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46자) · 석고벽

두 걸음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끝방은 가로 네 걸음, 세로 세 걸음이었다. 여준의 걸음은 칠십오 센티미터다. 입원하던 해에 병원 복도 타일 한 장이 삼십 센티미터라는 것을 알고 타일을 밟으며 맞춰 둔 값이었다. 가로 삼 미터, 세로 이 미터 이십오. 문제는 바깥이었다. 여준의 머릿속 도면에서 2병동 끝의 튀어나온 자리는 가로가 여섯 걸음이었다. 수레가 끝방 앞 복도를 지나는 걸음 수로 잰 값이었다. 끝방 가로 네 걸음, 옆 진서의 방 가로 네 걸음, 벽 두께 둘을 합치면 여덟 걸음을 조금 넘어야 했다. 그런데 바깥 복도는 여섯 걸음에서 끝나고 꺾였다.

두 걸음이 남았다. 방 두 개 사이에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두 걸음이.

여준은 가벼운 소리가 나는 벽을 다시 두드렸다. 주먹이 아니라 손가락 둘째 마디로. 세 군데에서 소리가 무거웠다. 그 세 군데 사이는 정확히 사십 센티미터씩이었다. 콘크리트벽에는 사십 센티미터마다 기둥이 없다. 석고보드를 세울 때는 있다. 이 벽은 나중에 세운 벽이었다.

진서는 그 말을 환풍구 너머에서 들었다. 일곱 시 찬송이 한창이었다.

“제 방 벽도 그래요. 침대 머리 쪽. 두드리면 통통 해요.”

두 방 사이에 벽이 둘이었다. 두 벽 사이가 두 걸음이었다.

여준은 식판을 썼다. 스테인리스 식판은 이 방에서 유일하게 단단한 물건이었다. 모서리 네 개가 각져 있었다. 저녁 식판을 받은 뒤 내놓지 않고 매트리스 밑에 감췄다. 하나 들어오고 하나 나가는 규칙을 깨면 다음 날 아침 오른손이 알 것이다. 여준은 그것도 셈에 넣었다. 오상구는 반창고를 넣은 사람이다. 식판 하나를 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셈하지 않는 쪽에 걸었다.

침대 다리 뒤, 벽과 바닥이 만나는 선에 식판 모서리를 밀어 넣었다. 페인트가 실처럼 말려 올라왔다. 그 밑에서 흰 가루가 나왔다. 손끝에 묻히니 미끄러웠고 침이 닿으니 뭉쳤다. 석고였다. 여준은 그 선을 따라 서쪽으로 긁어 나갔다. 긁는 소리는 찬송 시간에만 냈다. 하루 네 번, 이십 분씩. 권 할머니가 크게 부를 때 크게 긁었다. 할머니가 숨을 고를 때는 멈췄다.

사흘째 저녁, 식판 모서리 끝에 쇠가 걸렸다. 나사 머리였다. 일자 홈. 녹이 두껍게 앉아 있었다. 여준은 숟가락 자루를 시멘트 바닥에 갈았다. 알루미늄 자루는 무르게 닳았다. 한 시간 갈고 대 보고, 또 갈았다. 세 시간째에 홈에 들어갔다. 돌렸다. 안 돌았다. 여준은 컵의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하루 치 물은 이 리터였다. 한 방울이 아까웠다. 물이 녹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 여준은 벽에 등을 대고 기다렸다. 등이 서쪽으로 미끄러졌다. 발로 밀어 바로 세웠다.

반 바퀴 돌았다.

손이 떨렸다. 십오 년 동안 이 건물에서 여준이 제 손으로 돌려서 움직인 것은 처음이었다. 문은 늘 남이 열었다. 그다음 나사, 그다음 나사. 사흘 동안 나사 넷을 뺐다. 석고보드 아래쪽 한 귀퉁이가 들렸다. 손바닥 두 개만 한 틈. 거기로 찬 공기가 나왔다. 오래 갇힌 공기의 냄새. 먼지와 곰팡이와, 가죽이 삭는 냄새.

여준은 틈에 손을 넣었다. 두 걸음짜리 공간이었다. 벽장처럼 좁고 깊었다. 바닥에 무언가가 있었다. 손끝에 닿는 대로 하나씩 꺼냈다.

가죽 끈 넷. 강박 침대에 쓰는 것. 버클이 녹슬어 있었다. 끈 하나는 가운데가 끊겨 있었다.

