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22자) · 판결

수평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11월 21일 아침 아홉 시, 경찰은 은혜요양원의 문을 하나씩 열었다. 열쇠는 원장실 금고에 있었다. 금고 번호는 오상구가 불렀다. 경찰관 한 사람이 문을 열 때마다 소리를 냈다. 여준은 그 자리에 없었다. 영평읍 병원 응급실 침대에 있었다. 나중에 진서가 그 순서를 들려주었다. 녹색 대문은 이미 서쪽 끝에 가 있었다. 경비실 쪽문, 사무동 현관, 원장실 복도. 창고 통로, 개 우리 옆 철문. 목사와 아멘은 경찰관을 보고 짖지 않았다고 했다. 마당 쇠창살. 세탁실 뒷문. 그리고 여섯째, 1병동 입구의 번호 자물쇠. 경찰관이 번호를 몰라 금고의 열쇠를 찾는 동안 상구가 네 자리를 불렀다. 문이 열렸다. 1병동에서 스물셋이 나왔다. 여준이 지나쳐 온 문이었다. 다음에 연다고 했던 문.

2병동의 박 씨는 들것으로 나왔다. 권 할머니는 예배실 앰프 앞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 마이크를 쥔 채로. 경찰관이 깨우자 할머니가 제일 먼저 물었다. 막내 왔냐고.

그날 은혜요양원에서 나온 사람은 예순넷이었다. 마흔하나에 스물셋. 문 열다섯이 전부 열렸다. 예순넷 가운데 서른아홉은 석 달 안에 퇴원했다. 가족에게 간 사람도 있고, 가족이 아닌 곳으로 간 사람도 있었다. 민재는 어머니에게 가지 않았다. 영평읍 자립생활주택에 들어갔다. 거기서 처음 한 일은 방 개수를 세는 것이었다고, 진서가 전해 주었다. 여섯. 셋에서 돌아가지 않고.

진규철은 이천이십칠 년 일월에 발견됐다. 기도원 시절 쓰던 뒷산 창고 아래였다. 오상구가 경찰에게 자리를 짚었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은 자리를 한 번에 짚었다. 그 뒤의 일은 감식 보고서에 있다. 여기에는 적지 않는다. 진서는 그날 창고 앞 비탈에 서 있었다. 경찰이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 선 바로 뒤에. 슬리퍼 한 짝을 들고. 나머지 한 짝은 거기 있었다.

2027년 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영평지원 제1형사부. 방청석은 예순 석이었다. 은혜요양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새 옷을 입고 앉았다. 새 옷은 저녁에 걷히지 않았다. 민재는 넥타이를 맸다. 매는 법을 몰라 리모컨 아저씨가 매 주었는데, 아저씨도 몰라서 매듭이 두 개가 됐다. 피고인 강신복. 감금, 폭행, 업무상과실치사, 사체은닉, 사문서위조 및 행사. 공범으로 여석, 사문서위조 및 행사, 감금 방조. 김 보호사, 감금 및 폭행. 오상구, 사체은닉 방조. 상구는 불구속이었다. 법정에 들어설 때 방청석 둘째 줄의 젊은 여자가 일어섰다. 수민이었다. 상구는 딸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수민은 앉지 않고 끝까지 서 있었다. 재판장이 앉으라고 할 때까지.

원장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오른쪽 다리에 철심이 박혀 있었다. 비탈의 굴참나무. 원장은 방청석을 둘러봤다. 은혜요양원 사람들이 스물 넘게 앉아 있었다. 원장이 그들을 보고 웃었다. 크게 웃으려다 법정이라는 것을 알고 입만 웃었다. 법정에는 스피커가 없었다. 원장의 목소리는 마이크 없이 작았다. 판사에게 두 번 다시 말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여준은 증인으로 섰다. 검사가 물었다. 입원 날짜. 동의서. 강박. 문 열다섯. 여준은 대답했다. 측량 보고서를 읽듯이. 걸음 수와 기울기와 소리. 변호인이 반대 신문에서 물었다. 증인은 십오 년 동안 정신 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이 아니냐고. 그런 사람의 기억을 믿을 수 있느냐고.

