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6자)

압수수색

4만 번째 전세사기 피해자 · 금나율

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아침 아홉 시 칠 분⁠, 305호 거실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소장님⁠」⁠. 나윤은 칫솔을 문 채 받았다⁠.

“⁠나윤아⁠, 경찰 왔다⁠.⁠”

태식의 목소리 뒤로 여러 사람의 발소리와 상자 테이프 뜯는 소리가 났다⁠.

“⁠압수수색이래⁠. 영장 들고 왔어⁠. 니 책상 서랍⁠, 거기 뭐 있었지⁠? 니 개인 거 있으면⁠.⁠”

“⁠제 거 다 가지고 나왔어요⁠. 선인장까지요⁠.⁠”

“⁠그럼 됐어⁠. 됐다⁠.⁠” 태식은 됐다고 두 번 말하고 한참 숨만 쉬었다⁠. “⁠너 오지 마⁠. 오면 너도 엮여⁠.⁠”

전화가 끊겼다⁠. 나윤은 칫솔을 헹구고 패딩 조끼를 입었다⁠. 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사람의 걸음은 평소보다 빨랐다⁠.

*

숭의 로터리 모퉁이에 경찰 승합차 두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으뜸공인중개사사무소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문 안팎으로 파란 조끼를 입은 수사관들이 종이 상자를 날랐다⁠. 상자마다 매직으로 「⁠으뜸 1⁠」 「⁠으뜸 2⁠」 번호가 적혀 있었다⁠. 「⁠으뜸 7⁠」은 비닐 봉투였다⁠. 파쇄기에서 꺼낸 종이 가루가 반쯤 차 있었다⁠.

탁주엽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와이셔츠 소매는 이번에도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오셨네요⁠. 소장님이 안 오실 거라고 하던데⁠.⁠”

“⁠안 오려고 했어요⁠.⁠”

“⁠다들 그러세요⁠.⁠” 탁주엽이 사무실 안을 돌아보았다⁠.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추워요⁠? 에어컨이 18도예요⁠.⁠”

수사관 하나가 벽의 리모컨을 집어 26도로 올렸다⁠. 태식은 사무실 안쪽 의자에 앉은 채 리모컨을 쳐다보았지만 손을 뻗지 못했다⁠. 네 해 동안 이 사무실에서 리모컨을 이긴 사람은 태식뿐이었다⁠. 오늘은 영장이 리모컨을 쥐었다⁠.

나윤의 옛 책상 서랍이 열려 있었다⁠. 서랍 안에 있던 계약 서류철은 「⁠으뜸 3⁠」 상자로 들어갔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상만의 집 계약서 사본이 연도별로 꽂혀 있었다⁠. 나윤이 뽑아서 철해 둔 파일이었다⁠. 파일 등에 붙은 견출지 글씨가 나윤의 글씨였다⁠. 「⁠해든빌 B · 2024⁠」⁠.

“⁠주안동 해든건설도 지금 같이 들어갔어요⁠.⁠” 탁주엽이 말했다⁠. “⁠해든관리도요⁠. 문이 하나라서 편하더라고요⁠.⁠”

탁주엽은 수사관에게서 서류 한 장을 받아 훑어보고 나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계나윤 씨⁠, 하나 부탁드릴게요⁠. 휴대전화 임의제출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영장은 아니에요⁠. 내 주시면 저희가 필요한 것만 뽑아 보고 돌려드립니다⁠.⁠”

나윤은 조끼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화면은 꺼져 있었는데도 손바닥이 뜨거웠다⁠.

“⁠제 폰 내면 저도 피의자 되나요⁠?⁠”

“⁠폰에 뭐가 있느냐에 따라 다르죠⁠.⁠”

탁주엽은 사안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신 오래 나윤을 보았다⁠. 나윤이 먼저 눈을 내렸다⁠.

“⁠생각해 볼게요⁠.⁠”

“⁠생각은 빨리 하시는 게 좋습니다⁠. 기억은 늦게 와도 받아 드리는데⁠, 생각이 늦으면 저희가 먼저 가요⁠.⁠”

안에서 태식이 일어났다⁠. 수사관이 「⁠으뜸 5⁠」 상자에 태식의 책상 유리 밑 사진을 넣으려 했다⁠. 한솔의 입학식 사진이었다⁠. 태식이 손을 뻗었다⁠.

“⁠그건 우리 딸 사진이에요⁠.⁠”

수사관은 사진을 뒤집어 보고⁠, 뒷면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태식에게 돌려주었다⁠. 같이 끼워져 있던 한우 선물 세트 영수증은 상자로 들어갔다⁠. 태식은 사진을 셔츠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위로 사진 모서리가 삐죽 나왔다⁠.

*

단톡방은 오전 내내 울렸다⁠. 누가 으뜸 앞의 경찰 승합차를 찍어 올렸고⁠, 누가 주안동 해든건설 건물 앞을 찍어 올렸다⁠. 옥경희의 큰 글씨가 줄줄이 이어졌다⁠. 「⁠경찰⁠」 「⁠잘한다⁠」 「⁠상자⁠」 「⁠많이⁠」 「⁠가져가⁠」⁠. 마지막에는 경찰 승합차 사진에 하트를 붙였다⁠.

