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07자) · 서경 · 1995년 3월 1일
이상 없음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비는 시월 십사일 새벽에 왔다.
칠월 오일 이후 백 하루 만이었다. 처음에는 점례네 양철 처마에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날이 밝을 무렵에는 마당 흙이 패일 만큼 굵어졌다. 마른 흙이 처음 젖을 때 나는 냄새가 온 마당에서 한꺼번에 일어났다. 쇠 녹 같기도 하고 볶은 콩 같기도 한 그 냄새에 서경은 잠이 깼고, 사랑방 문을 열자 점례가 벌써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비를 보고 있었다.
“왔네.”
“왔습니다.”
“백 일 넘게 안 오다 오믄 꼭 저래 한꺼번에 온다. 사람 말도 그렇다. 이십이 년 안 하다가 한 달 새 다 했다 아이가.”
오전에 다현이 우비를 입고 올라왔다. 남해 묘포장 발령이 월요일이라고 했다. 가기 전에 초소에 두고 온 장비를 챙겨야 한다고 해서, 둘은 빗속에 동초로 올라갔다. 마지막 사십 분 비탈은 흙이 미끄러워 둘 다 두 번씩 넘어졌고, 두 번째에 서경이 다현을 붙잡으려다 같이 주저앉았다. 둘은 진흙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한참 웃었다.
초소 지붕은 양철이라 빗소리가 컸다. 한 평 반 안에서 둘이 그 소리를 들었다. 우는 창은 오늘은 울지 않았다. 빗물이 유리 위로 줄줄이 흘러내려 능선이 녹은 그림처럼 번져 보였다.
“이제 안 봐도 되겠네요.”
서경이 쌍안경을 판자 위에 내려놓았다.
“비 오는 날은 안 봅니다. 올해 처음입니다.”
다현은 창틀 구석에서 매미 허물 하나를 찾아냈다. 속이 빈 갈색 껍데기가 창틀 나사에 발톱을 건 채 매달려 있었다.
“이거 막내 거 아닙니까?”
“막내는 제일 늦게 그치는 놈입니다. 허물로는 모릅니다.”
“그럼 제가 막내라고 치겠습니다.”
다현은 허물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는 장비를 챙기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젖은 우비를 벗고,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판자 벽에는 해지 통지와 노란 딱지가 아직 나란히 붙어 있었다.
“임 선생.”
“네.”
“여름 끝났습니다.”
서경이 다현을 봤다. 양철 지붕 소리가 둘 사이를 가득 채웠고, 그래서 서경은 한 뼘을 더 다가가야 말이 들렸다.
“그럼 하나 묻겠습니다. 왜 저였습니까? 사월에 무전 들으셨다고 했지요. 목소리 하나 듣고 여기까지 자원하셨습니까?”
다현이 한참 빗소리를 들었다.
“그날 지대에서 다들 웃었습니다. 웃음소리가 다 끝날 때까지, 그 목소리는 무전을 안 놓았습니다. 버튼 누르고 계속 기다렸어요. 아무도 안 들어 주는데 끝까지 누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삼 년 동안 보고서를 내고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있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 손을 보고 싶었습니다.”
서경이 제 손을 내려다봤다. 무전 버튼을 누르던 오른손 엄지에 굳은살이 앉아 있었다.
“저도 하나 물어도 됩니까? 여름 끝났으니까요.”
“네.”
“사월 이후로 처음 웃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뒤로는 몇 번 웃으셨습니까?”
“세다가 그만뒀습니다. 할 게 없어서 세던 건데, 할 게 생겨서요.”
다현이 손을 뻗었다. 서경의 굳은살 앉은 엄지 위에 제 손바닥을 얹었다. 이번에는 둘 다 그걸 말했다.
“한 뼘이 없어졌네요.”
“원래 그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철 지붕 위로 비가 더 세게 왔다. 둘은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손을 그대로 두었다.
*
다현은 월요일 아침 첫 버스로 떠났다. 삼거리 정류장에 점례와 순이가 따라 나왔다. 비 그친 뒤라 길가 웅덩이마다 하늘이 담겨 있었고, 선로반 숙소 컨테이너 앞 드럼통은 빗물이 반쯤 차서 더는 아무것도 태울 수 없었다.
