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41자)

몰이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두름은 우리 판자 문에 등을 기댄 채 새벽을 맞았다⁠. 우리 안이 아니라 밖이었다⁠. 지난밤 판자를 뛰어넘어 나가는 것은 됐는데 들어오는 것은 안 됐다⁠. 비탈에서 내려와 판자 문 앞에 엎드려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동이 틀 무렵 할아버지가 나와서 문 앞의 두름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장을 열어 주었다⁠. 두름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빗장을 지르고 빗장 위에 철사를 두 번 감았다⁠.

해가 능선에 닿기 전에 개 소리가 산에서 내려왔다⁠.

넷이었다⁠. 산 위에서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짖는 소리 사이로 사람 휘파람이 날카롭게 끊어졌다⁠. 마을 방송이 켜졌다⁠.

“⁠아⁠, 아⁠. 이장입니다⁠. 지금 군청 엽사분들 몰이 중입니다⁠. 산에 절대 올라가지 마시고요⁠, 개 묶어 두시고⁠, 애들 밖에 내보내지 마세요⁠. 총소리 나도 놀라지 마시고⁠. 이상⁠, 이장이었습니다⁠.⁠”

총소리가 한 번 났다⁠. 능선 너머 먼 데였다⁠. 두름은 판자에 코를 대고 바람을 맡았다⁠. 바람은 산에서 마을로 불었다⁠. 개 냄새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개 냄새 앞에 다른 냄새가 하나 있었다⁠. 엷은 피 냄새⁠. 어린 멧돼지의 피⁠. 공사판 울타리 밑에서 맡은 다리 다친 새끼의 냄새였다⁠.

새끼들은 바위굴에 있지 않았다⁠. 지난밤 도토리를 먹은 비탈⁠, 밭둑 바로 위였다⁠. 봄비는 어미를 따라가지 않았다⁠. 굴 대신 두름 곁에 남은 것이었다⁠. 개들이 피 냄새를 따라 비탈을 내려오고 있었다⁠. 밭둑까지 몇백 걸음이었다⁠.

*

두름은 판자 문을 들이받았다⁠.

첫 번에는 판자가 휘기만 했다⁠. 철사가 끽끽 울었다⁠. 두름은 뒤로 물러났다⁠. 우리 끝 벽에 엉덩이가 닿을 때까지 물러났다⁠. 백오십육 킬로그램이었다⁠. 저울판 바늘이 한참 돌다 멈춘 숫자였다⁠. 두름은 머리를 낮추고 달렸다⁠.

판자 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철사가 끊어져 튕겼다⁠. 두름은 문짝을 밟고 마당을 지나 감자밭으로 내달았다⁠. 닭들이 횃대에서 날개를 퍼덕였다⁠. 염소가 뒤에서 소리쳤다⁠.

“⁠문 먹어도 돼⁠?⁠”

두름은 대답할 틈이 없었다⁠. 감자밭 이랑을 뛰어넘을 때마다 배가 출렁였다⁠. 밭둑에 닿았다⁠. 금줄을 넘었다⁠. 비탈 위에서 봄비가 새끼들을 품고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봄비 눈에 흰자위가 보였다⁠.

“⁠개가 와요⁠! 올라가요⁠! 굴로⁠!⁠”

“⁠다리 다친 애가 못 뛰어요⁠!⁠”

비탈 위 나무 사이로 검은 등이 보였다⁠. 어제 판자 앞에서 두름을 맡은 개였다⁠. 나머지 셋이 뒤를 따랐다⁠. 개들이 피 냄새를 따라 곧장 봄비에게로 내려오고 있었다⁠.

두름은 비탈 한가운데로 뛰어나갔다⁠. 개들과 봄비 사이였다⁠. 두름은 고개를 쳐들고 소리를 질렀다⁠. 돼지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였다⁠. 꽥⁠, 하고 길게⁠. 우리 안에서는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소리였다⁠. 닭들이 마을 끝에서 따라 울었다⁠.

