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74자) · 오른손

배식구

열다섯 개의 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옆 보호실의 여자는 이름을 먼저 댔다. 진서. 스물아홉. 서울에서 학원 강사를 했다. 이틀 전 이 문으로 들어왔다. 제 발로. 영평읍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떼어 들고, 은혜요양원 상담실에 앉아 자의 입원 동의서에 서명했다. 원장은 그 서명을 받으면서 참 잘 오셨다고 했다. 은혜가 필요한 얼굴이라고.

“자의 입원이면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환풍구로 오는 목소리는 쇳내가 섞여 얇았다. 여준은 침대 위에 서서 환풍구 창살에 귀를 댔다. 발밑 매트리스가 서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몸이 따라 기울었다. 여준은 무릎을 굽혀 균형을 잡았다. 십오 년 동안 몸이 배운 자세였다.

“법은 그렇소.”

“어제 나가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여기로 옮겨졌어요.”

“그것도 법이오. 여기 법.”

진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복도 스피커는 조용했다. 점심 찬송까지 사십 분. 두 사람 목소리가 벽을 넘기 가장 좋은 시간이었고, 가장 위험한 시간이었다. 조용하면 복도 끝 보호사실까지 들린다.

“진규철. 우리 아버지예요. 이천십이 년에 여기 들어왔어요. 새어머니가 넣었어요. 술 때문이라고. 칠 년 전 이월에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대요. 가출하셨다고. 새어머니는 그 말을 믿었어요. 저는 그때 스물둘이었고, 서울에 있었고, 아버지랑 삼 년 동안 말을 안 했어요.”

여준은 벽의 긁힌 줄을 봤다. 문 열다섯. 나는 일곱까지 셌다. 글씨는 누운 높이였다.

“가출한 사람은 문을 안 세요.”

여준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 너무 곧게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벽 너머에서 숨소리가 끊겼다가 이어졌다. 여준은 긁힌 줄을 손끝으로 따라 읽어 주었다. 숫자와 걸음 수와, 일곱 번째 문 옆의 작은 동그라미까지. 진서는 끝까지 들었다. 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벽을 한 번 두드렸다.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소리가 둔했다.

오후 네 시에 원장이 복도를 돌았다. 원장은 하루 한 번 보호실 문의 작은 유리창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구두 굽 소리가 먼저 온다. 복도가 꺾이는 데서 한 번 멈추고, 계단 세 개를 내려올 때는 난간을 짚는다. 원장의 무릎은 화요일에만 쑤시는 게 아니었다. 유리창에 얼굴이 떴다. 안경 너머 눈이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침대, 바닥의 컵, 벽 앞에 앉은 여준.

“형제님, 새 방은 어떠세요.”

“서쪽으로 기울었소.”

“산에 지은 집이 다 그렇지. 여기 전에 쓰던 분도 참 조용했어요. 형제님도 여기서는 조용하실 거예요.”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 옆 방 유리창으로 갔다. 진서의 방. 거기서는 더 오래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여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원장이 목소리를 낮출 때는 그것이 제일 무서운 때였다. 구두 굽 소리가 계단을 올라갔다. 여준은 벽의 긁힌 줄에 손바닥을 댔다. 참 조용했어요. 그 사람은 누운 높이에서 문을 셌다.

그날 저녁 식판 시간에 여준은 배식구 앞에 앉아 있었다.

수레가 덜컹거리며 왔다. 계단 세 개를 내려오는 소리. 끝방까지 식판을 가져오려면 수레를 계단 위에 세워 두고 손으로 들고 와야 한다. 발소리가 두 번, 식판을 고쳐 드는 소리, 발소리가 또 두 번. 덮개가 올라갔다. 오른손이 식판을 밀었다. 손목 안쪽의 흰 흉터.

여준은 그 손목을 잡았다.

십오 년 만이었다. 손은 놀랐다. 식판이 기울었다. 국이 한쪽으로 쏠려 넘쳤다. 뜨거운 국물이 여준의 손등으로 흘렀다. 여준은 놓지 않았다.

“놓으세요.”

오상구의 목소리였다. 배식구 너머에서, 무릎을 꿇은 높이로.

