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15자) · 비탈

십사 킬로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은혜요양원 정문에서 영평읍 파출소까지는 산길로 십사 킬로미터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시멘트 포장길이 백운산 허리를 열한 번 감으며 내려간다. 걸어서 네 시간. 11월 21일 새벽 한 시, 기온 영하 삼 도. 정문 밖에 선 마흔하나 가운데 외투를 입은 사람은 셋이었다. 나머지는 환자복이었다. 새 환자복은 저녁에 걷혔다. 해진 것을 입고 있었다.

진서가 여준을 봤다. 모두가 여준을 봤다. 문 열다섯을 센 사람을. 여준은 산길을 보지 않았다. 산길 옆 비탈을 봤다. 서리가 앉은 낙엽 비탈이 서쪽 계곡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달이 반쯤 떠 있었다. 비탈 아래 멀리, 계곡 건너편에 불빛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가로등. 곧게, 끊기지 않고.

“저기요.”

여준이 불빛을 가리켰다.

“국도요. 사 차선. 산길로 가면 십사 킬로고, 이 비탈로 내려가면 삼 킬로요.”

“어떻게 알아요?”

진서가 물었다. 여준은 대답하기 전에 무릎을 꿇었다. 금 간 컵은 창고에 두고 왔다. 여준은 손바닥을 서리 위에 폈다. 손바닥 체온에 서리가 녹았다. 녹은 물이 손바닥 가장자리에서 흘렀다. 서쪽으로, 조금 남쪽으로. 쌀알 세 개보다 조금 더.

“십오 년 전에 내가 그은 선이오. 백운리 산 사십칠 번지. 저 도로가 지나가는 땅. 이 비탈은 내가 측량할 때 밟은 데요. 경사 십팔 도. 사람이 걸어 내려갈 수 있는 끝이오.”

여준은 일어섰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십오 년 동안 아홉 걸음 넘게 걸어 본 적이 없는 다리였다. 그 다리로 여준은 비탈의 첫 발을 디뎠다. 낙엽이 미끄러웠다. 여준은 몸을 비탈 쪽으로 기울였다. 계곡 쪽이 아니라 산 쪽으로. 기운 땅에서는 몸을 땅과 반대로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수평이 된다. 끝방의 기운 바닥에서 십오 년 동안 몸이 배운 것이었다.

“산 쪽으로 기대요. 발은 옆으로. 앞으로 딛지 말고.”

마흔하나가 따라 내려왔다. 한 줄로. 앞 사람의 어깨를 잡고. 민재는 베개를 안고 셌다. 하나, 둘, 셋, 하나. 리모컨 아저씨는 리모컨을 입에 물었다. 두 손을 다 써야 해서. 상구는 맨 뒤에 섰다. 넘어지는 사람을 받으려고. 진서는 여준 바로 뒤에서 천 가방을 가슴에 둘러멨다. 가죽 끈 넷, 슬리퍼 한 짝.

중간에 리모컨 아저씨가 한 번 미끄러졌다. 엉덩이로 두 걸음을 내려가다 멈췄다. 입에 문 리모컨이 눌려 삑 소리가 났다. 아무 데도 텔레비전이 없는 산속에서. 누군가 웃었고, 그 웃음이 줄을 따라 뒤로 번졌다. 아저씨가 리모컨을 빼고 채널이 바뀌었나 보다고 했다. 줄 맨 뒤에서 상구까지 웃었다.

삼십 분쯤 내려갔을 때 산 위에서 엔진 소리가 났다. 헤드라이트가 나무 사이로 흔들렸다. 스타렉스였다. 산길의 첫 굽이를 돌아 내려오고 있었다. 산길은 열한 번 굽는다. 비탈은 곧게 내려간다. 그런데 산길의 굽이 몇 개는 비탈을 가로지른다. 여준은 그것도 알았다. 십오 년 전 도면에 있었다. 셋째 굽이와 넷째 굽이 사이, 산길이 비탈을 한 번 끊는 자리.

마흔하나가 그 자리에 닿았을 때, 셋째 굽이를 돈 스타렉스가 헤드라이트로 그들을 비췄다.

