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98자) · 가람 · 10월 25일
분무기로 내리는 비
다섯 번째 목요일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나는 운동화를 꺾어 신고 회관 뒤로 돌아갔다. 빗소리는 거기서 났다.
회관 뒷벽과 담 사이 좁은 틈에 노란 플라스틱 상자가 뒤집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작은 노인 하나가 올라서 있었다. 등에는 농약 분무기를 메고 있었다. 녹색 통에 어깨끈이 달린 수동식이었는데, 노인이 왼손으로 옆구리 손잡이를 위아래로 펌프질할 때마다 오른손에 쥔 긴 대롱 끝에서 물이 부채꼴로 뿜어져 나와 함석 차양에 쏟아졌다. 함석은 오래돼서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물이 닿을 때마다 녹슨 자리가 더 검게 젖었다. 등대 불빛이 한 번 지나갈 때 노인의 흰머리와 분무기 통에 붙은 제초제 상표가 같이 빛났다.
“어르신, 거기 올라가 계시면 위험합니다.”
노인은 돌아보지 않고 펌프질을 계속했다.
“어르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비 오게 하지.”
“지금 비를 오게 하신다고요?”
“목요일엔 비가 와야 돼.” 노인이 대롱을 조금 더 높이 들었다. 물줄기가 차양 끝을 넘어 내 운동화 앞에 떨어졌다. “비가 와야 애들이 안 나가.”
“어르신,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와야 목요일까지 오지.”
나는 그 말에 반박할 논리를 찾다가 그만두었다. 노인의 셈은 틀리지 않았다. 일요일부터 오면 목요일까지 온다.
마당 쪽에서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며 다가왔다. 불빛을 든 사람은 이장이었다. 줄무늬 잠옷 바지에 점퍼만 걸쳤고, 한쪽 발에는 장화를, 다른 쪽에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어르신, 비 그만 오게 하시고 주무셔야지요. 보세요, 형사님까지 깨셨잖아요.” 이장이 노인을 상자에서 안아 내리듯 부축했다. 분무기 통이 반쯤 비어서 출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형사님, 이거 참 죄송합니다. 박순임 어르신이 요새 좀 깜빡깜빡하셔서요.”
“이게 매일 밤입니까?”
“매일 그러시는 건 아니고요.” 이장이 노인 등에서 분무기를 풀어 제 어깨에 멨다. “다섯째 목요일 있는 달에만 그 앞 이레 동안 이러십니다.”
“목요일에 다섯째가 있습니까?”
“이번 달이 목요일이 다섯 번 있는 달입니다. 이십구 일이 다섯째고요. 그날 저녁에 회관에서 마을 추모회를 합니다.” 이장이 노인의 손을 잡았다. 노인의 손은 물에 젖어 벌겋게 얼어 있었다. “달력에 가끔만 있는 날이라서요. 가끔만 있는 날에 모이는 겁니다.”
“그 추모회는 누구를 추모합니까?”
이장은 대답 대신 손전등을 내 발치에 비춰 주었다.
“형사님도 그날 오십시오. 의자 하나 더 놓겠습니다. 발 조심하시고요, 거기 물 고였습니다.”
*
아침 여덟 시에 서진민박으로 갔다. 정미란은 마당 수돗가에서 이불 홑청을 빨고 있었다. 빨랫방망이가 시멘트 바닥을 칠 때마다 비눗물이 튀었다. 내가 대문을 들어서자 방망이가 한 번 더 크게 내려쳤다.
“해든 씨 숙박비는 언제 받으셨습니까?”
“들어오던 날 받았지요. 월요일에 닷새치 한꺼번에요.”
“닷새치면 토요일까지입니다. 목요일에 나갔으면 이틀치가 남습니다. 돌려 달라는 연락은 없었습니까?”
정미란이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는데, 비눗물이 거꾸로 이마에 묻었다.
“바빠서 잊었나 보지요. 형사님, 우리 집 일에 끼지 마세요.”
“실종 신고는 이 집 따님이 했습니다.”
