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5,346자)

증인석

4만 번째 전세사기 피해자 · 금나율

2027년 3월 18일 목요일 오후 두 시⁠, 인천지방법원 형사 대법정⁠. 증인석은 피고인석과 검사석 가운데에 있었다⁠. 의자 하나⁠, 마이크 하나⁠, 물 한 컵⁠. 나윤은 증인석 앞에서 선서문을 받았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종이를 읽는 목소리가 법정 천장까지 올라갔다⁠. 숨김과 보탬⁠. 나윤은 두 낱말을 입 안에서 한 번 더 굴렸다⁠. 네 해 동안 숨긴 것이 하나⁠, 보탠 것이 하나였다⁠. 2024년 4월 6일 오전의 전화를 숨겼고⁠, 「⁠신축이라 괜찮아요⁠」를 보탰다⁠.

방청석은 다 찼다⁠. 맨 앞줄에 해든빌 사람들이 앉았다⁠. 옥경희는 오늘도 손바닥에 무언가를 써 왔다⁠. 경위가 볼 수 없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사샤는 공장에 반차를 냈다⁠. 이사를 열흘 앞두고 낸 반차였다⁠. 예슬은 오지 않았다⁠. 피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재열이 혼자 왔다⁠. 재열은 맨 앞줄에 앉지 않고 맨 뒷줄 문 옆에 앉았다⁠.

탁주엽은 방청석 가운데쯤에 앉아 있었다⁠. 한 시 반에 법원 정문에서 나윤을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은박지로 싼 김밥 두 줄을 들고 있었다⁠.

“⁠증언은 경찰이 못 도와드립니다⁠. 저는 방청만 합니다⁠.⁠” 탁이 김밥 한 줄을 내밀었다⁠. “⁠이건 도와드리는 거 아닙니다⁠. 점심입니다⁠.⁠”

“⁠경위님은 쫄면 아니세요⁠?⁠”

“⁠법원 앞 분식집 쫄면은 증인석까지 가기 전에 불어요⁠. 김밥은 안 붑니다⁠. 계 실장님 말 듣고 바꿨어요⁠.⁠” 탁이 은박지를 반쯤 벗겼다⁠.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기록은 앞에서부터 읽힙니다⁠. 그런데 판사는 끝까지 읽어요⁠. 끝까지 읽는 사람이 판사입니다⁠.⁠”

나윤은 김밥을 반 줄만 먹었다⁠. 나머지 반은 은박지째 패딩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명찰 옆이었다⁠.

피고인석에 상만과 태식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상만은 하늘색 수의 차림으로 나윤을 보았다⁠. 태식은 양복 차림으로 책상을 보았다⁠.

*

검사가 먼저 일어났다⁠. 서른 중반의 여자 검사였다⁠. 3월 15일 면담 때 나윤이 가져간 상자 세 개를 끝까지 넘겨 본 사람이었다⁠.

“⁠증인⁠, 2024년 4월 6일 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B동 302호 계약 날이었습니다⁠. 석재열 씨와 하예슬 씨 부부가 보증금 1억 6천에 들어오는 계약이었습니다⁠. 오전 열 시쯤 사무실에서 반태식 소장님이 도상만 사장님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셨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새로 들어오는 신혼부부 돈으로 A동 201호 빼 줘야 하니까 오늘 도장 꼭 받으라고요⁠.⁠”

“⁠증인은 그 말을 듣고 무엇을 했습니까⁠?⁠”

“⁠오후 두 시에 302호 거실에서 계약서를 썼습니다⁠. 하예슬 씨가 근저당이 왜 이렇게 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신축이라 시세가 높아서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사샤가 고개를 숙였다⁠. 옥경희는 주먹을 더 꽉 쥐었다⁠.

“⁠그날 오후 세 시 십이 분에 받은 문자를 읽어 주시겠습니까⁠?⁠”

검사가 증거 화면을 켰다⁠. 법정 벽의 화면에 나윤의 휴대전화 화면이 크게 떴다⁠. 나윤은 화면을 보지 않고 읽었다⁠. 외우고 있었다⁠.

“⁠「⁠302 잘했어⁠. 보너스 50 보냄⁠. R3는 반 소장한테 들어감⁠.⁠」 그리고 바로 5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R3는 무슨 뜻입니까⁠?⁠”

“⁠리베이트 300만 원입니다⁠. 계약 한 건이 끝나면 사장님이 중개사무소에 주는 돈을 R과 숫자로 불렀습니다⁠. R1이 100만 원⁠, R5가 500만 원입니다⁠. 법정 중개보수와 따로 들어왔습니다⁠.⁠”

검사가 상자 하나를 증인석 옆에 올렸다⁠. 검은 집게 세 개가 물린 묶음이었다⁠.

