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36자) · 서경 · 9월 5일
두 시간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구월 오일 월요일 아침, 서경은 면사무소 이 층 산림계 책상 위에 1972년 제3초소 일지를 놓았다.
변진호 계장은 표지를 보고, 연도를 보고, 서경을 봤다. 그 셋을 보는 데 오래 걸렸다. 창밖에서 경운기가 한 대 지나갔고, 먼지가 창틀에 앉았다가 가라앉았다. 산림계 사무실에는 등사기 잉크 냄새와 오래된 서류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계장이 일지를 끌어당기는 순간 그 위로 창고 곰팡내가 확 끼쳤다. 이십이 년 동안 비닐 한 장 없이 창고 바닥에 눌려 있던 종이 냄새였다.
“이거 어디서 났노?”
“창고에 있었습니다. 버리라는 지시가 없어서 안 버렸답니다.”
계장이 일지를 폈다. 칠월 이십육일 칸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알고 있었다. 13시 줄에서 멈췄다가, 그 아래 빈자리를 지나 16시 줄로 내려갔다.
“그날 두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안다.”
“할머니가 두 시에 초소에 오셨습니다. 한 시간을 뛰어서 올라오셨답니다.”
“그것도 안다.”
계장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의자가 삐걱거렸고, 계장은 한참 화분 쪽만 봤다. 잎이 노란 화분이었다.
“내가 스물셋이었다. 산에 온 지 넉 달. 내 앞에 있던 감시원이 인계하믄서 그카더라. 동네 사람 말 듣고 무전 치지 마라. 아는 사람이 봐야 된다. 헛신고 한 번 하믄 니 끝이다. 그 말을 넉 달 동안 성경처럼 외웠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그 말을 하셨습니까?”
“했다. 그대로 했다. 아지매가 본 거는 안개일 수도 있다, 아는 사람이 봐야 된다.”
계장이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아지매가 내려가고 나서 봤다. 두 시간 봤다. 연기인지 안개인지 나는 끝까지 몰랐다. 커지는 거 보고서야 알았다. 네 시에 쳤다. 그때는 이미 골이 벌갰다.”
“그사이에 윤만석 씨가 골에 들어가셨습니다.”
계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지를 덮었다. 덮은 손이 표지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사반이 와서 입산자 실화 추정이라고 적을 때, 나는 그 방에 있었다. 한마디만 하믄 됐다. 그 영감 먼저 보고 들어간 사람이라고. 그카믄 아지매가 두 시에 왔다는 말이 나오고, 그라믄 내가 두 시간 뭐 했는지가 나온다. 그래서 안 했다.”
서경은 앉은 채로 계장을 봤다. 사월에 경고장을 보낸 사람, 헬기 값을 원 단위까지 외우는 사람, 주민 말로 무전을 치지 말라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규정을 외우던 스물셋이 마흔다섯이 되어 같은 규정을 서경에게 인계하고 있었다.
“이번에 진술서 고치라고 하신 것도요?”
“반은 할매 지킬라꼬 했다. 경찰이 할매 부르는 거 내가 못 본다. 나머지 반은.”
계장이 말을 멈췄다. 서경이 기다렸다.
“나머지 반은 내 두 시간 지킬라꼬 했다. 할매 이름이 최초 발견에 올라가믄, 누가 칠십이 년 일지를 들춘다. 니가 들춘 거맨치로.”
“그럼 이번에도 두 시간을 지우시는 겁니다.”
“니는 모른다. 이십이 년이다. 적었으믄 잊었을 기다. 안 적었으니까 내가 날마다 기억했다. 그 두 시간을 이십이 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들고 다녔다.”
“그건 들고 다니신 게 아니라 숨기고 다니신 겁니다.”
계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책상을 짚은 손바닥이 하얘졌다.
“내 정년까지 열두 해 남았다. 우리 딸 내년에 대학 간다. 니가 뭘 안다고.”
“저도 구월 십오일에 끝납니다. 계장님이 끝내시잖습니까?”
두 사람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한참 서로를 봤다. 먼저 눈을 돌린 쪽은 계장이었다. 서경이 일지를 도로 집어 들었다.
“이건 제가 창고에 돌려놓겠습니다. 그 전에 할머니한테 보여 드리겠습니다.”