“애가 뭘 알아요.” 정미란이 일어서서 대문 쪽으로 걸어왔다. 걸어오는 속도 그대로 내 앞까지 와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야 했고, 그렇게 두 걸음 만에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 손님은 목요일 두 시 이십 분 버스로 나갔어요. 그날 비가 왔고요. 스물세 명이 다 봤어요. 그러면 된 거 아니에요?”
이 층 창문이 열려 있었다. 윤슬이 거기 서 있었다. 정미란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윤슬이 너는 창문 닫아.”
창문은 닫히지 않았고, 대신 내 앞에서 대문이 닫혔다.
골목을 반쯤 내려왔을 때 뒤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윤슬이 민박 뒷문으로 나와 담을 따라 뛰어오고 있었다.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고, 숨이 차서 말보다 화면을 먼저 내밀었다.
숙박부를 찍은 사진이었다. 볼펜으로 눌러 쓴 글씨로 배해든, 대구 달서구, 10월 19일부터 24일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연락처 칸은 비어 있었다.
“언니가 이름을 입으로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엄마가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는데 그냥 이걸 썼어요.” 윤슬이 사진을 넘겼다. 다음 사진은 민박 부엌 벽에 붙은 달력이었고, 22일 칸에 엄마 글씨로 「2층 끝방 정리」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가 목요일 아침 일곱 시에 저한테 그 방 치우라고 했어요.”
“버스는 두 시 이십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윤슬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사람이 아직 안 나간 방을 아침 일곱 시에 치우라고 한 거예요.”
나는 그 두 시각 사이를 셈했다. 일곱 시간 이십 분이었다. 윤슬은 셈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서 뛰어갔다. 뛰어가다 한 번 멈추더니, 담 너머로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말했다.
“형사님, 언니 이름 불러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
박순임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낮은 데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이끼가 앉아 있었고, 툇마루에 감을 깎아 줄줄이 널어 놓았다. 껍질이 마르면서 단내가 시큼하게 변해 가는 중이었고, 그 냄새에 파리 두 마리가 느리게 돌았다. 노인은 툇마루 끝에 앉아 새벽 일을 전혀 모르는 얼굴로 감 꼭지를 실로 묶고 있었다.
“어르신, 새벽에 뵌 사람입니다.”
“새벽에 누굴 봐. 나는 밤새 잤는데.”
“분무기 메고 계셨습니다.”
“내가 그걸 메고 있었다고?” 노인이 제 어깨를 한 번 만져 보더니 웃었다. “그럼 비가 왔겠네.”
나는 툇마루 끝에 앉았다. 앉은 자리가 차가웠다. 노인이 감 하나를 깎아 칼끝에 꽂아 내밀었고, 나는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했다. 이 마을에 와서 하루 반 동안 나는 한 번도 무언가를 거절하지 못했다.
“어르신, 수요일 밤에 뭐 하셨습니까?”
감을 깎던 칼이 멈췄다.
노인이 수요일 밤에, 하고 내 말을 따라 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 애가 문을 두드렸어.”
나는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꺼내면 노인이 입을 다물 것 같았다.
“어느 문입니까?”
“회관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어. 사십 분을 두드렸어.”
“누가 두드렸습니까?”
“해든이가 두드렸지.”
지난 수요일 밤에 배해든이 회관에 갔다는 말은 윤슬에게 들었다. 추진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문 앞에 선 스물네 살 여자를 생각했다. 사십 분이나 문을 두드릴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왜 안 열어 줬습니까?”
노인이 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어나서 부엌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부엌 벽에 낡은 그릇장이 하나 서 있었고, 노인이 그 문짝을 열자 경첩이 길게 울었다.
문짝 안쪽 나무에 연필로 가로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 아이들 키를 잰 자국이었다. 줄마다 옆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도현, 하윤재, 박태윤, 정미르. 넷 다 비슷한 높이에서 멈춰 있었다. 그보다 위에 그어진 줄은 하나도 없었다.
그 옆에 한 자리가 더 있었다. 줄은 남아 있었는데 이름이 있던 자리만 칼끝 같은 걸로 얇게 긁혀 있었다. 손끝을 대 보니 그 자리만 나뭇결이 죽어서 까슬까슬했다.