“⁠증인이 제출한 계약서 이백열한 건입니다⁠. 특약 칸에 같은 문장이 반복됩니다⁠. 읽어 주시겠습니까⁠?⁠”

“⁠「⁠임대인은 잔금일 다음 날까지 근저당 일부를 감액한다⁠」⁠. 제가 2022년 여름에 만든 문장입니다⁠. 사장님이 좋다고⁠, 다른 사무소에도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백열한 건 가운데 근저당을 감액했다는 확인서는 한 장도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하면 계약이 깨졌습니다⁠.⁠”

“⁠증인은 돌려막기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알았습니다⁠. 2024년 4월 6일 오전부터 알았습니다⁠.⁠”

검사가 자리에 앉았다⁠. 법정이 조용했다⁠. 나윤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이 미지근했다⁠.

*

태식의 변호인이 일어났다⁠. 50대의 남자였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증인⁠, 반태식 피고인의 보증금 1억 8천이 도상만 피고인에게 묶인 것은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D동 501호입니다⁠. 2022년 9월 계약서가 제출한 묶음 안에 있습니다⁠. 반태식 피고인이 자기 집을 직접 쓴 계약서입니다⁠. 특약 칸에 감액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반태식 피고인도 그 문장을 자기 집에 넣었습니다⁠.⁠”

변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대답이었다⁠.

“⁠리베이트 숫자를 누가 정했는지 아십니까⁠?⁠”

“⁠숫자를 문자로 보낸 사람은 도상만 피고인입니다⁠. 2024년 4월 6일 문자도 도상만 피고인이 보냈습니다⁠. 숫자를 처음 누가 정했는지는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모릅니다⁠.⁠”

“⁠다른 중개사무소 여섯 곳은 어떻게 도상만 피고인과 거래하게 되었습니까⁠?⁠”

나윤은 피고인석을 보았다⁠. 태식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법정에 들어온 뒤 처음이었다⁠. 태식은 나윤을 보고 있었다⁠. 18도를 고집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반태식 피고인이 데려갔습니다⁠. 2022년 여름 부평 늘봄공인⁠, 간석 미래공인⁠, 주안 새길공인⁠, 그 밖에 세 곳입니다⁠. 한 곳마다 500만 원이 반태식 피고인의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통장은 반태식 피고인이 직접 경찰에 냈습니다⁠.⁠”

태식의 변호인은 잠깐 서류를 보다 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신문을 마치겠다고 했다⁠. 태식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책상을 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

상만의 변호인이 일어났다⁠. 금테 안경을 한 번 밀어 올렸다⁠.

“⁠재판장님⁠, 증거로 제출한 녹음을 재생하겠습니다⁠.⁠”

법정 스피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먼저 나왔다⁠. 호치민 골목의 소리였다⁠. 그다음 상만의 목소리⁠. 계 실장⁠, 생각 좀 해 봤어⁠? 그다음 나윤의 목소리⁠.

받을게요⁠.

녹음이 멈췄다⁠. 방청석 맨 앞줄의 몇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12월 단톡방에서 「⁠역시⁠」라고 쓴 사람들이었다⁠.

“⁠증인은 피고인 도상만에게 돈을 받겠다고 말했습니까⁠?⁠”

“⁠말했습니다⁠.⁠”

“⁠증인의 어머니 통장에 1천만 원이 들어왔습니까⁠?⁠”

“⁠들어왔습니다⁠. 2026년 11월 16일입니다⁠. 어머니가 새 통장을 만들어 옮겨 두셨습니다⁠. 통장 이름이 「⁠305⁠」입니다⁠.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탁주엽 경위님께 송금 확인서를 냈습니다⁠.⁠”

“⁠증인은 수사기관의 부탁을 받고 피고인을 속였습니까⁠?⁠”

“⁠피고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녹음을 끝까지 틀어 주시면 나옵니다⁠. 피고인이 다음 날 여섯 시부터 열 시까지 가게에서 집게를 들고 있겠다고 말합니다⁠.⁠” 나윤이 숨을 쉬었다⁠. “⁠녹음의 앞부분만 트시면 제가 돈을 받은 사람이 되고⁠, 끝까지 트시면 제가 피고인을 찾은 사람이 됩니다⁠. 둘 다 사실입니다⁠.⁠”

방청석에서 사샤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상만의 변호인은 녹음을 끝까지 틀지 않았다⁠.

“⁠증인은 리베이트 50만 원을 받았고⁠, 지금도 사기 방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죠⁠?⁠”

“⁠네⁠.⁠”

“⁠그런 증인의 말을 재판부가 왜 믿어야 합니까⁠?⁠”

나윤은 증인석 옆의 상자를 보았다⁠. 검은 집게 세 개⁠.

