이 기다렸다는 듯 줄을 섰다. 학원 첫 수업 날 같았다. 다만 이쪽은 학생이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했다.
“박소담이요. 스물다섯. 성악과 다니다 그만두고 왔어요. 보컬이고, 숙소 반찬 당번표 제가 짰어요. 그거 어기면 저 진짜 화내요.”
컵라면이었다. 소담은 자기소개 끝에 경고를 붙이는 사람이었다.
“도예나.”
일자로 다리를 찢고 있던 사람이 그 자세 그대로 말했다. 다음 말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태희가 대신 덧붙였다.
“스물하나, 부산, 막내, 춤.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원래 없어요.”
“됐다.”
예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그 「됐다」가 무엇이 됐다는 건지 끝내 묻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소리를 끌던 사람이 눈을 떴다. 넷 가운데 얼굴이 제일 작았고, 눈꼬리가 내려가 있어서 웃지 않아도 웃는 것처럼 보였다.
“서이안이에요. 스물셋이요.”
그게 다였다. 이안은 물병 뚜껑을 닫으며 거울 쪽으로 돌아섰다. 바닥의 X자 넷 가운데 이안이 서는 자리만 테이프가 새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가 무대 한가운데, 센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
“근데 매니저님.”
소담이 젓가락으로 연습실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 회식 때나 쓸 법한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화면 테두리에 반짝이 스티커가 붙은, 대표가 어디서 중고로 들여왔다는 물건이었다.
“매니저면 노래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아요? 저희가 틀리면 잡아 주셔야 하잖아요.”
“그건 보컬 트레이너가…….”
“그분 6월에 그만두셨어요. 석 달째 월급 못 받아서요.”
태희가 말했다. 나는 이 회사의 퇴사 사유가 전부 같은 문장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넷이 바닥에 나란히 앉았다. 도망칠 구멍이 없었다. 나는 마이크를 들고 번호책을 넘기다가, 그나마 자신 있는 쪽을 골랐다. 영어 노래였다. 비틀스의 「렛 잇 비」를 학원에서 중학생들 발음 교재로 백 번은 틀었다.
전주가 나왔다. 나는 첫 소절부터 혀를 정확한 자리에 놓았다. 「Let」의 L은 윗니 뒤에 혀끝을 붙이고, 「be」의 b는 입술을 닫았다가 터뜨렸다. 모음 길이도 교재대로 늘였다. 발음만큼은 원어민 강사에게 칭찬받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음이었다. 내가 낸 소리와 반주가 서로 다른 동네에 살고 있었다. 2절쯤 가자 예나가 휴대폰을 내려놓았고, 후렴에서는 이안이 물병을 입에 문 채 어깨를 떨었다. 소담은 처음에 입을 막고 있다가 나중에는 아예 바닥에 엎드렸다.
노래가 끝나자 화면에 팡파르 대신 북소리가 났다.
「62점 — 조금만 더 노력하세요!」
연습실에 정적이 삼 초쯤 흘렀다.
“발음은 원어민인데 음은 외계인이야.”
소담이 엎드린 채 말했다. 태희가 그 등을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는데, 때린 태희도 웃고 있었다. 예나가 처음으로 문장 비슷한 것을 말했다.
“저 기계 육십 밑으로는 안 주는 기계다.”
“그럼 저 바닥 찍은 거예요?”
“거의.”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학원에서 쓰던 목소리를 꺼냈다. 수업 시작 오 분 전, 떠드는 교실을 한 번에 조용히 만들던 목소리였다.
“좋아요. 그럼 오늘부터 여러분이 저한테 노래를 가르치세요. 저는 여러분한테 나머지를 가르칠게요.”
“나머지가 뭔데요?”
이안이 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안이 나를 똑바로 봤다.
“시간표요. 그리고 마감이요.”
나는 대표 책상에서 찾아 들고 나온 종이 한 장을 흔들었다. 방송사 신인 경연 「넥스트 스테이지」 참가 안내문이었다. 큰 기획사 없이 나온 신인들끼리 겨루는 방송이었고, 1차 서류 마감이 9월 14일이었다. 여백에 대표 글씨로 「이안 센터. 무조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
오전 열한 시 십 분에 철문이 열렸다. 노크는 없었다.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남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키가 커서 지하 천장의 형광등이 그 정수리 바로 위에 있었다. 그는 구두를 신은 채 장판 위로 세 걸음 들어왔다.
“신발.”
예나가 말했다. 남자는 예나를 내려다보고는 웃기만 했다. 구두는 그대로였다.
