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9자)

밧줄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밧줄에서 공장 냄새가 났다⁠. 기름 먹인 새 실 냄새였다⁠. 두름은 목에 감긴 밧줄을 이빨로 물었다⁠. 밧줄은 굵고 미끄러웠다⁠. 이빨이 실 사이로 들어가지 않고 겉을 따라 미끄러졌다⁠. 두름은 고개를 비틀어 어금니로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들어갔다⁠. 씹었다⁠. 실 한 가닥이 끊어지는 데 한참이 지나갔다⁠.

밧줄은 실 여러 가닥을 꼬아서 만든 것이었다⁠. 두름은 가닥을 세려다가 그만두었다⁠. 세면 씹을 힘이 빠질 것이었다⁠. 두름은 씹다가 쉬고 쉬다가 씹었다⁠. 쉴 때마다 판자 틈으로 밭둑을 올려다보았다⁠. 밭둑 위의 검은 것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밧줄 씹는 일보다 힘들었다⁠.

문틈에서 쇠사슬 소리가 났다⁠. 진돗개였다⁠.

“⁠씹냐⁠?⁠”

“⁠네⁠.⁠”

“⁠그거 이장이 읍내 철물점에서 제일 비싼 걸로 샀어⁠. 소도 못 끊는다고 하더라⁠.⁠”

“⁠저는 돼지예요⁠.⁠”

“⁠돼지가 소보다 이빨이 좋냐⁠?⁠”

두름은 대답 대신 씹었다⁠. 두 번째 가닥이 끊어졌다⁠. 입안이 실 부스러기로 까끌까끌했다⁠. 판자 틈으로 보이던 밭둑 위의 검은 것은 그대로였다⁠. 검은 등 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눈 냄새 사이로 딸기 핸드크림 냄새가 왔다⁠. 고샅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다⁠. 발소리는 눈을 밟을 때마다 멈칫거렸다⁠. 진돗개가 일어나 사슬을 당겼다⁠. 짖으려고 숨을 들이마셨다⁠.

“⁠쉿⁠, 쉿⁠. 이거 먹어⁠.⁠”

연지 목소리였다⁠. 무언가 눈 위로 툭 떨어졌다⁠. 진돗개가 코를 박았다⁠. 군고구마 냄새가 났다⁠. 진돗개는 짖지 않았다⁠.

“⁠이건 이장 개도 받는다⁠.⁠”

진돗개가 두름에게만 들리게 말하고 고구마를 물고 개집으로 들어갔다⁠.

헛간 문이 조금 열렸다⁠. 손전등 불빛이 시멘트 바닥을 훑고 두름 얼굴에 멎었다⁠. 연지가 털모자를 눈썹까지 눌러쓰고 서 있었다⁠. 한 손에 손전등⁠, 한 손에 부엌 가위를 쥐고 있었다⁠. 주머니가 고구마 모양으로 불룩했다⁠.

“⁠두름아⁠. 메리 크리스마스⁠.⁠”

연지가 들어와 문을 닫았다⁠.

“⁠크리스마스에 이장님네 헛간에 돼지 훔치러 온 스무 살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연지가 문틈으로 헛간 마당을 돌아보았다⁠. 눈을 맞으며 가마솥 두 개가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솥 밑에 쌓인 장작 위로 눈이 소복했다⁠. 연지가 어깨를 한 번 떨었다⁠. 추워서 떠는 어깨가 아니었다⁠. 연지는 솥에서 눈을 떼고 두름에게 몸을 돌렸다⁠.

“⁠저거 내일 새벽 다섯 시에 불 땐대⁠. 이장님이 회관에서 자랑하더라⁠. 솥 두 개 한꺼번에 끓이는 건 이 동네 생기고 처음이래⁠.⁠”

연지가 무릎을 꿇고 손전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불빛이 밧줄을 비췄다⁠. 연지가 두름 목의 밧줄을 손으로 더듬다가 씹힌 자리를 찾았다⁠.

“⁠너 이거 씹었어⁠?⁠”

두름은 그렇다고 했다⁠. 꿀⁠.

