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32자) · 가람 · 10월 26일
두 시 이십 분 버스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첫차는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나는 차를 회관 마당에 두고 버스를 탔다. 차로 가면 이십 분이면 되는 길을 굳이 버스로 가는 이유를 이장이 물었고, 나는 멀미가 나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이장은 그 말을 믿는 얼굴로 봉지에 귤을 여섯 개 넣어 주었다.
버스는 스물다섯 인승 마을버스였다. 좌석 커버가 빨간 인조가죽이었는데 군데군데 터져서 누런 스펀지가 비어져 나왔고, 히터에서 먼지 타는 냄새와 누가 흘린 믹스커피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손님은 나 하나였다. 운전석 옆 기둥에 붙은 이름표에는 문병철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노선만 삼십일 년째요. 형사님 맞으시지요? 소문 다 났어요. 이 동네는 누가 방귀만 뀌어도 터널 넘어 읍내까지 소문이 나요. 신호도 안 터지는 동네가 소문은 어떻게 그렇게 빠른지 몰라.”
문 기사는 출발하고 삼 분 만에 자기 딸 결혼과 사위 직장과 허리 디스크 이야기를 끝냈다. 디스크 이야기는 두 번 했는데, 두 번째에는 수술한 병원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귤 하나를 까서 운전석 옆 동전함 위에 올려놓았다. 문 기사는 신호에 걸리자 귤을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귤즙이 튀어 앞유리에 점이 하나 생겼고, 그는 소매로 그걸 닦으면서 이 동네 귤은 제주 것이 아니라 전라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가 귤을 삼키느라 숨을 들이쉬는 사이에 들어갔다.
“지난주 목요일 두 시 이십 분 차, 서진리에서 누가 탔습니까?”
“아무도 안 탔어요.” 대답이 바로 나왔다. 그는 요금 단말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여기 다 찍혀요. 서진리 정류장 승차 영. 현금 낸 사람도 없고. 그날 빈 차로 나왔어요.”
“마을 분들은 스물세 명이 다 그 버스에 배웅했다고 합니다.”
“그 동네 사람들이 그래요.” 문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봤다. “목요일 두 시 이십 분 얘기만 나오면 다 똑같이 말해요. 십삼 년 전에도 그랬어.”
나는 귤 봉지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십삼 년 전에도요?”
“그 애들 일 난 해요. 그때도 경찰이 나한테 물었거든. 목요일 두 시 이십 분에 누가 탔냐고. 그날은 진짜로 하나 탔어요.” 문 기사가 핸들을 꺾었다. 버스가 터널 쪽으로 들어가는 긴 커브를 돌았다. “열한 살쯤 된 여자애 하나가 보따리를 들고 탔지. 오태식이, 그때 어촌계장이 그 애를 번쩍 안아서 태우더니 읍내 무슨 보호소 앞에 내려 주라고 만 원을 주더라고.”
“그날 비가 왔습니까?”
“비는 무슨, 안 왔지. 나 그날 와이퍼 한 번도 안 켰어.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은 다 비가 왔대. 그래서 내가 경찰한테 비 안 왔다고 했더니, 기사님이 착각하신 거라고 하데. 나중에 조서에 내 말은 안 들어갔을 거요.”
버스가 터널로 들어갔다. 조명이 나간 구간에서 차 안이 어두워졌고, 문 기사의 목소리가 잠깐 낮아졌다.
“그 애가 여기, 이 터널 들어오기 전에 저 창문에 손바닥을 딱 붙이고 뒤쪽을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나한테 물어요. 아저씨, 문 두드리면 안 열어 줘요? 그래서 내가 무슨 문이냐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해. 터널 나올 때까지 손바닥을 안 뗐어요.” 그는 거기서 말을 멈췄고, 삼십일 년째 쉬지 않고 말한다는 사람이 터널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 기사가 가리킨 창을 봤다. 뿌연 유리였고, 어린아이 키 높이에 손자국 같은 얼룩이 있었다. 열세 해 전 것일 리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얼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해안경찰서 문서고는 지하 일 층이었다. 형광등이 하나 걸러 하나씩 켜져 있었고, 철제 서가 사이에 종이 곰팡이 냄새가 고여 있었다. 2013년 상자에서 서류철 하나를 찾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상자마다 테이프가 누렇게 삭아서 손을 대면 바스러졌고, 나는 먼지 때문에 재채기를 세 번 했다. 문서고 담당 순경이 재채기 소리에 두 번 들여다보더니 세 번째에는 휴지 한 통을 들고 내려왔다.
