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28자) · 서경 · 9월 20일
장대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계약 해지 통지는 구월 이십일에 왔다. 누런 봉투 안에 종이 한 장이었고, 사유 칸에 「사업 예산 사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칠 분 이야기도, 장대 이야기도 어디에도 없었다.
서경은 그 종이를 초소 판자 벽에 압정으로 박아 두고 내려왔다. 배낭 하나에 넉 달 반이 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에 우는 창에 손바닥을 한 번 대 봤다. 구월 한낮 유리는 여전히 뜨거웠고, 손바닥을 떼자 땀 자국이 손 모양대로 남았다가 천천히 지워졌다.
동초는 비었다. 서초 감시원이 무전으로 겸한다고 했다. 서초에서는 무너미골이 옆으로만 보였다. 서경은 비탈을 내려가면서 그걸 몇 번이고 생각했다.
점례가 사랑방을 내줬다. 흙벽이라 못이 안 박혀서 서경은 배낭을 벽에 기대 세워 두었고, 밤마다 그 배낭이 스르르 넘어졌다. 다현은 면 소재지 여인숙에 방을 잡았다. 도 합동조사가 끝날 때까지 산림청 의견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현은 저녁마다 여인숙에서 너래리까지 사십 분을 걸어 올라왔다. 무릎 실밥을 뽑은 뒤로 절뚝임이 조금 남았는데, 그 걸음으로 삽짝을 넘어와 평상 끝에 앉았다. 점례가 방에 들어가 불을 끄면 마당에는 둘만 남았다. 별이 많았다. 초소에서는 사방이 유리라 별이 유리에 비친 제 얼굴 너머로만 보였는데, 마당에서는 고개를 젖히면 그대로 쏟아졌다.
“초소에 안 계시니까 이상합니다.”
“뭐가요?”
“한 평 반에 있을 때는 한 뼘이었는데, 이 넓은 마당에서는 어디까지 앉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경이 평상 위에서 엉덩이를 한 뼘 옮겼다. 다현 쪽으로.
“이만큼이요.”
다현이 웃었다. 소리 없이 웃어서 어깨만 흔들렸다. 개가 평상 밑에서 코를 골았다. 둘은 여름이 끝나면 묻겠다던 말을 서로 기억하고 있었고, 둘 다 아직 여름이 안 끝났다고 치고 있었다.
*
서경은 걸었다.
너래리 열아홉 집에 장대가 섰다고 해서 무너미골이 다 보이는 건 아니었다. 골은 너래리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등은 이웃 네 마을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갈골, 새터, 도래, 윗너래. 그 네 마을에서는 골 뒤쪽 능선과 전선 철탑 둘이 보였다.
구월 이십이일에 갈골부터 갔다. 순이가 따라왔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책가방을 멘 채 뛰어와서, 제가 조수라고 했다.
갈골 이장은 서경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러니까 우리 마당에 장대를 세워 놓고 흰 게 서믄 천을 올리라, 그 말이제?”
“네. 초소가 비어 있어서 지금은 서초가 봅니다. 서초에서는 골 뒤가 안 보입니다.”
“흰 게 안개믄?”
“그때는 제가 헛거 했다 칼게요.”
순이가 끼어들었다. 갈골 이장이 순이를 내려다봤다.
“니는 누고?”
“너래리 두 번째 장대요.”
갈골 이장이 웃다가 담배 연기에 사레가 들렸다. 한참 기침을 하고 나서 헛간에서 장대를 끌어냈다.
서경은 마을마다 같은 것을 가르쳤다. 안개는 아래가 두껍고 위가 얇다. 연기는 거꾸로다. 안개는 옆으로 눕고 연기는 선다. 바람이 없는데 움직이면 연기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늘 코였다.
“솔잎 타는 냄새는 달큼하고 맵습니다. 송진이 먼저 끓어서요. 그 속에 다리미 오래 올려 둔 천 냄새가 섞이면 전선입니다.”
도래 마을 노인 하나가 그 말에 무릎을 쳤다.
“내 그 냄새 안다. 팔십구 년에 맡았다. 저 철탑 밑에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왜요?”
“말하믄 내가 불 낸 사람 될까 봐. 그해에 골에서 흰 게 또 섰는데, 한 시간 있다가 없어지더라. 안개였는지 불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안 가 봤으니까. 그거를 오 년 동안 생각했다.”