점례가 신문지에 싼 것을 다현 손에 쥐여 주었다. 밤이었다. 전날 저녁에 삶아서 아직 따뜻했다.
“남해 가믄 이런 밤 없다. 까 무라.”
“할머니, 저 남해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어데 가든 까 무라.”
순이가 다현의 우비 자락을 잡았다.
“언니 또 와요? 안 오면 내 장대에 윗너래 속치마 단다.”
다현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점례가 그 등을 두 번 두드렸다. 버스가 고개를 넘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경은 정류장 표지판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은 초소에서 다 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다현이 돌아서서 서경의 배낭 어깨끈을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딱지가 붙어 있던 자리였다.
“거기 이제 없습니다. 초소 벽에 붙여 뒀습니다.”
“알아요. 봤습니다.”
버스가 흙탕물을 튀기며 떠났다. 창에 다현의 손바닥이 잠깐 붙어 있다가 굽이를 돌며 사라졌다.
*
결과는 십일월 십오일에 나왔다. 이장 성만호가 회관 확성기로 읽었다.
“아아, 마이크 시험. 아아, 마이크 시험. 아아. 에, 도 합동조사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원인은 송전선 수목 접촉에 의한 발화였다. 최초 발견 칸에는 곽점례, 17시 12분이라고 적혔다. 부록에 1972년 동일 구간 화재 재검토가 한 장 붙었고, 거기에 입산자 윤만석은 진화 중 사망, 실화 근거 없음이라는 줄이 들어갔다. 이장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는 마이크를 입에서 떼고 맨 목소리로 읽었는데, 회관 안에서 누가 코를 크게 풀었다. 우물가 집 할아버지였다.
점례는 회관 뒷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제 이름이 확성기에서 나올 때 점례는 눈을 감았고, 만석의 이름이 나올 때 눈을 떴다. 그러고는 옆에 앉은 순이 손을 잡았다. 순이가 영문도 모르고 그 손을 꼭 마주 쥐었다. 서경은 문간에서 그 두 손을 봤다. 일흔하나와 열한 살의 손이 똑같이 흙물이 들어 있었다.
전력공사는 관할 백사십 킬로 벌채를 내년 사월까지 마치라는 권고를 받았다. 권고라고 적혀 있었지만 원인이 적힌 권고였다. 탁기문은 증거인멸로 입건되어 직위에서 물러났다. 서준은 해고 통지를 받고 사흘 뒤 청암 산림조합 벌채반에 들어갔다. 첫 일이 무너미골 철탑 밑 나무를 베는 거였다. 엄마는 떡을 했다. 정규직 떡은 아니었지만, 떡은 아무 날에나 하면 된다고 했다.
변진호 계장은 감봉 석 달을 받고 산림계장에서 물러나 면사무소 창고 담당이 됐다. 창고에 쌓인 초소 일지 이십이 년 치에 비닐을 씌우는 게 첫 일이었다. 1972년 묶음은 제일 위 칸에 올렸다.
다현은 남해 묘포장에 가지 않았다. 휴직계를 냈다. 어디로 가는지는 편지에도 안 적었다. 대신 편지 끝에 「봄에 무전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만 적었고, 서경은 그 줄을 여러 번 읽었다.
*
그 겨울 서경은 점례한테서 떡을 배웠다. 쌀을 불리는 시간, 시루에 김이 오르는 소리, 찐 떡을 안반에 놓고 떡메로 칠 때 손바닥에 올라오는 울림을 하나씩 익혔다. 처음 친 떡은 반이 설었고, 점례는 그걸 한 입 먹어 보더니 「니는 코는 좋은데 손은 멀었다」고 했다. 두 번째 떡은 서준이 태백 집에 가져갔다. 엄마가 전화로 울었다고 했다.
십이월에 서경은 면사무소 창고에 한 번 갔다. 변진호가 창고 바닥에 앉아 일지 묶음마다 비닐을 씌우고 있었다. 계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니 얼굴이 오히려 편해 보였다. 화분 셋은 창고 창가로 옮겨 와 있었는데, 셋 다 잎이 초록으로 돌아와 있었다.
“햇볕이 이쪽이 더 잘 든다.”
