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71자) · 윤슬 · 2027년 4월 29일
다섯 번째 목요일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삼월 둘째 주 화요일, 지방법원 이 층 형사 법정은 난방이 너무 세서 공기가 말라 있었다. 방청석 나무 의자에서 니스 냄새가 났고, 천장 환풍구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이 증인석 앞 마이크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윤슬은 증인 선서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다. 방청석 첫 줄에 엄마가 있었고, 그 옆에 이장과 최옥자가, 뒷줄에 김태석과 한말순이 있었다. 서진리 사람 스물세 명은 전부 증인 명단에 올라 있었다. 오늘은 그중 여섯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복순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증인석 대신 화상으로 진술하기로 했는데, 그 말을 전해 듣고 나서 법정에서는 크게 말해도 되느냐고 세 번 물었다.
피고인석의 오태식은 수의 차림이었다. 넉 달 사이에 흰머리가 길게 자라 있었고, 오른손 손바닥에 반달 모양으로 늘어선 흉터가 분홍색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윤슬이 들어올 때 한 번 봤고, 그 뒤로는 보지 않았다.
검사의 신문은 길지 않았다. 해든이 민박에 든 날, 이름을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 것, 수요일 밤 열한 시 조금 넘어 회관에 간다며 나간 것, 칫솔, 공책. 윤슬은 들은 순서대로 대답했다. 형사가 그렇게 했으니까.
반대신문을 하려고 변호인이 일어섰다. 회색 양복에 안경을 쓴 남자였고, 서류를 넘기는 손가락이 길었다.
“증인, 2013년 11월 13일에 몇 살이었습니까?”
“그때 저는 여섯 살이었어요.”
“여섯 살 아이가 열세 해 전 밤의 요일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말씀입니까?”
“요일은 기억 못 해요. 대신 불빛을 기억해요.”
“무슨 불빛 말씀입니까?”
“언니 랜턴이 노랬어요. 다섯 개 중에 제일 노랬어요. 방파제 쪽으로 가다가 두 번 돌아봤어요.” 윤슬이 마이크에서 조금 떨어졌다. 자기 목소리가 스피커로 너무 크게 나오는 게 싫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쌀을 씻으면서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하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날 빨랫줄 수건은 말라 있었어요. 요일은 몰라도 그건 알아요. 언니가 나간 건 엄마가 그 말을 외우기 전날 밤이에요.”
변호인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 기억은 증인의 어머니가 사건 이후에 들려준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수 있지 않습니까? 증인의 어머니는 열세 해 동안 목요일이라고 말한 분입니다. 증인의 기억도 누군가 말해 준 대로 만들어졌을 수 있지요.”
방청석에서 누군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윤슬은 엄마 쪽을 보지 않았다.
“변호사님 말씀이 맞아요. 기억은 누가 말해 주는 대로 만들어져요.” 윤슬이 피고인석을 봤다. 처음으로 오태식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서진리 사람 스물세 명이 열세 해 동안 목요일을 기억했어요. 저 사람이 말해 준 대로요. 저는 그때 여섯 살이라서 그 말을 못 배웠어요. 이장 집 밥상 밑에 있었거든요. 구두 신은 사람이 마루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한테 따라 하라고 했어요. 구두를 신은 사람은 그 사람 하나였어요.”
변호인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재판장 쪽을 봤다. 재판장이 손을 들어 막지 않았다.
“변호사님 말씀대로 저는 여섯 살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건 요일이 아니라 이거예요.” 윤슬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녀는 떨리는 채로 말을 끝까지 했다. “마루 구석에 바지가 젖은 언니가 하나 있었어요. 아무도 말을 안 걸었어요. 그 언니가 저한테 너희 언니 두 번 돌아봤지, 나도 봤어, 했어요. 그 언니 이름이 배해든이에요. 그 언니는 열세 해 뒤에 그 말을 하러 다시 왔어요.”
변호인은 더 묻지 않고 앉았다.
