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29자) · 강성출 · 10월 29일

놋쇠 열쇠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강성출은 의자를 펼 때마다 다리 끝 고무가 장판에 닿는 소리를 속으로 셌다. 열세 해 동안 다섯째 목요일이 있는 달마다 그렇게 셌다. 한 줄에 다섯 개씩 다섯 줄. 스물세 개를 펴고 나면 벽에 기대 둔 의자 하나를 더 꺼내 맨 앞줄 가운데에 놓았다. 그 의자에만 방석을 깔았다. 올해는 방석을 새로 샀다. 읍내 시장에서 산 꽃무늬 방석이었고,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깔았다.

스물다섯 번째는 올해 처음 놓는 의자였다. 앉는 면이 갈라져 청테이프로 붙여 놓은 낡은 의자였는데, 그는 그걸 맨 뒷줄 문 옆에 따로 놓았다. 형사가 앉을 자리였는데, 이제 형사가 아니라고 했으니 그 사람 자리라고 해야 맞았다.

회관 안은 기름 난로 냄새로 훈훈했다. 창호지를 덧댄 미닫이 유리 너머로 해가 다 넘어간 하늘이 보라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벽에 붙은 영농 일정표의 목요일 칸은 비어 있었다. 강성출은 열세 해 동안 그 칸에 한 번도 무언가를 적지 않았다. 적으려고 볼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은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가 찰랑거렸다. 회관 열쇠, 창고 열쇠, 경운기 열쇠, 그리고 아무 데도 맞지 않는 작은 놋쇠 열쇠 하나.

*

열세 해 전 그 수요일 밤, 오태식은 새로 산 자물쇠를 미닫이 고리에 걸고 철컥 잠갔다. 그리고 그 열쇠를 강성출의 손에 쥐여 주었다.

“성출아, 이장이 들고 있어. 표결 끝나야 나간다.”

그는 열쇠를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가 노래방 기계에 동전을 넣었고, 트로트 반주가 회관을 채웠고, 소주잔이 돌았다. 동의서 뭉치가 탁자 위를 한 장씩 건너왔다. 송전선이 바다 밑을 지나가는 대가로 한 집에 이천만 원이었다. 그해 서진리에 이천만 원은 배 한 척 엔진값이었다.

아홉 시 반쯤 작은 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탕탕탕, 탕탕탕, 쉬었다가 또 탕탕탕.

강성출은 그 소리를 도현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때 도현이가 해루질 가도 되느냐고 물었고, 그는 회의 끝나고 아빠랑 같이 가자고 했다. 도현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방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 소리는 아빠 빨리 나오라는 도현이의 투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머니 속 열쇠를 쥐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끝나고 나간다.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십 분 동안 열쇠를 쥐었다 놓았다 했다. 옆자리의 아내가 그의 주머니 쪽을 몇 번 봤다. 문 옆의 김태석이 일어나려다 오태식의 손에 어깨를 눌렸다. 강성출은 그걸 다 봤다. 다 보고 열쇠를 쥐고만 있었다.

열 시 이십 분, 표결이 끝났다. 스물세 명이 전원 동의했다. 오태식이 박수를 쳤고 사람들이 따라 쳤다. 강성출은 박수를 치다 말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문간에 주저앉아 있던 것은 도현이가 아니었다. 박순임 집에 맡겨진 애였다. 바지가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그 애가 고개를 들어 강성출의 손에 들린 열쇠를 봤다.

“도현이가요, 도현이가 제일 멀리 있었어요.”

*

지난주 목요일 아침 여섯 시에 오태식이 강성출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강성출은 그 두드리는 소리에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났는데, 일어나서야 그게 큰 손이 두드리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오태식은 마당에 선 채로 담배를 한 대 다 피우고 나서 말했다. 그 애가 어젯밤 혼자 방파제에 나갔다가 빠진 것 같다, 내가 늦게 둘러보러 갔다가 난간 끊긴 데서 신발 한 짝을 봤다. 강성출은 해경에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오태식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열세 해 전과 같은 손이었는데 그날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성출아, 수요일 밤에 그 애가 빠졌다고 하면 사람들이 뭘 물을 것 같아? 그 애가 누군지, 왜 왔는지 물어. 그럼 열세 해 전 수요일까지 나와. 그 애는 목요일에 버스 타고 나간 거다. 우리가 늘 하던 대로.”

강성출은 그날 아침 윤슬이 하나만 빼고 자기 집 식구까지 스물한 사람을 찾아갔다. 안개가 골목 바닥에 낮게 깔려 있어서 장화 끝이 젖었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아침 밥 짓는 연기가 올라와 안개에 섞였다. 그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서 한 번씩 그 문장을 말했고, 사람들은 열세 해 전처럼 따라 했다. 세 번째 집에서부터는 따라 하는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와 똑같은 크기가 됐다. 마지막 집을 나서면서 그는 자기가 열세 해 전 오태식이 섰던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알고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일곱 시 오 분 전부터 사람들이 들어왔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서고,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열세 해 동안 앉던 자리였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들 자기 의자를 알았다.

오늘은 그 자리가 달랐다. 한말순이 늘 앉던 자리를 두고 박상철 부부 옆에 앉았고, 조기봉은 아내를 한 번 노려보고 혼자 강성출 옆자리에 와서 털썩 앉았다. 이복순 할머니는 맨 앞줄에 앉지 않고 방석 깔린 빈 의자 바로 뒤에 앉았다. 김태석과 윤정희가 나란히 들어와 문 옆에 앉았다. 김태석은 열세 해 전 그 자리였다. 황보현 부부와 노씨 형제와 송씨네와 최덕배 부부는 뒷줄에 몰려 앉아서 아무하고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정미란은 딸과 함께 왔다. 윤슬은 엄마 옆에 앉지 않고 맨 뒷줄, 청테이프 의자 옆에 가서 섰다. 그 의자에는 형사가 앉아 있었다. 형사는 수첩을 무릎에 올려놓았지만 펴지는 않았다.

