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31자) · 가람 · 10월 24일
같은 문장 스물두 번
스물두 명이 입을 맞춘 섬 · 정이한
서진터널은 삼백 미터가 안 되는데, 들어가자마자 휴대폰 신호가 한 칸씩 꺼지더니 나올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천장 조명이 절반쯤 나가 있어서 밝은 구간과 어두운 구간이 번갈아 지나갔고, 어두운 구간마다 앞유리에 내 얼굴이 잠깐 떴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얼굴이 뜨는 걸 세었고, 터널을 나올 때까지 일곱 번이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바다 냄새가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갯벌이 마르면서 올라오는 비릿하고 따뜻한 냄새였다. 시월 끝인데 바람이 미지근했다.
마을 입구 표지판에 서진리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누가 매직으로 「어서 오세요」를 덧써 놓았다. 그 글씨 앞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회색 점퍼에 장화를 신었고, 두 손에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유가람 형사님이시지요? 저는 여기 이장 강성출입니다. 오시는 길 안 막히셨습니까? 터널에서 전화가 안 돼서 놀라셨지요? 그게 원래 그렇습니다. 이거 좀 받으십시오.”
봉지 하나에는 무말랭이가, 다른 하나에는 아직 김이 나는 삶은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나는 수사하러 온 사람이고 받으면 안 되는 이유를 대려고 입을 열었는데, 이장이 이미 조수석 문을 열고 봉지 두 개를 시트에 올려놓은 뒤였다.
“회관에 방 하나 치워 놨습니다. 보일러도 돌려 놨고요.”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이건 돌려드려야 합니다.”
“고구마는 식으면 맛없습니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할 문장을 찾지 못했다. 고구마는 식으면 맛이 없는 게 맞았다.
*
회관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단층 건물이었다. 함석으로 된 차양이 입구 위에 붙어 있었고, 미닫이 유리문 안쪽에 접의자 서른 개가 벽을 따라 접혀 세워져 있었다. 기름 난로 냄새와 오래된 장판 냄새가 섞여 있었다. 벽에 이번 달 영농 일정표가 붙어 있었는데 목요일 칸만 비어 있었다.
이장이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주민 진술 요약입니다. 형사님 수고 덜어 드리려고 제가 어제 집집마다 돌면서 받아서 컴퓨터로 쳤습니다. 스물세 명 전부 들어 있습니다.”
나는 서류철을 열지 않았다. 표지에 「배해든 씨 관련 서진리 주민 진술(요약)」이라고 인쇄돼 있었고, 모서리가 반듯하게 스테이플러로 찍혀 있었다. 실종 신고가 들어온 지 하루 만에 누군가 이만큼 반듯한 것을 만들어 놓았다.
“이건 제가 받을 수 없습니다.”
“왜 못 받으십니까? 틀린 거 하나도 없습니다.”
“틀린 게 없는 게 문제입니다.” 나는 서류철을 이장 쪽으로 밀었다. “저는 한 분씩 직접 여쭙겠습니다. 들은 순서대로 적어야 합니다.”
이장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가 풀렸다. 풀리는 속도가 굳는 속도보다 빨랐다.
“그럼 그러시지요. 제가 순서라도 짜 드릴까요?”
“그것도 제가 하겠습니다.”
*
오후 내내 열두 채를 돌았다. 질문은 두 가지만 했다. 배해든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 그날 날씨가 어땠습니까?
첫 집의 이복순 할머니는 여든이었고, 귀가 어두워서 내가 세 번 물어야 했다. 할머니는 세 번째에 알아듣고 마루가 울릴 만큼 크게 대답했다.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그 색시는 두 시 이십 분 버스로 나갔어!”
할머니 뒤에서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분씩 여쭙겠다고 했는데, 이장은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따라오면서 집집마다 대문을 먼저 두드리고 「형사님 오셨다」고 먼저 외쳤다. 세 번째 집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장에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겠다고 말했다.
“길 모르시잖습니까?”
