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5자)

다람쥐가 아껴 둔 것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아침 일찍 개 냄새가 마을 어귀로 들어왔다⁠. 어젯밤 공사판에서 맡은 개 넷이었다⁠. 화약과 담배와 젖은 털 냄새를 앞세우고 주황색 조끼 둘이 고샅을 올라왔다⁠. 이장이 맨 앞에서 박하사탕을 깨물며 길을 안내했다⁠.

“⁠여기가 마을 맨 끝집입니다⁠. 밭이 산 밑까지 붙어서 멧돼지가 오면 여기부터 와요⁠.⁠”

엽사 둘은 마당에 들어오지 않고 감자밭으로 곧장 갔다⁠. 나이 든 엽사가 밭둑에 쪼그려 앉아 눈 위의 발자국을 들여다보았다⁠. 개 넷이 코를 땅에 박고 밭둑을 오르내렸다⁠. 할아버지가 헛간에서 나와 밭둑으로 갔다⁠. 두름은 판자에 코를 바짝 댔다⁠.

“⁠이건 멧돼지고⁠, 이건⁠…⁠…⁠.⁠”

나이 든 엽사가 장갑 낀 손가락으로 발자국 두 줄을 가리켰다⁠. 한 줄은 밭둑 너머에서 멈춰 있었다⁠. 금줄 앞에서 돌아선 구릉의 발자국이었다⁠. 다른 한 줄은 밭둑을 넘어 산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우리 쪽으로 이어졌다⁠.

“⁠이건 집돼지네요⁠. 이 집 돼지가 산에 다녔어요⁠.⁠”

엽사가 일어나 우리를 돌아보았다⁠. 염소 칸 판자 귀퉁이가 뜯겨 나간 자리가 훤히 보였다⁠. 염소가 판자 조각을 아직 입에 물고 있었다⁠.

“⁠어르신⁠, 집돼지가 멧돼지랑 섞이면 큰일 납니다⁠. 열병이요⁠. 멧돼지가 옮기는 병인데 집돼지한테 옮으면 약도 없어요⁠. 신고 들어가면 군청에서 검사 나오고⁠, 걸렸으면 이 동네 돼지는 다 땅에 묻어야 돼요⁠.⁠”

이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신고하면 잔치는요⁠?⁠”

“⁠잔치 끝나면 바로 잡으세요⁠. 그때까지 단단히 가둬 두시고요⁠. 산에 못 나가게⁠.⁠”

“⁠형님⁠, 들었죠⁠? 오늘 밤에 우리 헛간으로 데려갑시다⁠. 우리 헛간은 시멘트라⁠…⁠…⁠.⁠”

“⁠금요일 밤이라 했다⁠.⁠”

할아버지가 말을 잘랐다⁠. 이장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형님⁠, 금요일 밤이 내일 밤이에요⁠. 오늘 밤이나 내일 밤이나⁠…⁠…⁠.⁠”

“⁠그러니 내일 밤이다⁠.⁠”

할아버지는 등을 돌려 우리로 왔다⁠. 염소 칸 뜯긴 판자 앞에 서서 한참 보았다⁠. 염소가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판자 조각을 마저 씹었다⁠.

*

개 한 마리가 우리 판자 앞으로 다가왔다⁠. 귀가 서고 등이 검은 개였다⁠. 판자 사이로 코를 들이밀고 두름을 맡았다⁠. 두름도 맡았다⁠. 개 콧김에서 어젯밤 함바 뒤 눈밭 냄새가 났다⁠. 외눈 수컷의 피 냄새였다⁠.

“⁠너⁠, 멧돼지 냄새 난다⁠.⁠”

개가 짐승 말로 말했다⁠. 낮고 고른 목소리였다⁠.

“⁠집돼지예요⁠.⁠”

“⁠냄새는 아니라던데⁠. 네 털 밑에서 산 냄새가 나⁠. 산 냄새 밑에서 멧돼지 젖 냄새가 나⁠.⁠”

두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개가 판자에서 코를 떼고 산을 올려다보았다⁠.