“보여 줘서 뭐 할라꼬?”
“할머니는 이십이 년 동안 자기가 잘못 본 줄 아셨습니다. 두 시간이 비어 있는 걸 보시면, 잘못 본 사람이 누군지 아실 겁니다.”
*
이튿날 서경은 일지를 점례네 평상에 폈다. 점례는 글을 더듬더듬 읽었다. 서경이 칠월 이십육일 칸을 짚어 주자 점례가 안경을 이마로 밀어 올리고 종이에 코가 닿을 만큼 얼굴을 숙였다. 곰팡내와 오래된 볼펜 잉크 냄새가 올라왔을 텐데 점례는 한 번도 얼굴을 떼지 않았다.
“여기가 한 시고, 여기가 네 시입니다. 두 시하고 세 시가 없습니다.”
점례가 굽은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쓸었다. 종이가 얇아서 손가락 끝에 결이 걸렸다.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쓸었다. 거기에 뭐가 적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게 그 시간이가?”
“네.”
“나는 여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안개를 연기로 봤는데 우째 우연히 불이 났는갑다 했다. 그래서 그 뒤로 산에서 뭘 봐도 말을 안 했다. 내 눈이 틀렸으니까.”
점례가 손가락을 멈췄다.
“틀린 기 내 눈이 아이었네.”
마당에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널어 둔 고추가 굴렀고, 개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엎드렸다. 점례는 한참 그 빈자리에 손을 얹고 있다가 일지를 서경 쪽으로 밀었다.
“갖다 놔라. 있던 자리에. 비어 있는 거를 누가 또 봐야 된다.”
*
구월 팔일 목요일 저녁, 마을회관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장 성만호가 사흘 전부터 확성기로 알렸다. 알릴 때마다 마이크 시험을 세 번씩 해서, 순이는 그 사흘 동안 「아아, 마이크 시험」을 따라 하고 다니다가 할아버지한테 꿀밤을 두 대 맞았다.
회관에는 열아홉 집에서 스물여섯 명이 나왔다. 형광등 두 개 가운데 하나가 깜빡였고, 선풍기 두 대가 번갈아 고개를 저었다. 앞쪽 탁자에 전력공사 탁기문 과장이 앉아 있었다. 흰 셔츠 소매를 두 번 접었고, 탁자 위에 서류 봉투 하나를 올려 두었다.
“에, 오늘 안건은 하나입니다. 동네 장대요.”
이장이 서류 봉투를 들어 보였다.
“전력공사에서 회관 지붕 고쳐 주고 경운기 두 대 넣어 주기로 약정서를 가져오셨습니다. 조건이 하나 있는데, 동네가 이번 불 원인 가지고 시끄럽게 안 하는 깁니다. 장대 세워 놓고 밤마다 남포등 켜 놓으믄 밖에서 보기에 뭐겠습니까? 이 동네가 불을 겁내는 동네, 불 낸 동네로 보인단 말입니다.”
탁기문이 일어섰다. 웃는 주름이 깊었다.
“어르신들, 전기는 나라가 쓰는 깁니다. 영주, 봉화, 안동까지 이 선 하나로 불이 들어갑니다. 선 밑에 나무 치는 거, 우리도 칠 겁니다. 순서대로 칩니다. 근데 원인을 선으로 몰아가믄 그 순서가 꼬입니다. 조사한다꼬 몇 년 걸립니다. 그동안 이 동네 경운기는 안 옵니다.”
탁기문은 말을 마치고 앉기 전에 회관 뒷벽을 한 번 둘러봤다. 서경과 눈이 마주쳤다. 탁기문은 그 눈을 피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까지 숙여 인사했다. 동생 직장 상사가 누나에게 하는 인사였고, 서경은 그 인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었다.
뒤쪽에서 누가 중얼거렸다. 「경운기 두 대믄 크지.」 누가 받았다. 「지붕 샌 지 삼 년이다.」
점례가 일어섰다. 회관 뒷벽에 기대 앉아 있다가 무릎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는데, 일어서는 동안 회관 안의 말소리가 하나씩 꺼졌다.
“내가 한마디 하께.”
이장이 난처한 얼굴로 탁기문을 봤다가 점례를 봤다.
“할매, 이따 하시지요.”