차가 섰다. 문이 열렸다. 원장이 내렸다. 김 보호사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원장은 잠옷 위에 털조끼 위에 두꺼운 점퍼를 걸쳤다. 안경을 썼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원장은 마흔하나를 봤다. 해진 환자복, 맨발, 베개, 리모컨. 원장이 웃었다. 크게. 산이 그 웃음을 받아 돌려보냈다.

“여러분, 추우시죠. 들어갑시다.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요. 제가 다 덮어 드릴게. 은혜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원장이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다. 민재 형제. 경숙 자매. 형님. 이름이 불린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십 년, 이십 년 불리던 목소리였다. 몸이 먼저 대답하려고 했다. 민재가 반 걸음 차 쪽으로 움직였다. 진서가 민재의 소매를 잡았다.

“민재 씨. 몇이에요, 지금.”

민재가 진서를 봤다. 그러고는 셌다. 하나, 둘, 셋. 넷에서 멈췄다. 넷. 처음으로 셋을 넘었다. 다섯. 여섯. 민재는 소리 내어 셌다. 일곱에서 옆 사람이 따라 셌다. 여덟, 아홉. 비탈 위의 마흔하나가 한 사람씩 자기 번호를 댔다. 원장의 목소리보다 컸다. 산이 그 숫자들을 받아 돌려보냈다. 서른, 서른하나. 마흔. 마흔하나는 여준이었다.

원장의 웃음이 멎었다.

원장이 비탈로 내려왔다. 김 보호사가 따라왔다. 원장은 곧장 진서에게 갔다. 천 가방. 원장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가방 끈을 잡았다. 진서가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당겼다. 김 보호사가 진서에게 손을 뻗었다. 상구가 김 보호사의 팔을 잡았다. 이십 년 동안 한 병동에서 일한 두 보호사가 서리 위에서 서로를 붙들었다. 김 보호사가 상구를 밀쳤다. 상구가 넘어지지 않았다. 산 쪽으로 기대 있었다.

여준은 원장 앞에 섰다. 비탈 위쪽에. 원장은 아래쪽에 있었다. 여준은 가방 끈을 잡은 원장의 손목을 잡았다. 칠 년 전 진규철의 손목을 묶은 손. 십오 년 동안 여준의 가슴 끈을 조인 손.

“놓으시오.”

“형제님, 당신 망상이야. 내려가면 아무도 안 믿어. 동생도 안 믿어. 진단서가 있어. 동의서가 있어.”

“가방에 뭐가 있는지 알면서 그 말을 하시오.”

원장이 여준을 봤다. 헤드라이트가 원장의 등 뒤에서 비쳐 얼굴이 그늘에 잠겼다. 원장이 가방 끈을 확 당겼다. 진서가 끌려 한 걸음 내려왔다. 원장은 그 힘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계곡 쪽으로.

기운 땅에서 계곡 쪽으로 몸을 젖히면 안 된다. 여준은 그것을 알았다. 원장은 몰랐다. 원장은 이십팔 년 동안 이 산에 살았지만 산의 기울기를 잰 적이 없었다. 산은 원장에게 소리를 가두는 벽이었지 발을 딛는 땅이 아니었다. 원장의 구두가 서리 낀 낙엽 위에서 미끄러졌다. 무릎이 꺾였다. 화요일마다 쑤시던 무릎. 원장은 가방 끈을 놓치고 비탈 아래로 미끄러졌다. 두 걸음, 다섯 걸음. 굴참나무 밑동에 걸려 멈췄다. 비명이 났다. 원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작았다.

김 보호사가 원장에게 달려갔다. 상구는 따라가지 않았다. 진서는 가방을 가슴에 다시 안았다. 여준은 원장이 걸린 나무를 봤다.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살아 있었다. 욕을 하고 있었다. 김 보호사가 원장을 부축해 일으키려다 원장이 소리를 질러 다시 내려놓았다.

“구급차 불러 드리겠소. 아래 내려가서.”

여준이 말했다. 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준은 돌아섰다. 마흔하나가 다시 한 줄로 섰다. 산 쪽으로 기대고, 발은 옆으로.