검은 개가 멈췄다⁠. 코를 들었다⁠. 두름 털 밑의 산 냄새⁠, 산 냄새 밑의 멧돼지 젖 냄새가 개 코에 닿았다⁠. 개 넷이 방향을 틀었다⁠. 새끼의 엷은 피 냄새보다 백오십육 킬로그램짜리 멧돼지 냄새가 더 컸다⁠.

두름은 뒤돌아 뛰었다⁠. 비탈을 내려가 금줄을 넘고 감자밭을 가로질렀다⁠. 개들이 뒤따랐다⁠. 두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개 숨소리가 엉덩이 바로 뒤에서 났다⁠. 봄비가 새끼들을 몰아 비탈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

두름은 마을로 내려갔다⁠. 산에서는 총을 쏘았다⁠. 마을에서는 쏘지 않았다⁠. 구릉이 한 말이었다⁠.

고샅으로 뛰어들자 개 넷인 집 개들이 묶인 채 미쳐 날뛰었다⁠. 장 달이는 집 담장 앞에서 두름은 장독 하나를 엉덩이로 쳤다⁠. 장독이 굴렀다⁠. 뒤따르던 개 하나가 장독에 걸려 넘어졌다⁠. 두름은 계속 뛰었다⁠. 회관 앞마당이 나왔다⁠.

회관 앞마당 천막 아래에서 할머니들이 전을 부치고 있었다⁠. 내일 잔치에 쓸 전이었다⁠. 커다란 번철 넷에 들기름이 끓었고⁠, 소쿠리마다 부추전과 배추전이 쌓여 있었다⁠. 현장소장이 안전모를 쓰고 막걸리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두름은 천막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할머니들이 비명을 질렀다⁠. 소쿠리가 날았다⁠. 부추전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졌다⁠. 현장소장이 막걸리 상자를 안은 채 뒤로 넘어져 상자 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막걸리 병이 터져 하얀 거품이 솟았다⁠. 개 둘이 천막으로 뛰어들었다가⁠, 땅에 떨어진 부추전 앞에서 멈췄다⁠. 개 하나가 전을 물었다⁠. 다른 하나도 물었다⁠. 둘은 두름을 잊고 전을 먹었다⁠.

검은 개만 전을 보지 않았다⁠. 일하는 개였다⁠.

검은 개가 천막 기둥을 돌아 두름 앞을 막았다⁠. 두름이 몸을 틀었다⁠. 검은 개가 뛰어올랐다⁠. 두름 왼쪽 귀에 이빨이 박혔다⁠.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두름 머리 안에서 났다⁠. 뜨거운 것이 목덜미로 흘렀다⁠.

엽사들이 뛰어왔다⁠. 휘파람이 울렸다⁠. 검은 개가 이빨을 풀고 물러났다⁠. 마을 사내들이 회관 창고에서 고기잡이 그물을 끌고 나왔다⁠. 그물이 두름 머리 위로 떨어졌다⁠. 두름은 버둥거렸다⁠. 버둥거릴수록 그물이 감겼다⁠. 두름은 버둥거리기를 멈췄다⁠. 쇠줄과 같았다⁠. 당기면 조였다⁠.

두름은 그물 속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찢어진 귀에서 피가 떨어져 부추전 위에 동그랗게 번졌다⁠. 산 위에서 개 소리가 더는 나지 않았다⁠. 바람이 산에서 내려왔다⁠. 봄비와 새끼 넷의 냄새가 능선 너머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능선 위 바위 끝에 냄새 하나가 멈춰 있었다⁠. 썩은 도토리와 진흙과 묵은 피⁠. 구릉이 거기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

마을 사람들이 그물째 두름을 리어카에 실어 노부부 마당으로 끌고 왔다⁠. 할머니가 행주를 들고 뛰어나와 두름의 찢어진 귀를 눌렀다⁠. 행주에서 들기름 냄새가 났다⁠. 피가 행주를 금방 적셨다⁠. 할머니는 행주를 뒤집어 다시 눌렀다⁠.