“이십이 년 이따 했다. 오늘 한다.”
점례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말했다.
“칠십이 년 칠월 이십육일 두 시에 내가 저 골에서 흰 게 서는 걸 봤다. 초소에 올라가서 말했고, 안 들어 주더라. 내려오니 우리 집 양반이 골에 들어가 있더라. 동네 사람들, 그 양반 이름 부르믄 재수 없다꼬 이십이 년 동안 안 불렀제? 오늘 내가 부른다.”
점례가 숨을 한 번 쉬었다.
“윤만석이다. 불 낸 사람 아이다. 먼저 보고, 먼저 들어간 사람이다.”
회관 안이 조용했다. 깜빡이던 형광등이 그 순간만 켜져 있었다. 서경은 문간에 서서 사람들 얼굴을 봤다. 몇은 고개를 숙였고, 몇은 점례를 똑바로 봤다. 우물가 집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만석이 담배 피웠다 카는 말, 그거 내가 처음 했다. 그 집 모깃불 연기 보고 그캤다.”
할아버지가 모자를 벗었다. 벗은 모자를 두 손으로 쥐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미안하다, 점례야.”
탁기문이 뭔가 말하려고 일어섰다. 이장이 그 팔을 슬쩍 잡았다. 이장의 얼굴은 복잡했는데, 그 복잡한 얼굴로 확성기 마이크가 아니라 맨 목소리로 말했다.
“표결하겠습니다. 장대 눕히는 데 찬성하시는 분.”
손이 셋 올라갔다. 탁기문이 한 번 둘러보고 서류 봉투를 탁자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장대 그대로 두는 데 찬성하시는 분.”
손이 스물하나 올라갔다. 순이도 손을 들었다. 할아버지가 그 손을 끌어내렸다.
“니는 투표권 없다.”
“나도 장대 있잖아요.”
회관 안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터졌다.
탁기문은 서류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나가다가 문간에서 서경 옆을 지나갔다. 걸음을 늦추지 않고, 서경에게만 들릴 만큼 낮게 말했다.
“누나 되시지요? 서준이가 일을 참 잘합니다. 시월 심사도 잘 받을 깁니다. 누나만 조용하시믄.”
서경이 돌아봤을 때 탁기문은 벌써 회관 계단을 내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흰 셔츠 등만 한참 보였다.
*
그날 밤 서경은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마을을 셌다. 다현이 옆에 붙어 앉아 한 뼘 너머에서 같은 쪽을 봤다.
평소 밤에 불이 켜지는 집은 여덟이었다. 그날은 장대 끝 남포등이 줄지어 켜졌다. 서경이 하나씩 셌다.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에서 멈췄다. 이장 집이 캄캄했다.
“하나 모자랍니다.”
“이장님 댁이죠.”
그때 이장 집 마당에서 불빛 하나가 흔들리며 올라갔다. 쌍안경을 당겨 보니 이장 부인이 장대를 끌어안고 세우고 있었고, 그 옆에서 이장이 뭐라고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장대 밑동을 발로 다져 주고 있었다. 확성기가 켜졌다.
“아아, 마이크 시험. 아아, 마이크 시험. 아아.”
그러고는 아무 말도 없이 꺼졌다. 다현이 웃다가 무릎 꿰맨 자리를 짚었다.
“열아홉입니다.”
서경은 쌍안경을 내리고 맨눈으로 마을을 봤다. 불빛 열아홉 개가 골 어귀를 따라 비스듬히 늘어서 있었다. 넉 달 동안 여덟밖에 안 보이던 마을이었다. 서경의 눈가가 뜨거워졌는데, 서경은 그게 양철 지붕이 밤까지 머금은 열 때문이라고 치기로 했다.
“구월 십오일에 저 끝납니다.”
“압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열아홉이면.”
다현이 손을 뻗어 서경의 손등에 얹었다. 한 뼘이 없어졌다. 둘 다 그걸 말하지 않았다.
쌍안경을 다시 들었을 때, 점례네 삽짝 앞에 손전등 불빛 하나가 서 있었다. 한참 서 있다가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서 아래 삼거리 쪽으로 멀어졌다. 걸음이 무거웠다. 서경은 그 걸음을 알았다. 면사무소 계단을 내려가던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