슬리퍼 한 짝. 회색. 뒤축이 서쪽으로 닳아 있었다.

플라스틱 카드 하나. 먼지를 문지르자 사진과 글자가 나왔다. 운수종사자 자격증. 진규철. 쉰둘. 사진 속 남자는 넥타이를 맸고 웃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여준은 석고보드 안쪽 면에 손바닥을 댔다. 매끈한 종이 면이었다. 손끝에 연필 자국이 걸렸다. 여준은 몸을 비틀어 틈에 얼굴을 대고, 들어오는 복도 불빛에 비춰 읽었다. 날짜와 이름과 한 마디. 석고보드를 세운 사람이 안쪽 면에, 아무도 안 볼 자리에 적어 둔 것이었다.

2019. 2. 16. 오상구. 미안합니다.

글씨가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반창고의 네 자리와 같은 쏠림이었다.

그리고 틈 반대편, 두 걸음 너머에서 빛이 샜다. 진서 쪽 벽이었다. 진서도 긁고 있었다. 머리핀으로. 여준보다 사흘 늦게 시작해서 여준보다 반나절 먼저 뚫었다. 그 구멍으로 진서의 눈이 보였다. 한쪽 눈. 여준은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이 건물 안에서 자기를 보는 눈을 벽 너머로 봤다.

“아저씨.”

“여기 있소.”

여준은 자격증을 틈 사이로 밀었다. 두 걸음의 어둠을 지나 진서의 구멍 앞까지 손을 뻗었다. 팔이 모자랐다. 진서가 손을 넣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두 걸음 한가운데서 닿았다. 자격증이 넘어갔다.

진서는 오래 말이 없었다. 찬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되고 또 끝났다. 그 사이에 진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여준은 그것이 더 무거웠다.

“넥타이 맨 사진이네요.”

한참 만에 진서가 말했다.

“아버지 넥타이 매는 거 딱 두 번 봤어요. 엄마 장례식이랑, 이거 찍을 때.”

그날 밤 두 사람은 두 걸음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누웠다. 각자의 침대가 아니라 벽 밑 바닥에. 틈으로 서로의 숨소리가 들렸다. 여준은 그 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릿속에서 맞춰 봤다. 기록은 없었다. 있는 것은 물건과 벽뿐이었다. 원래 이 자리는 방 하나였다. 가로 여덟 걸음. 강박 침대 둘이 들어가는 방. 이천십구 년 이월 어느 밤, 여기서 진규철이 묶여 있었다. 끈 하나가 끊겼다. 사람이 끊은 것인지 오래돼서 끊긴 것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 뒤로 누군가 이 방을 둘로 나누고, 가운데 두 걸음을 석고로 막고, 끈과 슬리퍼와 자격증을 그 안에 넣었다. 버리지 않고. 태우지 않고. 넣어 두었다.

왜 넣어 두었는지 여준은 알 수 없었다. 버리는 사람은 버린다. 넣어 두는 사람은 언젠가 누가 찾기를 바란다.

넷째 날 밤, 김 보호사가 순찰을 돌았다. 보호사는 넷이다. 오상구, 김 보호사, 그리고 주말에 오는 둘. 김 보호사는 서른다섯에 덩치가 컸고, 원장의 조카였다. 순찰은 원래 유리창만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그날은 문을 열었다. 원장이 시킨 것이었다. 새로 옮긴 방은 점검한다. 김 보호사는 손전등으로 방을 훑었다. 침대 밑. 매트리스 솔기.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흰 가루.

손전등이 멈췄다.

“이게 뭐예요.”

여준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대는 벽 쪽으로 밀어 두었다. 틈을 가리려고.

“벽이 삭았소. 오래된 건물이라.”

“침대 치워 보세요.”

“허리가 안 좋소.”

김 보호사가 침대를 잡았다. 여준이 침대를 잡았다. 두 사람이 침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쪽으로 당겼다. 침대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여준은 쉰하나였고 십오 년 동안 하루 체조 백 회로 버틴 몸이었다. 김 보호사는 서른다섯이었다. 침대가 벽에서 한 뼘 떨어졌다. 두 뼘. 김 보호사의 발이 바닥의 컵을 찼다. 플라스틱 컵이 벽에 부딪혀 금이 갔다. 물이 서쪽으로 흘렀다. 바닥이 기운 쪽으로, 곧게, 한 줄로. 여준은 그 물줄기를 봤다. 십오 년 동안 재던 것이 눈앞에서 스스로 흘러갔다. 틈이 드러나기 직전에 옆방에서 소리가 났다.