「해안군 서진리 갯벌 아동 4명 사망 사건」. 표지 오른쪽 아래에 「종결 — 기상 악화에 따른 사고」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고, 담당란에 경사 최인규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한 번 읽고, 한 번 더 읽었다. 최인규는 지금 내 팀장이다.
서류철 안에 주민 진술서 스물세 장이 있었다. 한 장씩 넘기면서 나는 어제 내 수첩에 적은 스물두 줄을 떠올렸다. 이복순, 그때 예순일곱.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김태석, 서른여덟.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정미란, 서른셋.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어른들은 비 때문에 다 회관에 있었다. 빗소리 때문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열세 해 전 스물세 명과 지난 토요일 스물두 명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은 늙고, 이가 빠지고, 귀가 어두워지는데 문장은 늙지 않았다.
맨 뒤에 한 장이 더 있었다. 「위탁 아동 배해든(11) — 충격으로 진술 불능. 11월 14일 아동보호기관 인계.」 진술서가 아니라 경찰이 쓴 메모였고, 한 줄이 전부였다.
서류철 뒤쪽에 현장 사진 봉투가 붙어 있었다. 갯벌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한 장이 회관 입구였다. 11월 14일 오후에 찍은 사진이었는데 미닫이 유리문 두 짝이 맞닿는 자리에 쇠고리 두 개가 박혀 있었다. 자물쇠를 거는 고리였다. 나사 머리가 반짝거렸고, 문틀 나무에 드릴로 뚫은 흰 톱밥 가루가 아직 붙어 있었다. 누가 그 전날이나 전전날 새로 단 고리였다.
나는 이틀 동안 그 회관을 드나들었다. 미닫이에는 지금 고리가 없다. 나사를 뺀 구멍 네 개가 퍼티로 메워져 있고, 그 위에 페인트가 덧칠돼 있을 뿐이었다. 어제 아침에 나는 그 자리를 손바닥으로 짚고 문을 열었다.
나는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고 사진 뒷면을 봤다. 촬영자란은 비어 있었고, 누군가 연필로 「회관 —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기상청 자료를 다시 뽑았다.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맑음, 바람 없음, 만조 22시 10분. 11월 14일 목요일, 흐림, 강수량 0.0밀리미터. 지난 목요일과 똑같았다. 비는 열세 해 전에도 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목요일은 하나였고, 그건 지난주 것이 아니었다.
*
읍사무소 이 층 복도에서 오태식과 마주쳤다. 그는 서류 봉투를 한 아름 안은 젊은 남자 둘을 뒤에 달고 걸어오다가 나를 보고 먼저 걸음을 멈췄다. 손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형사님,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버스 타고 나오셨다면서요?”
“버스 기사님 말씀을 들으러요.”
“문 기사 말씀이세요? 그 양반 말 많은 건 군청에서도 유명합니다.” 오태식이 웃었다. 뒤에 선 젊은 남자가 따라 웃다가 오태식이 웃음을 거두자 같이 거두었다. “오정민이라고, 제 조카입니다. 추진위 사무국장이에요. 정민아, 형사님께 인사드려라.”
오정민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턱만 조금 내렸다.
“의원님, 2013년 11월 14일 두 시 이십 분 버스에 열한 살 여자아이를 태우셨습니까?”
복도가 조용해졌다. 민원실 번호표 기계가 삑 하고 울렸다.
