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2자) · 창고
점검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페인트는 11월 14일 토요일에 칠해졌다. 칠한 사람은 읍내 도장업자였고 옆에 선 사람은 오상구였다. 원장은 그날 오전 군의원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도장업자가 끝방 벽의 삭은 자리를 보고 안에 석고가 떴다고 하자 상구가 자기가 메우겠다고 했다. 상구는 틈 속에 손을 넣어 가죽 끈 넷과 회색 슬리퍼를 꺼냈다. 작업복 안에 넣었다. 나사 넷을 제자리에 돌려 박았다. 틈을 석고로 메웠다. 그 위에 흰 페인트가 두 번 발렸다. 여준은 복도에서 김 보호사 옆에 서서 그것을 지켜봤다. 원장이 오후에 돌아와 벽을 봤을 때 벽은 처음부터 벽이었던 것처럼 매끈했다.
그날 저녁 식판 바닥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었다. 네 글자. 제가 가짐.
진서 쪽 틈도 메워졌다. 두 사람은 다시 환풍구로 돌아갔다. 찬송 시간에만. 둘 사이의 두 걸음이 다시 벽이 되자 진서는 사흘 동안 말수가 줄었다. 넷째 날 진서가 말했다. 아저씨, 벽이 생겨도 두 걸음은 그대로예요. 여준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측량 기사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벽이 생기면 거리는 벽 두께만큼 줄어든다. 여준은 진서의 말이 틀린 줄 알았다. 그리고 틀린 말이 맞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 벽 앞에서 처음 알았다.
11월 20일 금요일. 영평군청 복지과 연 1회 시설 점검 날. 은혜요양원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원장은 2병동 마흔 명에게 새 환자복을 입혔다. 새 환자복은 일 년에 한 번, 점검 날 아침에 나오고 저녁에 걷힌다. 창틀의 먼지를 닦았다. 보호실 셋 가운데 둘을 비웠다. 끝방 두 칸. 여준과 진서는 아침 여섯 시에 본관 창고로 옮겨졌다. 열째 문, 창고 통로 문 안쪽. 창문 없는 방. 쌀 포대와 휴지 박스 사이. 김 보호사가 문을 잠그며 말했다. 오늘 하루만 여기서 조용히 계시라고. 조용히 계시면 저녁에 돼지고기 나온다고.
창고는 사무동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벽 너머가 원장실이었다. 여준은 쌀 포대 위에 컵을 놓았다. 가지고 나온 유일한 것이었다. 금 간 컵에 물이 반. 수면이 서쪽으로 쌀알 두 개. 본관은 2병동보다 더 기울었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더 누웠다.
열 시에 흰 승용차가 정문을 지났다. 열다섯째 문, 녹색 철대문이 열리는 소리. 창고에서는 그 소리가 가까웠다. 쇠바퀴가 레일을 긁는 소리. 경비실 쪽문, 열넷째. 사무동 현관, 열셋째. 여준은 셌다. 진서도 셌다. 소리 내지 않고 입술로.
군청 주무관은 탁은비였다. 서른둘. 영평군청 복지과 오 년 차. 점검은 세 번째였다. 앞의 두 번은 서류를 넘기고, 병동을 한 바퀴 돌고, 원장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갔다. 원장은 탁은비에게 늘 따님 같다고 했다. 탁은비는 그 말이 불편했지만 불편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탁은비의 아버지도 읍내 요양원에 계셨다. 은혜요양원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면회를 갔고, 갈 때마다 아버지 손목부터 봤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버릇이었다.
그날도 순서는 같았다. 서류. 입소자 명부, 동의서 철, 투약 기록, 강박 대장. 탁은비는 강박 대장을 넘기다가 멈췄다. 지난주 금요일. 여준. 열두 시간. 사유, 흥분 및 기물 파손. 탁은비는 여준이라는 이름을 입소자 명부에서 찾았다. 입소 이천십일 년. 보호 의무자 여석. 입원 연장 동의 매년.
“십오 년이요?”