진서가 비명을 질렀다. 길게. 찬송보다 컸다. 벽을 주먹으로 쳤다. 세 번 쉬고 세 번이 아니라, 박자 없이 마구.

김 보호사가 손을 놓았다. 침대가 벽 쪽으로 도로 밀려갔다. 서쪽으로 기운 바닥이 침대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김 보호사는 욕을 하며 옆방으로 갔다. 열쇠 꾸러미 소리. 문. 진서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커졌다가 막혔다. 무언가로 입이 막힌 소리였다. 그리고 발소리 둘. 계단 세 개를 올라가는 소리. 복도가 꺾이는 소리.

여준은 침대를 붙잡은 채로 서 있었다. 손이 침대 쇠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진서가 끌려간 방향으로 머릿속 도면을 따라갔다. 계단 위, 방화문, 2병동 입구. 거기서 왼쪽이면 강박실이었다.

새벽 네 시에 진서가 돌아왔다. 옆방 문이 열리고 닫혔다. 틈 너머에서 오래 아무 소리가 없었다. 여준은 틈에 입을 댔다.

“괜찮소?”

한참 뒤에 대답이 왔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여섯 시간이요. 손목이랑 발목.”

“미안하오.”

“왜 아저씨가 미안해요. 제가 소리 지른 거예요.”

진서가 숨을 한 번 쉬었다.

“근데 아저씨. 저 거기 묶여 있는 동안 셌어요. 끌려가면서. 문 소리요. 계단 위 방화문, 2병동 입구, 그리고 왼쪽으로 꺾어서 하나 더. 강박실 문. 그건 아저씨 열다섯에 없죠?”

없었다. 여준은 십오 년 동안 정문으로 가는 문만 셌다. 안쪽으로 가는 문은 세지 않았다. 나가는 길만 셌다. 진서는 끌려가는 길을 셌다.

“열여섯이오.”

여준이 말했다.

“아니요.”

진서가 말했다.

“하나가 더 열린 거예요. 이 벽이요. 우리가 연 거. 그러니까 문은 여전히 열다섯이고, 우리가 연 게 하나예요.”

여준은 벽의 틈에 손을 댔다. 틈 너머에서 진서의 손끝이 왔다. 두 걸음 한가운데서 닿았다. 여준은 그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자기 손끝도 떨렸다. 둘 다 떨려서 오히려 균형이 맞았다.

여섯 시 반에 원장이 왔다. 진서의 방부터 들렀다. 문이 열린 채라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왔다.

“자매님, 어젯밤에 왜 그러셨어요?”

“벌레요.”

“벌레?”

“지네요. 이만한 거. 목사님 방에는 안 나와요?”

원장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웃었다. 크게.

“산이니까 나오지. 벌레는 은혜로 이기는 거예요.”

원장은 나가면서 김 보호사에게 말했다. 끝방 두 칸 벽, 다음 주에 페인트 새로 해. 여준은 그 말을 벽 앞에서 들었다. 다음 주. 칠 일. 틈이 막히기까지 남은 날이었다.

여준은 금 간 컵을 버리지 않았다. 금이 간 쪽을 위로 해서 물을 반만 채웠다. 반까지는 새지 않았다. 컵은 여전히 서쪽으로 쌀알 한 개만큼 기울었다. 부서진 것으로도 수평은 잴 수 있었다.

아침에 식판이 들어왔다. 오른손이었다. 어제 식판이 하나 모자랐다. 오른손은 그것을 알았다. 알고 덮개를 내렸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날 식판에는 국이 다시 있었다. 여준은 국을 먹지 않았다. 국그릇을 바닥에 놓고 국물의 가장자리를 봤다. 서쪽으로 쌀알 한 개. 그러고는 틈에 대고 진서에게 석고보드 안쪽의 한 줄을 읽어 주었다. 이천십구 년 이월 십육일. 오상구. 미안합니다. 진서는 그 이름을 두 번 따라 말했다. 세 번째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그 사람이 식판 넣는 사람이에요? 여준은 그렇다고 했다. 진서는 그날 아침 식판을 받을 때 배식구 앞에서 오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고 했다. 오른손이 들어오는 것을 보려고. 손은 평소처럼 들어왔다가 나갔다. 손목 흉터를 봤냐고 여준이 물었다. 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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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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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5.20· 3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 종이배2026.05.21

      저도 그 장면에서 멈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