아내 최옥자는 강성출의 오른쪽에 앉았다. 앉으면서 그의 허리춤 열쇠 꾸러미를 한 번 봤다.

일곱 시 정각에 미닫이가 열리고 오태식이 들어왔다. 양복을 입었고, 오른손 붕대는 새로 감았는지 하얬다. 오정민과 추진위 점퍼를 입은 남자 둘이 뒤따랐다. 오태식은 신을 벗지 않고 마루 끝에 서서 방 안을 한 번 둘러봤다. 그의 눈이 맨 앞줄 가운데 방석 깔린 의자에서 한 번 멈췄다.

“다들 오셨네요.” 오태식이 웃으며 말했다. “올해도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열세 해 동안 그랬다. 오태식이 앞에 서서 첫마디를 떼면 스물세 명이 따라 했다.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세 번째가 되면 모두 같은 크기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묵념을 하고 헤어졌다.

강성출은 일어서지 않고 말했다.

“오늘은 제가 하겠습니다.”

오태식이 그를 봤다. 웃는 얼굴이 그대로였다.

“성출아, 무슨 소리야?”

“이장이 하는 게 맞지요. 추모회는 마을 일이니까요.”

“그래, 그럼 네가 해.” 오태식이 마루에 올라섰다. 신을 신은 채였다. 장판 위에 흙 자국이 찍혔다. “그 전에 문부터 잠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가게. 형사님도 계시는데 중간에 들락날락하면 보기 안 좋잖아. 열쇠 가져왔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난로에서 기름이 타는 소리만 났다. 스물세 명이 전부 강성출의 허리춤을 봤다.

강성출은 일어서서 열쇠 꾸러미를 허리띠에서 풀었다. 꾸러미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방 안 구석구석까지 들렸다. 그는 미닫이 쪽으로 걸어갔다. 스물다섯 개의 의자 사이를 지나는 동안 누구도 숨을 크게 쉬지 않았다.

그는 회관 열쇠를 미닫이 자물쇠 구멍에 꽂았지만 돌리지는 않았다. 꽂아 둔 채로 두 손으로 미닫이 두 짝을 양쪽으로 끝까지 밀어 열었다. 문틀이 드르륵 울었다. 밖의 찬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난로 불꽃을 옆으로 눕혔고, 창호지가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바다 냄새가 들어왔다. 파도 소리가 들어왔다.

열세 해 동안 추모회를 하는 동안에는 문이 늘 닫혀 있었다. 강성출은 추모회 도중에 회관 안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게 처음이었다.

그는 열쇠 꾸러미에서 작은 놋쇠 열쇠를 떼어 냈다. 아무 데도 맞지 않는 열쇠였다. 열세 해 전 그 자물쇠는 다음 날 오태식이 떼어 갔고, 열쇠만 강성출에게 남았는데 그는 그걸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는 그 열쇠를 방석 깔린 빈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갈라진 목소리를 그는 한 번도 가다듬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수요일 밤 아홉 시 반부터 열 시 이십 분까지,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열쇠는 제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린 건 해든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도현이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도현이가 아빠 빨리 나오라고 두드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끝나고 나간다고 생각하면서 사십 분 동안 열쇠를 쥐고 있었습니다.” 그가 빈 의자의 방석을 내려다봤다. 비닐 위에 놋쇠 열쇠가 누워 있었다. “도현이는 제일 멀리 있었답니다. 해든이가 그렇게 말해 줬습니다. 저는 그 말을 열세 해 동안 아무한테도 안 했습니다.”

최옥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덮은 손 틈으로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여섯 시 십이 분에 윤슬이 이름으로 신고를 취소한 것도 저였습니다. 보일러 고쳐 주러 갔다가 윤슬이 책상에서 접수번호 적힌 종이를 봤습니다. 수화기 너머 젊은 순경은 제 쉰 목소리를 여자 목소리로 적었답니다. 접수번호를 대니 더 묻지 않았습니다.” 강성출이 오태식을 돌아봤다. “해든이가 혼자 방파제에 나갔다가 빠졌다고 하셨지요, 형님. 그 말을 믿었고, 믿고 싶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해든이 손목에 손가락 자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태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입만 웃고 있었다.

“성출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하는 거야?”

“예, 압니다.”

강성출 옆자리에서 의자가 삐걱거렸다. 조기봉이 일어나 있었다. 러닝셔츠 위에 점퍼를 걸친 차림이었고, 두 주먹을 허벅지 옆에 붙이고 있었다.

“나도 수요일이오.” 조기봉은 아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소주 세 박스 외상 장부를 여태 갖고 있었소. 나는 그거 몰랐소. 알았으면 내가 갖다 버렸을 거요. 그러니까 나도 수요일이오.”

한말순이 앉은 채로 남편의 등을 봤다. 남편은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열린 문으로 바람이 계속 들어왔다. 오태식이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스물세 명의 얼굴을 하나씩 짚는 눈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보상 없습니다. 한 집에 일억 팔천이요. 다음 주 심사에서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줄이라도 나가면 그거 전부 없어집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요.” 그가 붕대 감은 손을 들어 뒷줄을 가리켰다. 황보현이 앉아 있는 쪽이었다. “인천에 따님 계시지요?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황보현이 고개를 숙였다.

강성출은 열린 문 앞에 선 채로 오태식의 손을 봤다. 흰 붕대 가장자리에 누런 약이 번져 있었다. 열세 해 전 어깨를 누르던 그 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손은 방 안의 누구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누구든 일어나서 나갈 수 있었다.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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