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17자) · 윤슬 · 10월 28일
테트라포드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수요일 밤 열 시, 방파제에는 불이 하나뿐이었다. 입구에서 백 미터쯤 들어간 자리에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고, 그 너머로는 등대 불빛이 칠 초에 한 번씩 방파제 위를 쓸고 지나갈 때만 길이 보였다. 콘크리트 바닥은 낮 동안 머금은 햇볕을 다 내놓고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난간 쇠파이프에 손을 대면 녹이 손바닥에 까슬하게 묻어났고, 비린내와 해초 썩는 냄새가 바람이 바뀔 때마다 번갈아 올라왔다.
윤슬은 가람보다 두 걸음 앞에서 걸었다. 이 방파제를 밤에 걷는 건 처음이었다. 엄마는 윤슬이 어릴 때부터 해가 지면 방파제 입구에도 못 가게 했고, 친구들과 등대까지 뛰어가 보자는 날이면 대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아이 때는 그게 그냥 엄마 잔소리인 줄 알았다. 엄마는 이유를 한 번도 말하지 않았고, 윤슬도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가로등을 지나고 스무 걸음쯤 가자 난간이 끊겨 있었다. 쇠파이프가 뜯겨 나간 자리에 볼트 구멍만 남아 있었고, 누군가 그 사이에 노란 끈을 한 줄 매 놓았는데 끈은 한쪽이 풀려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가람이 줄자를 꺼내 폭을 쟀다. 이 미터 십 센티미터였다. 그 아래가 테트라포드였다. 다리 넷 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서로 엇갈려 쌓여 있었고, 사이사이 검은 틈에서 물이 드나드는 소리가 났다.
“가로등이 뒤에 있어서 여기 오면 자기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생겨요.” 윤슬이 말했다. “그림자 때문에 끊긴 자리가 안 보여요. 동네 사람들은 여기서 늘 오른쪽으로 붙어 걸어요.”
“해든 씨는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열한 살까지만요.” 윤슬이 노란 끈을 주워 다시 묶었다. “열한 살 때는 여기 난간이 멀쩡했어요.”
*
방파제 끝, 등대 밑에서 김태석이 통발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있었고, 그 불빛이 밧줄을 따라 물속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우리를 보자 그가 밧줄 쥔 손을 멈췄다.
“계장님, 해든 씨 공책에 계장님 이름 옆에 점이 찍혀 있습니다. 말해 주신다고 하셨다고요.”
김태석이 밧줄을 다시 당기기 시작했다. 통발이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닷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통발 안에 게 두 마리가 집게를 쳐들고 있었다.
“그 애한테는 그렇게 말했지요.”
“저한테는 목요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애는 이제 없잖아요.”
방파제 입구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트럭 한 대가 방파제 초입까지 들어와 섰고, 남자 셋이 내렸다. 맨 앞은 오정민이었다. 추진위 점퍼를 입고 있었고,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셋이 가로등 밑을 지나 걸어오는 동안 그들의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늘어나 끊긴 난간 자리를 덮었다가 지나갔다. 오정민은 오른쪽으로 붙어 걸었다. 그도 이 방파제를 아는 사람이었다.
“계장님, 늦게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오정민이 가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김태석 앞에 섰다. “배 대출 연장 서류요, 다음 주 월요일까지 도장 받으셔야 하잖아요. 삼촌이 보증 다시 서 주신대요. 서류 여기 가져왔어요.”
김태석은 봉투를 내려다보기만 하고 받지 않았다.
“내일 추모회 끝나고 받을게.”
“내일 추모회 전에 받으셔야죠. 추모회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잖아요.” 오정민이 봉투를 통발 위에 올려놓았다. 바닷물이 봉투 모서리에 스몄다. “수요일 얘기 나오면 보상 없어요. 계장님 한 집이 아니라 스물세 집 전부요. 할머니들 병원비도 거기서 나가는데, 계장님이 그걸 다 책임지실 거예요?”
“정민아, 그만해.”
