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89자) · 11월 3일

문 열다섯

동생이 정신병원에 가뒀다 · 남시우

은혜요양원의 아침은 찬송으로 시작한다. 일곱 시 정각, 복도 천장 스피커 여섯 개가 한꺼번에 켜진다. 음질이 나쁜 스피커는 높은 음에서 찢어지고, 찢어진 소리는 콘크리트 복도를 두 번 튕겨 병실 문틈으로 들어온다. 곡은 해마다 같다. 원장이 좋아하는 곡 열두 개가 순서대로 돈다. 2병동 사람들은 곡 순서로 요일을 안다. 셋째 곡이 제일 느린 곡이면 화요일이다. 원장은 화요일마다 무릎이 쑤신다고 했다.

2병동에는 마흔 명이 산다. 여섯 명씩 쓰는 병실 여섯 개, 네 명이 쓰는 병실 하나. 찬송이 나오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절반이다. 부르지 않으면 점심 국이 식어서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소문인지 규칙인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제일 크게 부르는 사람은 권 할머니다. 일흔여덟. 가사를 반쯤 지어서 부른다. 은혜로운 대목에서 느닷없이 「우리 막내 밥은 먹었나」가 튀어나온다. 원장은 그 대목에서만 스피커 음량을 올린다. 할머니는 그걸 칭찬으로 안다.

2026년 11월 3일은 화요일이었다.

2병동 맨 끝 보호실의 남자는 스피커가 켜지기 전에 일어나 있었다. 바닥에 앉아 플라스틱 컵 하나를 앞에 놓고 있었다. 물이 삼 분의 일쯤 들어 있었다. 남자는 컵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컵 속 물의 가장자리가 컵 벽에 닿은 높이를 봤다. 동쪽 벽이 서쪽 벽보다 쌀알 반 개만큼 높았다. 바닥이 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뜻이었다. 이 건물은 산비탈에 서 있고, 비탈은 서쪽 계곡으로 떨어진다. 남자는 그것을 십오 년 전 첫 주에 알았다. 그 뒤로 방을 옮길 때마다 컵을 먼저 놓았다. 여기까지 방은 셋이었다. 첫 방은 1병동 창가, 둘째는 2병동 육인실, 셋째는 여기 보호실. 넷째가 오늘이 될 줄은 그때 몰랐다.

남자의 이름은 여준이다. 쉰하나. 십오 년 전 이 문을 들어올 때는 서른여섯이었고 직업은 측량 기사였다. 땅의 높낮이를 재서 도면에 옮기는 일. 들어올 때 가진 것은 입고 온 옷과 가방 하나였다. 가방은 첫날 사라졌다. 옷은 삼 년째에 해져서 버려졌다. 남은 것은 셈하는 버릇이었다.

일곱 시 사십 분, 복도 저쪽에서 식판 수레가 출발했다. 여준은 눈을 감았다. 수레 바퀴 하나가 헐거워서 이음매를 넘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그 소리 사이사이에 자물쇠 소리가 끼어든다. 식당 쪽 창살문의 무거운 빗장. 2병동 입구의 열쇠 자물쇠, 열쇠 꾸러미가 부딪치는 소리. 보호실 복도 방화문의 손잡이가 내려가는 소리. 여준은 그 소리를 하나씩 셌다. 읍내에서 들어온 부식 트럭이 정문에 서는 날에는 수레가 정문에서 출발하고, 그런 날은 열다섯이 거의 다 들린다. 마당 쇠창살 문의 녹슨 경첩이 두 음으로 우는 소리, 1병동 입구 번호 자물쇠가 삑삑 네 번 우는 소리까지. 오늘은 식당에서 출발했으니 셋. 열다섯 가운데 열하나는 식당보다 바깥에 있다.

문이 열다섯이라는 것을 여준은 입원하고 이 년째에 알았다. 소리를 셌고, 소리마다 걸음 수를 붙였고, 걸음 수마다 컵 속 물의 기울기를 붙였다. 복도가 어디서 꺾이는지, 어디서 한 층 내려가는지. 여준의 머릿속에는 은혜요양원의 도면이 있었다. 종이에는 없었다. 종이와 연필은 삼 년째에 뺏겼다. 뺏긴 이유는 편지를 썼기 때문이었다.

