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30자) · 다현 · 8월 22일

칠 분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선로반 숙소는 너래리 아래 삼거리에 있었다. 컨테이너 두 동을 붙여 놓고 그 앞에 차양을 친 자리였는데, 차양 밑에 평상 하나와 드럼통 화덕이 있었고, 모기향 연기가 소주 냄새와 라면 국물 냄새에 섞여 낮게 깔려 있었다.

팔월 이십이일 저녁에 다현은 서경과 같이 그 앞에 섰다. 해가 막 넘어가 컨테이너 철판이 낮 동안 머금은 열을 한꺼번에 뱉어 내고 있었고, 그 앞에 서 있으니 얼굴이 화끈했다. 컨테이너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아시안게임 중계를 미리 한다는 광고였다.

서경이 문을 두드렸다. 한참 뒤에 문이 열리고 러닝셔츠 바람의 젊은 남자가 나왔다. 서준이었다. 누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고, 그 뒤에 서 있는 다현을 보자 한 번 더 굳었다.

“누나가 여기 와 왔노?”

“물어볼 게 있어서.”

서준은 문을 등 뒤로 닫고 차양 밑으로 나왔다. 평상에 앉지 않고 화덕 옆에 서서 담배를 꺼냈다가, 누나 얼굴을 보고 도로 넣었다.

“십일일 밤에 삼 호기 밑 소나무 꼭대기, 네가 잘랐지?”

“과장님이 잘라 오라 캤다. 불 꺼지고 새벽에.”

“왜?”

“선 녹는다고. 불붙은 가지가 선에 닿아 있으믄 선이 녹는다고.”

“그 가지 이미 타고 있었어? 네가 올라갔을 때.”

서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다현은 한 걸음 뒤에서 그 얼굴을 봤다. 누나와 같은 이마, 같은 턱이었는데 누나보다 눈을 먼저 피했다.

“잘라서 어떻게 했어?”

“태웠다. 드럼통에.”

서준이 턱으로 화덕을 가리켰다. 드럼통 안은 재가 반쯤 차 있었고, 그 위에 라면 봉지가 하나 타다 만 채 얹혀 있었다.

“서준아. 할머니가 불 낸 사람이 돼. 경찰이 부르고 있어. 칠십이 년에 그 집 영감님이 그렇게 됐어.”

“그 할매 내는 모른다.”

“나는 알아.”

“누나는 알제. 누나는 여름 한 철 있다가 가믄 그만이다. 내는 이 회사 들어올라고 삼 년을 수습 했다. 시월에 정규직 심사다. 엄마 약값 누가 내노? 아버지 폐광 보상금 다 병원에 들어간 거 누나도 알잖아.”

서경의 어깨가 한 번 들렸다가 내려갔다. 다현은 그 어깨가 무엇을 삼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입 다물 거야?”

“누나는 그 할매 편 들라꼬 동생 밥줄 끊을 끼가?”

두 사람이 화덕을 사이에 두고 섰다. 모기향 연기가 둘 사이로 가늘게 올라가 차양에 부딪혀 흩어졌다. 컨테이너 안에서 누군가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서준이 먼저 돌아섰다. 문고리를 잡고 한참 서 있다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가지 끝이 까맸다. 전선 닿은 자리만.”

문이 닫혔다.

삼거리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가로등이 없었다. 둘은 손전등 하나를 켜고 걸었다. 논두렁에서 개구리가 울다가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뚝 그치고, 지나가면 다시 울었다. 한참 걷다가 서경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가 태백 광업소에 계셨습니다. 팔십구 년에 광업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석탄 합리화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그 이듬해부터 숨이 짧아지셨고, 삼 년 누워 계시다가 가셨습니다. 저는 그 무렵 전화국에서 잘렸고요.”

다현은 대답하지 않고 들었다. 손전등 불빛 안에서 서경의 운동화 앞코가 한 걸음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집안에서 남은 게 서준이 하나입니다. 전력공사는 망하지 않는 회사라고, 엄마가 동네방네 자랑하셨습니다. 쟤가 정규직 되는 날 엄마가 떡을 하신답니다. 벌써 쌀을 불려 놓으셨을 겁니다.”

“그래도 오셨습니다.”