“차민기 대표님 안 계시죠? 알고 왔어요. 블루웨이브 엔터테인먼트 강유찬입니다. 신인 발굴 맡고 있어요.”
그 이름은 나도 알았다. 연습생만 이백 명이 넘는다는 대형 기획사였다. 학원 중학생들 필통에 붙은 스티커의 절반이 그 회사 그룹이었다.
“대표님은 연락이 안 되십니다. 무슨 일이신지 저한테 말씀하세요.”
“그쪽은요?”
“매니저 나혜주입니다.”
“언제부터요?”
“오늘 아침 아홉 시 오십 분부터요.”
강유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서류 봉투 하나를 노래방 기계 위에 올려놓았다. 화면에는 아직 내 62점이 떠 있었다.
“8월 28일에 차 대표님이 저희랑 합의서를 쓰셨어요. 서이안 씨 계약을 저희 쪽으로 넘기는 조건으로 계약금 3천만 원을 먼저 받아 가셨고요. 이안 씨 사인만 남았습니다. 오늘 사인하시면 이안 씨는 다음 주부터 저희 연습실로 나오시면 돼요.”
나는 이안을 봤다. 이안은 물병을 쥐고 있었다. 플라스틱이 손안에서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셋은 이안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태희가 천장을 봤고, 소담이 컵라면 뚜껑을 다시 덮었고, 예나는 일자로 찢었던 다리를 접었다.
“이안 씨가 사인을 안 하면요?”
“그럼 회사가 3천만 원을 돌려주셔야죠. 이 회사 통장에 얼마 있는지 아세요, 매니저님?”
나는 몰랐다. 출근 한 시간 이십 분째였다. 그런데 학원에서 수업료 환불을 해 달라는 학부모와 마주 앉을 때마다, 나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상담이 끝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이 회사 일은 대표님 대신 제가 봅니다. 이안 씨 계약에 관한 얘기도 저를 거쳐서 하세요. 이안 씨는 오늘 아무것도 사인하지 않습니다.”
“대표 대행이라는 직함, 지금 지어내신 거죠?”
“방금 지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합니다.”
강유찬은 한동안 나를 봤다. 그 눈은 사람을 볼 때 얼굴보다 값을 먼저 재는 눈이었다. 나는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손바닥이 장판에 붙은 발바닥처럼 축축했다.
“좋아요. 그럼 회사 앞으로 계약금 반환 청구서 보내 드릴게요. 대행님 앞으로요.”
그가 몸을 돌렸다. 철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
“「넥스트 스테이지」 나가실 거죠? 안내문 들고 계시길래요. 거기 대표 없는 회사는 서류도 안 받아요.”
철문이 닫혔다. 구두 자국 세 개가 장판 위에 회색으로 남아 있었다. 예나가 일어나 걸레를 가져와서 그 자국을 하나씩 닦았다. 아무도 이안에게 묻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
밤 열 시에 넷이 숙소로 올라갔다. 숙소라고 해 봐야 같은 건물 3층 투룸이었다. 나가기 전에 태희가 열쇠 꾸러미 하나를 내 손바닥에 놓았다. 쇠 열쇠 하나에 열쇠고리가 다섯 개 달려 있었다. 플라스틱 별, 곰 인형, 부산 갈매기, 지워진 이름표, 그리고 맨 끝에 반쯤 깨진 마이크 모양 고리.
“지금까지 여기 있다 나간 언니들 거예요. 하나씩 달고 나갔어요. 데뷔한 사람은 없고요.”
“이걸 왜 저한테…….”
“내일 아침에 문 열 사람이 매니저님밖에 없잖아요. 저희는 늦잠 자요.”
이안이 계단 위에서 돌아봤다.
“매니저님, 내일도 오세요?”
“아홉 시 오십 분이요. 늦으면 숙제 두 배예요.”
이안이 웃었다. 웃을 때 처음으로 말끝이 풀렸다.
“뭐야, 진짜 선생님이네.”
넷이 올라간 뒤 나는 대표실 서랍을 하나씩 끝까지 열었다. 맨 아래 칸에 우편물이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맨 위의 봉투를 뜯었다. 사채업체 「한결대부」가 보낸 것이었고, 빌려 간 돈을 갚지 않아 법원 결정에 따라 연습실 보증금과 집기를 압류하겠다는 독촉장이었다.
집행 예정일은 9월 2일, 내일 오전 열 시였다.
나는 노래방 기계 전원을 껐다. 62점이 까맣게 꺼졌다. 열쇠고리 다섯 개가 손안에서 서로 부딪쳐 짤그랑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