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62자) · 다현 · 10월 4일
거래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서울 청량리 산림청 본청 삼 층 산림보호과는 창문이 홍릉 숲 쪽으로 나 있었다. 시월 초인데도 한낮 사무실은 더웠고, 천장 선풍기가 서류 더미 위 종이 귀퉁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썩이게 했다. 창밖 숲에서는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이따금 났다. 너래리에서 버스 두 번, 기차 한 번을 갈아타고 여덟 시간 걸려 올라온 다현에게는 그 소리가 무너미골 밤에 나무 갈라지던 소리처럼 들렸다.
홍석구 과장은 다현이 들어서자마자 의자를 권하고, 자기는 앉지 않고 창가에 섰다.
“노 조사관, 삼 년 동안 보고서 여섯 번 썼제?”
“일곱 번입니다. 이번 게 일곱 번째입니다.”
“그래, 일곱 번. 니 보고서는 내가 다 읽었다. 여섯 번 다 첫 장만.”
과장은 그 말을 자랑처럼 했다. 책상 서랍에서 사과 한 알과 과도를 꺼내 깎기 시작했는데, 껍질이 한 번도 안 끊어지고 길게 늘어졌다. 다현은 그 껍질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과장이 사과를 네 쪽으로 갈라 한 쪽을 내밀었다.
“그거 오늘 된다.”
과장이 책상 위 서류철을 다현 앞으로 밀었다. 전력공사 본사 공문이었다. 「송전선로 수목 이격 특별정비 계획」. 관할 구간 백사십 킬로 전부, 내년 사월까지, 예산 십이억.
다현은 첫 장을 두 번 읽었다. 삼 년 동안 지도 위에 볼펜으로 그어 온 선이 거기 표로 적혀 있었다. 철탑 번호, 구간 길이, 벌채 수량. 무너미골 삼 호기가 맨 위였다.
“본사 안전처장하고 내가 어제 점심 먹었다. 이거 다 해 준단다. 대신 조건이 하나다.”
과장이 창에서 돌아섰다.
“도 합동조사 원인 소견을 「원인 불명」으로 낸다. 입산자 실화 가능성 배제 못 함, 거기까지. 산림청은 가지 잘린 거 문제 안 삼는다. 전력공사는 그 대신 이 계획서에 도장 찍는다.”
“발화 원인이 전선이면 어차피 베야 합니다.”
“원인이 전선으로 확정되믄 소송 들어온다. 영주, 봉화, 청암 산불 난 데마다 전선 밑이다 카고 들고일어난다. 그라믄 전력공사는 끝까지 간다. 대법원까지 가믄 오 년이다. 그 오 년 동안 나무 한 그루도 안 베진다. 조사관, 니 나무 베자고 삼 년 쓴 거 아이가. 오늘 베진다.”
다현은 서류철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종이가 선풍기 바람에 들썩이다가 손바닥 밑에서 멈췄다.
“곽점례 할머니는요?”
“할매 이름은 안 나온다. 원인 불명이니까 실화자도 없다. 경찰도 덮는다.”
“1972년 윤만석 씨 이름은요? 입산자 실화 추정으로 이십이 년째 남아 있습니다.”
“그거는 이십이 년 전 일이다. 이번 조사 범위가 아이다.”
“임서준이라는 수습이 가지를 자르기 전에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과장의 눈썹이 한 번 움직였다. 그러고는 도로 제자리로 갔다.
“그 수습 정규직 심사가 이달이제? 거래 받으믄 톱질 얘기는 아무도 안 한다. 그 아도 산다. 니가 그 사진 들고 청문 나가믄 그 아가 제일 먼저 잘린다. 과장 지시였다 캐도 증거는 그 아 손에 있고.”
다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과장이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노 조사관, 니 좋은 연구자다. 근데 연구자는 결과를 가져와야 된다. 나무가 베지는 기 결과다. 이름은 결과가 아이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청문 전날까지 산림청 의견서 가져온나. 이 거래 안 받으믄 니는 연구직 못 한다. 남해 묘포장에 자리 하나 비어 있다.”
