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90자) · 가람 · 10월 29일
수요일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열린 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내 목덜미를 계속 쓸었다. 나는 맨 뒷줄 청테이프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앉은 자리에서는 스물세 명의 뒤통수와 그 너머 맨 앞줄의 빈 의자가 한눈에 보였다. 방석 비닐 위에 놋쇠 열쇠가 누워 있었다. 난로 불꽃이 바람에 누웠다 일어설 때마다 열쇠가 노랗게 빛났다가 어두워졌다.
오태식이 황보현을 가리킨 손을 아직 내리지 않고 있었다. 황보현은 고개를 숙인 채였고, 그의 아내 이숙자가 남편의 무릎 위 손을 두 손으로 덮고 있었다.
내가 일어서자 청테이프 의자가 삐걱 소리를 냈다. 스물세 명 가운데 몇이 돌아봤다.
“의원님, 저는 이제 형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증거를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엿새 동안 들은 걸 들은 순서대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사님, 여기는 추모회 자리입니다.” 오태식이 웃으며 받았다. “연차 중이신 분이 남의 동네 추모회에서 연설하실 건 아니지요?”
“해든 씨 칫솔은 민박 컵에 있었습니다. 버스 단말기에는 목요일 서진리 승차가 영입니다. 한말순 씨 금고에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외상 장부가 있습니다. 회관 앞, 소주 세 박스, 의원님 앞으로. 김태석 씨는 지난주 수요일 밤 열한 시 오십 분에 의원님 트럭이 불을 끄고 방파제 입구에 서 있는 걸 봤습니다.” 나는 수첩을 펴지 않았다. 펴지 않아도 순서가 기억났다. “해든 씨 왼쪽 손목에 손가락 네 개 자국이 있습니다. 입안에서 해든 씨 것이 아닌 피부 조직이 나왔습니다. 의원님 오른손 붕대는 목요일 아침 여섯 시에 이미 감겨 있었고, 그건 이장님이 보셨습니다.”
“그물 손질하다 다쳤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장님께는 목요일 아침에 난간 끊긴 자리에서 신발 한 짝을 봤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장 쪽을 봤다.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든 씨 신발은 한 짝은 발에, 한 짝은 테트라포드 맨 밑 틈에 있었습니다. 물이 제일 많이 빠진 새벽 한 시 반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야 보였습니다. 방파제 위에서는 안 보이는 자리입니다. 목요일 아침에 그 신발을 본 사람은 수요일 밤에 그 신발이 떨어지는 걸 본 사람입니다.”
회관 안이 조용해졌다. 오정민이 삼촌 쪽으로 반걸음 다가서다가 멈췄다. 오태식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씩 빠져나갔는데, 입꼬리보다 눈가가 먼저 굳었다. 그는 붕대 감은 손을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
“형사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건 경찰이 알아서 하겠지요.” 오태식이 방 안을 돌아봤다. 목소리를 다시 부드럽게 골랐다. “여러분, 제가 열세 해 동안 이 동네를 위해 뭘 했는지 아시잖아요. 송전선 보상도 제가 받아 왔고, 이번 국가어항도 제가 끌어 왔어요. 형사님은 오늘 밤 지나면 가십니다. 저는 여기 남아요. 여러분도 여기 남으시고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앞줄 구석의 박순임이 고개를 들었다. 새벽마다 분무기를 메던 어깨가 오늘은 두꺼운 스웨터에 싸여 있었다. 노인은 오태식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아이에게 밥 먹었느냐고 묻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식아, 우리 해든이 버스 태워 보낸 것도 너였지. 목요일 두 시 이십 분에. 그날은 해가 났는데.”
오태식은 노인을 보지 않았다. 노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여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그릇장 문짝을 긁던 손이었다.
*
뒷줄에서 황보현의 의자가 뒤로 밀렸다. 이숙자의 손이 남편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오늘 저녁에 딸한테 전화했어요.” 황보현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는데 모두 들었다. “읍내 가서 한 칸 뜨는 데서요. 목요일 하면 아빠가 보상금 받아서 너 옆에 방 얻을 거라고. 수요일 하면 그거 없다고. 딸이 뭐라는 줄 아세요?” 그가 오태식을 봤다. “그 돈으로 얻은 방에서는 투석 못 받겠대요. 누워 있으면 문 두드리는 소리 날 것 같대요. 그 애도 그날 여기 살았어요. 그때 열다섯 살이었어요.”
그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날은 수요일입니다.”
이숙자가 따라 일어서서 수요일이라고 말하고 남편 팔을 붙잡았다. 내 셈은 열넷에서 열다섯으로 넘어갔다.
노진호가 형 옆에서 벌떡 일어섰다. 노진구가 동생 점퍼 자락을 잡아당겼는데, 동생은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말했다. 형, 나 아까 창문으로 말했잖아, 이번엔 여기서 할게, 수요일이오. 노진구는 동생 점퍼를 쥔 채 한동안 그 뒤통수를 올려다보다가, 쥔 손을 놓고 자기도 일어나 수요일이라고 말했다. 열여섯과 열일곱이었다.
송재만은 일어서지 않았다. 앉은 채로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수요일이라고 말했다. 아내 김옥례가 오늘 오후 내 앞에서 외웠던 목요일 문장을 한 번 더 입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중간에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그날은 수요일이었다고 말했다. 아들 송기철은 부모 사이에서 말없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든 채로 수요일이라고 했다. 셈은 스물이 됐다.
최덕배 부부는 서로 얼굴을 봤다. 오말순이 남편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던 그 손이었다. 최덕배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 수요일이라고 했고, 오말순이 뒤따라 수요일, 하고 말한 다음 남편에게 들리게 작게 덧붙였다. 진작 할 걸. 그렇게 스물둘이었다.
