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73자) · 윤슬 · 10월 27일

다섯째 칸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윤슬이 여섯 살이던 해 십일월, 수요일 밤이었다.

언니 윤재는 열두 살이었고, 해루질 랜턴을 들고 방문을 열기 전에 검지를 입술에 댔다. 쉿, 엄마한테 말하지 마. 엄마는 그날 저녁 어촌계 총회에 간다고 회관에 가 있었고, 아빠는 이미 이 년 전에 배와 함께 없어진 뒤였다. 랜턴은 건전지 네 개가 들어가는 노란 플라스틱 통이었는데, 언니가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이 한꺼번에 누렇게 밝아졌다가 문이 닫히면서 다시 어두워졌다.

윤슬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와 창틀에 턱을 괴었다. 물이 빠진 갯벌은 까맣고 끝이 없었고, 그 위로 불빛 다섯 개가 흔들리며 멀어져 갔다. 그중 하나가 언니 랜턴이었고, 언니 불빛은 유난히 노래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불빛은 방파제 쪽으로 가다가 한 번 멈춰서 이쪽으로 돌았고, 조금 더 가다가 한 번 더 돌았다. 두 번 뒤돌아봤다. 윤슬은 창에 입김이 서리는 줄도 모르고 그 노란 점이 다른 불빛 틈에 섞여 구분이 안 될 때까지 보고 있었다.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았다. 잠들었던 것 같았다. 멀리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는데, 그건 꿈이었는지도 몰랐다.

기억나는 건 다음 날 아침 부엌이었다. 엄마가 쌀을 씻고 있었다. 물을 붓고, 손바닥으로 쌀을 비비고, 뿌연 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물을 부었다. 쌀 씻는 소리 사이로 엄마가 혼잣말을 했다.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어른들은 비 때문에 다 회관에 있었다. 엄마는 그 말을 쌀뜨물을 버릴 때마다 한 번씩 했다. 쌀은 벌써 하얗게 맑아졌는데 엄마는 계속 씻었다.

그날 비는 오지 않았다. 여섯 살 윤슬은 창밖 빨랫줄에 걸린 수건이 마른 걸 봤다.

점심때 엄마는 윤슬을 업고 이장 집으로 갔다. 마루와 방과 마당에 어른들이 꽉 차 있었다. 담배 연기가 천장 밑에 납작하게 깔려 있었고, 누군가 끓여 놓은 커피 주전자가 난로 위에서 계속 달그락거렸다. 윤슬은 엄마 등에서 내려 밥상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밥상 다리 사이로 어른들 무릎이 보였다.

마루 한가운데 한 사람만 서 있었다. 그 사람이 한 문장을 말하면 어른들이 따라 했다.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따라 하는 소리가 작으면 그 사람이 다시 말했다. 세 번째에는 모두 똑같은 크기로 말했다. 박순임 할머니만 따라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서 있던 사람이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아 뭐라고 오래 말했고, 할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마루 구석에 여자아이 하나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바지가 무릎까지 젖어서 갯벌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아무도 그 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윤슬은 밥상 밑에서 기어 나가 주머니에 있던 요구르트를 그 애 발 앞에 놓았다. 그 애가 요구르트를 한참 보다가 윤슬을 봤다.

“너희 언니, 두 번 돌아봤지?” 그 애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나도 봤어. 내가 제일 뒤에 있었거든.”

그날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 그 애는 없어졌다. 서 있던 사람이 그 애를 안고 나갔다. 요구르트는 뜯지 않은 채 마루 구석에 남아 있었다.

*

열세 해 뒤 화요일 오전, 엄마가 이 층 끝방을 비우라고 했다. 주말에 손님이 든다고 했다.

윤슬은 걸레를 들고 올라갔지만 걸레질부터 하지 않았다. 해든이 개어 놓은 이불을 폈다가 다시 개고, 베개 커버를 벗기다 말고 도로 씌웠다. 세면대 컵의 칫솔은 이제 완전히 말라 있었다. 윤슬은 그것을 끝내 치우지 못하고 요 밑의 매트리스를 들어 올렸다.