“⁠잘했어⁠. 반은 했네⁠.⁠”

연지가 가위를 밧줄에 댔다⁠. 헛간 뒷문이 열렸다⁠.

막걸리 냄새가 찬바람과 같이 들어왔다⁠. 할아버지였다⁠. 한 손에 막걸리 병⁠, 한 손에 사발⁠. 할아버지는 뒷문 앞에 서서 손전등 불빛 속의 연지와 가위와 두름을 차례로 보았다⁠. 연지는 가위를 내리지 않았다⁠.

“⁠뭐 하노⁠?⁠”

“⁠보면 몰라⁠?⁠”

할아버지가 뒷문을 닫았다⁠. 장작더미 앞의 엎어진 솥뚜껑 위에 앉았다⁠. 막걸리를 사발에 따랐다⁠.

“⁠그거 끊으면 이장한테 계약금에 위약금까지 물어 줘야 된다⁠. 니 서울 방 날아간다⁠.⁠”

“⁠알아⁠.⁠”

“⁠학교 앞에서 어디서 잘 건데⁠?⁠”

“⁠찜질방⁠.⁠”

“⁠찜질방에서 사 년을 사나⁠.⁠”

“⁠사 년은 아니고⁠. 기숙사 떨어진 애들 다 그렇게 해⁠.⁠”

“⁠다 그렇게 하면 니도 해야 되나⁠.⁠”

“⁠할아버지도 다 그렇게 했잖아⁠. 탄광에서⁠. 다들 하니까 했다며⁠.⁠”

할아버지 입이 닫혔다⁠. 연지가 이긴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연지는 가위를 쥔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한 학기 살고 생각할 거야⁠.⁠”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사발을 무릎에 올렸다⁠.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자 틈으로 눈발이 들어와 시멘트 위에서 녹았다⁠.

“⁠두름이 어디서 났는지 아나⁠?⁠”

“⁠정선 장에서 샀다며⁠. 할머니가 그랬어⁠.⁠”

“⁠아니다⁠.⁠”

할아버지가 사발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밭둑에서 났다⁠. 두 해 전 봄에 내가 감자 움 옆에 쇠줄을 놨다⁠. 니 학원비 하려던 감자였다⁠. 멧돼지 암컷이 걸려 죽었다⁠. 밤새 우는 소리가 났는데 나는 안 나갔다⁠. 무서웠다⁠. 멧돼지 이빨이 무서웠고⁠, 나가서 보는 게 무서웠다⁠. 날이 밝아서 나갔다⁠. 새끼 하나가 살아 있었다⁠.⁠”

연지의 가위가 밧줄에서 떨어졌다⁠. 연지는 두름을 보았다⁠. 두름의 찢어진 귀와 갈라진 코와⁠, 처음 산에 다녀온 날부터 털 밑에 배어 있던 산 냄새를⁠.

“⁠그럼 두름은 멧돼지야⁠?⁠”

“⁠산에서 났다⁠.⁠”

“⁠그럼 더 못 팔아⁠.⁠”

연지가 일어났다⁠.

“⁠산에서 난 애를 산신제 상에 올려⁠? 산신님한테 산에서 난 애를 바쳐⁠? 할아버지 그건 산신님한테 산 걸 도로 갖다 주는 거잖아⁠. 그게 무슨 제사야⁠?⁠”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연지 얼굴을 한참 보았다⁠.

“⁠내가 잡은 놈 새끼를 내 손으로 키워서 내 손으로 판다⁠. 그래야 끝나는 줄 알았다⁠. 니 학교는 빚 없이 보내고 싶었다⁠. 내 빚은 내 대에서 끝내고⁠.⁠”

“⁠할아버지 빚을 왜 두름이 갚아⁠?⁠”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발에 남은 막걸리를 다 마셨다⁠. 사발을 장작더미 위에 엎어 놓고 일어났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뒷문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나는 막걸리 마시러 왔다⁠. 아무것도 못 봤다⁠.⁠”

뒷문이 열리고 닫혔다⁠. 장화 소리가 눈 위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멀어졌다⁠.