“열세 해 전 일을 제가 어떻게 기억합니까?” 오태식이 봉투 하나를 조카에게 넘겼다. “형사님, 다음 주가 심사입니다. 서진항 국가어항 지정이 나면 천이백억이 들어옵니다. 방파제도 새로 짓고, 난간도 새로 달고, 그 늙은이들 한 집에 평균 일억 팔천씩 보상이 나갑니다. 그걸 열세 해 기다렸어요.”
“저는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목요일에 버스를 탔어요.” 오태식이 한 걸음 다가왔다. 스킨 냄새가 났다. “형사 하나가 늙은이들 스물세 명을 붙잡고 열세 해 전 일을 캔다, 기자들이 좋아하겠네요. 제목이 벌써 보여요. 그 제목에 형사님 이름이 들어가는 건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붕대 감은 손을 봤다. 손바닥을 가로지른 붕대 가장자리에 새로 번진 누런 자국이 있었다.
“상처가 아직 안 아물었네요.”
“바닷일 하는 손은 잘 안 아뭅니다.” 오태식이 손을 등 뒤로 돌렸다. “살펴 가십시오. 터널에서는 전화 안 되는 거 아시지요?”
*
돌아오는 길은 택시를 탔다. 터널 밖 삼백 미터 지점, 신호가 두 칸 서는 갓길에 택시를 세워 달라고 했다. 기사가 미터기를 켜 둔 채 기다렸다.
최인규는 두 번째 신호에 받았다.
“유가람, 너 어디야?”
“지금 서진리 밖입니다. 안에서는 전화가 안 됩니다.”
“그 신고 취소됐다. 어제 저녁 여섯 시 십이 분에 신고자 본인이 전화해서 취소했어. 접수번호도 댔고 목소리도 여자였고. 끝났으니까 들어와.”
나는 윤슬이 어제 담 너머로 한 말을 떠올렸다. 언니 이름 불러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팀장님, 2013년 서진리 갯벌 사건 팀장님이 닫으셨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사무실 소리가 멀어졌다. 누가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닫았다. 스물세 명이 한 치 어긋남 없이 같은 말을 했어. 나는 그걸 일관됐다고 적었다. 너라면 뭐라고 적었겠냐?”
“외웠다고 적었을 겁니다.”
“열세 해 지난 일이야. 시효도 다 끝났어. 늙은이 스물세 명 입건해서 누가 좋아지는데?” 최인규의 목소리가 한 칸 낮아졌다. “목요일 정오까지 종결 보고 올려. 안 올리면 다른 팀 붙인다. 그 팀은 너처럼 안 해. 알지?”
“목요일 정오면 추모회 일곱 시간 전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미터기가 한 칸 올라갔다. 목요일 정오에 나는 무언가를 써서 내야 하고, 그날 저녁 일곱 시에 스물세 명이 회관에 모여 목요일을 말한다. 다 듣고 나서 정하면 늦는다. 수첩에는 아직 두 줄밖에 없었다.
*
마을에 닿았을 때는 해가 지고 없었다. 회관 창에 불이 켜져 있었고, 안에서 이장이 벽에 붙은 영농 일정표를 새것으로 갈고 있었다. 나는 미닫이 앞에 서서 퍼티로 메운 구멍 네 개를 손끝으로 하나씩 짚었다. 페인트 밑에서 퍼티가 조금 들떠 있어서, 누르면 손톱 밑에 가루가 묻어났다.
나는 주먹을 쥐고 유리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그다음에는 열한 살 아이가 두드릴 만한 힘으로. 오래된 유리가 문틀 안에서 덜컹거렸고 그 소리가 함석 차양에 부딪혀 마당까지 울렸다. 비가 오지 않는 밤에 이 소리를 못 들을 방법은 없었다.
이장이 일정표를 든 채 돌아봤다. 압정 하나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장판으로 떨어졌다.
“형사님, 문 열려 있습니다.”
“압니다. 소리가 얼마나 나는지 들어 보려고 두드렸습니다.”
이장은 떨어진 압정을 줍지 않았다. 새 일정표의 목요일 칸은 이번에도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