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67자) · 서경 · 10월 13일
청문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청문 전날 밤, 서준이 점례네 삽짝을 넘어왔다. 이번에는 안전화를 벗어 마루 끝에 가지런히 놓고 올라왔다. 셔츠를 다려 입고 있었다. 누가 다렸는지 물으니 태백 집에 가서 엄마한테 다려 달라고 했다고 했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했어?”
“내일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 있다 캤다. 엄마가 떡 할까 카길래, 아직 하지 마라 캤다.”
서경은 동생 셔츠 깃을 손끝으로 한 번 펴 주었다. 풀 먹인 깃이 빳빳했고, 엄마 집 장롱 냄새가 났다. 나프탈렌과 햇볕에 말린 이불 냄새가 섞인 그 냄새가 서경을 열 살 때 태백 사택 방으로 한순간에 데려갔다.
“서준아, 내일 안 나와도 돼. 사진은 조사관님이 내면 되고.”
“누나가 그캤잖아. 찍은 사람이 나와야 반이 마저 된다꼬.”
“그건 조사관님이 한 말이야.”
“그라믄 조사관님 말이 맞다.”
서준이 마루 끝에 벗어 둔 안전화를 끌어당겨 끈을 괜히 다시 묶었다. 풀린 데도 없는 끈이었다. 서경은 그 손을 보면서, 이 애가 어릴 때 겁이 나면 늘 신발 끈부터 묶던 것을 기억해 냈다.
*
청문 날 아침, 군청 마당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은행 알이 밟혀 터지는 냄새가 마당 가득했고, 너래리 사람들은 그 냄새에 코를 싸쥐고 계단을 올랐다. 이장은 계단참에서 확성기도 없는데 목을 가다듬으며 「아아」 하고 두 번 소리를 냈다. 부인이 옆구리를 찔렀다. 「여기는 당신 마이크 없소.」
다현이 서류 봉투를 안고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밤새 의견서를 고쳐 쓴 얼굴이었는데, 서경을 보자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떨리십니까?”
“아니요. 나중에 한꺼번에 떨릴 겁니다.”
“그럼 제가 그때 옆에 있겠습니다.”
서경은 대답 대신 다현의 봉투 모서리를 손끝으로 한 번 눌러 주었다. 구겨진 모서리가 펴졌다.
시월 십삼일 목요일 오후 두 시, 청암군청 대회의실에는 접이식 의자가 예순 개 깔려 있었다. 앞쪽 긴 탁자에 도 산불 합동조사반이 앉았다. 가운데가 위원장인 도 산림과장 원종태, 그 오른쪽에 전력공사 태백지점장과 탁기문, 왼쪽에 산림청 조사관 노다현과 청암경찰서 형사, 맨 끝에 상운면 산림계장 변진호였다. 형광등이 윙윙거렸고, 마이크가 켜질 때마다 쇳소리가 한 번씩 튀었다. 누가 피우다 끈 담배 냄새가 커튼에 배어 있었다.
뒤쪽 의자에 너래리 사람들이 앉았다. 점례, 이장 부부, 방 영감, 우물가 집 할아버지. 순이는 학교를 빼먹고 할아버지 옆에 붙어 앉았다가, 입구에서 군청 직원이 쳐다보자 할아버지 점퍼 속으로 반쯤 들어갔다. 서경은 서준과 나란히 맨 뒷줄에 앉았다.
탁기문이 먼저 섰다. 흰 셔츠에 넥타이까지 맸다.
“팔월 십일일 선로 차단 기록 없습니다. 가지가 선에 닿았으믄 차단기가 떨어집니다. 안 떨어졌습니다. 그라고 발화 추정 지점 반경 이백 미터 안에 그날 오후 입산자가 있었습니다. 1972년 같은 골 화재 때도 원인은 입산자 실화 추정이었습니다. 저희 소견은 입산자 실화 가능성입니다.”
뒤쪽에서 누가 헛기침을 했다. 점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현이 섰다. 다현은 손에 종이를 들지 않았다.
