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15자) · 정문

열다섯째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밤 열한 시, 원장은 원장실에서 열쇠 꾸러미를 셌다. 매일 밤 하는 일이다. 보호사 넷의 꾸러미를 책상에 펼쳐 놓고 스무 개씩, 여든 개. 다 세면 금고에 넣는다. 그날 밤 오상구의 꾸러미는 스무 개였다. 원장은 금고를 잠그고 사무동 이 층 숙소로 올라갔다.

열한 시 사십 분, 상구는 원장실 옆 탕비실에서 나왔다. 손에 꾸러미를 들고. 금고의 꾸러미는 스무 개였지만 그중 열두 개는 상구가 이 주 전 읍내 열쇠집에서 깎은 복사본이었다. 진짜 열두 개는 상구 작업복 안쪽에 있었다. 이 주 전은 여준이 배식구에서 상구의 손목을 잡은 다음 날이었다.

자정. 열째 문, 창고 통로 문이 열렸다. 열쇠 한 번. 쌀 포대 사이에 앉아 있던 여준과 진서가 일어섰다. 상구는 문간에 서서 말하지 않았다.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천 가방 안에 가죽 끈 넷과 회색 슬리퍼 한 짝이 들어 있었다. 진서가 그것을 받아 가슴에 안았다.

“가요. 정문 쪽이 가까워요. 두 분만이면 삼십 분이에요.”

상구가 말했다. 여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2병동.”

“여준 씨.”

“내일 새벽 다섯 시에 우리 둘이 영주로 가면 월요일에 주무관이 와서 면담할 사람이 없소. 그러면 원장은 이번엔 2병동을 정리하오. 떠드는 입 일곱부터.”

상구가 여준을 봤다. 오래. 그러고는 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열두 개. 네 개는 다른 보호사들 몫이라 없다고 했다. 원장실 금고에만 있다고. 정문 열쇠도.

“정문은요.”

“가 보면 아오.”

그들은 안쪽으로 걸었다.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열째 문을 지나 본관 복도로, 넷째 창살문을 거꾸로, 셋째 2병동 입구를 거꾸로. 파란 테이프. 여준은 십오 년 동안 바깥으로 가는 문만 셌다. 그날 밤 처음으로 안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거꾸로 세는 문은 소리가 달랐다. 빗장이 반대쪽으로 빠졌다.

2병동 복도에 불이 꺼져 있었다. 비상등 둘. 병실 일곱. 여준은 첫 병실 문을 열었다. 여섯 명이 자고 있었다. 권 할머니가 창가 침대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할머니는 잠이 없다. 여준을 보고 일어나 앉았다.

“할머니.”

“알어.”

할머니는 흰 한복 저고리를 입었다. 환자복 위에. 그러고는 옆 침대를 흔들었다. 병실마다 할머니가 들어갔다. 한 사람씩 흔들었다. 일어나. 나가. 조용히. 할머니 목소리는 찬송을 부를 때보다 작았다. 작은데 병실마다 사람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챙겼다. 챙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챙겼다. 민재는 베개를 안았다. 두고 가라고 하자 이게 제일 따뜻하다고 했다. 한 아저씨는 휴게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주머니에 넣었다. 왜 가져가느냐고 진서가 묻자 여기서 이십 년 동안 채널을 한 번도 못 돌려 봤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돌려 보겠다고. 진서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삼십 분이 걸렸다. 한 사람은 누워서 움직일 수 없었다. 허리를 다쳐 석 달째 침대에 있는 박 씨. 박 씨는 가라고 했다. 가서 사람 데려오라고. 여준은 그 침대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았다. 다시 오겠다고 했다. 경찰이랑. 그 말을 할 때 여준의 목소리가 한 번 갈라졌다.

민재가 사람을 셌다. 하나, 둘, 셋, 하나. 여준이 옆에서 이어 셌다. 할머니까지 서른아홉. 여준, 진서, 상구를 더하면 마흔둘.

그들은 다시 바깥으로 걸었다. 셋째, 넷째. 식당. 다섯째 세탁실 옆 쪽문. 여섯째는 가지 않았다. 1병동 입구의 번호 자물쇠. 1병동 사람들은 원장 조카가 당직을 서는 병동이었다. 여준은 반창고의 네 자리를 한 번 입속으로 외우고 그 문을 지나쳤다. 다음이다. 그 문은 다음에 연다. 경찰이랑.