매트리스와 침대 널빤지 사이에 공책 한 권이 끼어 있었다. 스프링 공책이었고, 표지 모서리가 물에 한 번 젖었다 마른 것처럼 물결져 있었다. 첫 장에 볼펜으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10월 29일, 다섯째 목요일. 스물세 명이 수요일이라고 말하게 한다.」

그 아래로 이름이 스물세 개 적혀 있었다. 집마다 줄을 바꿔서, 이 마을 열두 채 순서대로였다. 윤슬은 그게 누구 순서인지 알았다. 이장 집에서 시작해 박순임 할머니 집으로 끝나는, 이 마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걷는 순서였다.

이름 옆에는 짧은 말이 붙어 있었다. 이복순 옆에는 「귀가 어두우니 크게 말할 것」. 한말순 옆에는 「외상 공책에 수요일 없음」. 이장 옆에는 「열쇠」. 박순임과 김태석 이름 옆에만 까만 점이 찍혀 있었다. 점 옆에 「말해 준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 이름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윤재 엄마, 제일 마지막에」

윤슬 이름은 없었다. 스물세 명 가운데 윤슬만 없었다. 그 대신 맨 아래 공책 가장자리에 아주 작게, 연필로 한 줄이 있었다. 「윤슬이는 안 물어봐도 됨. 그 애는 목요일을 안 배웠음.」

공책 뒤표지 비닐 안쪽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누렇게 바랜 군내버스 종이 승차권이었다. 서진리에서 해안읍, 2013년 11월 14일 14시 20분, 어린이.

윤슬은 공책을 가슴에 끌어안고 한참 서 있었다. 창밖으로 방파제 끝 붉은 등대가 보였다. 언니 불빛이 마지막으로 뒤돌아봤던 자리가 그 근처였다.

*

부엌에서 엄마가 파를 썰고 있었다. 도마 위에서 칼이 일정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식탁 위에 공책을 펴서 엄마 쪽으로 밀었다. 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멸치 육수가 끓고 있었고, 창틀에는 엄마가 해마다 목요일 제사 때 꺼내 닦는 놋촛대 한 쌍이 신문지에 싸인 채 올려져 있었다.

“엄마, 언니 제사를 왜 목요일에 지내?”

칼이 멈췄다.

“목요일에 죽었으니까 목요일에 지내지.”

“언니는 수요일 밤에 랜턴 들고 나갔어. 내가 창문으로 봤어.”

“너 그때 여섯 살이었어.” 엄마가 다시 칼질을 시작했다. 아까보다 빨랐다. “여섯 살이 뭘 기억해.”

“노란 불빛이 두 번 돌아봤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기억해.”

엄마의 칼이 도마를 세게 내리쳤다. 파 한 토막이 식탁 밑으로 튀어 나갔다. 엄마는 그걸 줍지 않고 칼을 쥔 채로 식탁에 펼친 공책을 내려다봤다. 첫 장의 한 줄과, 자기 이름 옆에 적힌 한 줄을 읽는 게 눈동자로 보였다.

엄마가 공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싱크대 옆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발로 밟아 열었다.

윤슬이 공책 반대쪽 끝을 잡았다. 엄마는 놓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스프링이 비틀리며 삐걱거렸고, 첫 장이 스프링 구멍을 따라 반쯤 찢어졌다.

“이거 놔.”

“엄마가 먼저 놔.”

엄마의 목소리가 처음 들어 보는 높이로 올라갔다. “수요일이면 엄마는 그 시간에 회관에 있었던 거야. 문 잠긴 방에서 노래방 기계 틀어 놓고 동의서에 도장 찍고 있었던 거야. 네 언니가 물에 잠기는 동안. 그걸 엄마 입으로 말하라고?”

윤슬은 공책을 놓지 않았다. 엄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얘져 있었다. 쌀을 씻던 그 손이었다. 열세 해 동안 목요일마다 제사상에 밥을 올리던 손이었다.

“목요일엔 언니가 안 죽었어.” 윤슬이 말했다. “엄마는 열세 해 동안 언니가 안 죽은 날에 밥을 차렸어.”