재열이 한 줄을 올렸다⁠. 「⁠월요일 국회 정문 1인 시위 갑니다⁠. 의견서는 의원회관 민원실에 제출합니다⁠. 같이 갈 분 아침 일곱 시 필로티⁠」⁠.

나윤은 답을 쓰지 않았다⁠. 대신 재열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의견서 서류 정리해 드릴게요⁠. 사샤 씨 LH 건은 기금법 조항까지 붙이겠습니다⁠.⁠」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고마워요⁠. 근데 폰 냈어요⁠?⁠」

나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단톡방 소식은 모두가 보았고⁠, 탁주엽이 휴대전화를 달라고 한 말은 사무실 앞 사람들이 다 들었다⁠. 이 동네의 소식은 등기부보다 빨랐다⁠.

*

저녁 여섯 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인천 동구 송현동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퇴직하고 나서는 저녁 여섯 시 지역 뉴스를 빠뜨리지 않았다⁠.

“⁠나윤아⁠, 텔레비전에 숭의동 나왔다⁠. 부동산 사무소에 경찰이 들어갔대⁠. 로터리 모퉁이던데⁠. 니 사무실 옆이지⁠?⁠”

“⁠응⁠. 옆이야⁠.⁠”

말은 그렇게 나왔다⁠. 입이 먼저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들은 귀가 나중에 부끄러웠다⁠. 엄마는 다행이라고 했다⁠. 요즘 그런 사무실이 많다더라⁠, 너는 그런 데 다니지 마라⁠, 사무실 고를 때 사장 얼굴을 잘 봐라⁠. 엄마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나윤은 거실 창 너머로 302호 불빛을 보았다⁠. 예슬이 창가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다⁠.

“⁠엄마⁠.⁠”

“⁠응⁠.⁠”

“⁠옆 아니고 우리 사무실이야⁠.⁠”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텔레비전 소리만 났다⁠. 날씨 예보였다⁠. 내일은 맑고 낮 기온은 29도⁠.

“⁠니가 뭐 잘못했니⁠?⁠”

“⁠응⁠. 조금⁠.⁠”

“⁠조금이 얼마만큼인데⁠.⁠”

보름 전 경찰청 로비에서 재열이 물은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한숨이 길어서 전화가 끊긴 줄 알았다⁠.

“⁠밥은 먹었니⁠.⁠”

“⁠아직⁠.⁠”

“⁠먹고 생각해⁠. 생각은 배고플 때 하면 다 나쁘게 나와⁠.⁠” 엄마가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사천은 신경 쓰지 마⁠. 엄마는 급식실에서 스물두 해 동안 국 퍼서 번 돈이야⁠. 또 퍼면 돼⁠.⁠”

“⁠엄마 이제 허리 아파서 못 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못 퍼는 돈은 없는 돈이야⁠.⁠”

엄마가 먼저 끊었다⁠. 나윤은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통 하나와 달걀 두 알이 있었다⁠. 달걀을 삶는 동안 물이 끓는 소리를 들었다⁠. 끓는 소리는 오래 들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

9월 21일 월요일 오전 열 시⁠, 여의도 국회 정문 앞 보도는 햇볕이 따가웠다⁠. 1인 시위는 한 사람씩만 했다⁠. 나머지는 떨어진 가로수 그늘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경비가 와서 두 사람 이상 한자리에 있으면 집회가 된다고⁠, 한 사람씩만 서 달라고 했다⁠. 옥경희가 경비를 올려다보았다⁠.

“⁠나 혼자 서면 되지⁠? 내 글씨는 커서 한 사람이 들어도 세 사람 몫이야⁠.⁠”

경비는 대답하지 못하고 웃었다⁠. 첫 순서는 옥경희였다⁠. 「⁠전세사기 피해자 4만 명 · 해든빌도 그중 하나⁠」⁠. 피켓 글씨가 커서 「⁠4만⁠」 두 글자가 피켓 가장자리까지 꽉 찼다⁠.

두 번째가 사샤였다⁠. 사샤의 피켓은 나윤이 밤새 만든 것이었다⁠. 「⁠같은 집 · 같은 근저당 · 같은 경매 · 다른 국적⁠」⁠. 사샤는 피켓을 들고 서서 땀을 흘렸다⁠. 지나가는 사람 몇이 피켓을 읽고 갔다⁠. 누가 사진을 찍었다⁠. 사샤가 피켓 너머로 나윤에게 말했다⁠.

“⁠아이고⁠, 사진 찍히니까 거시기 연예인 같아요⁠. 엄마한테 보내야겠다⁠.⁠”

나윤은 재열과 함께 의원회관 민원실에 의견서를 냈다⁠. 서류는 서른두 장이었다⁠. 해든빌 76세대의 결정 신청 현황⁠, 경매 일정⁠, LH 매입 결과⁠, 외국 국적 세입자 사례⁠. 민원실 직원은 서류를 받아 접수 도장을 찍었다⁠. 도장 찍는 소리가 경매법정 집행관 도장과 똑같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재열이 물었다⁠. 둘 다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폰 왜 안 냈어요⁠?⁠”

“⁠생각 중이에요⁠.⁠”

“⁠뭐가 있는데요⁠?⁠”

나윤은 지하철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머리는 대충 묶었고⁠, 조끼 지퍼가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손잡이를 쥔 손이 흔들렸다⁠. 열차가 흔들려서였다⁠.