“⁠제 말을 믿지 마시고 계약서를 보세요⁠. 이백열한 건⁠, 육백열두 장을 다 냈습니다⁠. 제 이름이 들어간 것도 다 냈습니다⁠. 제가 불리한 장도 다 냈습니다⁠. 계약서는 제가 쓴 날의 저를 기억합니다⁠. 지금의 저보다 정확합니다⁠.⁠”

*

“⁠재판장님⁠.⁠” 상만이 손을 들었다⁠. “⁠제가 직접 하나 묻고 싶습니다⁠.⁠”

재판장이 허락했다⁠. 상만이 일어났다⁠. 수의 소매가 다시 손목까지 내려왔다⁠. 상만은 나윤을 보았다⁠. 눈가 주름이 웃었다⁠. 해든빌 필로티와 뷔페와 호치민 화면에서 본 것과 같은 웃음이었다⁠.

“⁠계 실장⁠, 니 손으로 안 쓴 거 있어⁠?⁠”

“⁠피고인⁠, 증인에게 존댓말을 쓰십시오⁠.⁠” 재판장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상만이 웃음을 거두지 않고 다시 물었다⁠. “⁠증인⁠, 증인 손으로 안 쓴 계약서가 있습니까⁠? 증인이 지금 저를 이렇게 말하는데⁠, 이백 장 쓴 손은 증인 손 아닙니까⁠?⁠”

법정이 조용했다⁠. 나윤은 마이크 앞으로 몸을 당겼다⁠.

“⁠없습니다⁠. 이백열한 건 가운데 이백열 건은 제 손으로 썼습니다⁠. 한 건은 반태식 피고인의 D동 501호입니다⁠.⁠” 나윤은 상만을 똑바로 보았다⁠. “⁠제 손으로 쓴 이백열 건에 피고인의 문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피고인은 문자 한 줄만 썼습니다⁠. 302 잘했어⁠. 문자 한 줄이 이백열한 집을 움직였습니다⁠. 제 손은 그 한 줄을 따라갔습니다⁠. 따라간 손이 제 손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 앉아 있습니다⁠.⁠”

상만의 웃음이 멈췄다⁠. 처음으로 눈가 주름이 웃지 않은 채로 남았다⁠. 상만은 대답하지 않고 앉았다⁠.

재판장이 증인 신문을 마친다고 했다⁠. 나윤은 증인석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의자 등받이를 짚었다⁠.

피고인석의 태식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숙인 고개가 아래로 더 내려갔다⁠. 나윤이 지나갈 때 태식의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법정 경위가 태식을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방청석 사이 통로를 걸어 나가는데 맨 뒷줄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재열이 일어나 있었다⁠. 문 옆이었다⁠. 재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수도 치지 않았다⁠. 나윤이 문까지 걸어갈 때까지 일어난 채로 있었다⁠. 맨 앞줄에서 옥경희가 일어났다⁠. 사샤가 일어났다⁠. 사샤 옆의 C동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경위가 앉아 달라고 했다⁠.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나윤이 문을 열고 나가자 재열이 따라 나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자판기 불빛만 켜져 있었다⁠.

“⁠예슬이 문자 왔어요⁠.⁠” 재열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나윤은 화면을 보았다⁠. 한 줄이었다⁠.

「⁠두 줄 맞대⁠. 수치도 좋대⁠. 실장님 증언 끝났어⁠?⁠」

나윤은 휴대전화를 재열에게 돌려주었다⁠. 재열은 휴대전화를 받고 한참 서 있다가 답장을 썼다⁠. 나윤에게 화면을 보여 주지 않았다⁠. 복도 창밖으로 3월의 해가 학익동 언덕 위에 남아 있었다⁠. 옥경희가 법정 문을 열고 나와 주먹을 폈다⁠. 손바닥에 큰 글씨가 있었다⁠. 「⁠잘했어⁠」⁠. 땀에 번져 「⁠잘⁠」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사샤가 옥경희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고⁠, 「⁠잘⁠」이 지워지니까 「⁠했어⁠」만 남았네요⁠. 할머니 손바닥은 거시기⁠, 늘 반만 맞혀요⁠.⁠”

“⁠반만 맞혀도 돼⁠. 했으면 된 거야⁠.⁠” 옥경희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했어⁠」도 지워졌다⁠. 옥경희는 지워진 손바닥을 나윤의 등에 한 번 대었다가 뗐다⁠. 등이 따뜻했다⁠.

출처 형사소송법 제157조 · 증인 선서 —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 형사소송법 제161조의2 · 증인 신문 순서 — 증인을 신청한 당사자의 주신문 뒤 상대방의 반대신문⁠, 재판장의 허가에 따른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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