*
시월 오일 밤, 점례네 평상에서 다현은 서경에게 그 서류철을 보여 줬다. 점례는 방에 들어가 있었고, 호롱불 하나가 평상 끝에서 흔들렸다. 서경은 공문을 끝까지 읽고 나서 한참 호롱불만 봤다.
“백사십 킬로요.”
“네. 전부입니다. 내년 사월이면 다음 불은 없습니다. 다음 점례 할머니도 없고, 다음 만석 할아버지도 없습니다.”
“지금 할머니는요?”
“이름이 안 나옵니다. 경찰도 안 부릅니다.”
“서준이는요?”
다현이 숨을 한 번 골랐다.
“서준 씨도 안 나와도 됩니다. 톱질 얘기는 아무도 안 합니다. 정규직도 삽니다. 어머님 떡도 하시고요.”
서경의 손이 평상 모서리를 쥐었다. 다현은 그 손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서경에게 이 거래는 동생을 살리는 거래였다.
“그럼 할머니 이름 하나만 빠지면 다 좋은 겁니까?”
다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경이 대답을 대신했다.
“네, 라고 하시려던 거죠.”
“틀린 말입니까? 나무가 베지고, 서준 씨가 살고, 할머니가 안 불려 가는데요?”
“만석 할아버지는 이십이 년째 불 낸 사람입니다. 할머니가 회관에서 그 이름 부르신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이 거래 받으면 그 이름이 또 그 자리에 남습니다. 불명이라고 적으면, 사람들은 다음에도 불명 자리에 제일 가까이 있던 사람을 넣습니다.”
“그럼 뭘 어떻게 합니까? 저는 삼 년 동안 아무도 안 들어 줬습니다. 이번에 처음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조사관님은 종이만 믿으시잖아요. 종이에 나무 베라고 적히면 그걸로 끝나는 분이잖아요.”
다현이 일어섰다. 평상이 삐걱거렸다. 개가 평상 밑에서 고개를 들었다.
“종이 말고 뭘 믿으라고요? 임 선생 코요? 사월에 그 코 믿은 사람 저 하나였습니다.”
말이 나가고 나서 다현은 그 말을 도로 삼키고 싶었다. 서경의 얼굴이 호롱불 쪽으로 돌아갔다. 한참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현은 서류철을 가방에 넣고 삽짝으로 걸어갔다.
삽짝 기둥 옆 어둠 속에 점례가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갔던 사람이 언제 나왔는지 몰랐다.
“다 들었다.”
“할머니.”
“나무 베라.”
점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달빛에 굽은 손가락이 삽짝 기둥을 짚고 있었다.
“내 이름은 괜찮다. 나는 회관에서 불렀다. 동네가 들었다. 그걸로 됐다. 종이에 안 적혀도 이제 안 잊는다. 나무 베믄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안 생긴다 카믄, 그기 낫다.”
다현은 점례를 봤다. 제 이름을 넣으라던 사람이 이번에는 제 이름을 빼라고 하고 있었다. 두 번 다 이 사람이 골랐다.
“할머니, 그럼 장대는요?”
점례가 대답하지 않았다.
다현은 혼자 삼거리까지 걸어 내려갔다. 손전등을 켜지 않았다. 달이 밝아 길이 희게 보였고, 논두렁 개구리는 시월이라 다 들어가고 풀벌레만 남아 있었다. 선로반 숙소 앞을 지날 때 컨테이너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났고, 그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다현은 그게 서준인지 보려고 하지 않았다. 보면 거래를 받을 것 같았다.
*
시월 육일, 다현은 혼자 동초에 올라갔다. 무릎이 다 나은 뒤 처음 오르는 비탈이었다. 마지막 사십 분에서 두 번 앉았다. 서경은 넉 달 전에 세 번 앉았다고 했다.
초소는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여니 한 달 가까이 닫혀 있던 한 평 반에서 먼지와 마른 솔잎과 양철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고, 그 밑에 아주 희미하게 서경이 쓰던 모기향 냄새가 남아 있었다. 판자 벽에 「사업 예산 사정」이라고 적힌 계약 해지 통지가 압정으로 박혀 있었다. 다현은 그 종이를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그 옆에 사백열세 번이 찍힌 제 노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서경이 배낭에서 떼어 여기 붙여 두고 갔다.