“⁠다음 주에 말할게요⁠.⁠”

“⁠다음 주요⁠.⁠” 재열이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한솔이라는 애가 다음 주를 세 번 말했다면서요⁠. 예슬이한테 들었어요⁠.⁠”

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열도 더 묻지 않았다⁠. 열차가 한강을 건넜다⁠. 물빛이 창에 한꺼번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

밤 아홉 시 반⁠, 숭의 로터리 포장마차에 태식이 먼저 와 있었다⁠. 소주병 하나가 이미 비어 있었다⁠. 태식은 오늘 오후 인천경찰청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고 왔다고 했다⁠. 셔츠 주머니에 아직 한솔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앉아⁠. 오늘은 내가 산다⁠. 퇴직금 대신⁠.⁠”

“⁠저번에 봉투 주신 거 안 받았어요⁠.⁠”

“⁠그러니까 오늘 먹어⁠.⁠”

닭똥집이 나왔다⁠. 태식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소주를 한 잔 따라 비우고⁠, 빈 잔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나윤아⁠. 오늘 경찰이 R 문자를 다 갖고 있더라⁠. 내 폰 지운 거⁠, 통신사에서 다 뽑았대⁠. 지워도 소용없더라⁠.⁠”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태식이 잔을 멈췄다⁠. “⁠실무는 계 실장이 다 했다고 했다⁠.⁠”

닭똥집 볶는 철판이 지글거렸다⁠. 포장마차 주인이 철판에 물을 부었고⁠, 김이 확 올라와 두 사람 사이를 가렸다⁠. 김이 걷힐 때까지 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약서 뽑고⁠, 손님 만나고⁠, 상만이랑 연락하고⁠, 다 계 실장이 했다고⁠. 나는 도장만 찍었다고⁠. 리베이트는 사무실 운영비로 들어왔고 계 실장도 나눠 받았다고⁠.⁠”

“⁠소장님⁠.⁠”

“⁠니 50만 원⁠, 경찰도 알아⁠. 상만이 통장에서 나갔으니까⁠.⁠” 태식이 고개를 숙였다⁠. 정수리의 흰머리가 포장마차 백열등 아래 하얗게 보였다⁠. “⁠너는 젊잖아⁠. 서른셋이잖아⁠. 나는 끝이야⁠. 쉰둘에 자격증 날아가면 끝이야⁠. 한솔이 졸업은 시켜야지⁠. 내가 들어가면 한솔이 혼자야⁠.⁠”

“⁠제가 들어가면 우리 엄마 혼자예요⁠.⁠”

나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아서 주인이 철판에서 고개를 들었다⁠. 태식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네 해 동안 소장님이 도장 찍는 거 옆에서 봤어요⁠. 소장님은 계약서 안 읽고 찍었어요⁠. 저는 읽고 뽑았어요⁠. 둘 다 잘못했어요⁠. 근데 실무를 제가 다 했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상만 사장 R 문자는 소장님 폰으로 왔어요⁠. 다른 사무소 여섯 곳 단톡방에 소장님이 있었어요⁠.⁠”

태식이 놀란 얼굴로 나윤을 보았다⁠.

“⁠여섯 곳은 어떻게 알아⁠.⁠”

“⁠소장님 폰 비밀번호⁠, 한솔이 생일이잖아요⁠. 까먹으실까 봐 제가 외워 놨어요⁠.⁠”

태식은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잔을 놓지 못해서 잔이 탁자 위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나윤은 일어나서 지갑을 꺼냈다⁠. 이만 삼천 원이 나왔다⁠. 반을 탁자에 놓았다⁠.

“⁠오늘은 각자 내요⁠.⁠”

*

9월 22일 화요일 오후 두 시⁠, 나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인천경찰청 탁주엽⁠」⁠.

“⁠계나윤 씨⁠, 탁주엽입니다⁠. 반태식 씨 진술에 계나윤 씨 이름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피의자로 출석해 주셔야겠습니다⁠. 혐의는 사기 방조입니다⁠. 10월 2일 금요일 오전 열 시 어떠세요⁠?⁠”

“⁠알겠습니다⁠.⁠”

“⁠변호인 같이 오셔도 됩니다⁠. 그리고⁠.⁠” 탁주엽이 잠깐 말을 멈췄다⁠. 후루룩 소리는 나지 않았다⁠. “⁠휴대전화 생각은 끝나셨어요⁠?⁠”

나윤은 창틀의 선인장을 보았다⁠.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는 날이 사흘 지나 있었다⁠. 나윤은 전화를 귀에 댄 채 부엌으로 가 컵에 물을 받았다⁠.

“⁠10월 2일에 가져갈게요⁠.⁠”

물을 부으니 마른 흙이 소리를 내며 물을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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