*
사월 이십구일 목요일 오전 열 시, 재판장이 주문을 읽었다. 피고인 오태식을 살인죄로 징역 이십이 년에 처한다는 주문이었다. 2013년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되지 않았지만, 판결문에는 한 문단이 따로 들어갔다. 피고인은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밤 회관 출입문을 잠그게 하고 아동의 구조 요청을 사십 분간 막았으며,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 이 사건 범행의 동기가 되었다. 윤슬은 방청석에서 그 문단의 「수요일」을 들었다. 법원이 그 요일을 소리 내어 읽었다.
법정 뒷줄에는 최인규가 앉아 있었다. 2013년 사건 재검토 보고서를 제 이름으로 올린 뒤 견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주문이 끝나자 가장 먼저 일어나 나갔다. 나가면서 서진리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복도에서 오정민이 윤슬을 불러 세웠다. 추진위 점퍼 대신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삼촌 아니었으면 그 동네에 송전선 보상도 없었고, 방파제도 없었어. 너희 민박 앞 길 포장한 것도 삼촌이야.”
“알아요.” 윤슬은 걸음을 멈춘 채로 대답했다. “그 길로 해든 언니가 들어왔고, 그 방파제에서 떨어졌어요. 둘 다 삼촌이 만든 거 맞아요.”
오정민은 더 말하지 않았다. 윤슬은 그가 복도 끝 계단으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
서진리로 돌아가는 버스는 세 시 차였다. 두 시 이십 분에 서진리를 나온 차가 읍내 차고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들어가는 차였다. 윤슬은 엄마와 이장 부부를 먼저 택시로 보내고 혼자 정류장에 섰다. 버스가 들어오자 운전석에서 문병철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민박집 딸이네. 오늘 선고 있었다며? 이십이 년 나왔다며? 벌써 소문 다 났어. 이 동네는 방귀만 뀌어도 소문이 먼저 도착한다니까.”
윤슬이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 삑 소리가 났다. 문 기사가 그 소리를 듣고 백미러로 윤슬을 봤다. 잠깐 말이 없었다. 삼십일 년째 쉬지 않고 말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입을 다문 것은 윤슬이 아는 한 두 번째였다.
“두 시 이십 분 차가 목요일에 서진리 손님을 태우고 들어가네. 진짜로 태우고.” 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버스가 터널로 들어갔다. 조명이 나간 구간에서 차 안이 어두워졌고, 윤슬은 창에 비친 제 얼굴을 봤다. 열세 해 전 열한 살이 손바닥을 붙이고 있었다던 그 창이었다. 윤슬은 손바닥을 창에 대 보지 않았다. 대신 터널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 앞을 보고 앉아 있었다. 터널 끝에서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고, 문 기사는 그날도 와이퍼를 한 번도 켜지 않았다.
*
서진항 국가어항 지정은 보류됐다. 보상은 나오지 않았다. 황보현은 일월에 배를 팔고 인천으로 올라갔다. 떠나기 전날 회관에 와서 딸이 보냈다며 귤 한 상자를 두고 갔는데, 상자 옆면에 매직으로 「수요일 귤」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는 윤재의 제사를 십일월 십삼일에 지냈다. 날짜로 지내다 보니 올해는 금요일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제사상을 차리면서 수요일에 간 애 밥이라고 말했다. 박상철 부부와 정만수 부부도 그날 제사를 지냈고, 강성출과 최옥자도 지냈다. 박순임 할머니는 그날 저녁 그릇장 문짝 앞에 한참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윤슬이 가 보니 긁힌 자리 위에 삐뚤삐뚤한 연필 글씨로 배해든이라고 적혀 있었다. 키를 잰 줄보다 한참 위에, 스물네 살 여자의 키 높이였다.
*
그날 저녁 일곱 시, 회관에 불이 켜졌다. 하늘은 낮부터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갯벌 끝이 회색 구름에 먹혀 어디서 바다가 시작되는지 보이지 않았다. 회관 앞 화단에는 최옥자가 봄에 심은 채송화 모종이 줄지어 있었는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초록 잎만 손톱만 하게 올라와 있었다. 벽에 붙은 영농 일정표의 목요일 칸에는 올해 처음으로 이장 글씨가 들어가 있었다. 추모회, 문 열어 둘 것. 사월에는 목요일이 다섯 번 있었고, 이십구일이 그 다섯째였다.
