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4자)

빨간 실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할머니는 뿌리를 마루 한가운데 소반 위에 올려놓았다⁠. 소반 밑에 새 행주를 깔았다⁠. 연지가 휴대전화를 들고 뿌리 사진을 이리저리 찍었다⁠. 닭들이 마당에 쏟아진 팥을 쪼아 먹었다⁠. 아무도 닭을 쫓지 않았다⁠.

“⁠할머니⁠, 이거 진짜 산삼이면 몇백만 원이래⁠.⁠”

“⁠그래서 심봤다 했잖나⁠.⁠”

“⁠근데 감정을 받아야 된대⁠. 여기 보니까⁠…⁠…⁠.⁠”

연지가 화면을 내려 읽다가 멈췄다⁠. 손가락이 빨간 실 사진 위에 머물렀다⁠.

“⁠줄기에 실이나 끈이 묶여 있으면 사람이 심어 기른 것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값은 크게 떨어집니다⁠.⁠”

연지가 소리 내어 읽고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못 들은 척 뿌리 위에 행주를 한 겹 더 덮었다⁠. 찬바람이 들면 약효가 날아간다고 했다⁠. 두름은 판자에 코를 박고 다시 계산했다⁠. 오백만 원이 크게 떨어지면 얼마인지 몰랐다⁠. 크게라는 말이 얼마만큼인지 사람들은 늘 말해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회관에서 돌아왔다⁠. 장화를 벗다가 소반 위를 보고 장화 한 짝을 든 채 마루로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뿌리를 들지 않고 코를 가까이 대 보았다⁠. 그러고는 빨간 실을 손톱으로 건드렸다⁠.

“⁠이건 산삼 아니다⁠.⁠”

“⁠산신령님이 주신 거라니까⁠.⁠”

“⁠장뇌다⁠. 누가 산에 씨를 뿌려 키운 거다⁠. 실 묶은 거 봐라⁠. 캘 때 찾으려고 표시한 거다⁠.⁠”

“⁠산신령님이 표시하셨겠지⁠.⁠”

“⁠산신령이 실을 묶나⁠.⁠”

할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연지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웃음을 참는 어깨였다⁠. 두름은 우리 안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텔레비전 속 남자는 빨간 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마당 문이 덜컹 열렸다⁠. 박하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이장이 굵은 밧줄 한 타래를 어깨에 메고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형님⁠, 잔치 순서지 나왔어요⁠.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 쓸 줄이요⁠. 돼지 끌고 갈 때⁠…⁠…⁠.⁠”

이장의 말이 멈췄다⁠. 이장의 눈이 소반 위 뿌리에 박혔다⁠. 박하 냄새가 확 진해졌다⁠. 이장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형님⁠, 이거 어디서 났어요⁠?⁠”

“⁠부엌문 앞에 있더란다⁠.⁠”

이장이 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아 뿌리를 들여다보았다⁠. 빨간 실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실이 두 번 감기고 끝이 고리처럼 말려 있었다⁠.

“⁠이 매듭⁠…⁠…⁠.⁠”

“⁠아는 매듭이냐⁠?⁠”

“⁠아니⁠, 그게⁠, 내가 묶는 매듭이랑 비슷해서요⁠.⁠”

할아버지가 이장을 오래 보았다⁠. 이장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동짓날 저녁이었다⁠.

“⁠능선 너머 국유림에 니가 뭘 심었다는 소리가 있더라⁠. 십 년 전부터⁠.⁠”

“⁠형님⁠, 그건 소문이에요⁠.⁠”

“⁠소문이면 이건 니 거 아니네⁠.⁠”

“⁠아니⁠, 내 거는 맞는데⁠…⁠…⁠.⁠”

이장이 입을 막았다⁠. 늦었다⁠. 연지가 휴대전화를 얼굴 앞에 들어 올렸다⁠. 화면 뒤에서 어깨가 아까보다 크게 떨렸다⁠. 할머니가 이장 앞에 팥죽 그릇을 놓았다⁠. 아직 끓이지도 않은 팥죽이 어디서 나왔는지 두름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든 먹여서 풀었다⁠.

할아버지가 일어나 부엌에서 묵은 신문지를 한 장 가져왔다⁠. 뿌리를 신문지에 말았다⁠. 말린 뿌리를 이장 점퍼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가져가라⁠. 남의 거 안 먹는다⁠.⁠”

“⁠형님⁠, 내 거라고 하면 내가 국유림에다⁠…⁠…⁠.⁠”

“⁠그러니까 조용히 가져가라⁠.⁠”

이장은 주머니를 손으로 덮고 한참 앉아 있었다⁠. 두름은 우리 판자에 코를 대고 이장을 보았다⁠. 오백만 원이 이장 주머니로 들어갔다⁠. 원래 이장 것이었다⁠. 두름이 갚았다고 생각한 것은 남의 것이었다⁠. 갚은 것이 하나 줄었다⁠. 빚이 하나 늘었다⁠. 이장에게 진 빚이었다⁠.

이장이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망신을 덮는 데는 큰 목소리가 좋았다⁠.