서경은 도래 마을 마당 한가운데서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점례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이 골짜기 사람들은 이십이 년 동안 먼저 보고, 먼저 맡고, 입을 다물었다.
새터에서는 장대를 세우다가 할머니 하나가 허리를 삐끗했고, 윗너래에서는 장대 끝에 흰 천 대신 흰 속치마를 달아서 온 동네가 뒤집어졌다. 속치마 임자인 윗너래 반장댁은 「흰 거 올리라 캐서 제일 흰 거 올렸다」고 버텼고, 반장은 마당에서 속치마를 끌어내리려다 장대가 너무 높아 못 내리고 사다리를 가지러 갔다. 그사이 동네 사람이 다 나와서 구경했다. 서경은 웃음을 참느라 쌍안경으로 딴 데를 보는 척했는데, 쌍안경 속에서도 속치마가 펄럭였다. 순이는 그 속치마를 가리키며 사흘 동안 웃었다. 이십팔일 저녁까지 네 마을에서 스물두 집이 장대를 세웠다. 너래리 열아홉에 스물둘, 마흔하나였다.
서초 감시원 권씨가 무전으로 서경을 찾았다. 점례네 사랑방에 앉아 이장 집에서 빌린 무전기로 받았다.
“임 감시원, 아이지 인자 임씨. 내가 쌍안경으로 장대 세어 봤다. 마흔하나 맞나?”
“맞습니다.”
“골 뒤쪽 철탑 밑은 이제 내가 본다. 장대만 보믄 되니까. 내 눈으로 확인 안 해도 올린다. 계장이 뭐라 카믄 내가 들을게.”
무전이 끊겼다. 서경은 무전기를 쥔 채 한참 앉아 있었다. 사월에 그 무전기 너머에서 웃던 목소리들 가운데 권씨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이제 장대를 세고 있었다. 확인 안 해도 올리겠다는 말은 계약서 어디에도 없는 말이었고, 권씨는 그 말을 제 계약을 걸고 했다. 서경은 교환대 앞에 앉아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쪽 선을 뽑아 저쪽 구멍에 꽂으면 모르는 두 사람이 이어지던 그 손맛이, 지금 손바닥 안 무전기에서 났다.
*
탁기문이 서경을 찾아온 것은 이십사일 오후였다. 서경이 도래 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에 삼거리 선로반 숙소 앞을 지나는데, 차양 밑 평상에 탁기문이 앉아 있었다. 혼자였다. 드럼통 화덕에서 뭔가가 타고 있었다. 나무가 아니라 종이 타는 냄새였고, 종이 가운데서도 두꺼운 장부 표지가 탈 때 나는 아교 냄새가 섞여 매캐했다. 화덕 가장자리에 타다 만 표지 한 귀퉁이가 걸려 있었다. 「선로 순시」라는 글자의 앞 두 자가 반쯤 남아 있다가, 서경이 보는 사이에 오그라들며 까맣게 말렸다.
“누나, 잠깐 앉으소.”
서경은 앉지 않았다. 탁기문도 굳이 권하지 않았다.
“다섯 마을에 장대 세우고 다닌다 카데요. 그거 거두소. 거두믄 서준이 정규직 추천서 내가 씁니다. 시월 심사 그걸로 끝입니다.”
“안 거두면요?”
“안 거두믄.”
탁기문이 화덕 쪽으로 턱을 들었다.
“팔월 십이일 새벽에 삼 호기 밑 가지 자른 거, 그기 서준이 혼자 한 걸로 됩니다. 과장 지시 없이 수습이 제 맘대로 톱질하고 제 맘대로 태운 걸로. 도 조사 나오믄 나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라믄 증거 없앤 사람이 서준이 됩니다.”
서경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한여름에 초소에서 무전이 죽던 순간처럼 손끝부터 식었다.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무서웠고, 옆에 아무도 없었다.
“과장님이 시키셨잖습니까?”
“증거 있습니까?”
탁기문이 웃었다. 늘 같은 주름이었다.
“누나, 나는 이 선을 이십 년 지켰습니다. 선 하나에 몇 만 집 불이 달렸습니다. 할매 한 사람 이름하고 바꿀 수 있는 기 아입니다. 누나 동생 하나하고도.”