이장이 의자를 폈다. 스물셋, 그리고 맨 앞줄 가운데 하나. 방석은 지난 시월 그 꽃무늬였고, 이제 비닐은 뜯겨 있었다. 놋쇠 열쇠는 없었다. 이장은 그 열쇠를 법원에 증거로 냈고, 돌려받지 않겠다고 했다.
스물다섯 번째 의자는 맨 뒷줄 문 옆에 놓였다. 청테이프 위에 새 청테이프가 한 겹 더 붙어 있었다. 일곱 시 오 분에 가람이 들어왔다. 연차를 내고 왔다고 했다. 한 손에 귤 봉지를, 다른 손에 한말순 슈퍼 요구르트 한 줄을 들고 있었다. 허리띠 구멍이 시월보다 하나 더 넘어가 있었다.
한말순이 형사님, 이번엔 외상 아니고 사 오신 거지요, 하고 물었다.
“현금으로 샀고, 영수증도 여기 있습니다.”
가람이 영수증을 꺼내 흔들자 사람들이 웃었다. 이복순 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남들이 웃으니 따라 웃다가, 옆 사람에게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회관이 울리게 물었고, 그 물음에 다들 한 번 더 웃었다.
자리도 시월과 달랐다. 김태석은 열세 해 동안 앉던 문 옆 자리를 비워 두고 윤정희와 함께 한가운데 줄에 앉았다. 문 옆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는데, 누가 앉으라고 하지 않아도 다들 그 자리를 그렇게 두었다. 조기봉은 이번에는 아내 옆에 앉았고, 한말순이 요구르트 하나를 까서 남편 손에 쥐여 주었다. 엄마는 맨 앞줄, 빈 의자 바로 옆에 앉았다. 시월에 손바닥을 얹었던 그 방석을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손으로 한 번 털었다.
이장은 문을 잠그지 않았다. 미닫이 두 짝을 양쪽 끝까지 밀어 열어 두었다. 시월부터 그렇게 했다. 사월 저녁 바람은 시월보다 따뜻했고, 갯벌 냄새에 어디선가 핀 유채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무도 문장을 외우지 않았다. 앞에 서는 사람도 없었다. 이장이 맨 앞줄 빈 의자 옆에 서서 이름을 불렀다. 강도현, 하윤재, 박태윤, 정미르, 배해든. 다섯 이름을 한 번씩. 부를 때마다 그 집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해든의 이름에서는 박순임이 고개를 숙였고, 엄마가 고개를 숙였고, 윤슬이 고개를 숙였다.
묵념이 끝날 무렵 지붕에서 소리가 났다. 함석 차양을 두드리는 가늘고 고른 소리였다. 처음에는 드문드문하다가 곧 촘촘해졌다.
박순임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할머니의 분무기는 시월 이후로 창고에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는 제 어깨를 한 번 만져 보더니 옆에 앉은 윤슬을 봤다.
“이번엔 나 아니야.”
“알아요, 할머니. 이번엔 진짜 비예요.”
윤슬은 일어나 열린 문 앞으로 갔다. 마당 흙이 검게 젖어 가고 있었다. 하늘에 별은 없었고, 등대 불빛이 빗줄기에 걸려 뿌옇게 번졌다. 윤슬은 손을 문밖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구름에서 떨어진 비였다.
아무도 문을 닫자고 하지 않았다. 스물세 명과 한 사람이 열린 문 안에 앉아서, 비가 함석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묻히는 소리가 이제 하나도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누가 문을 두드리면 들렸다.
가람이 윤슬 옆에 와서 섰다. 그도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목요일에 비가 오네요.”
“네, 오늘은 진짜로 오네요.”
비는 밤새 왔다. 회관 문은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