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02자) · 오상구
탈수기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은혜요양원 세탁실에는 업소용 세탁기 넷과 탈수기 하나가 있다. 탈수기는 돌기 시작하면 바닥째 떨린다. 오래돼서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렸고, 쏠린 채로 분당 천 번을 돈다. 그 소리는 찬송보다 크다. 세탁실에서는 옆 사람과 말하려면 귀에 입을 대야 한다. 원장이 세탁실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2병동 사람들은 말한다. 원장은 자기 목소리가 안 들리는 방을 싫어한다.
작업 치료라는 이름으로 2병동 사람들은 돌아가며 세탁실에 간다. 한 주에 한 번, 다섯 명씩. 11월 9일 월요일, 명단에 끝방 둘이 들어 있었다. 원장이 넣은 것이었다. 예배에서 입 다문 일곱이 전부 그 주 세탁 명단에 올라 있었다. 벌은 벌처럼 안 보이게 준다. 원장의 방식이었다.
끝방에서 세탁실까지는 문이 넷이다. 첫째, 둘째, 셋째, 그리고 넷째 창살문을 지나 식당을 가로질러 다섯째, 세탁실 옆 쪽문. 인솔한 사람은 오상구였다. 상구는 문을 열 때마다 여준을 앞세웠다. 여준은 문 앞에 설 때마다 열쇠가 꾸러미에서 나오는 순서를 봤다. 다섯째 문 열쇠는 테이프가 없는 것 가운데 가장 긴 것이었다. 상구는 그것을 꺼내면서 여준 쪽으로 손을 조금 돌렸다. 보라는 듯이. 아니면 여준이 그렇게 봤을 뿐인지도 몰랐다.
세탁실은 습하고 따뜻했다. 세제 냄새와 젖은 면 냄새가 뒤섞였다. 벽 한쪽 끝에 철문이 있었다. 일곱째. 세탁실 뒷문. 세탁실 바닥은 타일이었고 가운데 배수구가 있었다. 물은 배수구로 가지 않고 서쪽 벽 밑으로 먼저 모였다. 배수구를 판 사람이 이 건물이 기운 것을 몰랐거나, 알고도 안 고쳤다. 뒷문도 서쪽 벽에 있었다. 문 밑 틈이 한쪽으로 벌어져 있었다. 그 문틈으로 서리 냄새가 들어왔다. 찬 흙과 마른 풀과 멀리서 타는 나뭇잎 냄새. 여준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돌리지 않았다. 목이 그쪽으로 끌려가는 것을 이를 물고 참았다. 진규철이 동그라미를 그린 문이었다.
권 할머니는 수건을 갰다. 할머니 손은 빨랐다. 네 번 접고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쌓았다. 민재는 수건을 셌다. 하나, 둘, 셋, 하나. 수건 더미가 쌓일수록 민재의 셈은 제자리를 돌았다. 진서는 시트를 털었다. 여준은 탈수기에 빨래를 넣었다. 상구는 탈수기 옆에 서 있었다.
탈수기가 돌기 시작했다. 바닥이 떨렸다. 여준은 탈수기 뚜껑에 손바닥을 댔다. 떨림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쏠린 균형추가 도는 박자가 손바닥에 그대로 왔다. 여준은 그 박자 속에서 상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입이 상구의 귀에 닿을 만큼.
“이천십구 년 이월 십육일.”
상구의 몸이 굳었다. 탈수기는 계속 돌았다.
“석고보드 안쪽이오. 미안합니다. 오상구.”
상구는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여준은 기다렸다. 탈수기의 한 판이 끝나려면 칠 분이 걸린다. 칠 분 동안은 아무도 두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다. 권 할머니도, 민재도, 문 앞의 김 보호사도. 진서만 시트를 털다가 두 사람을 봤다.
상구가 입을 열었다. 여준의 귀에 대고. 숨이 뜨거웠다. 커피가 아니라 보리차 냄새가 났다.
“저 여기 환자였어요. 이천육 년에. 술 때문에요. 집사람이 넣었어요. 석 달이면 나간다고 했어요.”