“오기 전에 세 번 돌아섰습니다.”

서경이 걸음을 멈췄다. 개구리 소리가 그쳤다.

“조사관님, 쟤 마지막 말 들으셨습니까?”

“전선 닿은 자리만 까맸다고요.”

“그 말 하려고 삼 년 수습한 애가 문고리를 잡고 한참 서 있었습니다.”

*

면사무소 산림계는 이 층이었다. 계단이 좁아서 사람 둘이 못 지나갔고, 계장 책상에는 화분이 셋 있었는데 셋 다 잎이 노랬다.

팔월 이십오일 오후, 변진호 계장이 서경 앞에 타자로 친 종이 한 장을 놓았다. 다현도 불려 와 있었다. 산림청 조사관 의견란에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시 쳤다. 이거 읽어 보고 도장 찍으라.”

다현이 서경 어깨 너머로 읽었다. 「최초 발견: 제3초소 감시원 임서경. 발견 시각 17시 19분. 육안 확인 후 즉시 무전 신고.」 장대라는 말도, 곽점례라는 이름도 없었다.

“계장님, 제가 본 건 다섯 시 십구 분이 맞습니다. 할머니는 다섯 시 십이 분에 봤습니다.”

“안다. 그러니까 이리 쓰는 기다.”

계장이 의자에 기댔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임 감시원, 머리 좀 써라. 최초 발견자로 할매 이름이 올라가믄 우째 되는지 아나? 발화점 제일 가까이 있던 사람이 누구다 하고 서류에 박히는 기다. 경찰은 그 줄부터 읽는다. 전력공사는 그 줄 하나 들고 가서 원인 끝낸다. 니가 할매 이름 적는 순간 할매가 피의자 된다.”

서경이 입을 다물었다. 다현은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파출소 선풍기 앞에서 형사가 넘기던 서류를 봤고, 탁기문이 발화점에서 「먼저 봤으면 제일 가까이 있었다는 소리 아입니까」 하던 것도 들었다.

“이리 쓰믄 니도 규정 위반이 아이다. 계약 연장도 내가 추천서 써 준다. 할매도 안 불려 간다. 다 좋은 기다.”

“할머니 장대는요?”

“장대는 장대고. 서류는 서류다.”

다현이 조용히 말했다.

“임 선생, 계장님 말씀이 틀린 건 아닙니다.”

서경이 다현을 돌아봤다. 한 뼘 거리에서 본 얼굴이었는데, 처음으로 그 사이가 한 뼘보다 멀어 보였다.

계장은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랍에서 계산기를 꺼냈다.

“그라고 하나 더. 니가 할매 이름 적으믄 발화 원인 재조사 들어간다. 재조사 들어가믄 헬기 다시 뜬다. 현장 사진 찍는다꼬. 한 시간에 삼백사십만 원, 두 시간이믄 육백팔십, 조사반 출장비 따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계장의 손가락이 빨랐다. 다현은 이 사람이 헬기 값을 외우는 까닭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생각했다. 무엇이든 숫자로 바꿔 놓아야 겨우 쥘 수 있는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할머니한테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서경이 종이를 접어 들고 일어섰다. 계장이 그 등에 대고 말했다.

“할매한테 물어보믄 뭐라 카겠노? 자기 이름 빼 달라 카겠지.”

*

점례네 집은 흙벽이었다. 벽이 흙이라 못이 안 박혀서, 방 안 선반에 사진 액자 하나를 그릇들 사이에 세워 두고 있었다. 다현은 마루 끝에서 그 사진을 봤다. 젊은 남자 하나가 밀짚모자를 쓰고 밭에 서서 눈부신 듯 웃고 있었다. 그릇을 꺼낼 때마다 넘어져서 점례가 다시 세운다고 했다.

점례네 평상에는 고추가 널려 있었고, 개가 그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서경이 타자 친 종이를 평상에 펴 놓고 설명하는 동안 점례는 고추를 뒤집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현은 삽짝 옆에 서서 그 두 사람을 봤다.

“그러니까 할머니 이름을 빼면 경찰이 안 부릅니다. 계장님 말씀으로는요.”

점례가 고추 하나를 집어 햇빛에 비춰 봤다. 붉은 껍질 너머로 씨가 비쳤다.

