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09자) · 가람 · 10월 29일
목요일 정오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해경 구조정은 새벽 네 시 반에 들어왔다. 물이 다시 들기 전에 해든을 올려야 했고, 잠수복을 입은 구조대원 셋이 테트라포드 틈으로 내려가 들것을 밧줄에 묶었다. 방파제 위에는 누군가 파란 방수포를 펼쳐 두었다. 들것이 올라와 그 위에 놓였을 때 동쪽 하늘이 갯벌 끝에서부터 잿빛으로 밝아지고 있었고, 갈매기 몇 마리가 방수포 위를 낮게 돌다가 구조대원이 팔을 휘젓자 흩어졌다. 비닐에 덮인 들것 위로 흰 운동화 한 짝이 따로 담긴 증거 봉투가 올려졌다.
이장은 새벽 다섯 시에 방파제 입구에 나왔다. 손에 은박지 뭉치를 한 아름 들고 있었다. 그는 구조대원들에게 고구마를 하나씩 나눠 주다가 방수포 쪽을 한 번 보고는 남은 은박지 뭉치를 가로등 밑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 스무 살쯤 된 해경 순경 하나가 은박지를 까서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다가, 옆 사람이 옆구리를 찌르자 입에 문 채로 굳었다.
윤슬은 회관 마당 귀퉁이, 신호가 한 칸 서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해경에 전화를 건 뒤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는데 화면은 꺼져 있었다. 내가 옆에 가서 서자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운동화 끈이 두 번 묶여 있었다고만 말했다. 언니도 끈을 두 번 묶었다고, 풀리면 갯벌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니까 그렇게 묶으라고 동네 어른들이 가르쳤다고.
민박 쪽에서 정미란이 걸어왔다. 두꺼운 담요를 한 장 들고 있었다. 그녀는 딸 뒤에 서서 담요를 펼쳐 어깨에 덮어 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슬도 돌아보지 않았다. 정미란은 담요 끝을 딸의 목 밑에서 한 번 여며 주고, 여민 손을 한동안 거기서 떼지 않다가 민박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걸음이 방파제 쪽으로는 한 번도 향하지 않았다.
일곱 시에 최인규가 과학수사 차량과 함께 들어왔다.
*
그는 방수포 앞에 서서 오래 내려다봤다. 그러고 나서 끊긴 난간 자리로 걸어가 볼트 구멍과 노란 끈을 봤다. 내가 옆에 가서 서자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난간 끊긴 데서 떨어졌다. 밤이었고, 가로등은 뒤에 있었고, 동네를 떠난 지 열세 해 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사고다.”
“칫솔이 민박 컵에 있었습니다. 버스 단말기에는 목요일 서진리 승차가 영입니다. 김태석 씨가 수요일 밤 열한 시 오십 분에 오태식 의원 트럭을 방파제 입구에서 봤습니다. 불을 끄고 서 있었다고 합니다.”
“트럭이 서 있었다고 치자. 그래서 뭐?”
“오태식 의원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 있습니다. 손바닥을 가로질러 감은 붕대인데, 사람 이로 물린 자리 같습니다.” 나는 방수포 쪽을 봤다. “피해자 손톱 밑과 치아에서 채취해 주십시오. 그리고 의원 손 상처 사진을 영장으로 받아 주십시오.”
최인규가 그제야 나를 봤다. 밤을 새운 눈이었고,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다.
“지금 군의원을 건드리자고? 심사 이레 앞둔 국가어항 추진위원장을? 트럭 한 대랑 붕대 하나로?” 그가 담배를 꺼냈다가 과학수사 요원이 쳐다보자 도로 넣었다. “가람아, 네가 이걸 타살로 올리면 뭐가 딸려 나오는지 알아?”
“2013년이 딸려 나옵니다.”
“내 서명이 딸려 나와. 허위 진술을 일관됐다고 적은 경사 최인규가. 시효 끝난 일로 늙은이 스물세 명이 다시 조서를 써. 여든 먹은 할머니가 경찰서 의자에 앉아서 열세 해 전에 거짓말했습니다, 하고 말해야 돼. 그게 누구한테 좋은 일이냐?”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과학수사 요원들이 들을까 봐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듣기 싫어서 낮추는 목소리였다. “사고사로 올려라. 그러면 2013년은 그대로 둔다. 너도 나도 이 동네도.”
“타살로 올리면 어떻게 됩니까?”
“너는 이 사건에서 빠진다. 강력팀으로 넘기고, 너는 연차 쓰든 뭘 하든 알아서 해.”
과학수사 요원 하나가 방수포 옆에서 일어나 최인규에게 다가왔다. 장갑 낀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계장님, 일차 소견입니다. 뒷머리 손상은 추락으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왼쪽 손목에 멍이 있습니다. 손가락 네 개 자국이에요. 누가 세게 쥐었던 자리입니다. 떨어지기 전에요.” 요원이 화면을 넘겼다. “그리고 입안에서 피해자 것이 아닌 피부 조직이 조금 나왔습니다. 분석은 가 봐야 알겠습니다.”
최인규는 태블릿을 받아 한참 들여다봤다.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이 느렸다. 그는 태블릿을 요원에게 돌려주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고사로 올려.” 그가 말했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작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방수포 쪽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고, 비닐 너머를 오래 내려다봤다. 열세 해 전에도 그는 이 방파제에서 무언가를 이렇게 내려다봤을 것이다. 그때 방수포 위에 누워 있던 것은 넷이었고, 그중 제일 큰 아이도 그의 어깨에 닿지 않았을 것이다.
바다 쪽에서 물이 들기 시작했다. 테트라포드 아래쪽 따개비가 하나씩 물에 잠겼다. 나는 들것이 올라온 틈을 내려다봤다. 이제 물이 차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오까지 올리겠다고만 말했다.
