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33자)

막걸리 한 사발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아침 여물통에서 김이 올라왔다⁠. 쌀겨에 고구마 껍질⁠, 어젯밤 남은 팥죽 한 국자⁠. 두름은 여물통 앞에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가 여물통을 두름 코앞으로 밀었다⁠. 두름은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할머니가 다시 밀었다⁠. 두름은 엉덩이를 돌렸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할머니가 부엌으로 뛰어갔다가 감자전 한 장을 들고 왔다⁠. 두름은 감자전을 보지 않았다⁠. 할머니가 처마에서 곶감 하나를 빼 왔다⁠. 두름은 곶감 냄새를 맡고도 눈을 감았다⁠. 닭들이 횃대에서 일제히 목을 뺐다⁠.

“⁠곶감도 안 먹어⁠.⁠”

“⁠세상 끝났다⁠.⁠”

“⁠돼지가 밥을 안 먹으면 뭐가 되는 거야⁠?⁠”

“⁠닭이 되는 거지⁠.⁠”

할머니가 연지를 불렀다⁠. 연지가 칫솔을 문 채 나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돼지가 밥을 안 먹어요⁠, 검색했어⁠. 스트레스⁠, 환경 변화⁠, 외로움⁠, 이빨 아픔⁠…⁠…⁠. 외로움이래⁠, 할머니⁠.⁠”

“⁠외롭긴 뭐가 외로워⁠. 닭이 몇인데⁠?⁠”

“⁠닭은 친구 아니래⁠.⁠”

닭들이 일제히 연지를 노려보았다⁠. 닭들이 노려보는 동안 옆 칸 염소가 판자 사이로 목을 넣어 여물통의 고구마 껍질을 다 먹었다⁠. 감자전도 먹었다⁠. 곶감은 할머니가 얼른 집어 들었다⁠.

할아버지가 헛간 앞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름은 할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할아버지 몸에서 쇠 냄새가 났다⁠. 어제까지는 짚 냄새 밑에 깔려 있던 냄새였다⁠. 오늘은 짚 냄새보다 앞에 있었다⁠.

*

한낮에 할아버지가 마당 끝에서 장작을 팼다⁠. 도끼가 나무를 쪼갤 때마다 마른 소나무 진 냄새가 튀었다⁠. 할머니는 회관에 전 부치러 갔고 연지는 할머니를 따라갔다⁠. 마당에 할아버지와 두름만 남았다⁠.

두름은 거름 더미 밑 구멍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장작 패는 소리에 귀가 막혀 몰랐다⁠. 두름은 감자밭을 가로질러 밭둑 끝 감자 움으로 갔다⁠. 녹슨 쇠줄이 어젯밤 그대로 언 흙에 반쯤 묻혀 있었다⁠. 말뚝 하나가 쇠줄 끝을 붙들고 있었다⁠.

두름은 말뚝 둘레를 팠다⁠. 공사판 울타리 밑에서 해 본 일이었다⁠. 이번에는 코끝이 덜 아팠다⁠. 아니⁠, 더 아팠는데 덜 느꼈다⁠. 말뚝이 기울자 어깨로 밀었다⁠. 말뚝이 뽑혔다⁠. 두름은 쇠줄 한쪽을 입에 물었다⁠. 녹 맛과 피 맛과 젖 냄새가 한꺼번에 입안에 찼다⁠. 두름은 쇠줄을 문 채 감자밭을 가로질렀다⁠. 쇠줄이 언 이랑 위를 끌리며 덜그럭거렸다⁠.

할아버지가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을 때 두름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도끼가 공중에서 멈췄다⁠.

두름은 할아버지 발 앞에 쇠줄을 내려놓았다⁠. 말뚝이 장화 코에 툭 부딪쳤다⁠.

할아버지는 도끼를 내리지 않았다⁠. 내릴 데를 잊은 사람처럼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눈이 쇠줄을 보고⁠, 두름을 보고⁠, 다시 쇠줄을 보았다⁠. 두름은 피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눈을 맞췄다⁠. 돼지가 사람 눈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은 없었다⁠.