변진호가 1972년 묶음을 가리켰다. 제일 위 칸,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였다.
“비어 있는 거를 누가 또 봐야 된다 캤다메. 할매가.”
서경은 그 묶음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비닐 너머로 갈색 표지가 보였다. 두 시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채울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빈자리를 아는 사람이 이제 여럿이었다.
*
1995년 삼월 일일, 봄 산불 감시 첫날이었다. 서경은 전날 오후에 올라왔다. 지게에 이십 리터 물통을 얹고 마지막 사십 분 비탈을 올랐는데, 이번에는 한 번만 앉았다. 녹다 만 눈이 그늘진 비탈에 희끗희끗 남아 있었고, 발밑 흙은 얼었다 녹았다 하며 부풀어 신발 밑창에 서걱거렸다.
청암군 산불감시 지침이 이월에 바뀌었다. 제7조 둘째 줄이 새로 들어갔다. 「주민 장대 신호는 감시원 육안 확인 없이 무전 보고할 수 있다.」 계약 해지 사유가 예산 사정인 사람은 재응시할 수 있다는 줄도 공고에 붙었다. 서경은 응시했고, 다시 동초에 올랐다.
새벽 다섯 시 반, 초소 유리가 울었다. 삼월 산바람은 차서 창틀이 칠월보다 더 헐거웠고, 서경은 넉 달 만에 듣는 그 소리가 반가워서 나사를 조이지 않고 그냥 두었다. 판자 벽에는 작년 해지 통지가 누렇게 바랜 채 붙어 있었고, 그 옆 노란 딱지 사백열세 번도 그대로였다.
여섯 시 정시 무전이 울렸다.
“동초, 동초. 여기 지대.”
배 주사였다.
“동초입니다. 이상 없습니다.”
“동초, 오늘 아침 군청 집계 들어왔다. 장대 등록 사백열둘. 군내 전부다. 니 아나, 그 숫자?”
서경은 판자 벽을 봤다. 작년 무너미골에서 죽은 소나무가 사백열둘이었다. 다현이 딱지를 한 그루에 한 장씩 붙였고, 사백열세 번째 딱지는 서경의 배낭에 붙었다가 이 벽으로 왔다.
“압니다.”
“그라믄 됐다. 그라고 동초, 올해는 매미 보고는 안 받는다. 미리 말해 둔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안다. 누가 했는지 안다. 이상.”
배 주사의 목소리 끝에 웃음이 묻어 있었다. 작년 여름 내내 한숨으로 끝나던 무전이었다.
서경은 쌍안경을 들었다. 해가 동쪽 능선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무너미골 철탑 밑이 휑하게 비어 있었다. 서준이네 벌채반이 지난주에 끝낸 자리였다. 그 아래 점례네 밭 끝에 장대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장대가 누워 있으면 아무 일도 없다. 점례가 밭둑에 서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서경이 쌍안경으로 보는 걸 아는지 굽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초소를 가리켰다.
서경은 쌍안경을 내리고 맨눈으로 산을 봤다. 삼월 새벽 공기에서는 아직 눈 냄새가 났고, 그 밑에 베어 낸 소나무 밑동에서 올라오는 송진 냄새가 달큼하게 깔려 있었다. 타는 냄새가 아니라 잘린 냄새였다. 서경은 그 차이를 코로 알았다.
무전기가 한 번 더 잡음을 냈다. 지대 채널이 아니었다. 서초 채널이었다. 능선을 따라 십이 킬로 건너, 서쪽 능선 끝에서 목소리가 들어왔다. 버튼을 정확히 누른 목소리였다.
“동초, 동초. 여기 서쪽입니다.”
서경이 마이크를 쥐었다. 창밖으로 서쪽 능선이 보였다. 그 끝에 서초가 점만 하게 앉아 있었다. 거기서도 이쪽은 점만 하게 보인다고, 작년 가을에 권씨가 무전으로 말했었다.
“서초 추가 보고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오늘 매미도 없고, 여긴 안 우는 창입니다.”
서경은 버튼을 누른 채 한참 웃었다. 웃음소리가 무전을 타고 능선을 건너갔다. 다 웃고 나서도 버튼을 놓지 않았다.
“동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