“만성이세요. 가족분도 원하시고.”
원장이 커피를 따랐다. 탁은비는 받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이분 면담할 수 있어요?”
“오늘은 안정이 필요하셔서요. 다음에 오시면 제가 꼭.”
그리고 병동 순회. 2병동 복도에 마흔이 새 환자복을 입고 줄지어 섰다. 원장이 앰프를 켰다. 예배 시간은 아니었다. 원장은 점검 날마다 찬송을 틀었다. 은혜가 넘치는 시설로 보이게. 그리고 다른 소리가 안 들리게. 음량은 여섯. 탁은비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창고에서 여준은 그 찬송을 들었다. 셋째 곡. 권 할머니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왔다. 할머니는 새 환자복을 입으면 더 크게 부른다.
진서가 여준의 소매를 당겼다.
“아저씨. 지금이에요.”
“뭐가?”
“셋째 곡 끝나면 삼 초 조용하잖아요. 스피커 넘어갈 때.”
여준은 알았다. 곡과 곡 사이의 정적. 십오 년 동안 여준은 그 삼 초를 셌다. 셌지만 쓴 적은 없었다. 셋째 곡이 끝났다. 스피커가 딸깍 하고 넘어갔다.
진서가 벽을 두드렸다. 원장실 쪽 벽. 세 번. 쉬고. 세 번.
넷째 곡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숨을 죽였다. 넷째 곡이 끝났다. 삼 초. 이번에는 여준이 두드렸다. 세 번. 쉬고. 세 번.
복도 저편, 2병동에서 권 할머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들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할머니는 다섯째 곡을 부르지 않았다. 입을 다물었다. 민재가 할머니를 봤다. 민재도 다물었다. 하나, 둘, 셋. 예배에서 입 다문 일곱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덟. 아홉. 열둘. 원장의 찬송이 스피커로 나가는데 그 밑을 받치던 사람 소리가 빠졌다. 찬송은 커다란 빈 통 같은 소리가 됐다. 그 빈 통 속에서, 다섯째 곡과 여섯째 곡 사이의 삼 초에, 벽 두드리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갔다.
탁은비가 복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거 무슨 소리예요?”
“보일러요. 산이라 겨울에 배관이.”
“박자가 있는데요.”
원장이 웃었다. 크게. 그리고 앰프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일곱. 여덟. 스피커가 찢어졌다. 탁은비가 귀를 막았다. 막은 손을 내리고, 원장을 봤다. 그리고 소리 나는 쪽으로 걸었다. 본관 복도. 식당 옆. 창고 통로 문 앞. 열째 문. 거기서 벽 두드리는 소리가 정확히 들렸다. 세 번. 쉬고. 세 번.
“이 문 열어 주세요.”
“창고예요. 쌀이랑 휴지.”
“열어 주세요, 원장님.”
원장은 열쇠를 꺼내지 않았다. 김 보호사를 봤다. 김 보호사도 꺼내지 않았다. 그 사이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오상구였다. 꾸러미를 들고. 상구는 원장을 보지 않고 탁은비만 봤다. 그리고 열째 문 열쇠를 꽂았다. 테이프 없는 것 가운데 가장 짧은 것.
문이 열렸다.
쌀 포대와 휴지 박스 사이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새 환자복이 아니라 해진 환자복. 여준은 쉰하나, 진서는 스물아홉. 탁은비는 두 사람을 봤다. 얼굴보다 손목을 먼저 봤다. 버릇이었다. 두 사람 손목에 똑같이 거무스름한 띠가 있었다. 탁은비는 그 띠를 알았다. 주말마다 아버지 손목에서 없기를 바라며 찾던 자국이었다. 여준은 탁은비를 보지 않고 그 뒤의 원장을 봤다. 십오 년 동안 원장을 이렇게 문 밖에서 본 적은 없었다. 늘 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은 여준이 안에서,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원장을 봤다.
“여준 씨죠. 입소 이천십일 년.”
“그렇소.”
“여기 왜 계세요?”