“⁠내일 아침에 산에 올라간다⁠. 몰이다⁠. 어제 능선에서 새끼 냄새를 맡았다⁠. 넷이었다⁠. 하나는 다리를 절더라⁠. 피 냄새가 나니까 찾기 쉽다⁠.⁠”

“⁠새끼들이에요⁠.⁠”

“⁠우리는 일하는 개다⁠. 주인이 가라는 데 간다⁠. 새끼든 어미든⁠.⁠”

개는 짖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두름은 판자 사이로 코를 내밀어 개 코앞에 댔다⁠. 그러고는 재채기를 했다⁠. 일부러 한 것은 아니었다⁠. 개 털에서 화약 가루가 날려 코를 찔렀다⁠. 콧물이 개 얼굴에 튀었다⁠. 개가 뒤로 펄쩍 물러나 앞발로 얼굴을 문질렀다⁠.

“⁠더러운 돼지⁠.⁠”

“⁠죄송해요⁠. 화약이요⁠.⁠”

나이 든 엽사가 휘파람을 불었다⁠. 개가 얼굴을 문지르며 엽사에게 돌아갔다⁠. 연지가 마당 문 앞에서 엽사를 붙잡았다⁠. 두름은 귀를 세웠다⁠.

“⁠아저씨⁠, 검사하면 두름도 잡아요⁠?⁠”

“⁠병 있으면요⁠.⁠”

“⁠없으면요⁠?⁠”

엽사는 연지를 한 번 보고⁠, 우리를 한 번 보았다⁠.

“⁠없으면 잔치 가겠죠⁠, 아가씨⁠. 어차피⁠.⁠”

엽사들이 개를 데리고 고샅을 내려갔다⁠. 이장이 뒤따라가며 마이크를 켜러 회관으로 뛰었다⁠. 연지는 마당 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두름은 연지가 무슨 냄새를 풍기는지 맡았다⁠. 딸기 핸드크림이 아니었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누르면 나는 땀 냄새였다⁠.

오후에 곶감 냄새가 처마 밑으로 들어왔다⁠. 산신령이 곶감 줄 앞에 앉아 이번에는 세 개를 빼고 있었다⁠. 할머니 곶감 줄은 이제 반밖에 남지 않았다⁠.

“⁠어험⁠. 셋째 판 자리를 일러 주러 왔다⁠.⁠”

산신령은 곶감 하나를 우리 안 짚 위에 떨어뜨렸다⁠. 두름 몫이었다⁠. 두름은 곶감을 보고만 있었다⁠.

“⁠버티기는 금줄 위에서 한다⁠. 저 밭둑⁠. 산과 마을 사이⁠. 내가 예순 해 동안 한 일이 그거다⁠. 해 질 녘에 금줄 위에 서서 해 뜰 녘까지 안 떠나는 놈이 이긴다⁠. 먼저 떠나는 놈이 진다⁠.⁠”

“⁠둘 다 안 떠나면요⁠?⁠”

산신령이 곶감을 씹다가 멈췄다⁠. 한참 하늘을 보았다⁠.

“⁠그건 생각 안 해 봤다⁠.⁠”

“⁠까마귀한테 물어보시면요⁠?⁠”

“⁠까마귀는 내가 한 말만 안다⁠.⁠”

산신령은 곶감 씨를 퉤 뱉고 일어났다⁠. 판자를 지나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금요일 밤에 이장네 헛간에 간다며⁠. 헛간 바닥은 시멘트다⁠. 너는 시멘트를 못 판다⁠.⁠”

산신령은 할 말만 남기고 산으로 올라갔다⁠. 두름은 짚 위의 곶감을 그제야 먹었다⁠. 달았다⁠. 단맛이 목에 막혀 내려가지 않았다⁠.

*

밤이 되자 할아버지가 염소 칸 판자를 새 판자로 갈아 댔다⁠. 못을 박고 판자 밑에 돌을 박았다⁠.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간 뒤 두름은 판자를 하나씩 맡아 보았다⁠. 틈이 없었다⁠. 남은 것은 판자 위였다⁠. 두름은 처음으로 판자를 뛰어넘을 생각을 했다⁠. 앞발을 판자에 걸고 몸을 끌어 올렸다⁠. 배가 판자 꼭대기에 얹혔다⁠. 두름은 판자 위에 배를 걸치고 앞발 뒷발을 허공에서 저었다⁠. 닭들이 횃대에서 날개로 부리를 가렸다⁠.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두름은 한참 버둥거리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판자 바깥 눈밭에 쿵 떨어졌다⁠. 눈이 두름 모양으로 움푹 꺼졌다⁠.