“집이 열두 채입니다.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럼 고구마라도 하나 더 드시고 가십시오.”
이장은 결국 자기 집 마당 평상에 앉아 내가 골목을 도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 골목이 짧아서 어느 집 앞에 서도 그 평상이 보였다.
김태석은 쉰하나였고 어촌계장이었다. 마당에서 그물을 개고 있었는데, 내가 질문을 하자 그물코를 쥔 손가락이 멈췄다. 멈춘 채로 그는 같은 말을 했다. 목요일, 비가 왔지, 아침부터, 두 시 이십 분 버스로 나갔어. 말을 마치고 나서야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는데, 방금까지 갠 그물을 한 번 풀었다가 다시 갰다.
“계장님, 그물을 두 번 개셨습니다.”
“바람이 불어서요.”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 집 빨랫줄에 걸린 수건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슈퍼 주인 한말순도, 이장 아내 최옥자도, 민박집 주인 정미란도 그렇게 말했다. 한말순은 대답을 마치고 내 손에 요구르트 하나를 쥐여 주더니 계산대 밑 외상 공책을 펴서 「형사님 요구르트 1」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게 선물인지 외상인지 묻지 못했다. 정미란은 배해든이 묵었던 서진민박의 주인이었고, 마흔여섯이었고, 그 문장을 누구보다 또박또박 말했다.
스물두 번째 사람까지 나는 같은 줄을 스물두 번 적었다. 그 줄들을 세로로 세워 놓으니 칼로 자른 것처럼 가지런했다. 사람은 같은 걸 봐도 다르게 말한다. 누구는 비가 왔다고 하고 누구는 흐렸다고 하고, 누구는 버스 시간을 틀린다. 십오 년 동안 실종 사건만 맡으면서 삐죽삐죽하지 않은 진술을 나는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나는 차로 돌아가 노트북을 열고 기상청 자료를 받아 둔 파일을 다시 확인했다. 10월 22일 목요일, 해안군 관측소 강수량 0.0밀리미터였고 하늘은 종일 흐렸다. 그 주에 비가 온 날은 하루도 없었다.
*
스물세 번째는 신고자였다. 하윤슬은 열아홉이었고 서진민박 정미란의 딸이었다. 윤슬은 민박 이 층 계단참에 앉아 있다가 내가 올라오자 일어서지 않고 고개만 들었다.
“배해든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
“수요일 밤이요.”
나는 볼펜을 멈췄다. 스물두 줄 아래에 처음으로 다른 모양의 줄이 생겼다.
“몇 시쯤입니까?”
“열한 시 조금 넘어서요. 회관에 간다고 나갔어요. 추진위 사람들 모였다고.” 윤슬이 발끝으로 계단 모서리를 한 번 찼다. “안 돌아왔어요.”
“다른 분들은 전부 목요일 두 시 이십 분 버스로 나갔다고 하십니다.”
“알아요.”
“그날 비가 왔습니까?”
“안 왔어요. 그날 제가 빨래를 널었거든요.”
윤슬이 해든의 방을 보여 주었다. 이 층 끝방이었고, 창으로 방파제 끝 붉은 등대가 보였다. 이불이 개어져 있었다. 가방은 없었는데, 그건 목요일에 버스로 나갔다는 사람이 들고 나갔을 테니까 맞았다. 세면대 위 플라스틱 컵에 칫솔 하나가 꽂혀 있었다. 칫솔모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고 아직 덜 말라 있었다.
“이건 해든 씨 겁니까?”
“네, 해든 언니 거예요. 엄마가 목요일에 방 치우라고 했는데, 그것만 안 치웠어요.”
버스를 타고 떠나는 사람은 칫솔을 챙긴다. 짐을 꾸리는 사람이 제일 먼저 챙기는 게 칫솔이다. 나는 그 컵을 한참 봤고, 윤슬은 내가 보는 동안 컵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지 않으려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잡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정미란이 윤슬을 불렀다. 저녁 손님 상 차려야 한다고, 형사님은 바쁘신 분이니 붙잡지 말라고.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동안 윤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해든의 이불 모서리를 한 번 폈다가 도로 접었다.