다현은 가방에서 새 건전지를 꺼내 무전기에 끼웠다. 켜자마자 잡음이 났고, 그 잡음이 반가웠다.
“지대, 지대. 여기 동초입니다.”
한참 조용하다가 배 주사 목소리가 들어왔다.
“동초? 동초 비었는데 누고?”
“산림청 노다현입니다. 연습 아닙니다.”
“조사관님이 거기 와 있노. 이상 있나?”
“이상 없습니다. 오늘은 매미도 없습니다.”
무전 너머에서 배 주사가 웃는 소리가 났다. 한숨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다현이 그 사람 웃음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동초, 임 감시원 없으니까 무전이 심심하다. 이상.”
다현은 쌍안경을 들었다. 우는 창이 울었다. 산 아래로 해가 기울어 골짜기마다 그늘이 차오르고 있었다.
장대가 보였다. 너래리 열아홉, 그 뒤 갈골과 새터와 도래와 윗너래. 그 너머, 다현이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마을들에도 장대가 서 있었다. 저녁 남포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다현은 세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서초 권씨가 무전에서 말하던 숫자와 맞았다. 상운면 일곱 개 리, 백스물여섯.
백스물여섯 개의 마당에서 사람들이 먼저 보면 가리키겠다고 했다. 이름을 걸고.
다현은 쌍안경을 내렸다. 거래를 받으면 나무는 베진다. 그리고 원인 칸에는 「불명, 입산자 실화 가능성」이 남는다. 다음에 저 백스물여섯 가운데 누군가 먼저 보고 장대를 올리면, 그 사람이 제일 가까이 있던 사람이 된다. 장대는 원인이 이름으로 적혀야 선다. 불명 위에는 안 선다.
여섯 번, 일곱 번 쓴 보고서에 한 번도 적지 못한 문장이 그제야 떠올랐다. 나무를 베는 것은 산을 지키는 일이고, 먼저 본 사람을 지키는 것은 다음에 먼저 볼 사람을 지키는 일이었다. 둘 중 하나만 고를 수는 없었다.
*
시월 칠일 아침, 다현은 너래리 이장 집 안방에서 전화기를 빌렸다. 이장 부인이 보리차를 내오고 방문을 닫아 주었다. 교환을 거쳐 서울 청량리로 연결되는 데 오 분이 걸렸다.
“과장님, 노다현입니다.”
“그래. 의견서 됐나?”
“안 받겠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선풍기 소리가 들렸다.
“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아나?”
“압니다. 청문에 사진 들고 나가겠습니다. 원인 소견은 송전선 수목 접촉으로 쓰겠습니다. 1972년 동일 구간 화재 재검토도 넣겠습니다.”
“나무 한 그루도 안 베질 수 있다.”
“베지게 하겠습니다. 원인이 적혀야 베집니다. 오 년이 걸려도요.”
“남해 묘포장이다.”
“압니다. 거기도 나무는 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다현은 수화기를 한참 쥐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이장 부인이 문을 열고 보리차를 한 잔 더 부어 줬다.
“잘했소. 우리 영감한테는 말하지 마소.”
점례네 삽짝을 넘어가니 서경이 평상에 앉아 있었다. 밤새 안 잔 얼굴이었다. 다현이 평상 끝에 앉았다. 둘 사이가 두 뼘이었다.
“안 받았습니다.”
서경이 다현을 봤다. 입술이 한 번 움직였다가 닫혔다. 그러고는 말 대신 평상 위에서 엉덩이를 옮겼다. 한 뼘이었다.
“어젯밤에 제가 한 말이요. 종이만 믿는다고 한 거.”
“맞는 말이었습니다.”
“아니요. 저 솔직히 받으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서준이 때문에요. 그 말을 제 입으로 못 해서 조사관님한테 화를 냈습니다.”
다현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평상 위 서경의 손 옆에 제 손을 놓았다. 닿지는 않았다. 새끼손가락 하나 사이였다. 부엌에서 점례가 밥 짓는 냄새가 나왔고, 개가 꼬리로 평상 다리를 두 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