“⁠다녀와⁠!⁠”

닭들이 속삭였다⁠. 판자 너머에서 염소가 덧붙였다⁠.

“⁠올 때 종이⁠.⁠”

밭둑에 봄비가 와 있었다⁠. 혼자였다⁠.

“⁠새끼들은 바위굴에 두고 왔어요⁠. 다리 다친 애가 열이 나요⁠. 아무것도 안 먹어요⁠. 아니⁠, 먹을 게 없어요⁠.⁠”

봄비가 금줄 너머에서 두름을 올려다보았다⁠.

“⁠산에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두름은 산을 보았다⁠. 산은 하얗게 덮여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두름은 산에서 무엇을 맡았는지 떠올렸다⁠. 곶감⁠, 뼈⁠, 더덕⁠, 물⁠, 장뇌⁠. 돈이 되는 냄새⁠, 판을 이기는 냄새였다⁠. 두름은 한 번도 그냥 먹을 것을 찾아 산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먹을 것이라면 처음 산에 오른 날 다래와 도토리를 주워 먹은 것이 다였다⁠.

두름은 금줄을 넘어 비탈에 코를 댔다⁠. 이번에는 돈 냄새를 찾지 않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눈 밑에 아주 작은 냄새들이 흩어져 있었다⁠. 한 알⁠, 두 알⁠. 도토리였다⁠. 참나무 밑이 아니었다⁠. 바위 틈⁠, 밭둑 끝⁠, 쓰러진 소나무 둥치 밑⁠,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맨 비탈⁠. 한 자리에 두세 알씩⁠, 손바닥 하나 거리를 두고⁠, 비탈 전체에 박혀 있었다⁠. 밤 냄새도 섞여 있었다⁠. 잣 냄새도 있었다⁠.

“⁠여기요⁠.⁠”

두름이 코를 박았다⁠. 눈 밑 언 흙을 한 겹 걷자 도토리 세 알이 나왔다⁠. 봄비가 눈을 크게 떴다⁠.

“⁠여기는 도토리 나무가 없는데요⁠.⁠”

“⁠다람쥐가 묻었어요⁠. 어치도요⁠. 가을에 물어다가 여기저기 묻어 둬요⁠. 저도 처음 산에 왔을 때 다람쥐 도토리를 먹었어요⁠.⁠”

“⁠우리는 도토리 나무 밑만 팠어요⁠. 어미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도토리는 나무 밑에 있다고⁠.⁠”

“⁠저는 산에서 배운 게 없어서요⁠.⁠”

두름은 다음 자리로 갔다⁠. 또 두 알⁠. 그다음은 밤 한 톨⁠. 그다음은 바위 밑에 잣이 한 줌⁠. 봄비가 따라오며 받아먹다가 멈췄다⁠.

“⁠새끼들 데려올게요⁠.⁠”

*

새끼 넷이 비탈에 엎드려 도토리를 씹었다⁠. 다리 다친 새끼도 씹었다⁠. 처음에는 한 알을 오래 물고 있다가⁠, 두 알째부터 빨리 씹었다⁠. 오도독 소리가 비탈에 퍼졌다⁠. 봄비는 새끼들 뒤에서 엎드려 숨을 길게 내쉬었다⁠. 두름은 오도독 소리를 들으며 엿새 만에 처음으로 빚을 세지 않았다⁠. 배가 불러 오는 것은 새끼들인데 두름 배가 따뜻했다⁠.

나뭇가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터졌다⁠.

“⁠우리 거야⁠!⁠”

다람쥐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나뭇가지마다 다람쥐가 꼬리를 세우고 있었다⁠. 어치 몇 마리가 머리 위를 돌며 꽥꽥거렸다⁠.

“⁠도둑 돼지⁠! 도둑 멧돼지⁠!⁠”

“⁠잊은 거 아니야⁠! 아껴 둔 거야⁠!⁠”

“⁠봄에 꺼내 먹으려고 묻은 거야⁠!⁠”

두름은 고개를 들었다⁠. 첫날 도토리 세 알을 먹었을 때 소리친 다람쥐도 있었다⁠. 꼬리 끝이 하얀 놈이었다⁠.