세탁실. 마흔둘이 들어가니 세탁실이 꽉 찼다. 탈수기와 세탁기 사이, 수건 더미 옆. 일곱째 문. 세탁실 뒷문. 서쪽 벽. 진규철이 동그라미를 그린 문. 상구가 열쇠를 꽂았다. 테이프 없는 것 가운데 셋째로 긴 것. 돌렸다. 걸쇠가 빠졌다.

상구는 문고리를 잡은 채 진서를 돌아봤다. 진서가 앞으로 나왔다. 상구가 비켜섰다. 진서가 문고리를 잡았다. 밀었다. 문이 열렸다. 서리 냄새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찬 흙과 마른 풀과 멀리서 타는 나뭇잎. 진서는 문턱을 넘지 않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넘었다. 아버지가 멈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두 걸음, 세 걸음.

여덟째, 마당 쇠창살. 경첩이 두 음으로 운다. 도, 그리고 조금 낮은 도. 그 소리가 나면 사무동 이 층까지 들린다. 여준은 식당에서 가져온 식용유 병을 경첩에 부었다. 한 번, 두 번. 상구가 문을 밀었다. 경첩이 울지 않았다. 기름이 두 음을 삼켰다.

마당에 목사와 아멘이 있었다. 진돗개 두 마리. 줄에 묶여 누워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상구가 앞으로 나갔다. 상구는 이 년 동안 저녁마다 개밥을 줬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저녁에 남긴 돼지고기. 김 보호사가 약속한 그 돼지고기. 개들은 짖지 않았다. 목사가 먼저 먹고 아멘이 따라 먹었다. 진서가 지나가면서 작게 불렀다. 목사야, 착하다. 아멘아, 너도. 상구가 진서를 돌아봤다. 개들 이름이 그게 아니라고 했다. 복실이랑 누렁이라고. 진서는 알았다고 하고 다시 불렀다. 목사야.

아홉째, 개 우리 옆 철문. 열째는 이미 열려 있었다. 열한째, 사무동 뒷문. 열두째, 원장실 복도 문. 복도 끝 계단 위가 원장 숙소였다. 마흔하나가 그 복도를 지나가야 했다. 발소리 마흔하나. 할머니의 고무신, 민재의 맨발, 누군가의 슬리퍼. 여준은 복도 입구에서 멈췄다. 발소리를 셌다. 한 사람이 지나가는 데 삼 초. 마흔둘이면 이 분이 넘는다. 이 분이면 원장이 깬다.

그때 권 할머니가 여준의 소매를 당겼다.

“나는 안 가.”

“할머니.”

“막내 기다려야 혀. 막내가 오면 내가 여기 있어야지. 이십 년을 여기 있었는디.”

할머니는 웃었다. 이 없는 잇몸이 비상등에 비쳤다.

“그리고 저 양반 깨면 안 되잖어. 내가 노래할게.”

할머니는 돌아서서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넷째 문을 지나 예배실로. 상구가 할머니 뒤를 봤다. 붙잡으려다 손을 내렸다. 여준은 할머니의 흰 저고리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 삼 분 뒤, 은혜요양원의 스피커 여섯 개가 한꺼번에 켜졌다. 자정 넘은 밤에. 찬송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뽕짝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앰프는 열. 끝까지.

스피커가 찢어졌다. 우리 막내 밥은 먹었나. 산이 울렸다. 목사와 아멘이 그제야 짖기 시작했다.

사무동 이 층에서 불이 켜졌다. 계단을 내려오는 구두 소리. 원장이었다. 원장은 계단을 내려와서 원장실 복도로 오지 않았다. 반대로 갔다. 본관 예배실 쪽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밤중에 자기 스피커가 자기 시설을 흔드는 소리였다. 원장은 늘 소리를 틀어서 다른 소리를 덮었다. 그날 밤 원장은 자기가 튼 적 없는 소리를 향해 뛰었다. 무릎이 아픈 사람이 계단에서 느리게.

“지금.”