“⁠형님⁠, 내가 오늘 거기 올라가 봤는데요⁠. 멧돼지 놈들이 장뇌밭을 다 뒤집어 놨더라고⁠. 성한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니 이거 하나 굴러 내려왔겠지⁠. 안 되겠어요⁠. 내일 아침에 바로 군청에 전화해서 엽사 부릅니다⁠. 개 데리고 몰이 한다고 했어요⁠. 형님네 돼지 절대 우리 밖에 못 나오게 해요⁠. 멧돼지랑 섞여서 열병이라도 옮으면 동네 돼지 다 묻어야 돼요⁠.⁠”

이장은 밧줄 타래를 마루 끝에 내려놓고 나갔다⁠. 마당 문이 닫히고 나서 연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연지는 마루에 엎어져서 발을 굴렀다⁠. 할머니가 연지 등을 철썩 때리면서 같이 웃었다⁠. 할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마루 끝 밧줄 타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 밧줄에서 공장 냄새가 났다⁠.

두름은 웃지 못했다⁠. 구릉의 무리가 장뇌밭을 판 것은 사실이었다⁠. 배가 고파서 판 것이었다⁠. 두름이 뿌리를 물어 오지 않았으면 이장은 장뇌밭에 올라가 보지 않았을 것이고⁠, 엽사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두름이 갚으려고 한 일이 개와 총을 산으로 불러들였다⁠. 빚이 또 늘었다⁠. 이번에는 구릉에게였다⁠.

*

연지가 웃음을 그치고 배낭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할아버지⁠. 나 대출 신청서 뽑아 놨어⁠. 학교 앞 문구점에서 뽑았어⁠. 여기 보호자 동의 칸만 있으면 돼⁠.⁠”

할아버지가 종이를 받았다⁠. 읽지도 않고 마당으로 내려가 우리 판자 위에 올려놓았다⁠. 연지가 따라 내려왔다⁠.

“⁠거기다 놓으면 어떡해⁠.⁠”

옆 칸 염소가 목을 쭉 뺐다⁠. 종이 한 장이 염소 입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장이 따라 들어갔다⁠. 연지가 소리를 질렀다⁠. 염소는 끝까지 씹어 삼키고 트림을 했다⁠.

“⁠할아버지⁠!⁠”

“⁠나는 판자 위에 놨다⁠.⁠”

할아버지는 헛간으로 들어갔다⁠. 연지가 염소를 노려보았다⁠. 염소는 다음 종이가 있나 연지 손을 살폈다⁠.

“⁠다시 뽑을 거야⁠. 열 장 뽑을 거야⁠.⁠”

연지가 헛간 문에 대고 소리쳤다⁠. 헛간 안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돌아왔다⁠.

“⁠염소가 열 장 먹는다⁠.⁠”

“⁠그럼 스무 장 뽑아⁠!⁠”

“⁠스무 장도 먹는다⁠.⁠”

연지는 발을 쿵쿵 구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염소가 판자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두름에게 물었다⁠.

“⁠스무 장이면 배부를까⁠?⁠”

“⁠종이는 배 안 불러요⁠.⁠”

“⁠너는 안 먹어 봐서 몰라⁠.⁠”

밤이 깊기 전에 마을 방송이 켜졌다⁠. 이번에는 박하사탕 깨무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아⁠, 아⁠. 이장입니다⁠. 알려 드립니다⁠. 요새 멧돼지가 능선 너머 산에다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군청 유해조수 구제단 엽사분들이 개를 데리고 오셔서 몰이를 합니다⁠. 산에 나무하러 가시는 분들은 당분간 삼가시고⁠, 집에 키우는 개는 꼭 묶어 두세요⁠. 엽사 개랑 싸움 납니다⁠. 아⁠, 그리고 국유림에는 아무것도 심으시면 안 됩니다⁠. 이상⁠, 이장이었습니다⁠.⁠”

닭들이 횃대에서 마지막 문장을 세 번씩 따라 했다⁠. 국유림에는 아무것도 심으시면 안 됩니다⁠. 두름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몰이라는 말이 귀에 남았다⁠. 구릉의 무리는 사람 방송을 못 알아들었다⁠. 내일 아침 개가 짖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었다⁠.

*

해가 지고 할머니가 팥죽을 쑤었다⁠. 새알심이 동동 떴다⁠. 할머니는 한 그릇을 우리 앞 여물통에 부어 주었다⁠. 두름은 뜨거운 팥죽을 핥았다⁠. 달고 붉고 찹쌀 냄새가 났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가 이상한 일을 했다⁠. 팥죽 한 그릇을 보자기에 싸고⁠, 헛간에서 감자 한 자루를 끌어냈다⁠. 감자 자루를 등에 지고 뒷문으로 나갔다⁠. 손전등도 들지 않았다⁠. 산 쪽으로 가는 발소리였다⁠.