여준은 증인석에서 컵 하나를 달라고 했다. 물이 든 것으로. 재판장이 허락했다. 법정 경위가 종이컵에 물을 받아 왔다. 여준은 그것을 증인석 앞 책상에 놓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 법정 바닥은 북쪽으로 조금 낮습니다. 쌀알 반 개쯤. 책상이 아니라 건물이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복도에서 쟀습니다.”

변호인이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재판장이 법정 경위를 봤다. 경위가 수평계를 가져왔다. 법원 시설과에서 쓰는 것이었다. 바닥에 놓았다. 기포가 북쪽으로 조금 치우쳤다. 방청석에서 누가 웃었다. 리모컨 아저씨였다. 재판장이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변호인에게 다음 질문을 하라고 했다. 변호인은 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진서는 첫째 날 오후에 섰다. 증거물 탁자에 회색 슬리퍼 두 짝이 놓여 있었다. 비탈에서 가져온 한 짝과 창고 아래에서 나온 한 짝. 진서는 증언을 시작하기 전에 재판장에게 슬리퍼를 한 번 만져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재판장이 허락했다. 진서는 두 짝을 나란히 세웠다. 뒤축이 둘 다 서쪽으로, 같은 각도로 닳아 있었다. 진서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는 가출하지 않았습니다. 칠 년 동안 같은 바닥을 딛었습니다. 한쪽으로 기운 바닥을요.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증인의 추측이라고. 재판장은 이의를 기각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슬리퍼를 오래 봤다. 그러고는 다음 증인을 부르라고 했다.

여석은 둘째 날 증언대에 섰다. 해진 등산 점퍼를 입고. 검사가 물었다. 보상금은 얼마였느냐고. 여석은 금액을 말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원장에게 해마다 얼마를 보냈느냐고. 여석은 또 금액을 말했다. 형의 서명은 누가 했느냐고. 여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여석이 대답했다. 원장님이 하셨습니다. 제가 옆에 있었습니다.

휴정 시간, 법원 복도에서 형제가 마주쳤다. 복도 끝 창가. 여석이 먼저 섰다. 여준이 그 앞에 섰다. 사이가 두 걸음이었다. 십오 년 동안 해마다 11월 3일, 보호실 문 안과 밖에서 서던 거리.

“형.”

“도로 봤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형이 그은 대로 났어.”

“안다. 걸어 보니까 알겠더라. 아스팔트가 평평했다.”

여석이 울었다. 복도를 지나던 법원 직원이 걸음을 늦췄다가 다시 걸었다. 여준은 울지 않았다. 동생이 우는 것을 봤다. 동생의 소매를 봤다. 해진 소매. 십오 년 동안 같은 점퍼. 보상금을 받은 사람이 왜 같은 점퍼를 입었는지 여준은 묻지 않았다. 여석도 말하지 않았다. 여석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뿔 도장. 여씨 종친회 로고. 아버지 것. 여석은 그것을 여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닿았다.

원장은 마지막 진술에서 은혜라는 말을 열한 번 했다. 여준이 셌다. 갈 데 없는 사람들을 거두었다고. 가족들이 버린 사람들을. 자기가 없었으면 그 사람들은 길에서 죽었을 거라고. 재판장이 진술을 끊지 않았다. 끝까지 듣고 나서 한마디만 했다. 피고인이 거두었다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은 창고 아래에서 나왔습니다. 원장은 그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

판결은 사월에 났다. 강신복, 징역 십이 년. 김 보호사, 삼 년. 여석, 이 년 육 개월. 오상구, 징역 일 년 집행유예 이 년. 재판부는 판결문에 적었다. 피고인 오상구는 유류품을 소각하지 않고 보관하였으며 탈출을 도왔고 사체의 위치를 진술하였다. 이는 형을 정함에 있어 참작한다. 상구는 판결문 그 대목을 복사해 수민에게 주었다. 수민은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 아버지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법원 계단에서 상구가 여준을 불러 세웠다. 상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한참 못 했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사월 열이틀이 생일이시죠. 여준은 그렇다고 했다. 상구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조미김 한 봉지. 두 장이 아니라 열 장짜리. 여준은 받았다. 상구는 계단을 내려가 수민 옆에 섰다. 수민이 아버지 팔짱을 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처럼 걸어갔다.

