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15자)

더덕 삼만 원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더덕은 바위 밑 언 흙 속에 몸을 비틀고 숨어 있었다⁠. 두름은 냄새를 따라 코를 밀어 넣었다⁠. 쌉싸름한 냄새가 코 안쪽을 긁었다⁠. 흙을 한 겹 걷어 낼 때마다 냄새가 진해졌고⁠, 네 겹째에 하얀 뿌리 껍질이 보였다⁠. 껍질에 코끝이 스치자 끈적한 진이 묻어났다⁠. 할머니가 봄마다 나물 바구니에 담아 오던 냄새였다⁠.

두름은 뿌리 둘레를 동그랗게 팠다⁠. 한 번에 뽑으면 끊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더덕을 캐다 끊어 먹고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뿌리가 끝까지 드러나자 두름은 밑동을 이빨로 살살 물고 뒤로 당겼다⁠. 흙 속에서 뿌리가 쑥 빠져나왔다⁠. 손가락 셋을 붙여 놓은 굵기였다⁠.

두름은 세 뿌리를 캤다⁠. 입에 물고 내려오다가 실수로 한 뿌리 끝을 씹었다⁠. 입안이 쓴맛으로 가득 찼다⁠. 두름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침을 한참 흘렸다⁠. 봄비 말이 맞았다⁠. 이것을 먹는 짐승은 사람밖에 없었다⁠.

부엌문 앞 댓돌에 더덕 세 뿌리를 나란히 놓았다⁠. 굵은 것을 가운데에 두었다⁠. 할머니가 아침에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밟을 자리였다⁠. 두름은 거름 더미 밑으로 기어들어 우리로 돌아왔다⁠. 등에 거름이 또 얹혔다⁠. 갚은 것 하나⁠. 처음으로 갚은 편에 하나가 붙었다⁠.

*

아침에 부엌문이 열리자마자 할머니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아이고⁠, 이게 뭐노⁠?⁠”

연지가 부스스한 머리로 나왔다⁠. 할머니가 더덕 세 뿌리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있었다⁠.

“⁠더덕이네⁠. 누가 놓고 갔나 봐⁠.⁠”

“⁠이 동네에 남한테 더덕 주는 사람 없다⁠. 이건 산신령님이 주신 거다⁠.⁠”

할머니는 더덕을 이마에 한 번 댔다가 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두름은 우리 안에서 몸을 꼿꼿이 했다⁠. 산신령이 아니라 돼지가 주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말해 봐야 꿀꿀이었다⁠.

닭들이 횃대에서 서로 깃털을 쪼며 킥킥거렸다⁠.

“⁠산신령님이 주셨대⁠.⁠”

“⁠산신령은 곶감이나 빼 가지 더덕은 안 줘⁠.⁠”

“⁠돼지가 줬다고 해 봐⁠. 아무도 안 믿어⁠.⁠”

두름은 닭들을 노려보았다⁠. 닭들은 노려보는 돼지가 무섭지 않았다⁠. 돼지는 횃대에 못 올라왔다⁠.

열 시쯤 마을 어귀에 화물차가 멈췄다⁠. 화물칸에 「⁠터널 현장 식당⁠」이라고 쓴 플라스틱 통이 실려 있었다⁠. 운전석에서 몸집 큰 아주머니가 내렸다⁠. 함바 식당 아주머니였다⁠. 공사판 사람들 밥을 지으면서 마을 할머니들한테 김치와 감자를 사 갔다⁠. 아주머니 몸에서 돼지기름과 경유와 대파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더덕을 내밀었다⁠. 아주머니가 하나를 들어 냄새를 맡더니 눈이 커졌다⁠.

“⁠어머⁠, 산더덕이네⁠. 우리 소장님 술안주 하면 좋겠다⁠. 이거 삼만 원 드릴게요⁠.⁠”

“⁠아이고⁠, 산신령님이 주신 걸 돈 받고 팔아도 되나 모르겠네⁠.⁠”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은 벌써 만 원짜리 세 장을 받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차에 오르며 덧붙였다⁠.