국도 가드레일에 닿았을 때가 새벽 세 시 사십 분이었다. 사 차선 아스팔트. 가로등이 오십 미터마다 하나. 차는 거의 없었다. 여준은 가드레일을 넘어 아스팔트 위에 섰다. 첫발이 이상했다. 평평했다. 십오 년 동안 여준의 발바닥은 기운 바닥만 딛었다. 평평한 땅에서 몸이 저절로 서쪽으로 기울었다. 여준은 가드레일을 잡았다. 균형을 새로 잡는 데 삼 초가 걸렸다. 몸이 수평을 기억해 내는 데.

네 시 십 분, 화물차 한 대가 섰다. 운전기사는 헤드라이트 속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 마흔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차를 돌려 도망가려 했다고, 나중에 경찰에게 말했다. 그러다 맨 앞의 남자가 두 손을 들고 한 사람씩 세고 있는 것을 봤다고. 그래서 섰다고. 기사가 112를 눌렀다. 전화기를 여준에게 건넸다.

여준은 전화기를 귀에 댔다. 십오 년 만의 전화였다. 목소리가 안 나왔다. 두 번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측량 결과를 보고하듯이.

“영평군 백운산 은혜요양원에서 나왔습니다. 마흔한 명입니다. 산 위에 두 명이 더 있습니다. 한 사람은 누워 있고 한 사람은 예배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비탈에 원장이 다리를 다쳐 있습니다. 위치는 셋째 굽이 아래 굴참나무입니다.”

전화 너머 경찰이 이름을 물었다. 여준은 이름을 댔다. 여준. 쉰하나. 측량 기사.

진서가 옆에서 가방을 풀었다. 가죽 끈 넷과 슬리퍼 한 짝을 가드레일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가로등 불빛이 그 위에 떨어졌다. 여준은 그것을 봤다. 끈 하나가 가운데서 끊겨 있었다. 칠 년 전 누군가 하나를 풀어 준 끈이었는지, 오래돼서 끊긴 끈이었는지. 그것은 이제 경찰이 잴 것이다.

경찰차 두 대가 사십 분 뒤에 왔다. 그다음 구급차. 그다음 버스 한 대. 경찰이 마흔하나를 세다가 두 번 틀렸다. 민재가 옆에서 같이 세 주었다. 이번에는 셋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경찰관이 보호사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상구가 손을 들었다. 경찰관이 다가오자 상구는 두 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수갑을 채우라는 손이었다. 경찰관은 잠깐 그 손을 보다가 채우지 않았다. 대신 버스에 타라고 했다. 상구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가슴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누르지 않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폈다.

일곱 시에 흰 승용차가 왔다. 탁은비였다. 파출소에서 은혜요양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휴대폰에 저장해 둔 번호를 눌렀다고 했다. 어제 창고에서 나오며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동기의 번호를 찾아 두었다고. 탁은비는 트렁크에서 담요를 꺼냈다. 군청 재난 비축 물품이었다. 스무 장. 모자랐다. 사람들은 둘이서 한 장씩 덮었다. 탁은비는 여준 앞에 섰다.

“월요일까지 못 기다리셨네요.”

“원장이 못 기다렸소.”

탁은비는 서류철을 열어 보였다. 운수종사자 자격증이 서류 사이에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어제 저녁 탁은비는 그 이름으로 운수종사자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진규철 씨의 개인택시 면허는 이천십구 년 삼월에 말소됐다. 사유, 사망 추정. 신고인, 은혜요양원.

“가출이라고 해 놓고 사망 신고를 했어요. 같은 달에.”

진서가 그 말을 들었다. 담요를 두른 채. 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드레일 위의 슬리퍼 한 짝을 봤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슬리퍼 뒤축을 만졌다. 서쪽으로 닳은 뒤축. 아버지가 끝방의 기운 바닥을 칠 년 동안 딛은 자국이었다. 진서는 그 닳은 자리를 엄지로 오래 문질렀다. 울지 않았다. 여준은 그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셀 것이 없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백운산 쪽 하늘이 먼저 밝았다. 산 위에서 스피커 소리가 희미하게 내려왔다. 은혜요양원의 여섯 시 찬송이었다. 아니었다. 가락이 달랐다. 권 할머니였다. 누가 끄지 않은 앰프 앞에서, 밤새, 할머니는 막내를 부르고 있었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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