“⁠니가⁠…⁠…⁠.⁠”

할아버지가 도끼를 장작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도끼 자루가 장작에서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니가 이걸 왜⁠?⁠”

마당 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빈 기름병을 들고 들어왔다⁠. 회관에서 들기름이 모자라 가지러 온 것이었다⁠.

“⁠아이고⁠, 이놈이 또 밖에 나왔네⁠. 영감⁠, 뭐 하노⁠?⁠”

할아버지가 장화로 쇠줄을 장작더미 밑으로 밀어 넣었다⁠. 빨랐다⁠. 할머니는 쇠줄을 보지 못했다⁠.

“⁠우리 손본다⁠.⁠”

할아버지는 두름 목에 새끼줄을 감아 우리로 데려갔다⁠. 거름 더미 밑 구멍을 찾아냈다⁠. 할아버지는 구멍을 오래 들여다보더니 돌을 주워 와 메웠다⁠. 하나 넣고 밟고⁠, 또 하나 넣고 밟았다⁠. 이번에는 혼잣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상에서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부엌 창 너머 우리를 보고⁠, 상 앞의 할아버지를 보았다⁠.

“⁠둘 다 왜 이러노⁠? 영감도 밥을 안 먹고 돼지도 밥을 안 먹고⁠.⁠”

연지가 할아버지 국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주었다⁠.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도로 뺐다⁠.

“⁠할아버지⁠, 오늘 회관에서 소장님이 그러는데⁠.⁠”

연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부엌 창이 반쯤 열려 있어 두름에게 다 들렸다⁠.

“⁠금요일 밤에 두름을 이장님네 헛간에 갖다 놓으래⁠. 토요일 새벽부터 솥에 불 때야 한대⁠. 아침에 데려가면 늦는대⁠.⁠”

“⁠토요일 아침이라 했다⁠.⁠”

“⁠소장님이 금요일 밤이래⁠. 이장님도 그러자 했대⁠.⁠”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앞에 김치 접시를 밀어 놓았다⁠. 할아버지는 김치도 먹지 않았다⁠. 두름은 창 밑에서 날을 꼽았다⁠. 금요일은 사흘 뒤가 아니라 이틀 뒤였다⁠. 이틀 뒤 밤이 세 번째 판이 시작되는 밤이었다⁠.

*

밤이 깊어 우리 판자 문이 열렸다⁠. 막걸리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막걸리 한 병과 사발 하나를 들고 들어와⁠, 엎어 놓은 양동이 위에 앉았다⁠. 손전등은 판자 위에 올려놓았다⁠. 불빛이 짚더미를 비췄다⁠.

할아버지는 사발에 막걸리를 따랐다⁠. 한 모금 마시고 한참 있다가 또 한 모금 마셨다⁠. 두름은 짚 위에 엎드려 할아버지를 보았다⁠.

“⁠니가 알아들을 리는 없고⁠.⁠”

할아버지가 사발을 내려놓았다⁠.

“⁠두 해 전 봄이었다⁠. 연지가 고삼이었다⁠. 학원비가 모자랐다⁠. 움에 감자가 있었는데⁠, 멧돼지가 한 번 다녀간 뒤였다⁠. 남은 감자라도 지켜야 학원비가 나왔다⁠. 아버지가 광산촌에서 쓰던 쇠줄이 헛간에 있었다⁠. 그걸 움 옆에 놨다⁠.⁠”

할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손바닥이 거칠어서 바지에서 사각 소리가 났다⁠.

“⁠밤새 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안 나갔다⁠. 날이 밝아서 나갔다⁠. 암컷이 쇠줄에 감겨 죽어 있었다⁠. 배 밑에 새끼들이 있었다⁠. 하나만 살아서 울더라⁠. 눈이 덜 녹아서 새끼가 눈 위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막걸리 사발 위에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한참 앉아 있었다⁠. 내가 잡은 거라⁠, 내가 키워야 했다⁠. 두릅 바구니에 담아 왔다⁠. 할멈한테는 정선 장에서 샀다 했다⁠. 할멈은 그런 거 알면 운다⁠. 연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사발을 비웠다⁠. 다시 따랐다⁠.

