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66자) · 다현 · 8월 14일
톱 자국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불은 팔월 십삼일 새벽에 잡혔다.
바람이 십이일 밤에 방향을 바꿨고, 그 바람이 불을 자기가 온 쪽으로 다시 밀어 골 안에서 제풀에 죽게 했다. 사람이 한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군청 서류에는 「기상 요인에 의한 확산 저지」라고 적혔는데, 노다현은 그 문장을 읽으면서 헬기가 세 번 돈 것도, 칠 분 먼저 들어간 무전도 거기 한 글자도 없다는 것을 먼저 봤다.
무릎은 여섯 바늘을 꿰맸다. 면 보건지소 의사가 어쩌다 이랬느냐고 물었을 때 다현은 「서쪽 능선이요」라고만 대답했고, 의사는 그걸로 다 알아들은 얼굴을 했다. 이 동네에서는 서쪽 능선이 대답이 됐다.
꿰맨 자리가 당길 때마다 다현은 그 밤을 다시 걸었다. 랜턴 하나, 한 걸음 앞만 비추던 불빛, 어깨에 얹은 손바닥 밑에서 서경의 견갑골이 움직이던 것, 연기 냄새가 밴 머리카락이 바람에 뺨을 스치던 것. 여섯 번 쓴 보고서 어디에도 그런 문장은 없었다. 다현은 서른둘이 될 때까지 종이에 적힌 것만 믿고 살았는데, 그 밤 일은 종이에 적을 수가 없었고, 적을 수 없는데도 무릎보다 오래 남았다.
*
팔월 십사일 아침에 합동 현장 조사가 있었다. 군청 산림과 직원 둘, 청암경찰서 형사 하나, 전력공사 태백지점 선로과장과 선로반 넷이 무너미골로 들어갔다. 다현은 절뚝거리며 맨 뒤에 붙었다. 서경은 없었다. 같은 시각 서경은 면사무소 이 층에서 변진호 계장 앞에 앉아 있었다.
골 안은 아직 따뜻했다. 불이 지나간 흙은 발바닥으로 열을 올려 보냈고, 진화 물을 먹은 재는 검은 죽이 되어 신발 밑창에 달라붙었다. 코를 찌르는 것은 탄내가 아니라 젖은 재 냄새였다. 불 끈 아궁이에 물을 한 바가지 부었을 때 올라오는 그 시큼하고 무거운 냄새가 골 전체에 가라앉아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혀 안쪽이 떫었다. 소나무들은 밑동부터 허리까지 검게 그을린 채 서 있었는데, 다현은 걸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 수를 셌다. 스물을 넘기고 그만뒀다.
철탑 삼 호기 아래에서 다현이 멈췄다.
전선 바로 밑에 제일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줄기는 그을렸지만 서 있었다. 다현은 고개를 젖혀 꼭대기를 봤다. 꼭대기가 없었다. 우듬지 바로 아래에서 가지 셋이 잘려 나가 있었고, 잘린 면이 하얬다. 그을음 하나 없이 하얬다.
다현은 배낭에서 쌍안경을 꺼냈다. 잘린 면에서 송진이 아직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흘 전 불 속에서 잘렸다면 송진이 끓어 검게 굳었어야 했다. 이건 불이 지나간 다음에 잘린 자리였다. 나무 밑에는 톱밥이 흩어져 있었고, 재 위에 안전화 자국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과장님.”
전력공사 선로과장 탁기문이 돌아봤다. 마흔 후반쯤, 햇볕에 그은 얼굴에 웃는 주름이 깊었다. 아침에 인사하며 준 명함에 전화번호가 셋 적혀 있었다.
“이 나무 꼭대기, 누가 잘랐습니까?”
“우리 반이 잘랐지요. 선로 순시 때 원래 칩니다.”
“불 난 날 밤에요? 불이 아직 타고 있을 때요?”
“불 옮겨붙지 말라고 쳤습니다. 전선 밑에 불붙은 가지 두면 선이 녹습니다. 선 녹으면 영주, 봉화 불 다 나갑니다.”
“잘린 가지는 어디 있습니까?”
“태웠지요. 불 난 산에 불붙은 가지를 쌓아 둘 수는 없잖습니까?”
탁기문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다현은 줄자를 꺼내 밑동 둘레를 쟀고, 수간 거리계로 잘린 자리에서 전선까지 높이를 쟀다. 잘린 가지가 붙어 있었다면 전선까지 한 뼘이 안 됐을 거리였다.