두름은 판자에 코를 대고 할머니 냄새를 따라갔다⁠. 감자와 팥죽과 할머니 냄새가 밭둑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더니 한참 동안 멀어졌다⁠. 반 시간쯤 뒤에 할머니 냄새가 돌아왔다⁠. 감자 냄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 몸에 북어와 묵은 나무 냄새가 묻어 있었다⁠. 산신각 냄새였다⁠. 첫 판 날 산신각 마루에서 맡은 빈 감자 자루가 떠올랐다⁠. 자루 입구에 묻어 있던 행주와 파스 냄새⁠.

할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했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두름이 젖병을 물던 봄에 아궁이 앞에서 부르던 노래였다⁠. 정선 아리랑 한 대목을 끝까지 부르지 않고 같은 데서 자꾸 되돌아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나간 것을 몰랐다⁠. 헛간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

헛간 안에서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상자를 뒤지는 소리였다⁠. 할아버지가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한 손에 녹슨 쇠줄 뭉치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쇠줄 냄새가 판자 사이로 흘러들었다⁠.

두름은 숨을 멈췄다⁠. 녹이었다⁠. 오래 젖었다 마른 녹⁠. 녹 밑에 묵은 피⁠. 피 밑에⁠, 아주 밑바닥에 한 가닥⁠. 젖이었다⁠. 할머니 젖병의 우유가 아니었다⁠. 더 진하고 더 비리고 더 따뜻한 냄새였다⁠. 두름은 이 냄새를 처음 맡았다⁠. 처음 맡는데 알았다⁠. 코가 먼저 알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할아버지는 감자밭을 가로질러 밭둑 끝으로 갔다⁠. 밭둑 끝에 감자 움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가을에 감자를 묻어 둔 구덩이였다⁠. 할아버지는 움 옆에 쪼그려 앉아 한참 무언가를 했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쇠줄이 언 땅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일어나 손을 털고 돌아왔다⁠. 우리 앞을 지나며 혼잣말을 했다⁠.

“⁠멧돼지 놈들 움에 손대기만 해 봐라⁠.⁠”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고 불이 꺼졌다⁠.

*

밭둑 너머에서 콧김 소리가 났다⁠. 두름은 거름 더미 밑으로 나갔다⁠. 다리가 아직 떨렸다⁠.

구릉이 금줄 바로 너머에 와 있었다⁠. 혼자였다⁠. 구릉은 밭둑 끝⁠, 감자 움 옆을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쇠줄을 놓은 자리였다⁠. 구릉의 등 갈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일어나 있었다⁠. 금줄의 매운 냄새 앞에서도 구릉은 물러나지 않았다⁠.

“⁠저 쇠줄을 안다⁠.⁠”

구릉의 목소리가 낮았다⁠. 첫날 바위 앞에서 맹세하던 목소리와 달랐다⁠.

“⁠두 해 전 봄이었다⁠. 늦은 눈이 왔다⁠. 저 움에서 감자 냄새가 났다⁠. 금줄이 아직 얇을 때였다⁠. 늙은 개가 그해 겨울 앓아누워서 오줌을 못 누고 다녔다⁠. 내 동생이 새끼를 배고 배가 고팠다⁠. 금줄을 넘었다⁠. 저 자리에서 쇠줄에 목이 감겼다⁠.⁠”

두름은 움 옆을 보았다⁠. 어둠 속에 녹슨 쇠줄이 언 흙에 반쯤 묻혀 있었다⁠.

“⁠동생이 밤새 울었다⁠. 새벽에 새끼를 낳았다⁠. 쇠줄에 감긴 채로⁠. 해 뜰 녘에 등불이 왔다⁠. 저 영감이었다⁠. 영감이 동생 곁에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새끼 하나를 바구니에 담아 갔다⁠. 나머지 새끼들은 살지 못했다⁠.⁠”

두름은 바구니를 알았다⁠. 두릅 바구니였다⁠.

“⁠왜 데려가게 두셨어요⁠?⁠”

“⁠등불 앞에서 무리는 달아난다⁠. 사람이 오면 달아나야 산다⁠.⁠”

구릉은 말을 짧게 끊었다⁠. 콧김이 흔들렸다⁠.

“⁠그래서 묻는다⁠. 그래도 그 영감한테 빚을 갚겠냐⁠? 잔칫상에 올라서⁠?⁠”

두름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손의 짚과 쇠 냄새가 떠올랐다⁠. 해마다 새로 깔아 주던 짚의 햇볕 냄새도 떠올랐다⁠. 쇠 냄새가 어디서 왔는지 이제 알았다⁠.

“⁠첫날 바위 앞에서 네 냄새를 맡았다⁠. 비누 냄새 밑에 동생 냄새가 났다⁠. 너는 집돼지가 아니다⁠. 내 동생 새끼다⁠. 너는 멧돼지다⁠.⁠”

두름은 금줄을 넘지 않았다⁠. 감자 움 옆으로 걸어갔다⁠. 녹슨 쇠줄 앞에 엎드렸다⁠. 코를 쇠줄에 댔다⁠. 녹이 코끝의 상처를 따끔하게 찔렀다⁠. 두름은 피하지 않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젖 냄새가 났다⁠. 진하고 비리고 따뜻한 냄새였다⁠. 두 해 동안 언 흙 속에서 한 가닥도 빠져나가지 않은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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