“⁠또 너냐⁠! 이번엔 몇 알이야⁠!⁠”

“⁠죄송합니다⁠. 봄에 갚을게요⁠.⁠”

“⁠돼지가 뭘 갚아⁠!⁠”

어치 한 마리가 내려와 두름 머리를 쪼았다⁠. 두름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쪼이며 생각했다⁠. 다람쥐 말이 맞았다⁠. 아껴 둔 것이었다⁠. 그런데 다람쥐들은 묻은 자리를 다 기억하지 못했다⁠. 두름 코에 다 맡아지는 자리를 다람쥐들은 지나쳐 다녔다⁠. 봄이 되면 남은 도토리는 싹이 텄다⁠.

“⁠반만 먹을게요⁠.⁠”

두름이 말했다⁠. 다람쥐들이 조용해졌다⁠.

“⁠한 자리에서 반만 먹고 반은 두고요⁠. 그리고 다람쥐님들이 잊은 자리를 제가 알려 드릴게요⁠. 제 코로요⁠. 봄에 그거 다 찾아 드시면 되잖아요⁠.⁠”

다람쥐들이 서로 마주 보았다⁠. 꼬리 끝이 하얀 다람쥐가 앞발로 수염을 쓸었다⁠.

“⁠잊은 자리를 알려 준다고⁠?⁠”

“⁠네⁠.⁠”

“⁠잊은 게 아니라 아껴 둔 거라니까⁠.⁠”

“⁠아껴 둔 자리를 알려 드릴게요⁠.⁠”

다람쥐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한참 쑥덕거렸다⁠. 어치들은 계속 꽥꽥거렸다⁠. 이윽고 하얀 꼬리 다람쥐가 말했다⁠.

“⁠반이다⁠. 반 넘으면 머리를 쪼아 버린다⁠.⁠”

어치 한 마리가 다짐하듯 두름 머리를 한 번 더 쪼았다⁠.

*

비탈 위에서 콧김 소리가 내려왔다⁠. 구릉이었다⁠. 무리를 데리고 딸을 찾으러 내려온 길이었다⁠. 구릉은 새끼들이 도토리를 씹는 것을 보고⁠, 봄비를 보고⁠, 두름을 보았다⁠.

“⁠내 딸이 집돼지 꽁무니를 쫓냐⁠?⁠”

봄비가 일어나 새끼들 앞을 막았다⁠.

“⁠새끼들이 먹었어요⁠. 사흘 만에요⁠.⁠”

“⁠다람쥐 묻은 거 반씩 먹어서 몇 끼냐⁠? 눈 녹으면 끝이다⁠. 눈이 녹으면 다람쥐가 먼저 다 파 먹는다⁠.⁠”

구릉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두름이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 몰이를 해요⁠. 사냥꾼 둘에 개 넷이요⁠. 개가 그랬어요⁠. 새끼 냄새를 맡았대요⁠. 다리 저는 새끼까지요⁠.⁠”

무리가 웅성거렸다⁠. 구릉의 귀가 뒤로 젖혀졌다⁠.

“⁠그러니 금줄을 걷어야 한다⁠. 사냥꾼은 마을 안에서는 총을 안 쏜다⁠. 개도 마을 밭에서는 안 푼다⁠. 산에 있으면 죽고 마을에 있으면 산다⁠.⁠”

두름은 대답하지 못했다⁠. 구릉 말이 또 맞았다⁠. 엽사는 마을에서는 총을 메고만 다녔다⁠. 마을 밭은 사람 땅이었다⁠.

구릉이 봄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자⁠. 새끼들 데리고 바위굴로 가⁠. 내일 아침엔 굴 깊이 들어가 있어라⁠.⁠”

봄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새끼들이 봄비 다리 사이에서 어미와 할미를 번갈아 올려다보았다⁠. 다리 다친 새끼가 도토리 반 알을 입에 문 채였다⁠.

“⁠어미는 시험을 이겼어요⁠. 둘째 판이요⁠. 어미가 물을 파는 동안 내 새끼는 쇠줄에 감겨 있었어요⁠. 어미는 오지 않았어요⁠.⁠”

구릉이 숨을 멈췄다⁠. 콧김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두름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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