여준이 말했다. 마흔하나가 원장실 복도를 지났다. 발소리가 뽕짝 밑에 묻혔다. 열셋째, 사무동 현관 유리문. 안에서는 잠금 손잡이만 돌리면 열린다. 열넷째, 경비실 쪽문. 경비실에서 김 보호사가 자고 있었다. 할머니 노래에 깨서 일어나 앉았다가 원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본관 쪽으로 따라 뛰었다. 경비실이 비었다. 쪽문이 열렸다.

열다섯째. 정문. 녹색 철대문. 쇠사슬이 감겨 있고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자물쇠 열쇠는 원장 금고에 있다. 상구가 꾸러미를 뒤졌다.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여준은 자물쇠를 보지 않았다. 대문 밑을 봤다. 대문은 레일 위를 옆으로 미는 미닫이였다. 레일은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 산에서 모든 것이 그랬듯이. 쇠사슬은 대문과 기둥을 묶고 있었다. 그런데 대문의 다른 쪽 끝, 레일 서쪽 끝에는 멈춤쇠가 박혀 있었다. 쇠막대 하나. 대문이 기운 쪽으로 굴러가지 않게 막는 것. 쇠사슬은 대문이 동쪽으로 열리는 것을 막았다. 서쪽은 멈춤쇠 하나가 막았다.

여준은 멈춤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의 서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녹은 물이 레일을 따라 서쪽으로 흘렀다. 쌀알 세 개. 이 대문은 이십팔 년 동안 서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멈춤쇠를 박은 나사는 둘. 여준은 숟가락 자루를 꺼냈다. 끝방 석고벽의 나사를 돌리던 그 자루. 일자 홈에 맞게 갈아 둔 그것.

한 바퀴. 두 바퀴. 뽕짝이 끝나고 스피커가 꺼졌다. 산이 조용해졌다. 본관 쪽에서 원장의 고함이 들렸다. 누가 틀었어. 할머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여준은 셋째 바퀴를 돌렸다. 나사 하나가 빠졌다. 둘째 나사. 손이 미끄러졌다. 진서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진서의 손이 여준의 손 위에 겹쳤다. 두 손으로 돌렸다.

사무동 현관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원장이 돌아오고 있었다. 뛰는 소리였다.

둘째 나사가 빠졌다. 멈춤쇠가 흔들렸다. 여준은 그것을 손으로 뽑아 들었다. 그리고 대문을 밀지 않았다. 밀 필요가 없었다. 녹색 철대문이 스스로 움직였다. 레일 위를 서쪽으로. 쇠사슬이 동쪽 기둥에서 팽팽해졌다가, 사슬이 감긴 고리가 대문 끝에서 벗겨졌다. 대문이 굴러갔다. 천천히, 그러다 빠르게. 이십팔 년 동안 가고 싶던 쪽으로. 쇠바퀴가 레일을 긁는 소리가 길게 났다. 여준은 무릎을 꿇은 채 그 소리를 몸으로 들었다. 땅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을, 이 산에 와서 첫 주에 컵으로 잰 그 기울기를, 이번에는 커다란 철문 한 짝이 대신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지나갈 틈. 둘. 셋. 산길 쪽의 찬 바람이 틈으로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원장이 경비실 쪽문에 나타났을 때 서른아홉이 정문 밖 산길에 서 있었다. 여준과 상구가 대문 안쪽에 있었다. 마지막 둘이었다. 원장이 두 사람을 봤다. 숨을 헐떡이며. 잠옷 위에 털조끼. 안경이 없었다.

“오 과장.”

상구가 원장을 봤다.

“수민이는.”

“수민이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제가 뭘 했는지. 이십 년 치를.”

상구는 가슴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누르지 않았다. 대신 거기서 무언가를 꺼냈다. 학생증 복사본. 사진 속 여자애가 웃고 있었다. 상구는 그것을 원장에게 보여 주지 않고 도로 넣었다. 그러고는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여준이 따라 나갔다. 마흔둘 가운데 마흔하나가 밖에 섰다. 한 사람은 예배실에 있었다. 앰프 앞에. 마이크를 쥐고.

원장이 사무동으로 뛰어 들어갔다. 스타렉스 열쇠를 가지러. 무릎이 아픈 사람이 계단을 두 칸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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