“오늘 돼지고기 준다고 해서.”
탁은비가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원장은 웃지 않았다. 여준은 탁은비에게 말했다. 천천히. 측량 결과를 보고하듯이. 입원 날짜. 동생. 백운리 산 사십칠 번지. 도로 수용 보상금. 본인 동의 칸의 글씨. 강박 대장의 지난주 금요일. 그리고 진규철. 이천십구 년 이월 십육일. 끝방. 가출.
원장이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커졌다.
“주무관님, 이분이 이래요. 십오 년째 망상이에요. 동생분이 보상금을 가로챘다, 원장이 사람을 죽였다. 진단서 보셨잖아요. 가족 동의 다 있고요. 저 아가씨도 우울증으로 들어온 분이고.”
“증거 있으세요?”
탁은비가 여준에게 물었다.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원장 쪽으로도 여준 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려는.
“벽 안에 있었소. 지금은 칠해졌소.”
탁은비가 원장을 봤다. 원장이 두 손을 폈다. 보셨죠, 하는 손이었다. 탁은비는 서류철을 가슴에 안았다. 이 사람 말을 믿을 근거가 없었다. 원장 말을 믿을 근거는 서류 한 철이 있었다. 주무관은 서류를 믿는 사람이다. 그게 일이다.
그때 진서가 한 걸음 나왔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환자복 안쪽, 속옷 고무줄에 끼워 두었던 것. 플라스틱 카드. 운수종사자 자격증. 진규철. 넥타이 맨 사진.
“가출한 사람이 택시 자격증을 두고 가요?”
진서는 그것을 탁은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원장이 손을 뻗었다. 늦었다. 카드는 이미 주무관의 서류철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서류 한 철 사이에 카드 한 장. 두께는 볼품없었다. 그래도 기울기는 바뀌었다.
탁은비는 그 카드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원장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떨리지 않았다.
“이천십구 년 진규철 씨 퇴소 기록, 오늘 사본 주세요.”
“오늘은 사무장이 없어서.”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올게요. 그때 두 분 면담도 할게요.”
원장이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 없이. 여준은 그 웃음을 세 번째로 봤다.
흰 승용차는 오후 두 시에 떠났다. 열셋, 열넷, 열다섯. 여준은 창고 안에서 그 소리를 셌다. 문이 닫히자 원장이 창고 문 앞에 섰다. 김 보호사가 옆에 있었다. 상구는 없었다. 원장은 여준과 진서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김 보호사에게 말했다. 아주 평범한 목소리로. 월요일 아침 점호 말고, 내일 새벽 다섯 시. 영주 형님한테 두 사람. 차는 스타렉스로.
원장은 창고에서 돌아서다가 복도 저편의 상구를 봤다. 상구는 꾸러미를 든 채 식당 앞에 서 있었다. 원장은 상구에게 걸어갔다. 구두 굽이 복도를 울렸다. 창고 문은 열려 있었고, 여준은 문간에서 두 사람을 봤다. 원장은 상구 앞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낮췄는데도 들렸다. 복도는 찬송이 꺼진 뒤라 조용했다.
“오 과장. 수민이 다음 학기 등록금, 그것도 내가 내지.”
상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내지. 은혜로. 오 과장 인감도 내가 잘 가지고 있고.”
원장은 상구의 가슴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두 번 눌렀다. 상구가 이십 년 동안 손바닥으로 누르던 자리였다. 원장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상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원장이 지나갔다. 상구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꾸러미를 들여다봤다. 열쇠 스무 개를 하나씩. 세는 것처럼.
원장이 가고 나서 진서가 여준을 봤다. 창고 전구 아래서. 컵 속 물이 서쪽으로 쌀알 두 개.
“내일 새벽 다섯 시요.”
“들었소.”
“그럼 오늘 밤이네요.”
여준은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반 컵. 금 간 자리로 한 방울이 턱을 타고 흘렀다. 여준은 그것을 손등으로 닦지 않았다. 흐르게 두었다. 서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