“계장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그만하라고 했다.” 김태석이 봉투를 집어 오정민 가슴에 도로 밀었다. 소리가 크지 않았는데 오정민이 반걸음 물러섰다. “너희 삼촌한테 가서 전해. 내 배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오정민이 봉투를 가슴에 붙인 채 김태석을 한참 보다가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처음으로 가람을 봤고, 그다음에 윤슬을 봤다. 윤슬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트럭은 헤드라이트를 끄지 않은 채 한참 방파제 초입에 서 있다가 떠났다. 불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윤슬은 자기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넷 나 있었다.
*
김태석은 통발을 내려놓고 등대 밑 콘크리트 턱에 앉았다. 헤드랜턴을 벗어 무릎에 올려놓았다. 랜턴 불빛이 그의 장화 끝을 비췄다.
“나는 문 옆 자리에 앉아 있었어.” 김태석이 말했다. “열세 해 전 그 수요일에요. 회관 미닫이 바로 옆. 담배 피우러 나가기 좋은 자리라서.”
가람은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윤슬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노래방 기계가 돌고 있었어. 누가 트로트를 불렀고. 표결 끝나야 나간다고 태식이 형님이 문에 자물쇠를 걸었어. 열쇠는 이장님이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작은 손이 두드리는 소리였어. 쾅쾅이 아니라 탕탕탕, 탕탕탕.” 김태석이 무릎 위 헤드랜턴을 손가락으로 탕탕탕 두드렸다. “내가 일어나려고 했어. 태식이 형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어. 애들 장난이다, 표결 끝나고 열어. 그 손이 무거웠어.”
“그게 몇 분이었습니까?”
“사십 분이었어.” 그가 헤드랜턴을 쥐었다. “나는 사십 분 동안 그 소리를 세면서 앉아만 있었고 일어나지 않았어. 문이 열리고 나서 그 애가 문간에 주저앉아 있는 걸 봤어. 바지가 무릎까지 젖어서. 그 애가 나를 봤어. 문 옆에 앉아 있던 나를.”
바람이 한 번 세게 불었다. 통발 안의 게가 콘크리트를 긁는 소리가 났다.
“그날은 수요일이었어요.” 김태석이 말했다. 목요일 문장을 말할 때와 목소리가 달랐다. 쉬고, 느리고, 끝이 갈라졌다. “수요일 밤 아홉 시 반부터 열 시 이십 분까지. 비는 안 왔어요.”
가람이 수첩을 꺼냈다. 윤슬은 그가 김태석이라는 이름 옆에 3이라고 적는 걸 봤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뭘 보셨습니까?” 가람이 물었다.
김태석이 방파제 입구 쪽을 봤다.
“열한 시 오십 분쯤 여기 입구에 트럭이 한 대 불을 끄고 서 있었어요. 태식이 형님 트럭이에요. 나는 그물 보러 나왔다가 그 트럭을 보고 도로 들어갔어요. 항구 공사 때문에 둘러보러 왔나 했어요.”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다음 날 아침에 이장님이 그러더라고요. 그 애가 밤에 혼자 방파제에 나갔다가 빠진 것 같다고. 태식이 형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러니까 수요일 얘기는 꺼내지 말자고. 수요일이 나오면 열세 해 전 수요일까지 나온다고.”
윤슬은 난간 끊긴 자리를 돌아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 노란 끈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뒤로 찾아보셨습니까?” 가람이 물었다.
김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테트라포드에 빠지면 물로 안 가고 틈으로 들어가요. 물이 들고 날 때마다 더 깊이 밀려 들어가요.” 그가 시계를 봤다. “한 시 반쯤이면 물이 제일 많이 빠져요. 그때는 밑에까지 내려갈 수 있어요.”
*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셋은 등대 밑 바람 그늘에 앉아 있었다. 김태석이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뚜껑 컵에 돌려 마시게 했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커피가 아니라 단물 같았다. 가람은 그것도 거절하지 못하고 두 번 받아 마셨다.
“형사님은 왜 이 일 해요?” 윤슬이 물었다. “실종만 십오 년이라면서요.”