배식구 덮개가 위로 밀렸다. 쇠와 쇠가 긁히는 소리. 식판이 들어왔다. 밥, 멀건 뭇국, 콩나물, 김치. 식판을 민 것은 오른손이었다. 손톱은 짧게 깎여 있고, 손목 안쪽에 세로로 흰 흉터가 하나 있었다. 십오 년 동안 같은 손이었다. 흉터는 해마다 조금씩 흐려졌다.

여준은 아침 식판으로 날을 센다. 벽에 금을 긋지 않는다. 금을 그으면 보호사가 페인트로 덮는다. 대신 밥알 하나를 남긴다. 창틀 틈에, 침대 다리 밑에, 매트리스 솔기 속에. 말라붙은 밥알은 쌀알처럼 단단해진다. 한 해가 끝나면 모아서 센다. 그리고 버린다. 머리에만 남긴다. 오늘 아침 식판은 오천사백칠십육 번째였다. 십오 년은 윤년 넷을 넣어 오천사백칠십구 일이다. 사흘이 모자랐다. 그 사흘은 첫 주에 밥을 안 먹은 날이었다. 그때는 안 먹으면 누가 와서 물어볼 줄 알았다.

“오늘이 그날이지요.”

여준이 배식구에 대고 말했다. 손이 잠깐 멈췄다. 어제 식판을 집어 가는 손가락이 조금 빨라졌다. 덮개가 내려갔다. 바퀴가 덜컹거리며 멀어졌다.

열 시에 보호실 문이 열렸다. 열쇠 자물쇠, 두 번 돌리는 소리. 원장 강신복이 먼저 들어왔다. 예순일곱. 회색 양복 위에 털조끼. 은혜요양원에서는 모두 그를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목사 안수를 어디서 받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 뒤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마흔여덟. 등산 점퍼. 손에 서류철. 여준의 동생 여석이었다.

“형님, 오랜만이에요.”

여석은 해마다 11월 3일에 온다. 입원 연장 동의서에 보호 의무자 도장을 찍으러. 해마다 같은 점퍼를 입고 온다. 올해는 점퍼 소매가 해져 있었다. 여준은 바닥에 앉은 채로 동생의 소매를 봤다.

“보상금 다 썼냐?”

여석의 얼굴이 굳었다. 원장이 웃었다. 원장은 웃을 때 목소리가 더 커진다.

“여준 형제님, 아직도 그 이야기예요. 보상금, 땅, 도로. 십오 년째 똑같으시네. 이러니까 우리가 못 내보내 드리는 거예요. 망상이 안 빠졌어.”

“망상이면 서류를 보여 주시오. 이천십일 년 영평군 국도 확장 구간 수용 보상. 백운리 산 사십칠 번지. 소유자 여준. 내가 측량한 땅이오.”

“형님.”

여석이 서류철을 열다가 도장을 떨어뜨렸다. 도장은 바닥을 굴러 여준의 무릎 앞에서 멈췄다. 뿔 도장. 뚜껑에 여씨 문중 종친회 로고가 박혀 있었다. 아버지가 쓰던 것이었다. 여준은 그것을 집어 동생에게 내밀었다. 여석은 받으면서 형의 손가락을 피했다. 도장을 받는 손과 도장을 건네는 손이 한 번도 닿지 않았다. 둘 다 그렇게 하는 데 익숙했다. 여석이 서류철을 열었다. 동의서 두 장. 한 장에는 보호 의무자 칸, 한 장에는 본인 칸. 본인 칸에 이미 서명이 되어 있었다. 여준의 이름이었다. 여준의 글씨가 아니었다. 원장이 그 서류를 여준 쪽으로 기울여 보여 줬다.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본인 동의까지 받았어요. 형님이 작년에 써 주셨잖아.”

“작년에 나는 강박 침대에 묶여 있었소. 손목이 이렇게. 묶인 손으로 서명을 했다면, 그 글씨는 참 반듯하구려.”

여준은 손목을 들었다. 두 손목에 똑같이, 가죽 끈이 오래 눌렀던 자리가 거무스름하게 남아 있었다. 여석이 그 손목을 보지 않으려고 원장 어깨 너머를 봤다. 원장은 봤다. 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묶여 계실 정도로 안 좋으셨으니까.”

그 말에 여준은 일어섰다. 십오 년 동안 원장 앞에서 일어선 적은 여러 번 있었다. 매번 끝이 같았다. 원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보호사 둘이 들어오고, 침대. 여준은 일어서서 원장이 아니라 동생을 봤다.

“석아. 그 땅 도로 났냐?”