엄마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공책이 윤슬 쪽으로 넘어왔다. 엄마는 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고, 식탁 밑으로 튀어 간 파 토막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가 그대로 쪼그려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윤슬은 엄마 등을 내려다보다가 공책을 들고 부엌을 나왔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부엌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윤슬은 공책을 점퍼 안에 넣고 회관까지 가는 길을 일부러 돌아서 걸었다. 이장 집에서 시작해 박순임 할머니 집으로 끝나는 길, 공책에 적힌 순서대로였다. 오후 네 시의 해가 낮게 누워서 골목 담벼락마다 스티로폼 부표와 그물 더미의 그림자를 길게 끌어 놓았고, 갯벌에서 올라온 바람이 짠내와 경운기 기름 냄새를 번갈아 실어 왔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창 커튼이 조금씩 움직였다. 김태석 아저씨 집 앞에서는 마당에 있던 아저씨가 윤슬을 보더니 그물을 내려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말순 아주머니는 슈퍼 유리문 너머에서 계산대에 턱을 괴고 윤슬이 지나가는 걸 끝까지 봤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열세 해 전 이장 집 마루 구석의 그 애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던 것처럼.

회관 뒷방에서 가람은 부침개를 먹고 있었다. 접시에 세 장이 남아 있었고, 옆에 빈 접시가 두 개 포개져 있었다.

“오늘 몇 접시째예요?”

“이게 세 번째 접시입니다. 거절하는 법을 까먹었습니다.” 가람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 마을에 와서 허리띠 구멍이 하나 넘어갔습니다.”

윤슬은 공책을 그 앞에 내려놓았다. 가람은 찢어진 첫 장을 손바닥으로 펴서 한 줄씩 읽었다. 읽는 동안 그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름을 소리 없이 따라 읽는 입술이었다. 박순임 옆의 점에서 그가 한 번 멈췄고, 김태석 옆의 점에서 한 번 더 멈췄다.

“여기 점이 둘 찍혀 있습니다. 해든 씨가 여기까지 셌습니다.”

“박순임 할머니는 형사님한테 말했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 수첩에도 둘입니다. 해든 씨 셈과 제 셈이 같은 데서 만났습니다.” 가람이 승차권을 불빛에 비춰 봤다. 어린이 요금 칸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김태석 씨는 말해 준다고 해 놓고 저한테는 목요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물을 두 번 개시더군요.”

“이장님 옆에는 열쇠라고 적혀 있어요.”

“봤습니다.” 가람이 이장 이름 위를 손끝으로 눌렀다. “회관 열쇠는 누가 갖고 있습니까?”

“이장님이요. 늘 허리춤에 차고 다녀요. 추모회 날엔 그 열쇠로 회관을 열고, 끝나면 그 열쇠로 잠가요.” 윤슬은 말을 하다 말고 가람을 봤다. 가람이 어제 읍내 문서고에서 본 사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미닫이 두 짝이 맞닿는 자리에 새로 박힌 쇠고리 두 개. 윤슬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밥상 밑에서 봤던 어른들 무릎을 떠올렸다. 무릎이 전부 한쪽을 향해 있었다. 서 있던 한 사람 쪽이었다.

“그때 이장 집 마루에서 다들 따라 하게 한 사람이 있었어요.” 윤슬이 말했다. “저는 밥상 밑에 있어서 얼굴을 못 봤어요. 무릎하고 구두만 봤어요. 그 사람만 구두를 신고 있었어요.”

“그럼 물으러 가요.”

가람이 윤슬을 봤다.

“형사님은 다 듣고 정한다면서요. 그럼 다 들으러 가요. 언니가 하던 거, 우리가 마저 해요.” 윤슬이 공책을 가람 쪽으로 한 뼘 더 밀었다. “목요일까지 이틀밖에 없어요.”

가람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바람이 함석 차양을 한 번 흔들고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그가 공책 맨 아래, 연필로 작게 적힌 한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윤슬이는 목요일을 안 배웠음.

“내일이 수요일입니다.” 가람이 공책을 덮었다. “김태석 씨는 매주 수요일 밤에 방파제에서 그물을 봅니다. 한말순 씨가 알려 주셨습니다. 요구르트 외상 두 개 값이었습니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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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05.04· 4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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