“산림청 소견은 송전선 수목 접촉에 의한 발화입니다. 철탑 삼 호기 아래 소나무의 우듬지 가지 셋이 화재 이후에 잘렸습니다. 잘린 면에 그을음이 없고, 송진이 굳지 않았습니다. 잘린 높이에서 전선까지는 삼십 센티미터가 안 됩니다. 그리고 잘리기 전에 찍힌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형사가 수첩을 펴고 덧붙였다.
“곽점례 씨 댁과 밭을 두 번 봤습니다. 담배도 성냥도 없었습니다. 그날 밭에서 고추를 따셨다는 이웃 진술이 셋입니다.”
사진이 위원장 앞으로 건너갔다. 원종태가 돋보기를 꺼내 한참 들여다봤다. 가지 끝 한 뼘이 까맸다.
“날짜가 팔월 십이일이네요. 근데 조사관, 날짜 박히는 카메라는 날짜를 아무나 바꿉니다. 찍은 사람이 누굽니까?”
탁기문이 웃었다.
“우리 반 아들은 카메라 없습니다. 산에서 사진 찍을 일이 없어서요.”
서준이 일어섰다. 맨 뒷줄에서 일어섰는데,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을 긁는 소리가 대회의실 끝까지 울렸다. 예순 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돌아봤다.
“제가 찍었습니다. 전력공사 태백지점 선로보수반 수습 임서준입니다.”
탁기문의 웃음이 멈췄다. 주름이 그대로 굳었다.
“팔월 십이일 새벽 네 시에 과장님 지시로 삼 호기 밑에 올라갔습니다. 과장님이 까만 끝만 잘라서 태우라 캤습니다. 태우기 전에 한 장 찍었습니다. 제 카메라입니다. 필름 통에 제 이름 적혀 있습니다.”
“니가 니 맘대로 톱질한 거 아이가?”
탁기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서준이 대답하기 전에 서경이 일어섰다. 의자가 한 번 더 바닥을 긁었다.
“과장님, 구월 이십사일 삼거리 숙소 앞 드럼통에서 선로 순시 일지 태우셨지요. 제가 봤습니다. 표지 글자가 탈 때까지 봤습니다.”
“누나라서 편드는 기지.”
“제 동생이 자기 잘릴 거 알고 나왔습니다. 편드는 사람이 자기 목을 먼저 내놓습니까?”
대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형광등만 윙윙거렸다. 창밖에서 군청 마당 은행나무가 바람에 한 번 흔들렸고, 열린 창틈으로 은행 냄새가 들어와 커튼의 담배 냄새를 밀어냈다. 서경은 그 냄새 속에서 제 심장이 귀까지 올라와 뛰는 것을 들었다. 무서운 것이 그 자리에서 왔다. 옆에 서준이 서 있어서였다. 원종태가 돋보기를 내려놓고 탁기문을 봤다. 탁기문은 넥타이를 한 번 매만지더니, 지점장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지점장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원종태가 마이크를 당겼다.
“오늘은 1994년 팔월 화재만 봅니다. 1972년 일은 이번 조사 범위가 아닙니다.”
그때 맨 끝자리에서 의자가 밀렸다. 변진호 계장이 일어서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헬기 값을 두드리던 계산기도, 경고장 봉투도 없었다.
“위원장님. 한마디 하겠습니다.”
“계장님은 면 산림계 소견만.”
“소견입니다. 1972년 칠월 이십육일 제3초소 근무자 변진호입니다.”
원종태가 입을 다물었다. 탁기문이 그쪽을 돌아봤다. 뒤쪽에서 점례가 처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등을 곧게 폈다.
“그날 오후 두 시에 곽점례 씨가 초소에 왔습니다. 골에서 연기가 선다 캤습니다. 제가 돌려보냈습니다. 아는 사람이 봐야 된다고요. 두 시간을 봤습니다. 네 시에 무전 쳤습니다. 그사이에 윤만석 씨가 불 끄러 골에 들어갔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계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마이크 없이도 대회의실 끝까지 갔다.
“조사반이 입산자 실화 추정이라고 적을 때 제가 그 방에 있었습니다. 제가 말을 안 했습니다. 말하면 제 두 시간이 적히니까요. 이십이 년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올해도 진술서 고치라 캤습니다. 같은 까닭입니다.”
계장이 잠깐 숨을 골랐다.