“⁠너 키운 건 내 빚 갚은 거다⁠. 너 파는 건 연지 빚 갚는 거고⁠. 나는 그것밖에 모른다⁠. 빚은 갚으면 끝나는 줄 알았다⁠. 막장에서 서른 해를 캐도 갚을 빚은 안 줄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알았다⁠.⁠”

할아버지가 손을 뻗어 두름의 귀 뒤를 긁었다⁠. 두름은 버티려고 했다⁠. 다리가 먼저 풀렸다⁠. 두름은 짚 위에 옆으로 털썩 쓰러져 배를 내놓았다⁠. 할아버지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웃었다⁠.

“⁠이놈은 이것만 하면 넘어가네⁠.⁠”

할아버지는 막걸리를 반 사발 남기고 일어났다⁠. 남은 반 사발을 여물통에 부었다⁠. 두름은 막걸리 냄새를 맡았다⁠. 시큼하고 달았다⁠. 먹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판자 문을 닫고 나갔다⁠. 장화 소리가 방으로 사라졌다⁠.

두름은 짚 위에 누운 채 빚을 따져 보았다⁠. 할아버지는 두름에게 빚을 졌다⁠. 두름의 어미를 죽였으니까⁠. 두름은 할아버지에게 빚을 졌다⁠. 두름을 살려 키웠으니까⁠. 갚을 사람과 받을 사람이 한 사람이었다⁠. 두름은 빚이 엉켜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셀 수 없었다⁠.

*

자정 무렵 산에서 봄비의 소리가 내려왔다⁠. 짧고 높게 세 번⁠. 부르는 소리였다⁠.

두름은 판자 구석구석에 코를 대 보았다⁠. 할아버지는 구멍 두 개를 다 메웠고⁠, 판자 밑마다 돌을 박아 두었다⁠. 남은 데는 염소 칸과 붙은 판자뿐이었다⁠. 두름은 염소 칸 판자를 머리로 밀었다⁠. 판자가 휘었다⁠.

“⁠뭐 해⁠?⁠”

염소가 물었다⁠.

“⁠나가야 돼요⁠.⁠”

“⁠나도 나가도 돼⁠?⁠”

“⁠안 돼요⁠.⁠”

“⁠그럼 판자 먹어도 돼⁠?⁠”

“⁠먹어 주세요⁠.⁠”

염소가 판자 끝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염소는 원래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가리지 않았다⁠. 판자 한 귀퉁이가 금세 사라졌다⁠. 두름은 염소 칸으로 넘어가 염소 칸 문 밑을 파고 나갔다⁠. 염소가 뒤에서 말했다⁠.

“⁠다음에 종이 있으면 나 줘⁠.⁠”

*

봄비는 능선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들이 없었다⁠.

“⁠어미가 함바에 갔어요⁠. 고개 너머 무리랑 같이요⁠. 다들 배고파서 못 참았어요⁠. 음식물 통에 고기 냄새가 난대요⁠.⁠”

“⁠사람들이 사냥꾼을 불렀어요⁠. 오늘 왔을 거예요⁠.⁠”

“⁠사냥꾼이 뭐예요⁠?⁠”

두름은 대답하지 않고 능선을 넘었다⁠. 공사판은 밤에도 밝았다⁠. 컨테이너 지붕 위에 커다란 등이 켜져 있었다⁠. 함바 식당 뒤편에 파란 음식물 통이 늘어서 있었고⁠, 통 사이에서 검은 덩어리들이 움직였다⁠. 구릉의 무리와 외눈 수컷의 무리였다⁠. 통이 엎어지는 소리⁠, 플라스틱 뚜껑이 굴러가는 소리⁠, 새끼들이 쩝쩝거리는 소리⁠.