한 사람이 일어설 때마다 오태식의 눈이 그쪽으로 갔다가, 다음 사람이 일어서면 그쪽으로 옮겨 갔다. 따라가는 눈이 점점 늦어졌다. 스물두 번째에서 그는 더 이상 눈을 옮기지 않았다.
*
오태식이 돌아서서 신을 신은 채 마루를 가로질러 열린 문 쪽으로 걸었고, 오정민이 뒤따랐다. 문은 열려 있었다. 누구든 나갈 수 있었다.
문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점퍼 어깨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고, 뒤로 경찰 승합차 전조등이 마당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문간에 선 사람은 최인규였고, 그 뒤에 강력팀 형사 셋이 서 있었다.
“의원님, 잠깐 손 좀 보여 주십시오.” 최인규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오태식은 걸음을 멈췄지만 주머니에 넣은 손은 빼지 않았다.
“최 계장, 우리 오래 봤잖아. 열세 해 전에 자네가 서류 잘 정리해 준 거 나 잊은 적 없어.”
“그 서류 제가 오늘 다시 열었습니다.” 최인규가 문턱을 넘어 들어와 신을 벗었다. 벗은 신을 문간에 가지런히 놓고 마루에 올라섰다. “2013년 서진리 사건 재검토 요청서, 오늘 오후에 제 이름으로 올렸습니다. 거기 담당 경사 최인규가 허위 진술을 일관됨으로 기재함, 이라고 제가 썼습니다.” 그가 내 쪽을 짧게 한 번 봤다. “제 서명은 제가 가져가야지요.”
그가 오태식 앞에 섰다.
“오태식 씨, 배해든 씨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강력팀 형사 하나가 오태식의 팔을 잡아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붕대 감은 손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붕대 가장자리 누런 얼룩 안쪽으로, 반달 모양으로 늘어선 작은 상처 자국이 비쳐 보였다. 오태식은 그 손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는 방 안의 스물세 명을 한 번 더 둘러봤다. 누구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정민은 삼촌이 끌려 나가는 동안 문간 옆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손에 쥔 확인서 뭉치가 바람에 한 장씩 넘어갔다. 그중 한 장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마당으로 날아갔고, 전조등 불빛 속에서 몇 바퀴 구르다가 회관 뒤 물웅덩이에 내려앉았다. 박순임이 새벽마다 분무기로 만든 비가 함석 차양에서 흘러내려 고인 웅덩이였다. 종이는 천천히 젖어 들어가면서 서명란부터 번졌다.
최인규는 오태식을 승합차에 태우는 걸 보고 나서 다시 문간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지는 않고 문턱 밖에 서서 나를 불렀다. 나는 청테이프 의자 사이를 지나 문간으로 나갔다. 마당에 선 승합차 안에서 오태식이 창밖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엿새 만에 스물세 명이냐.” 최인규가 말했다. 그의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나는 열세 해 전에 스물세 명을 한 시간 만에 받았다. 한 사람도 안 틀리길래 잘됐다고 생각했지.”
“팀장님 서명 말씀은 그런 뜻인 줄 몰랐습니다.”
“나도 몰랐다. 보고서 받고 나서 알았어.” 그가 승합차 쪽을 봤다. “연차 끝나면 들어와. 네 자리 아직 있다. 다음에는 좀 빨리 정해라.”
그때 이장이 은박지 뭉치를 들고 문간으로 나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최인규의 손에 고구마 하나를 쥐여 주었다. 최인규는 뜨거운 은박지를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 이장을 보다가,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승합차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 마을에서 고구마를 거절한 사람을 아직 한 명도 못 봤다는 생각을 했다.
*
승합차가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린 문으로 파도 소리가 들어왔다. 나는 해든의 공책을 무릎 위에 폈다. 윤슬이 내 옆에 서서 이름 옆에 점을 하나씩 찍어 나갔다. 황보현, 이숙자, 노진구, 노진호, 송재만, 김옥례, 송기철, 최덕배, 오말순. 이장과 조기봉 옆에는 이미 점이 있었다.
문을 열어 둔 지 한 시간이 넘자 회관 안이 식어 있었다. 난로가 혼자 애를 쓰는 소리를 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이기지 못했고, 사람들 입에서 하얀 김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아무도 문을 닫자고 하지 않았다.
점이 없는 이름은 하나 남아 있었다. 윤재 엄마, 제일 마지막에.
정미란은 앞에서 셋째 줄에 앉아 있었다. 체포가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한 명씩 일어서는 동안에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맨 앞줄 가운데 빈 의자를 보고 있었다. 방석 위 놋쇠 열쇠를.
그녀가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천천히 일어섰다.
“우리 윤재는 수요일에 죽었습니다.”
또박또박한 그 목소리는 열세 해 동안 목요일 문장을 누구보다 또박또박 말하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목소리만 그대로였고 말은 달랐다.
“저는 그 시간에 이 방에 앉아서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래방 반주가 커서 잘 안 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안 들린다고 생각하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빈 의자 쪽으로 한 걸음 나갔다. “그리고 열세 해 동안 목요일에 밥을 차렸습니다. 우리 윤재가 안 죽은 날에요.”
그녀는 빈 의자 앞에 섰다. 방석 위 열쇠를 집지 않고, 그 옆 비닐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얹었다.
“해든아, 이제 수요일이다.”
윤슬의 볼펜이 공책 위에서 멈췄다. 한참 멈춰 있다가 엄마 이름 옆에 점 하나가 찍혔다. 볼펜 끝이 종이를 뚫고 뒷장까지 나갔고, 그렇게 스물셋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