“……났어요.”

“몇 차선?”

“사 차선요.”

“내가 그어 놓은 대로 났냐?”

여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준은 그 대답을 알았다. 자기가 그은 선대로 났을 것이다. 측량은 틀리지 않는다. 틀리는 것은 사람이다. 여준은 동생 손의 서류철을 봤다. 도장이 찍히는 자리를. 거기 동생의 도장이 찍힐 것이다. 올해도. 열여섯 번째로.

“형제님, 오늘은 좀 흥분하셨네. 끝방으로 옮겨 드리죠. 조용한 데서 좀 쉬시게.”

원장이 문 밖에 대고 손짓했다. 보호사 둘이 들어왔다. 하나는 오상구였다. 쉰다섯. 식판을 넣는 오른손. 상구는 여준의 팔을 잡을 때 손목의 흉터가 있는 쪽을 안으로 돌렸다. 여준은 그 손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도를 꺾을 때 상구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그 방에서는 벽 쪽으로 자지 마세요. 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원장이 앞에서 찬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박자가 스피커보다 반 박자 늦었다.

끝방은 2병동에서도 가장 안쪽이었다. 복도가 한 번 꺾이고, 계단 세 개를 내려가, 비탈 쪽으로 튀어나간 자리. 여준은 끌려가면서 걸음을 셌다. 서른한 걸음, 꺾고, 계단 셋, 열두 걸음. 머릿속 도면에 새 방 하나가 들어갔다. 이 방은 십오 년 동안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수레 소리로만 알던 방이었다. 칠 년 전 겨울부터 비어 있던 방.

문이 닫혔다. 두 번 돌리는 소리. 복도 스피커에서 열 시 반 찬송이 시작됐다. 넷째 곡. 권 할머니가 2병동 병실에서 반 박자 빨리, 누구보다 크게 따라 불렀다. 여준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방을 둘러봤다.

가로 네 걸음, 세로 세 걸음. 침대 하나. 벽은 흰 페인트. 천장 구석에 환풍구. 그리고 한쪽 벽만 두드리면 소리가 가벼웠다. 여준은 무릎을 꿇고 컵을 바닥에 놓았다. 물이 담긴 채로 들고 온 컵이었다. 보호사들은 컵을 뺏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지 모르니까. 컵 속 물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다른 방보다 많이. 쌀알 한 개. 서 있으면 몸이 모르게 서쪽으로 쏠렸다. 침대 다리 네 개 가운데 서쪽 둘에만 고무 받침이 닳아 있었다. 이 방에 누웠던 사람은 밤마다 조금씩 벽 쪽으로 미끄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 다리 뒤, 바닥에서 한 뼘 높이의 벽에 긁힌 자국이 보였다. 페인트 위에서 손톱이나 숟가락 자루로 긁은 것이었다. 여준은 몸을 낮추고 자국에 얼굴을 댔다. 숫자였다. 걸음 수. 문마다 하나씩.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문 열다섯. 나는 일곱까지 셌다. 진규철

여준은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글씨는 낮았다. 누운 채로 긁은 높이였다. 자기 말고 문을 센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 이 방에서. 일곱까지.

일곱 다음이 없었다.

그때 벽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두드리는 소리. 세 번. 쉬고. 세 번. 옆 보호실이었다. 여준이 알기로 그 방은 어제까지 비어 있었다. 찬송이 끝나고 복도가 잠깐 조용해진 사이, 환풍구에서 여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낮고, 떨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목소리였다.

“거기 누구 있어요? 진규철 씨 아세요?”

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십오 년 동안 여기서 이름을 묻는 목소리는 둘 중 하나였다. 원장이 보낸 사람이거나, 곧 조용해질 사람이거나. 여준은 벽 앞에 앉아 긁힌 숫자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일곱 번째 문의 걸음 수 옆에 작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누군가 거기서 멈췄다는 표시. 여준은 손을 들었다. 벽을 두드렸다. 세 번. 쉬고. 세 번. 벽 너머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찬송보다 작았다. 그런데 그날 여준에게는 그 소리가 제일 컸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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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시우작가2026.10.09· 1화

    작가 남시우입니다. 십오 년 동안 잠긴 문 열다섯을 소리로 센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1화를 읽고 여준의 셈에서 가장 마음에 걸린 문은 몇 번째였나요?

  • 겨울차2026.05.18· 1화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남시우작가2026.05.19

      끊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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