나이 든 엽사가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왔다⁠.

“⁠어르신⁠, 개들이 멧돼지 새끼 냄새 쫓다가 이놈한테 붙었습니다⁠. 이놈 몸에서 멧돼지 냄새가 펄펄 나요⁠. 산에서 같이 있었던 거예요⁠.⁠”

이장이 리어카 옆에서 손을 비볐다⁠.

“⁠형님⁠, 이제 안 돼요⁠. 오늘 밤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헛간으로 갑니다⁠. 회사 돼지가 산에서 멧돼지랑 뒹굴었다고 소문나면 잔치고 뭐고 다 끝장이에요⁠.⁠”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리어카 위의 두름을 보았다⁠. 그물 사이로 두름의 눈이 할아버지를 보았다⁠.

연지가 방에서 나왔다⁠. 손에 두툼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제 엽사가 다녀간 뒤 면사무소 앞 농협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찾아온 돈이었다⁠. 연지는 봉투를 이장 앞에 내밀었다⁠.

“⁠이장님⁠. 백이십만 원이에요⁠. 계약금 오십 돌려드리고⁠, 칠십은 회사에 미안하다고 드리는 거예요⁠. 두름 안 팔아요⁠.⁠”

이장이 봉투를 보았다⁠. 받지 않았다⁠.

“⁠연지야⁠, 이건 회사랑 한 약속이야⁠. 내가 소장님한테 뭐라고 해⁠? 그리고 잔칫상에 돼지가 없으면 안전기원제를 어떻게 지내⁠? 발파 앞두고⁠.⁠”

현장소장이 막걸리에 젖은 바지를 털며 마당 문 앞에 와 있었다⁠. 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가 연지 손목을 잡았다⁠.

“⁠그 돈 서울 방 얻을 돈 아니냐⁠. 넣어라⁠.⁠”

“⁠빚지지 말라며⁠.⁠”

연지 목소리가 떨렸다⁠.

“⁠할아버지가 빚지지 말라며⁠. 할아버지 지금 두름한테 빚지는 거야⁠. 할머니가 키우고 할아버지가 짚 깔아 주고 내가 이름 지어 준 애를 솥에 넣는 게 빚 아니면 뭐야⁠?⁠”

할아버지의 손이 연지 손목에서 풀렸다⁠. 할아버지 몸에서 쇠 냄새가 확 올라왔다⁠. 두름은 할아버지가 무엇을 떠올리는지 알았다⁠. 연지는 몰랐다⁠. 두릅 바구니 이야기는 할아버지와 막걸리 사발과 돼지만 알았다⁠.

“⁠약조는 약조다⁠.⁠”

할아버지가 리어카 손잡이를 이장 손에 쥐여 주었다⁠. 할아버지 손은 손잡이에서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연지가 봉투를 땅에 내던졌다⁠. 봉투가 마당에 떨어지자 염소가 목을 쭉 뺐다⁠. 부서진 우리 문 틈으로 염소가 빠져나와 봉투를 향해 달려갔다⁠. 할머니가 행주를 든 채 몸을 날려 봉투를 낚아챘다⁠. 염소가 할머니 치마를 물었다⁠. 할머니가 염소 머리를 봉투로 때렸다⁠. 염소는 봉투 귀퉁이를 조금 뜯어 먹고 물러났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할머니는 봉투를 연지 주머니에 도로 찔러 넣었다⁠. 뜯긴 귀퉁이로 오만 원짜리 끝이 삐죽 나와 있었다⁠. 염소가 먹은 것은 봉투 종이뿐이었다⁠.

*

이장네 헛간 바닥은 시멘트였다⁠. 두름은 헛간 기둥에 굵은 새 밧줄로 묶였다⁠. 이틀 전 이장이 노부부 마루 끝에 내려놓고 간 밧줄이었다⁠. 목에 한 번⁠, 앞다리 사이로 한 번 돌아 기둥에 매였다⁠.