“진규철 씨는 어디 있소?”

“놓으세요, 여준 씨. 목사님 불러요.”

“부르시오. 부르려면 이 손을 빼야 하오.”

상구는 손을 빼지 않았다. 뺄 수 있었다. 여준보다 힘이 셌다. 여준은 손바닥 안에서 상구의 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빨랐다. 여준은 속으로 셌다. 일 분에 백십쯤. 겁먹은 사람의 맥이었다. 아니면 무언가를 참는 사람의.

“칠 년 전 이월이오. 이 방이오. 당신은 그때도 식판을 넣었소.”

“……나가셨어요.”

“어디로?”

“나가셨다고요. 가출.”

“이 방에서 가출하려면 문 열다섯을 지나야 하오. 그 사람은 일곱까지 셌소. 벽에 있소. 와서 보시오.”

손목 안쪽 흉터 위로 힘줄이 섰다. 상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쪽 손이 배식구로 들어왔다. 왼손. 그 손이 여준의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세게 펴지 않았다. 아프지 않게. 새끼손가락부터. 여준은 그 손이 하는 대로 두었다. 새끼, 약지, 중지. 검지에서 상구의 손이 멈췄다.

“여준 씨. 그 방에서 그 이름 부르지 마세요.”

상구가 낮게 말했다. 거의 숨소리였다.

“벽이 얇아요. 환풍구가 원장실 쪽이랑 이어져 있어요. 낮에 조용할 때는 거기까지 가요.”

여준의 손가락이 풀렸다. 오른손이 빠져나갔다. 식판은 그대로 남았다. 국은 반쯤 쏟아져 있었다. 덮개가 내려갔다.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갔다. 수레가 출발했다. 이번에는 덜컹거리는 소리 사이사이가 평소보다 짧았다. 서두르는 걸음이었다.

십오 년 동안 그 오른손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대신 몇 가지를 했다. 여준의 생일인 사월 열이틀에는 김이 두 장 더 들어왔다. 강박 침대에서 내려온 날에는 밥이 평소보다 질었다. 씹지 않고 삼킬 수 있게. 삼 년째에 종이를 뺏긴 날 저녁에는 식판 밑에 연필 한 토막이 붙어 있었다. 여준은 그 연필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쓰면 그 손이 들킬 것 같아서. 연필은 한 달 뒤 매트리스 솔기 속에서 보호사 검사에 걸려 나갔다. 그 주에 오른손은 한 번도 김을 더 넣지 않았다.

여준은 손등의 국물을 핥았다. 짰다. 멸치 맛이 났다. 식어서 기름이 떠 있었다. 여준은 식판을 들고 환풍구 아래로 갔다.

“들었소?”

“……들었어요.”

“낮에는 말하지 맙시다. 찬송 나올 때만.”

그다음 날부터 두 사람은 찬송 시간에만 말했다. 일곱 시, 열 시 반, 세 시, 저녁 일곱 시. 하루 네 번, 한 번에 이십 분. 원장이 좋아하는 열두 곡이 두 사람의 대화를 덮었다. 권 할머니가 크게 부를수록 둘은 더 길게 말할 수 있었다. 여준은 그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고마웠다. 할머니는 그 주에 우리 막내 밥은 먹었나를 여섯 번 불렀다.

첫날 진서가 물었다.

“우리 막내 밥은 먹었나, 이게 찬송가에 있어요?”

“권 할머니 가사요. 막내가 서울 가서 연락이 없대요. 이십 년째.”

“원장님이 그거 들으면서 소리를 키워요?”

“그 대목이 제일 은혜롭다고.”

벽 너머에서 진서가 웃었다. 소리 없이 웃다가 기침이 섞였다. 여준도 웃었다. 이 방에서 웃은 사람은 여준이 아는 한 그들이 처음이었다.

진서는 아버지 이야기를 조금씩 했다. 진규철은 개인택시를 했다. 차 안에서 늘 트로트를 크게 틀었다. 딸이 창피하다고 하면 더 크게 틀었다. 술을 마시면 노래를 불렀고, 노래를 부르다가 울었다. 진서가 대학에 붙은 날도 울었다. 그리고 삼 년 뒤 진서가 집을 나갈 때는 울지 않았다. 문 앞에서 택시 열쇠만 만지작거렸다. 그게 진서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가 여기서 문을 셌다는 게 안 믿겨요. 그 사람 숫자에 약했어요. 거스름돈도 맨날 틀렸어요.”