군청 산림과 직원 둘은 그사이 발화점 둘레에 새끼줄을 치느라 바빴다. 한 사람은 새끼줄을 쥐고 뒷걸음질 치다가 재 구덩이에 한 발이 빠졌고,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웃다가 자기도 빠졌다. 둘 다 바짓단이 무릎까지 검게 됐다. 탁기문이 그 둘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고생 많으십니다」 하고 등을 두드렸다. 이 골에서 제일 편한 얼굴을 한 사람이 탁기문이었다.
“과장님, 이 가지가 전선에 닿아 있었다면 발화 원인이 달라집니다.”
탁기문이 웃었다. 주름이 더 깊어졌다.
“조사관님, 가지가 전선에 닿으면 스위치가 떨어집니다. 그날 우리 선로 기록에 차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발화점 가까이에 사람이 있었다 카데요.”
형사가 수첩을 폈다.
“누가요?”
“골 어귀 밭 할매요. 그날도 저 골에 약초 캐러 들어갔다 카던데. 칠십이 년에도 그 집 영감이 저기서 불 났을 때 있었고.”
다현이 손에 든 줄자를 감았다. 줄자가 끝까지 감기면서 손가락을 탁 쳤다.
“그 할머니는 불을 먼저 본 사람입니다. 그분 장대 덕에 칠 분 먼저 헬기가 떴습니다.”
“먼저 봤으면 제일 가까이 있었다는 소리 아입니까? 형사님, 안 그렇습니까?”
“그날 차단 기록 좀 볼 수 있습니까?”
“본사에 있지요. 공문 보내 주시믄 드립니다. 한 달 걸립니다.”
형사는 대답 대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다현은 카메라를 꺼내 잘린 자리, 톱밥, 안전화 자국, 철탑 번호판을 차례로 찍었다. 탁기문이 뒤에서 말했다.
“사진 많이 찍으이소. 이 산에서 제일 잘 나온 나무 되겠네.”
선로반 가운데 제일 젊은 사람 하나가 그 말에 안 웃었다. 스물 중반쯤이었고, 작업복 가슴에 붙은 명찰에 「임서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현이 카메라를 들자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철탑을 봤다. 끝까지 이쪽을 보지 않았다.
*
점례가 상운 파출소에 불려 간 것은 십육일 오후였다. 서경은 면사무소에서 사흘째 진술서를 쓰고 있었고, 다현이 따라갔다. 경운기 짐칸에 점례와 나란히 앉아 덜컹거리며 내려갔는데, 점례는 가는 내내 흰 수건을 무릎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폈다 접었다 했다.
파출소는 선풍기 한 대가 고개를 저으며 더운 바람을 휘젓고 있었다. 형사가 점례 앞에 종이를 놓았다.
“할머니, 그날 골에 들어가셨습니까?”
“밭에 있었다. 골 어귀가 우리 밭이다.”
“담배 피우십니까?”
“안 피운다.”
“영감님은 피우셨지요? 칠십이 년에.”
점례가 수건을 폈던 손을 멈췄다. 선풍기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가 저쪽으로 돌렸다. 다현은 그 사이에 점례의 턱이 한 번 떨리는 것을 봤다.
“그 사람도 안 피웠다. 피웠다 카는 거는 동네 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기록에는 입산자 실화 추정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 기록 누가 썼노? 거기 불 낸 사람 이름 있나?”
형사가 서류를 넘겼다. 이름은 없었다. 대신 「발화 추정 시각 현장 부근 입산자 1명 사망」이라는 줄이 있었다.
형사가 헛기침을 했다. 열 해 넘게 이 면에서 근무했다는 사람이었는데, 점례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선풍기 쪽만 봤다.
“할머니, 저도 칠십이 년 일은 모릅니다. 저는 그때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이번 일만 여쭙는 겁니다.”
“이번 일도 그때 일하고 똑같이 물어보잖소.”
“죽은 사람이 불 낸 사람이믄 편하제. 대답을 못 하니까.”
점례가 일어섰다.
“오늘 내가 할 말 다 했다. 더 물을 거 있으믄 우리 밭으로 오소. 밭에서는 골 안이 다 보이니까.”