가람은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첫 사건이 여덟 살 아이였고, 진술이 조금씩 어긋나서 하나라도 더 들으려다 저수지 수색을 하루 늦췄다고 했다. 아이는 그 저수지에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사라진 사람을 찾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윤슬을 보지 않았고, 컵 속 단물만 내려다봤다.
“그럼 이번엔 안 늦게 정해요.” 윤슬이 말했다.
“이번에도 저는 이미 늦었습니다. 해든 씨는 일주일 전 수요일에 여기 왔습니다.”
“언니한테는 늦었어요.” 윤슬이 무릎을 끌어안았다. “근데 목요일은 아직 안 왔잖아요.”
김태석이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닫는 소리가 파도 소리 사이에서 유난히 크게 났다.
*
새벽 한 시 사십 분, 물이 빠진 테트라포드는 낮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콘크리트 다리마다 따개비와 파래가 허리 높이까지 붙어 있었고, 그 위로는 하얗게 말라 있었다. 김태석이 밧줄 한쪽을 가로등 기둥에 묶고 다른 쪽을 제 허리에 감았다.
“내가 먼저 내려갈게요.”
가람이 밧줄을 잡으며 자기가 가겠다고 했다. 김태석이 가람의 손에서 밧줄을 천천히 빼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가요.” 그가 말했다. “열세 해 전에 나는 제일 늦게 나갔어요.”
김태석이 테트라포드 사이로 내려갔다. 콘크리트 틈에서 차고 축축한 바람이 올라왔다. 햇빛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자리에서만 나는 냄새였는데, 곰팡이와 쇠 녹과 오래 고인 바닷물이 한데 삭은 냄새가 윤슬의 목구멍 안쪽까지 들어와 달라붙었다. 밧줄이 가로등 기둥에 쓸리면서 끼익 하고 울 때마다 윤슬은 기둥에 묶인 매듭을 한 번씩 손으로 확인했다. 윤슬은 난간 끊긴 자리에 엎드려 노란 해루질 랜턴을 아래로 비췄다. 언니가 들고 나갔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건전지 넷 들어가는 노란 통. 슈퍼에서 파는 게 열세 해째 그것 하나였다.
불빛이 콘크리트 모서리를 타고 내려가다 김태석의 등을 비췄고, 그 아래 검은 틈을 비췄다. 가람이 뒤따라 내려갔다. 두 사람의 장화가 따개비를 밟을 때마다 오도독 부서지는 소리가 올라왔다.
아래에서 김태석이 멈췄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윤슬에게 불빛을 조금 더 왼쪽으로 달라는 손짓을 했다. 윤슬은 랜턴을 옮겼다.
불빛 안에 운동화 한 짝이 들어왔다. 흰 운동화였고, 끈이 두 번 묶여 있었다. 그 옆으로 틈 안쪽에 무언가가 끼어 있었다. 윤슬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가람이 먼저 몸을 돌려 틈을 가렸다. 가람은 가린 채로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김태석이 그 옆에서 모자를 벗었다.
윤슬의 손에서 랜턴이 떨렸다. 떨리는 불빛이 콘크리트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틈 안쪽에서 나온 손 하나를 스쳤다. 손바닥이 위를 향해 있었고, 윤슬은 그게 열세 해 전 회관 문을 두드리던 손이라는 걸 알았다.
“윤슬 씨, 제 말 들리십니까?” 아래에서 가람이 말했다. 목소리가 올라오는 동안 파도 소리에 반쯤 먹혔다. “회관 마당 귀퉁이로 가 주십시오. 거기서만 신호가 한 칸 섭니다. 해경에 전화해 주십시오.”
윤슬은 랜턴을 난간 기둥에 걸어 두고 일어섰다. 랜턴은 아래를 향해 켜진 채였다. 방파제를 달려 나가는 동안 뒤에서 등대 불빛이 칠 초에 한 번씩 그녀를 앞질러 갔다. 가로등 밑을 지날 때 그녀는 처음으로 오른쪽에 붙지 않고 가운데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