“칠십이 년에 내가 봤다 캤다. 초소 총각한테도, 나중에 온 조사하는 사람들한테도. 아무도 안 적더라. 안 적으니까 없던 일이 되더라. 없던 일이 되니까 그 자리에 딴 기 들어가더라. 그 사람 이름이.”

점례가 고추를 바구니에 넣었다.

“적어라. 내가 봤다. 다섯 시 십이 분에 곽점례가 봤다. 경찰이 부르믄 가고, 의심을 하믄 하라 캐라. 이번에는 내 이름이 먼저 들어가 있어야 된다. 그래야 그 자리에 딴 기 못 들어온다.”

“할머니가 피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나이 일흔하나다. 피의자 되믄 뭐 우짤 끼고. 감옥 가믄 밥은 주겠제.”

개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엎드렸다. 서경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점례를 봤다. 점례가 굽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톡 쳤다.

“이거는 태워라. 니 동생 하는 거 보니까 태우는 거는 너그 집안이 잘하더라.”

다현은 삽짝 기둥을 짚었다. 여섯 번 쓴 보고서를 한 번도 이렇게 쓴 적이 없었다. 누구 이름을 넣으면 누가 다치는지를 따져 본 적은 있어도, 다치는 사람이 제 이름을 넣으라고 하는 것은 처음 봤다.

*

구월 일일, 서경은 원래 진술서에 도장을 찍어 계장 책상에 놓았다. 「17시 12분 곽점례 씨 밭 장대 신호. 17시 12분 주민 목격으로 무전 신고. 17시 19분 감시원 육안 확인.」

계장이 종이를 오래 봤다. 화분 하나에서 노란 잎이 떨어졌다.

“계약 연장 추천 못 한다.”

“압니다.”

“구월 십오일이 심사다. 그날 끝이다.”

“압니다.”

“니 알고 이라는 기가?”

“네. 칠 분하고 바꿨습니다.”

계장이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눈이 또 창밖, 무너미골 쪽으로 갔다. 면사무소 이 층 창에서는 무너미골이 안 보였다. 앞 능선에 가려 하늘만 보였는데도 계장은 늘 그쪽을 봤다.

서경이 계단을 내려오자 다현이 일 층 민원실 앞에 서 있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계장님 말씀이 틀린 건 아니라고 한 거요.”

“틀린 말 아니었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보셨습니까?”

“맞는 말이라서요. 맞는 말을 조사관님 입으로 들으니까 더 무거웠습니다.”

*

서경은 그 주말에 쌍안경으로 마을을 셌다.

점례가 제 이름을 넣으라 했다는 말은 이장 집 전화보다 빨리 돌았다. 금요일 밤에 우물가 집 옆집이 장대를 세웠고, 토요일에는 둘이 더 세웠다. 일요일 저녁에 분교 뒤 두 집이 한꺼번에 남포등을 걸었다. 일곱에서 열둘이 되었다. 서경은 그 수를 세면서, 누가 그 장대를 세웠는지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서경이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분교 뒤 두 집 가운데 한 집은 넉 달 동안 한 번도 불이 켜진 적 없는 집이었다.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그 집 마당에 선 장대 끝에서 남포등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야 서경은 거기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 장대 하나가 서면 사람 하나가 보였다.

그날 밤 다현이 초소로 올라왔다. 한 손에 곰팡내 나는 갈색 장부를 들고 있었고, 숨이 턱에 차 있었다. 면사무소 뒤 창고에서 찾았다고 했다.

“1972년 제3초소 일지입니다. 칠월 이십육일 보십시오.”

서경이 랜턴을 들이댔다. 한 시간마다 한 줄씩 적힌 일지였다. 13시 맑음 이상 없음. 그다음 줄이 16시였다. 14시와 15시가 없었다. 두 시간이 비어 있었다.

“근무자 이름도 보십시오. 맨 위에요.”

서경의 손가락이 칸 맨 위로 올라갔다. 볼펜 글씨가 바래서 거의 안 보였지만, 석 자는 읽을 수 있었다. 근무자 칸에, 스물세 살 청년의 반듯한 글씨로 변진호라고 적혀 있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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