*
돌아오는 경운기 위에서 점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해가 서쪽 능선에 걸려 있었고, 경운기 소리가 커서 점례는 다현 귀에 거의 입을 대고 말했다.
“칠십이 년 칠월 이십육일이다. 그날 우리 둘이 저 밭에 있었다. 나는 마흔아홉이고 그 사람은 쉰둘이고. 두 시쯤에 골에서 흰 게 서는 걸 내가 먼저 봤다.”
“할머니가 먼저요.”
“내가 초소까지 뛰어 올라갔다. 한 시간 걸렸다. 젊은 총각이 하나 있데. 연기 난다 캤더니 아지매가 본 거는 안개일 수도 있다, 아는 사람이 봐야 된다 카더라. 내려왔더니 그 사람이 없었다. 불 끄러 골에 들어갔더라. 솔가지 하나 꺾어 들고.”
경운기가 돌부리에 한 번 튀었다. 점례는 수건을 꽉 쥐었다.
“그 사람 이름이 윤만석이다.”
다현은 그 이름을 입속으로 한 번 따라 했다. 점례가 다현을 봤다.
“이십이 년 만에 내 입으로 그 이름을 소리 내서 부른다. 동네에서는 다 그 영감이라 카지 이름 안 부른다. 불 낸 사람 이름 부르믄 재수 없다고.”
“불 낸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먼저 본 사람이다. 나하고 그 사람하고. 먼저 보고 먼저 들어간 사람이다.”
다현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경운기가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점례가 짐칸 난간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굽은 등이 노을을 가렸다.
*
그날 저녁 이장 성만호가 점례네 마당에 왔다. 평상에 앉지도 않고 서서 말했다.
“할매요, 그 장대 좀 눕혀 두소. 전력공사에서 회관 지붕 고쳐 주고 경운기 두 대 넣어 준다 캤는데, 동네가 불 낸 동네 소리 들으믄 그거 다 없던 일 된다 카요.”
“불 낸 동네가 아이고 불 먼저 본 동네다.”
“그기 그 소리지요. 경찰이 할매를 부르는 판에.”
다현이 평상에서 일어섰다.
“이장님, 장대를 눕히면 다음에 저 골에서 흰 게 섰을 때 초소가 칠 분 늦습니다.”
“조사관님은 가시믄 그만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삽니다.”
이장이 돌아서 나가다가 삽짝 앞에서 멈췄다. 방 영감네 순이가 삽짝 기둥에 매달려 이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장님, 우리 장대도 눕혀요?”
“눕혀야지.”
“그럼 불 나면 이장님이 초소까지 뛰어 올라가요? 한 시간 걸리는데요. 이장님 배 나와서 두 시간 걸리겠다.”
이장은 대답을 못 하고 헛기침만 두 번 하더니 그대로 나갔다. 점례가 평상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날 밤 다현은 초소에 올라가 서경 옆에서 쌍안경으로 마을을 봤다. 장대는 여전히 일곱이었다. 하나도 눕지 않았고, 하나도 늘지 않았다.
“오늘 골에서 뭐 찾으셨습니까?”
서경이 물었다. 사흘 동안 진술서를 쓴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면사무소는 어떻습니까?”
다현이 먼저 되물었다. 서경은 쌍안경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계장님이 같은 걸 세 번 쓰게 했습니다. 본 시각, 올린 시각, 확인한 시각. 세 번째 쓸 때 계장님이 그러시더군요. 확인한 시각을 본 시각으로 쓰면 다 깨끗해진다고요. 다섯 시 십구 분에 제가 봤고 다섯 시 십구 분에 올렸다고 쓰면, 할머니 장대는 없던 일이 되고 저도 규정 위반이 아니랍니다.”
“그렇게 쓰셨습니까?”
“세 번 다 다섯 시 십이 분이라고 썼습니다. 계장님이 세 번 다 찢으셨고요.”
“톱 자국이요. 철탑 삼 호기 밑 소나무 꼭대기가 잘려 있었습니다. 불 끄고 나서 잘랐습니다. 잘린 가지는 태웠답니다.”
“누가요?”
“그날 밤 선로반이 올라왔답니다. 제일 젊은 사람이 끝까지 저를 안 봤습니다. 명찰에 임서준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서경이 쌍안경을 내렸다. 랜턴 불빛 안에서 서경의 얼굴이 천천히 굳었고, 입술이 두 번 움직이고 나서야 소리가 나왔다.
“제 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