은혜요양원은 폐쇄됐다. 영평군은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철거 전 측량이 필요했다. 군청 복지과 탁은비 주무관이 도시과에 전화를 걸었다. 측량 기사 한 사람을 아는데, 자격증을 다시 따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준은 오월에 지적기사 시험을 다시 봤다. 십육 년 만의 시험이었다. 문제는 거의 그대로였다. 땅은 십육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유월 첫 월요일, 여준은 백운산 은혜요양원 마당에 삼각대를 세웠다. 산은 조용했다. 스피커 여섯 개는 철거반이 먼저 떼어 갔다. 찬송이 없는 은혜요양원에서는 다른 소리들이 들렸다. 계곡 물소리. 뻐꾸기. 바람이 빈 창틀을 지나가며 내는 낮은 소리. 이십팔 년 동안 이 소리들은 여기 있었다. 스피커가 덮고 있었을 뿐이다. 여준은 삼각대 옆에 서서 그것들을 하나씩 셌다. 세다가 그만뒀다. 셀 필요가 없는 소리였다. 자동 레벨. 망원경 안의 십자선. 녹색 대문은 서쪽 끝에 가 있었다. 아무도 되돌리지 않았다. 마당 한쪽에 개 우리가 비어 있었다. 목사와 아멘은 탁은비가 데려갔다. 이름은 복실이와 누렁이로 돌아가지 않았다. 탁은비의 아버지가 요양원 면회 때마다 목사야, 아멘아 하고 부르는 게 재미있다고 해서. 여준은 기계의 다리를 하나씩 조절해 기포를 가운데로 모았다. 기포가 서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가, 가운데에 섰다. 여준은 그 한 점을 오래 봤다. 망원경 너머로 끝방이 있던 2병동 끝의 튀어나온 자리가 보였다. 벽 두 개 사이의 두 걸음. 이제는 철거 표시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그날 저녁 진서가 영평읍 여준의 방에 왔다. 원룸. 이 층. 국도가 창으로 보이는 방. 진서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다. 영평군청 옆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셋에서 돌아가는 아이가 한 반에 하나는 꼭 있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는 넷부터 가르친다고.

진서는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권 할머니에게서 온 편지였다. 새 요양원 선생님이 받아 적은 것. 할머니는 거기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스피커 없이. 막내는 아직 안 왔다고. 그래도 부른다고. 부르면 누가 듣는다고. 여준은 편지를 두 번 읽고 식탁 위에 놓았다. 편지 끝에 할머니가 불러 준 대로 받아 적은 한 줄이 있었다. 목사님 방송 없어도 목이 안 쉬어. 진서가 그 줄을 소리 내어 읽고 웃었다. 여준도 웃었다.

여준은 싱크대에서 컵에 물을 받았다. 유리컵. 금 간 데가 없는 것. 식탁에 놓았다. 진서가 그 컵을 봤다. 여준이 무엇을 보는지 알았다. 둘은 식탁에 턱을 괴고 컵 속을 들여다봤다. 창밖 국도로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갔다. 유리창이 조금 떨렸다. 컵 속 물이 한 번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물의 가장자리가 유리 벽에 닿은 높이가 사방으로 같았다. 동쪽도, 서쪽도. 쌀알 반 개도 차이가 없었다. 여준은 컵을 들어 조금 옮겨 놓았다. 다시 봤다. 같았다. 식탁 끝에 놓았다. 같았다.

진서가 말했다. 이 방은 평평하네요. 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컵을 봤다. 십육 년 만이었다. 컵 속 물이 수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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