“뭐라고 올릴 건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했는데 입으로 먼저 말하면 그가 한 번 더 저울을 내밀 것 같았다.
*
열한 시 사십 분, 나는 터널을 지나 삼백 미터 더 간 갓길에 차를 세웠다. 오른쪽 바퀴 둘이 마른 억새를 밟았다. 창을 내리자 골짜기에서 물소리가 올라왔다. 신호가 두 칸 섰다. 노트북을 무릎에 올리고 보고서 양식을 열었다. 차 안에는 밤새 입은 점퍼에서 나는 바다 냄새와 이장이 대시보드에 올려 두고 간 귤 껍질 냄새가 섞여 있었고, 히터를 끄자 유리창 안쪽으로 금세 김이 서렸다. 나는 소매로 창을 한 번 닦고 나서 자판에 손을 올렸다.
사건 개요는 금방 썼다. 들은 순서대로 적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1일차 스물두 명의 같은 문장, 한 명의 다른 문장. 2일차 분무기와 그릇장. 3일차 버스 단말기, 문서고의 2013년 서류철, 회관 사진의 쇠고리. 4일차 해든의 공책과 점 둘. 5일차 김태석의 사십 분과 트럭. 6일차 새벽 테트라포드.
문제는 판단이라고 적힌 맨 아래 칸이었고, 거기 들어갈 말은 사고사 추정과 타살 의심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커서가 깜빡이는 칸을 오 분 동안 봤다. 십오 년 전의 나라면 여기서 한 줄을 더 들으러 갔을 것이다. 부검 결과가 나오고, 손톱 밑 채취 결과가 나오고, 오태식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추모회에서 스물세 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고 나서야 이 칸을 채웠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보고서는 다른 팀 손에 있고, 추모회는 끝났고, 스물세 명은 한 번 더 목요일을 말한 뒤일 것이다.
다 듣기 전에 정해야 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한 번 떨렸다. 떨림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는 쳤다.
「타살 의심. 피의자 특정 가능. 수사 계속 요청. 2013년 서진리 사건 기록 재검토 요청.」
열한 시 오십구 분에 전송을 눌렀다. 화면에 전송 완료가 뜨는 순간 신호가 한 칸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두 칸이 됐다.
전화는 열두 시 삼 분에 왔다.
“너 이 사건에서 빠졌다.” 최인규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화가 없었다. 화를 다 쓰고 남은 목소리였다. “강력팀이 오후에 들어간다. 너는 연차 쓴다며. 쓰고 거기 있어.”
“예, 알겠습니다.”
“가람아, 하나만 말해 두자.”
“말씀하십시오.”
“내 서명은 네가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가 잠깐 숨을 골랐다. “그건 내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나는 그 말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경고인지, 다른 무엇인지. 억새가 차 문짝을 긁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열두 시 삼 분, 최인규, 내 서명은 내 거다. 들은 그대로 적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
회관으로 돌아온 건 한 시였다. 수사팀이 쓰던 방은 비어 있었고, 내 가방은 뒷방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이제 형사가 아니라 연차 중인 손님이었다. 이장이 말한 대로 됐다. 사건이 없어지면 형사님은 그냥 손님입니다.
처음 미닫이를 연 사람은 한말순이었다. 슈퍼 앞치마를 두른 채 외상 공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형사님, 이제 형사 아니시라면서요?” 소문은 나보다 먼저 터널을 넘어와 있었다. “그럼 외상은 갚고 가셔야지요. 요구르트 여섯 개, 이장님 앞으로 달린 귤 한 봉지는 형사님이 드셨으니까 그것도요.”
나는 지갑을 꺼내 칠천 원을 건넸다. 한말순은 돈을 세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공책의 내 이름 줄에 두 번 줄을 그었다. 그러고도 가지 않고 공책을 한동안 가슴에 끌어안고 서 있었다. 공책 모서리가 닳아서 둥글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재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추모회 끝나고 다시 오겠다는 말만 하고 나갔다.
미닫이가 다시 열리고 이번에는 최옥자가 들어왔다. 김이 나는 부침개 한 접시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접시를 내 앞 탁자에 내려놓고 나를 한참 봤다. 며칠 전 이장 집 마당에서 입술을 한 번 벌렸다가 닫던 그 얼굴이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에요.”
그 한마디를 하는 데 목에 힘이 들어가서 목에 핏줄이 섰다.
“우리 애 아빠가 문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어요. 나는 그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요. 사십 분 동안 그 사람 손이 주머니 안에서 열쇠를 쥐었다 놨다 했어요. 나는 그걸 다 봤어요.” 그녀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손은 이미 말라 있었다. “식기 전에 드세요. 식으면 기름 맛만 남아요.”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미닫이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부침개 접시를 들어 올렸다. 접시 밑에 쪽지 한 장이 깔려 있었고, 기름이 배어 반투명해진 종이에 볼펜으로 수요일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창밖으로 오정민이 보였다. 추진위 점퍼를 입은 남자 둘과 함께 골목 첫 집부터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이장 집, 김태석 집, 한말순 슈퍼. 문이 열리면 오정민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고, 집주인이 거기 무언가를 적거나 도장을 찍었다. 해든의 공책과 같은 순서였다. 나보다 한 시간 먼저 그 길을 돌고 있었다.
나는 수첩을 펴서 김태석 아래에 줄을 하나 더 그었고, 그렇게 넷이 됐다. 추모회까지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고, 공책의 스물세 이름 가운데 열아홉에는 아직 점이 없었다. 나는 부침개를 한 장 집어 먹었다. 가장자리가 바삭하게 탄 부추전이었고, 식어 가는 기름 사이로 방금 캔 부추 냄새가 아직 살아 있었다. 이번에는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