서경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걸었다. 걸음이 자꾸 빨라졌다. 등 뒤에서 화덕 타는 소리가 났다.
*
서준이 점례네 삽짝을 넘어온 것은 이십칠일 밤이었다. 작업복 차림에 안전화도 안 벗고 왔다. 마당에 선 채 한참 들어오지 않다가, 점례가 부엌에서 나와 평상을 가리키자 그제야 앉았다.
“누나.”
서준이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서 검은 필름 통 하나를 꺼냈다.
“과장님이 누나 찾아갔다 카데. 내 혼자 한 걸로 만들 끼라고.”
“들었어.”
“그라믄 내 혼자 한 기 아이라는 거는 이거밖에 없다.”
서준이 필름 통을 평상 위, 누나와 자기 사이에 놓았다. 달빛에 알루미늄 뚜껑이 희게 빛났다.
“그날 새벽에 가지 자르고 드럼통에 넣기 전에 한 장 찍었다. 전선 닿은 끝이 까맸다. 까만 거를 태우라 카길래 찍었다. 뭘 알고 찍은 거는 아이다. 그냥 찍었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내.”
“이거 내놓으면 너 잘려.”
“안다.”
“엄마 떡은?”
서준이 웃었다. 누나와 같은 웃음이었다.
“떡은 아무 날에나 하믄 된다. 엄마가 떡 해 줄 날은 내가 또 만들면 되고.”
“와 이제 가져왔노?”
점례가 부엌 문간에서 물었다. 서준이 그쪽을 돌아보지 못하고 대답했다.
“할매가 회관에서 그 이름 부르는 거, 밖에서 들었습니다. 선로반 차 타고 지나가다가 창문 열어 놓고요. 윤만석. 그 이름이 오늘 밤까지 귀에서 안 빠집니다. 그 양반은 먼저 보고 들어갔는데, 내는 먼저 보고 태웠습니다.”
점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서경이 필름 통을 집었다. 손바닥 안에서 가벼웠다. 가볍다는 게 이상해서 서경은 그걸 한참 쥐고 있었다. 부엌에서 점례가 삶은 밤 한 소쿠리를 들고 나와 둘 사이에 놓았다.
“까 무라. 너그 남매 싸우는 거보다 밤 까는 기 빠르다.”
서준이 밤을 하나 집어 이빨로 깠다. 어릴 적 그대로였다. 서경은 그 옆얼굴을 오래 봤다.
*
필름은 이튿날 태백 읍내 사진관에서 뽑았다. 다현이 버스를 타고 같이 갔다. 사진관 주인이 암실에서 나와 사진 한 장을 건넸는데, 약품 냄새가 사진에서 비릿하게 올라왔다.
전선 아래 소나무 가지 끝이 찍혀 있었다. 가지 끝 한 뼘이 숯처럼 까맸고, 나머지는 초록이었다. 그 위로 전선이 비스듬히 지나갔다.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주황색 숫자가 박혀 있었다. 「‘94 8 12」.
다현이 사진을 오래 봤다. 여섯 번 쓴 보고서의 결론이 손바닥만 한 인화지 한 장에 있었다.
“이걸로 됩니다. 아니, 반은 됩니다.”
“반이요?”
“날짜는 누가 바꿨다고 하면 끝입니다. 찍은 사람이 나와서 자기가 찍었다고 해야 반이 마저 됩니다.”
서경은 사진관 창밖을 봤다. 태백 읍내 길에 탄가루가 아직 남아 까만 물이 고여 있었다. 반을 마저 채우려면 서준이 탁기문 앞에서 제 입으로 톱질을 말해야 했다.
돌아오는 버스는 탄가루 날리는 고갯길을 한 시간 넘게 기었다. 다현은 사진을 봉투에 넣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눌렀다. 창가 자리의 서경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버스가 굽이를 돌 때마다 머리가 유리에서 미끄러져 다현의 어깨로 왔다가 돌아갔다. 세 번째 굽이에서는 돌아가지 않았다. 다현은 그 뒤로 한 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봉투가 무릎에서 미끄러지려는 것도 손끝으로만 붙잡았다.
여인숙으로 돌아가니 주인이 다현을 불렀다. 서울 산림청 본청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홍석구 과장이 개천절 지나고 화요일에 올라오라고 했다고. 청문 전에 할 이야기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