*

부엌 가위는 밧줄에 비해 작았다⁠. 연지는 가위를 두 손으로 쥐고 밧줄을 썰었다⁠. 가위 날이 실 위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연지가 이를 악물었다⁠. 두름은 반대편에서 씹었다⁠. 연지가 한 가닥 자르면 두름이 한 가닥 끊었다⁠. 씹고 썰고 씹고 썰었다⁠.

“⁠이장님이 제일 비싼 걸로 샀나 봐⁠.⁠”

연지가 숨을 몰아쉬었다⁠. 진돗개가 개집 안에서 고구마를 다 먹고 트림을 했다⁠.

마지막 가닥이 끊어졌다⁠. 밧줄이 시멘트 위로 툭 떨어졌다⁠. 목이 가벼웠다⁠. 두름은 고개를 흔들었다⁠. 찢어진 귀에서 엉긴 피가 떨어졌다⁠.

연지가 헛간 앞문을 열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마을 지붕이 하얗게 덮여 가고 있었다⁠.

“⁠가⁠. 어디든 가⁠. 산이든 어디든⁠.⁠”

연지는 두름이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두름은 알았다⁠. 두름은 연지 손등에 코를 한 번 댔다⁠. 딸기 냄새와 가위 쇠 냄새와 밧줄 기름 냄새가 났다⁠. 갚을 것이 또 하나 늘었다⁠. 이번 것은 가장 컸다⁠.

두름은 눈 속으로 뛰어나갔다⁠.

*

고샅을 내려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동안 개 넷인 집 개들이 잠결에 짖었다⁠. 장 달이는 집 앞의 깨진 장독은 눈에 덮여 있었다⁠. 회관 천막에 눈이 쌓여 지붕이 축 처져 있었다⁠. 두름은 천막 앞을 지나며 들기름 냄새를 맡았다⁠. 내일 아침 저 천막 아래 상이 차려질 것이었다⁠.

노부부 집이 보였다⁠.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할머니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할아버지 장화 자국이 새로 나 있었다⁠. 이장네에서 돌아온 자국이었다⁠. 두름은 마당을 지나지 않고 우리 뒤로 돌아갔다⁠. 부서진 판자 문 자리에 할아버지가 판자 두 장을 엉성하게 덧대 놓았다⁠. 닭들이 횃대에서 눈을 떴다⁠.

“⁠왔어⁠?⁠”

“⁠가는 길이에요⁠. 금줄이요⁠.⁠”

“⁠귀가 왜 그래⁠?⁠”

“⁠개요⁠.⁠”

닭들이 서로 날개를 붙였다⁠. 염소가 덧댄 판자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입에 판자 조각을 물고 있었다⁠.

“⁠문 먹었어⁠. 반만⁠.⁠”

“⁠잘하셨어요⁠.⁠”

“⁠살아서 와⁠. 종이 가지고⁠.⁠”

“⁠살아서 오면 종이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럼 그냥 살아서 와⁠.⁠”

닭 한 마리가 횃대에서 고개를 쭉 뺐다⁠.

“⁠이번에는 마을 끝까지 안 옮길게⁠. 비밀로 해 줄게⁠.⁠”

두름은 닭들을 한 번 보고 감자밭으로 돌아갔다⁠.

밭둑 위에 구릉이 있었다⁠. 금줄 바로 위였다⁠. 해 질 녘부터 서 있었다⁠. 등에 눈이 한 뼘 쌓여 있었다⁠. 구릉은 고개만 돌려 두름을 보았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비탈 위에 짐승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이 수십 쌍 빛났다⁠.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 고개 너머에서 넘어온 낯선 짐승들⁠, 외눈 수컷의 무리였던 멧돼지들⁠. 나뭇가지마다 다람쥐가 웅크리고 있었다⁠. 봄비가 새끼 넷을 품고 바위 밑에 엎드려 있었다⁠. 다리 다친 새끼가 두름을 보고 낑낑거렸다⁠. 새끼가 봄비 품에서 빠져나와 비탈을 절뚝절뚝 내려오려 했다⁠. 봄비가 새끼 목덜미를 물어 도로 끌어당겼다⁠.