“엄마도 목요일이라고 했어요?”
“예, 제일 또박또박 하셨습니다.”
“그럴 거예요.” 윤슬이 창밖 등대를 봤다. “엄마는 목요일 얘기할 때만 발음이 좋아요.”
“지난주 목요일이 언제냐고 물어본 사람이 형사님이 처음이에요.” 윤슬이 말했다. “다들 목요일이라고만 하지, 그게 언제냐고는 안 물어봐요.”
*
해가 다섯 시 반에 졌다. 회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검은 SUV가 마을 안길을 막고 서 있었다. 차 옆에 선 남자가 나를 보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예순쯤, 짧게 깎은 흰머리, 점퍼 가슴에 금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오태식이라고 합니다. 해안군 군의원이고, 서진항 국가어항 지정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형사님이 오셨다고 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 뒤 담벼락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서진항 국가어항 지정 — 11월 5일 심사 — 주민 동의 23/23」. 스물셋에 스물셋. 나는 오늘 그 숫자를 두 번째로 봤다.
“관광객 하나가 버스 타고 나간 걸로 형사님께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버스를 탔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확인이야 하시면 되지요.” 오태식이 웃었다. 입은 웃는데 눈가 주름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물세 명이 다 봤다는데 뭘 더 확인하십니까?”
“스물세 명이 다 봤다고 하는데, 비는 안 왔습니다.”
오태식의 오른손에 흰 붕대가 감겨 있었다. 손바닥을 가로질러 감은 붕대였고, 가장자리에 누렇게 약이 번져 있었다.
“손은 어쩌다 다치셨습니까?”
“그물 손질하다가요. 이 동네에서 손 안 다치는 사람 없습니다.” 그가 붕대 감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심사가 보름도 안 남았습니다. 이 마을 스물세 명이 열세 해를 기다린 일이에요. 형사님도 그건 아시고 일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한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 한 사람이 스물세 명보다 무겁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못 해서가 아니라 대답하면 그가 원하는 저울에 올라가게 될 것 같았다. SUV가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배기가스 냄새가 안길에 남아 있었다.
*
그날 밤 나는 회관 뒷방에서 잤다. 이장 아내가 부침개를 한 접시 더 들고 왔고, 나는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했다. 허리띠가 조금 조였다.
자기 전에 수첩을 펴서 오늘 받은 스물세 줄을 다시 읽었다. 나는 들은 순서대로 적고 정리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어긋난 자리가 매끈하게 덮이고, 사건은 대개 그 어긋난 자리에 있다. 그 대신 나는 결정이 늦다. 다 듣기 전에는 정하지 않고, 다 들었다고 믿을 때까지 또 미룬다.
십오 년 전 첫 실종 사건이 그랬다. 여덟 살 아이였고, 진술이 서로 조금씩 어긋났다. 나는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저수지 수색 요청을 하루 늦췄다. 아이는 그 저수지에 있었다. 하루 일찍 들어갔어도 살았을 거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오래 남았다.
수첩 맨 아래 한 줄은 스물두 줄과 모양이 달랐다. 수요일 밤, 열한 시 조금 넘어서. 나는 그 줄 옆에 작게 1이라고 적었다. 스물셋 가운데 하나였다.
새벽 세 시에 눈을 떴다. 함석 차양을 두드리는 굵고 고른 빗소리가 났다. 창을 열어 보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고 별이 촘촘했으며, 등대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방파제를 쓸고 지나갔다. 마당 흙은 하얗게 말라 있었다.
빗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되풀이했는데, 굵어질 때마다 차양 끝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따로 들렸다. 비가 오는 밤에 나는 소리가 전부 있었다. 비만 없었다.
나는 손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손등에 떨어졌고, 손바닥을 뒤집자 거기에도 떨어졌다. 별이 보이는 하늘 아래에서 내 손이 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