헛간에서는 박하와 장작과 쓴 뿌리 냄새가 났다⁠. 벽에 걸린 자루마다 장뇌 뿌리가 말라 가고 있었다⁠. 헛간 밖 마당에는 커다란 가마솥 두 개가 벌써 아궁이 위에 얹혀 있었다⁠. 솥 밑에 장작이 쌓여 있었다⁠. 내일 새벽에 불을 붙일 장작이었다⁠.

두름은 시멘트 바닥에 코를 박았다⁠. 코끝이 미끄러졌다⁠. 흙냄새가 나지 않았다⁠. 차갑고 매끈하고 아무것도 없는 냄새였다⁠. 두름은 다시 박았다⁠. 갈라진 코끝이 시멘트에 긁혀 피가 났다⁠. 시멘트는 한 톨도 파이지 않았다⁠. 산신령 말이 맞았다⁠. 두름은 시멘트를 못 팠다⁠.

헛간 문밖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났다⁠. 이장네 누렁 진돗개가 사슬 끝까지 와서 문틈에 코를 댔다⁠. 이장 냄새가 났다⁠. 박하와 마이크 침 냄새가 개 털에 배어 있었다⁠.

“⁠너 내일 솥 들어가지⁠?⁠”

“⁠아직 몰라요⁠.⁠”

“⁠다 알아⁠. 우리 주인이 아침부터 방송했잖아⁠. 백오십육 킬로⁠.⁠”

진돗개가 문틈으로 두름의 찢어진 귀를 맡았다⁠.

“⁠아까 엽사 개한테 물렸지⁠? 그놈 독하다⁠. 우리 주인 장뇌밭에도 그놈이 오줌을 싸고 갔어⁠.⁠”

“⁠밧줄 좀 풀어 주실 수 있어요⁠?⁠”

“⁠나 이장 개야⁠.⁠”

진돗개는 한마디로 다 됐다는 얼굴을 하고 사슬을 끌며 개집으로 돌아갔다⁠. 개집 앞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내일 뼈 남으면 나 줘라⁠.⁠”

두름은 시멘트 바닥에 턱을 내려놓았다⁠. 웃음이 날 법한 말이었다⁠. 웃음은 나지 않았다⁠.

헛간 벽 높은 곳에 판자 틈이 하나 있었다⁠. 틈으로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가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곶감 냄새가 벽을 지나 들어왔다⁠. 산신령이 헛간 벽을 지나 들어와 두름 앞에 앉았다⁠. 입에 곶감을 물고 있었다⁠. 이장네 곶감이었다⁠.

“⁠어험⁠. 해 졌다⁠. 셋째 판이다⁠.⁠”

“⁠알아요⁠.⁠”

“⁠구릉은 벌써 금줄 위에 섰다⁠. 해 지기 전부터 서 있었다⁠. 네 영감 밭둑에⁠.⁠”

“⁠알아요⁠.⁠”

“⁠금줄에 없는 놈은⁠…⁠…⁠.⁠”

산신령이 곶감을 씹다가 멈췄다⁠.

“⁠진다고 했나⁠?⁠”

“⁠먼저 떠나는 놈이 진다고 하셨어요⁠.⁠”

“⁠너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떠난 거냐⁠, 안 떠난 거냐⁠?⁠”

두름은 대답하지 못했다⁠. 산신령도 대답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산신령은 곶감을 다 먹고 벽을 지나 나갔다⁠.

두름은 밧줄이 허락하는 데까지 몸을 늘여 판자 틈을 올려다보았다⁠. 이장네 헛간은 마을 한가운데 언덕배기에 있었다⁠. 틈 너머로 마을 지붕들이 보였고⁠, 지붕 너머 마을 맨 끝에 노부부의 감자밭이 하얗게 누워 있었다⁠. 밭 끝 밭둑 위에 검은 것이 하나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등 갈기가 저녁 바람에 흔들렸다⁠.

두름이 몸을 더 늘였다⁠. 밧줄이 목을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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