“⁠거기는 시험 자리야⁠. 가면 안 돼⁠.⁠”

나뭇가지 위에서 꼬리 끝이 하얀 다람쥐가 소리쳤다⁠.

“⁠돼지⁠! 반이야⁠! 봄에 아껴 둔 자리 알려 준다고 했지⁠! 죽으면 안 돼⁠! 약속은 약속이야⁠!⁠”

다람쥐들이 한꺼번에 꼬리를 흔들었다⁠. 어치 한 마리가 두름 머리 위를 돌며 꽥 하고 울었다⁠. 응원인지 독촉인지 알 수 없었다⁠. 두름은 산을 올려다보았다⁠. 산 전체가 밭둑 하나를 보러 내려와 있었다⁠. 첫날 산신 바위 앞에는 스무 마리 남짓이었다⁠. 오늘 밤은 셀 수 없었다⁠. 고개 너머 골짜기가 통째로 이쪽 비탈에 와 있었다⁠. 모두 굶은 냄새를 풍겼다⁠. 누가 산신령이 되든⁠, 내일부터 이 짐승들을 다 먹여야 했다⁠.

밭둑 끝 바윗돌 위에 산신령이 엎드려 있었다⁠. 코를 골다가⁠, 두름의 냄새에 눈을 떴다⁠.

“⁠어험⁠. 왔냐⁠?⁠”

구릉이 입을 열었다⁠. 몸은 그대로였다⁠.

“⁠해 질 녘부터 선 놈만 친다⁠. 저놈은 늦었다⁠.⁠”

산신령이 귀를 긁었다⁠.

“⁠내가 해 질 녘에 서라고 했냐⁠, 해 뜰 녘까지 버티라고 했냐⁠? 까마귀야⁠.⁠”

나뭇가지 위에서 눈을 뒤집어쓴 까마귀가 대답했다⁠.

“⁠둘 다 하셨습니다⁠.⁠”

“⁠…⁠…둘 다 했냐⁠?⁠”

“⁠둘 다 하셨습니다⁠.⁠”

짐승들이 웅성거렸다⁠. 고라니 하나가 웃다가 옆 고라니한테 또 뿔로 받혔다⁠. 산신령이 한참 하늘을 보았다⁠. 눈송이가 산신령의 허연 수염에 내려앉았다⁠.

“⁠그럼 둘 다 맞다⁠. 먼저 떠나는 놈이 진다고 했다⁠. 이놈은 아직 안 왔으니 떠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친다⁠.⁠”

구릉의 콧김이 길게 나왔다⁠.

“⁠늦은 걸 그냥 두실 겁니까⁠?⁠”

“⁠그냥은 안 둔다⁠. 늦은 놈은 늦은 대가를 치른다⁠. 금줄 위에서 제일 나쁜 자리에 선다⁠.⁠”

산신령이 바윗돌에서 내려왔다⁠. 늙은 다리로 밭둑을 따라 몇 걸음 걸었다⁠. 금줄이 감자 움 옆을 지나는 자리에서 멈췄다⁠. 밭둑이 거기서 한 번 꺼져 있었다⁠. 바람이 골짜기에서 곧장 올라와 부딪치는 자리였다⁠. 눈 밑에 얼음이 깔려 발이 미끄러졌다⁠.

그리고 두 해 전 봄⁠, 녹슨 쇠줄이 놓였던 자리였다⁠.

“⁠여기 서라⁠.⁠”

구릉이 고개를 돌려 산신령이 가리킨 자리를 보았다⁠. 구릉도 알았다⁠.

“⁠좋다⁠. 거기 서라⁠.⁠”

구릉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어미가 거기서 죽었다⁠. 거기 서서 밤을 날 수 있겠냐⁠?⁠”

두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밭둑으로 올라가 산신령이 가리킨 자리에 발을 디뎠다⁠. 앞발이 얼음에 미끄러졌다⁠. 두름은 다시 디뎠다⁠. 네 발을 다 올렸다⁠. 금줄의 매운 냄새가 콧등을 찔렀다⁠. 눈 밑⁠, 언 흙 밑⁠, 아주 깊은 데서 젖 냄새가 한 가닥 올라왔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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