석 달은 삼 년이 됐다. 삼 년째에 원장이 불렀다. 퇴원시켜 주겠다고. 대신 여기서 일하라고. 보호사로. 월급도 주겠다고. 상구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퇴원 서류라고 했다. 퇴원 서류 사이에 차용증이 한 장 끼어 있었다. 원장이 요양원을 넓힐 때 진 빚의 연대 보증. 상구의 인감은 그날부터 원장 금고에 있다. 상구가 그만두면 빚은 상구에게 간다. 집사람은 그사이에 떠났다. 딸 하나가 남았다. 딸은 올해 대학 이 학년이다. 등록금은 원장이 낸다. 은혜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딸은 제가 여기서 무슨 일 하는지 몰라요. 요양원 관리 과장인 줄 알아요.”
상구가 작업복 가슴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거기 무언가가 납작하게 들어 있었다. 사진이거나, 학생증 복사본이거나. 상구는 꺼내지 않았다. 누르기만 했다. 이십 년 동안 그 주머니를 그렇게 눌러 온 손이었다.
탈수기가 삐 소리를 내며 멈췄다. 세탁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김 보호사가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조용해지면 오는 사람이었다. 그때 권 할머니가 수건을 개다 말고 노래를 시작했다. 찬송이 아니었다. 옛 뽕짝이었다. 목청껏, 가사를 반쯤 지어서. 고개 넘어 우리 막내가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목이 꺾였다. 김 보호사가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는 김 보호사를 보면서 더 크게 불렀다. 김 보호사가 혀를 차고 고개를 뺐다. 민재가 박수를 쳤다. 셋까지 치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박수도 제자리를 돌았다. 권 할머니가 수건을 쌓는 소리가 들렸다. 민재가 하나, 둘, 셋, 하나 하는 소리도. 여준은 탈수기 뚜껑을 열고 빨래를 꺼냈다. 상구는 다음 빨래를 넣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준이 버튼을 눌렀다. 탈수기가 다시 돌았다. 바닥이 다시 떨렸다.
“그날 밤은요.”
여준이 물었다.
“그날 당직이 저였어요.”
상구의 목소리가 떨렸다. 탈수기의 떨림과 같은 박자로 떨려서, 떨림이 떨림에 묻혔다.
진규철은 그날 저녁 세탁실에서 일곱째 문을 열려고 했다. 작업 치료 날이었다. 문고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김 보호사가 붙잡았다. 원장이 강박을 지시했다. 열두 시간. 끝방, 그때는 방이 하나였던 그 자리의 침대에. 새벽 두 시에 상구가 순찰을 돌았다. 진규철이 숨을 이상하게 쉬고 있었다. 상구는 가슴 끈 하나를 풀어 주었다. 규정 위반이었다. 네 시에 다시 갔을 때 진규철은 침대에서 반쯤 내려와 있었다. 풀린 끈 하나 때문에 몸이 기울었고, 다른 끈 셋이 기운 몸을 붙잡고 있었다. 바닥이 서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상구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여준은 더 묻지 않았다. 그 밤의 나머지는 누구의 입으로도 여기 적히지 않는다. 진서가 시트를 털던 손을 멈추고 두 사람 쪽을 보고 있었다. 탈수기 소리 때문에 한 마디도 못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서는 시트를 가슴에 안은 채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원장이 방을 둘로 나누라고 했어요. 가출로 올리라고. 물건은 태우라고 했는데 못 태웠어요. 넣어 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넣어 두는 것까지였어요.”
“넣어 두는 건 닫는 거요.”
여준이 말했다. 귀에 대고. 한 글자씩.
“여는 게 아니고.”
상구가 몸을 뗐다. 탈수기 뚜껑에 얹은 손이 떨림을 따라 흔들렸다. 처음으로 여준을 정면으로 봤다. 손목 안쪽의 흰 흉터가 보였다. 이천육 년, 입원 첫 달에 상구가 자기 손으로 낸 흉터라는 것을 여준은 그날 처음 짐작했다. 상구도 한때 이쪽에 있었다. 문 이쪽.