두름은 개 냄새를 맡았다⁠. 처음 맡는 개였다⁠. 넷이었다⁠. 개 냄새 옆에 화약과 기름 먹인 쇠 냄새가 있었다⁠. 바람 아래⁠, 컨테이너 뒤였다⁠. 무리는 바람을 등지고 있어서 맡지 못했다⁠.

“⁠도망가요⁠!⁠”

두름이 소리쳤다⁠. 같은 순간 컨테이너 뒤에서 하얀 불빛이 터졌다⁠. 개 넷이 한꺼번에 짖으며 뛰어나왔다⁠. 멧돼지들이 흩어졌다⁠. 통이 굴렀다⁠. 총소리가 났다⁠.

외눈 수컷이 함바 뒷문 앞에서 앞무릎을 꿇었다⁠. 일어나려다 옆으로 쓰러졌다⁠. 눈밭에 검은 얼룩이 번졌다⁠. 수컷은 한 번 숨을 길게 내쉬고 더 쉬지 않았다⁠.

개들이 수컷 둘레를 돌며 짖었다⁠. 사람 둘이 불빛 속으로 걸어 나왔다⁠. 주황색 조끼를 입고 총을 메고 있었다⁠. 하나가 무전기를 입에 댔다⁠.

“⁠한 마리 잡았습니다⁠. 큰 놈입니다⁠. 나머지는 능선 쪽으로 튀었고요⁠.⁠”

무전기에서 현장소장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모레 안전기원제 끝나고 바로 큰 발파 들어갑니다⁠. 고개 하나를 통째로 뚫는 겁니다⁠. 그 전에 산 좀 정리해 주세요⁠.⁠”

*

두름은 함바 뒤 쓰레기 더미 그늘에 엎드려 있었다⁠. 사람들이 수컷의 뒷다리를 묶어 화물차 쪽으로 끌고 갔다⁠. 개들이 따라갔다⁠. 눈밭에 수컷이 끌려간 자국이 길게 남았다⁠. 피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오래 떠돌았다⁠.

쓰레기 더미 반대편에서 구릉이 나왔다⁠. 구릉의 옆구리 털이 한 줌 뜯겨 있었다⁠. 개 이빨 자국이었다⁠. 구릉은 끌린 자국을 따라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콧김이 한 번 길게 나왔다⁠.

“⁠봐라⁠. 사람이 이렇다⁠.⁠”

“⁠구릉⁠…⁠…⁠.⁠”

“⁠네 영감도 이렇다⁠. 쇠줄을 놓고⁠, 밤새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아서 나온다⁠.⁠”

두름은 할아버지 사발의 막걸리 냄새를 떠올렸다⁠. 할아버지는 날이 밝아서 나왔다고 했다⁠. 구릉의 말과 똑같았다⁠.

“⁠셋째 판에서 져라⁠. 그리고 무리로 와라⁠. 너는 우리 핏줄이다⁠. 솥에 들어가지 말고 산으로 와라⁠. 네 어미가 못 간 데로⁠.⁠”

구릉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덧붙였다⁠.

“⁠사람이 무슨 말을 했냐⁠? 저 쇳덩이에서 나온 소리⁠.⁠”

두름은 무전기 말을 옮겼다⁠. 잔칫날 안전기원제가 끝나면 큰 발파를 한다고⁠. 고개 하나를 통째로 뚫는다고⁠. 발파 전에 산을 정리해 달라고⁠.

구릉이 고개를 들어 고개 너머를 보았다⁠. 고개 너머 골짜기에 짐승 냄새가 아직 가득했다⁠. 넘어오지 못한 짐승들⁠, 넘어올 짐승들이었다⁠.

“⁠그날 고개 너머가 다 이리로 넘어온다⁠.⁠”

“⁠네⁠.⁠”

“⁠그러면 금줄을 더 걷어야지⁠.⁠”

구릉의 목소리에 화가 없었다⁠. 따질 것을 다 따진 목소리였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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