“같은 골입니다. 같은 전선입니다. 같은 칠월, 팔월입니다. 그때 두 시간이 이번에 칠 분이 됐습니다. 한 사람 장대 하나 보고 올린 감시원 덕분에요. 그 두 시간이 이 조사 범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라믄 다음에 누가 또 저처럼 두 시간을 봅니다.”
계장이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원종태가 한참 뒤에 물었다.
“계장님, 이 진술 하시면 징계 받으시는 거 아시지요?”
“압니다. 정년까지 열두 해 남았습니다. 그거하고 바꾸겠습니다.”
원종태가 뒤쪽을 봤다.
“곽점례 씨, 한 말씀 하시겠습니까?”
점례가 일어섰다. 무릎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는데, 일어서는 동안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길게 할 말 없소. 먼저 본 사람이 곽점례고, 먼저 들어간 사람이 윤만석이오. 그거만 적어 주소. 둘 다 불 낸 사람 아이오.”
원종태가 볼펜을 들어 무언가를 적었다.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었다. 적고 나서 한참 그 종이를 내려다봤는데, 그 얼굴이 청문을 시작할 때와 달랐다. 사진 날짜를 믿지 않던 사람이 사람 이름 두 개는 그 자리에서 받아 적었다.
점례가 앉았다. 순이가 할아버지 점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박수를 치려다가 할아버지 손에 붙잡혔다.
원종태는 결과를 한 달 뒤에 내겠다고 했다. 청문은 거기서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서는 동안 탁기문은 앉은 채 서류를 정리했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서준이 서경의 손을 잠깐 쥐었다가 놓았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복도에서 탁기문이 서준을 불러 세웠다. 서경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걸 봤다. 탁기문은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예.”
“니 그 카메라, 회사 돈으로 산 필름 아이제?”
“제 돈입니다.”
탁기문은 뭔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고 지점장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서준이 서경 쪽으로 돌아섰다. 웃고 있었는데 턱이 떨렸다.
“누나, 엄마한테 떡은 아직 하지 마라 캐라.”
“내가 할게. 떡.”
“누나는 떡 못 하잖아.”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배워서 할게.”
*
그날 저녁 서초 권씨가 무전으로 서경을 찾았다.
“임씨, 청문 얘기가 벌써 군내에 다 돌았다. 오늘 해 질 때 내가 쌍안경으로 세어 봤는데, 우리 초소 둘레만 장대가 여든 넘는다. 다른 초소들도 세어 보라 캤다. 다 합치믄 삼백은 넘겠다.”
서경은 무전기를 쥐고 마당에 나섰다. 해가 진 골짜기마다 남포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너래리 열아홉을 지나, 네 마을을 지나, 그 너머 이름 모를 능선 아래에서도 불빛이 올라왔다.
그 불빛 사이로 손전등 하나가 삼거리 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삽짝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변진호 계장이 마당에 들어섰다.
시월 밤 마당은 서늘했다. 장독대 옆 감나무에서 감 하나가 떨어져 흙에 둔하게 박혔고, 부엌 아궁이에서 솔가지 타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서경은 무전기를 쥔 채 사랑방 문턱으로 물러나 앉았고, 다현이 그 옆에 붙어 앉았다. 둘 다 일어나지 않았다.
점례가 부엌에서 나왔다. 둘이 마당 가운데서 서로를 봤다. 점례가 먼저 평상을 가리켰다.
“앉으소.”
계장이 앉았다. 앉아서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점례가 물을 한 그릇 떠다 줬다. 계장은 받아서 마시지 않고 두 손으로 들고만 있었다. 사발 안에서 물이 조금 흔들렸다.
“그날 제가 두 시간 늦었습니다.”
“알고 있소.”
“죄송합니다.”
“나는 그 두 시간보다 다른 기 더 오래갔소. 아는 사람이 봐야 된다 카던 거. 나는 그 산에서 스물여덟 해 살았소. 그 산을 내가 모르믄 누가 아오.”
계장이 고개를 숙였다. 사발을 쥔 손등에 핏줄이 섰다.
“늦었소.”
“압니다.”
점례가 계장 손에서 사발을 가져갔다. 그 물을 자기가 마셨다. 다 마시고 사발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왔으니 됐소. 다음에는 빨리 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