“여준 씨는 몰라요. 열쇠 하나 드리면 저는 끝나요. 딸이 끝나요. 빚이 딸한테 가요.”
“번호는 줬잖소.”
“번호는요. 번호는 제 손에서 나간 게 아니라 제 머리에서 나간 거라. 열쇠는 꾸러미에 있어요. 꾸러미는 세요. 원장이. 매일 밤.”
“진규철 씨 딸이 저기 있소.”
여준이 턱으로 진서를 가리켰다. 상구는 보지 않았다.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알아요. 들어온 날 알았어요. 입원 서류에 보호자 없음, 본인 동의. 성이 진씨. 아버지 이름 적는 칸에 진규철.”
“그럼 알 거요. 저 사람이 여기 왜 제 발로 들어왔는지.”
탈수기가 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상구가 먼저 몸을 돌렸다. 김 보호사가 문간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상구가 소리를 높였다. 평소 목소리로.
“여준 씨, 수건 개세요. 탈수 제가 할게요.”
여준은 수건 더미 앞으로 갔다. 가는 길에 일곱째 문 앞을 지났다. 한 걸음. 문 밑 틈으로 들어온 찬 바람이 발목을 스쳤다. 여준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늦추면 김 보호사가 본다. 발목만 그 찬 기운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권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가 수건 한 장을 여준 무릎에 올려 주었다. 네 번 접는 법을 손으로 보여 줬다. 여준은 따라 접었다. 접힌 모서리가 안 맞았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십오 년 된 남자가 수건 하나를 못 접는다고. 여준은 다시 접었다. 이번에는 맞았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이었다.
할머니는 접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여기 수건은 다 원장 거여. 근디 개는 건 우리여. 그러니께 반은 우리 거여. 민재가 수건 더미를 가리켰다.
“아저씨, 이거 몇 개예요? 저 자꾸 셋에서 돌아가요.”
여준은 셌다. 마흔하나.
“마흔하나.”
“우리 병동 사람 수랑 비슷하네.”
“병동은 마흔이다.”
“그럼 하나 남네요. 아저씨 거 해요.”
민재가 수건 한 장을 여준에게 밀었다. 여준은 그것을 받았다. 무릎 위에 올렸다. 따뜻했다. 탈수기에서 막 나온 온기가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상구가 다시 앞장섰다. 다섯째 문, 넷째 문, 셋째 문. 셋째 문 앞에서 상구가 꾸러미를 꺼냈다. 파란 테이프. 상구는 열쇠를 꽂기 전에 여준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찬송이 나오고 있어서 가능했다.
“원장이 끝방 둘 정리한다고 했어요. 군청 점검이 이십일이에요. 그 전에요. 영주에 원장 형님이 하는 기도원이 있어요. 거기로.”
“거기서 나온 사람은 있소?”
상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숫자를 댔다. 이 년 전에 둘, 작년에 하나. 영주로 간 사람. 그 셋의 이름은 은혜요양원 퇴원 대장에 「타 시설 전원」으로 적혀 있다고. 그 뒤로 그 셋의 가족이 면회를 왔다는 기록은 없다고. 열쇠를 돌렸다. 파란 테이프가 손끝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그날 밤 틈 너머에서 진서가 물었다. 탈수기 옆에서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여준은 한참 망설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전부가 아니라, 진서가 알아야 하는 만큼. 아버지는 가출하지 않았다고. 그 밤에 한 사람이 끈 하나를 풀어 주었다고. 그 사람이 그 뒤로 칠 년 동안 식판을 넣었다고.
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 찬송이 한 곡 끝나고, 스피커가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삼 초의 정적 동안에도. 그러다 말했다. 그 사람이 끈을 풀어 준 거네요. 하나를. 여준은 그렇다고 했다. 진서는 그 말을 한 번 더 했다. 하나를. 그러고는 틈으로 손을 넣었다. 여준도 넣었다. 두 걸음 한가운데서 손끝이 닿았다. 진서의 손은 차가웠다. 여준은 무릎 위의 수건을 반으로 접어 틈으로 밀어 넣었다. 민재가 준 마흔한 번째 수건. 아직 조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