“이건 누가 긁었습니까?”
노인이 긁힌 자리를 보며 내가 긁었나, 하고 중얼거렸다. “긁었으면 긁은 게 생각이 나야 하는데, 생각은 안 나고 손이 아팠던 것만 생각이 나.”
“여기 누구 이름이 있었습니까?”
“다섯째는 우리 애가 아니라서.” 노인의 목소리가 외운 문장처럼 매끄러웠다. “우리 집에 맡겨진 애라서. 그래서 이름을 안 적었어.”
“적혀 있던 자국이 있습니다.”
노인이 손을 들어 긁힌 자리를 손톱으로 더듬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손톱이 멈췄다. 입술이 먼저 움직였고 소리가 뒤따라 나왔다.
“해든이.”
노인의 어깨가 떨렸다. 떨리는 어깨를 가만두지 못해서 그릇장 문짝을 붙잡았고, 문짝이 경첩째 흔들렸다.
“지난주에 왔어. 이 마루에 앉아서 감을 먹었어. 내가 깎아 줬어.” 노인이 문짝에 이마를 댔다. “내가 알아봤어. 알아보고 모른 척했어. 걔도 모른 척했어. 둘이 모른 척하고 감만 먹었어.”
나는 그릇장 앞에 서서 긁힌 자리와 네 이름의 높이를 번갈아 봤다. 열한 살쯤 아이들 키였다. 그리고 그 옆에 스물네 살 여자가 이름을 서류에만 쓰고 입으로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는 민박의 숙박부를 생각했다.
실종된 관광객 배해든은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였다.
*
해가 지고 나서 나는 이장 집 마당으로 갔다. 이장은 평상에서 고구마를 굽고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은박지에 싼 걸 하나 집어 들었다.
“이장님, 십삼 년 전 십일월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은박지를 쥔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이장은 고구마를 내 손에 쥐여 주고 나서야 대답했다.
“그건 사고였습니다. 목요일 오후에 비가 오고 안개가 껴서 애들 넷이 갯벌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어른들은 비 때문에 다 회관에 있었고요. 경찰이 와서 다 정리했습니다.”
목요일, 비, 회관. 나는 고구마의 열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동안 그 세 낱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어제 스물세 명에게서 들은 문장과 뼈대가 같았다.
“이장님, 박순임 어르신이 방금 수요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이 요새 좀 깜빡깜빡하신다니까요.”
“그 수요일에 누가 회관 문을 두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사십 분 동안요.”
이장이 부지깽이로 숯을 뒤집었다. 불티가 튀어 올라 어둠 속에서 꺼졌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그가 말했다.
“형사님, 뜨거울 때 드십시오. 고구마는 식으면 맛없습니다.”
부엌 쪽 문이 열리고 이장 아내 최옥자가 쟁반을 들고 나왔다. 쟁반 위에 식혜 두 사발이 있었고, 사발 가장자리에 밥알이 동동 떠 있었다.
“당신은 또 고구마만 드려요? 목 메게.” 최옥자가 사발 하나를 내 앞에 내려놓으며 남편을 흘겨봤다. “형사님, 이 양반 말 다 믿지 마세요. 이 양반은 사람 입에 뭘 넣어야 마음이 놓이는 병이 있어요.”
“당신은 들어가 있어.”
최옥자는 들어가지 않았다. 쟁반을 가슴께에 끌어안고 서서 나를 오래 내려다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사람의 얼굴이었는데, 입술이 한 번 벌어졌다가 식혜 사발에 떠 있는 밥알 쪽으로 눈이 내려가면서 다시 닫혔다. 그녀는 결국 식으면 달지 않다는 말만 남기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동안 그 안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회관으로 돌아와 수첩을 폈다. 1 아래에 줄을 하나 더 긋고 박순임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두 줄을 한동안 봤다. 두 사람이 말한 수요일은 같은 요일이었지만, 나는 그게 같은 해의 수요일인지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