“숫자에 약한 사람이 일곱까지 셌으면 오래 셌을 거요.”

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서는 물었고 여준은 대답했다. 문 열다섯. 첫째는 이 방 문. 둘째는 계단 위 방화문. 셋째는 2병동 입구. 넷째는 식당 쪽 창살문. 다섯째는 세탁실 옆 쪽문. 여섯째는 1병동 입구의 번호 자물쇠, 번호는 네 자리. 일곱째는 세탁실 뒷문. 거기서부터 바깥 공기가 들어온다. 수레가 그 문을 지나고 나면 식판에서 서리 냄새가 난다고, 여준은 말했다. 이 방에 온 뒤로는 못 맡았지만.

“아버지는 세탁실 뒷문까지 간 거네요.”

“동그라미가 그거요. 거기서 멈췄다는 거.”

“왜 멈췄을까요?”

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알았다. 일곱째 문 밖에는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원장의 개 두 마리가 있다. 풀어놓는 밤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여덟째부터 열다섯째까지, 문이 여덟 개 더 있다. 한 사람이 혼자 넘기에는 많은 문이다.

넷째 날 세 시 찬송 때 진서가 말했다.

“아저씨는 십오 년 동안 문을 세기만 했어요?”

여준은 그 질문에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찬송이 한 곡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될 때까지. 사이의 정적이 삼 초. 그 삼 초 동안 두 사람은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다음 곡의 전주가 스피커를 찢으며 나오자 여준이 입을 열었다.

“처음 삼 년은 문을 두드렸소. 다음 삼 년은 편지를 썼고. 편지 쓰다가 종이를 뺏겼소. 그다음부터 셌소. 세면 하루가 갔소.”

“그럼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모르겠소.”

“저는 알아요.”

진서의 목소리가 조금 가까워졌다. 환풍구 바로 밑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저는 아버지가 세다 만 걸 셀 거예요. 여덟부터. 근데 저는 문 소리를 몰라요. 아저씨가 알려 주세요.”

여준은 환풍구 아래 벽에 등을 댔다. 등이 서쪽으로 조금 미끄러졌다. 여준은 발로 바닥을 밀어 몸을 바로 세웠다. 세는 것과 여는 것은 달랐다. 세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었다. 여는 것은 문 이쪽과 저쪽에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십오 년 동안 여준은 이쪽에만 있었다.

“여덟째 문은 쇠창살이오. 경첩이 두 음으로 울어요. 도, 그리고 그보다 조금 낮은 도.”

진서가 따라 불렀다. 음이 틀렸다. 여준이 다시 불렀다. 찬송이 두 사람의 음을 덮었다.

그날 저녁 식판에는 국이 없었다. 밥과 김치뿐이었다. 벌이었다. 손목을 잡은 값. 여준은 밥을 천천히 먹었다. 밥알 하나를 남겨 침대 다리 밑에 붙였다. 오천사백팔십 번째.

그리고 식판을 내놓으려고 뒤집었을 때 식판 바닥에 무언가 붙어 있었다. 반창고 한 조각. 반창고 안쪽에 볼펜으로 숫자 네 개가 적혀 있었다. 급하게 쓴 글씨였다. 번호 자물쇠 네 자리. 여섯째 문. 여준은 그 글씨를 알았다. 십오 년 전 입원 서류 맨 아래, 보호사 확인란에 삐뚤게 적혀 있던 이름의 글씨. 오상구. 획이 오른쪽으로 쏠리는 글씨. 서쪽으로 기운 방에서 쓴 것처럼.

여준은 반창고를 한참 들여다봤다. 컵을 바닥에 놓았다. 물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쌀알 한 개만큼. 여준은 컵을 조금 기울여 물을 수평으로 맞췄다. 손목이 떨렸다. 물이 한 번 출렁이고, 다시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누가 넣어 준 것이었다.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문 쪽에서 무엇인가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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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19·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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