“⁠어젯밤에 또 멧돼지가 왔어요⁠. 식당 뒤 음식물 통을 다 엎어 놨어⁠. 소장님이 군청에 사냥꾼 부른대요⁠.⁠”

화물차가 떠났다⁠. 두름은 계산을 했다⁠. 더덕 세 뿌리에 삼만 원이었다⁠. 이백만 원이면 더덕 이백 뿌리였다⁠. 이백까지 세어 본 적은 없었다⁠. 스물을 열 번 세면 될 터였다⁠. 스물을 몇 번 셌는지 자꾸 잊었다⁠.

*

오후에 할아버지가 우리 문을 열고 두름 목에 새끼줄을 감았다⁠.

“⁠가자⁠. 회관에서 무게 단다더라⁠.⁠”

두름은 우리 밖을 낮에 걸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가 줄을 당겼다⁠. 두름은 마당을 지나 고샅으로 나갔다⁠. 고샅은 좁고 눈이 반쯤 녹아 질척했다⁠. 담장 너머마다 냄새가 달랐다⁠. 장 달이는 집⁠, 소 키우는 집⁠, 연탄 때는 집⁠, 개가 넷인 집⁠. 개 넷이 한꺼번에 짖었다⁠. 할아버지가 줄을 툭 당겼다⁠.

“⁠짖는다고 서지 마라⁠.⁠”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공사 회사 사람들이 하얀 천막을 치고 있었다⁠. 천막 기둥마다 「⁠터널 공사 안전기원 마을 잔치⁠」라는 현수막이 매달렸다⁠. 회관 부엌 창문으로 할머니들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전 부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밀가루 반죽과 부추와 들기름 냄새가 마당을 덮었다⁠.

두름의 코가 회관 부엌을 향했다⁠. 몸이 코를 따라갔다⁠. 할아버지가 줄을 당겼다⁠. 두름은 끌려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끌려왔다⁠. 탄광에서 탄차를 밀던 팔이었는데도 할아버지는 장화 뒤꿈치로 마당에 두 줄 고랑을 내며 부엌 창 앞까지 끌려왔다⁠.

“⁠이놈아⁠!⁠”

부엌 창이 열리고 할머니들 얼굴이 줄줄이 내다보았다⁠.

“⁠아이고⁠, 저게 잔칫상 돼지네⁠.⁠”

“⁠잘도 컸다⁠. 상이 빛나겠다⁠.⁠”

“⁠전 하나 줘 봐라⁠, 얼마나 먹나 보자⁠.⁠”

창문 너머로 부추전 한 장이 날아왔다⁠. 두름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먹었다⁠. 할머니들이 손뼉을 쳤다⁠. 연지가 할머니들 틈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었다⁠. 할머니가 일손 보태라고 보낸 것이었다⁠. 연지는 손뼉을 치지 않았다⁠. 부침개 뒤집개를 쥔 손이 하얬다⁠.

회관 마당 구석에 소 무게 다는 쇠 저울이 있었다⁠. 이장이 저울 앞에서 박하사탕을 깨물고 있었고⁠, 현장소장이 안전모를 쓴 채 수첩을 펴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두름을 저울판에 올렸다⁠. 두름이 올라서자 저울판이 덜컹 내려앉았다⁠. 바늘이 한참 돌다가 멈췄다⁠.

“⁠백오십육⁠.⁠”

이장이 읽었다⁠. 현장소장이 수첩에 적었다⁠.

“⁠솥을 두 개는 걸어야겠네요⁠.⁠”

두름은 솥이 무엇인지 알았다⁠. 저울판 위에서 다리가 떨렸다⁠. 바늘이 따라 떨렸다⁠.

이장이 회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회관 방송 마이크가 켜지는 소리가 온 골짜기에 퍼졌다⁠.

“⁠아⁠, 아⁠. 이장입니다⁠. 잔칫상 돼지 무게가 나왔습니다⁠. 백오십육 킬로입니다⁠. 아주 실합니다⁠. 이상⁠, 이장이었습니다⁠.⁠”

산비탈 집집마다 개가 짖었다⁠. 닭장 쪽으로 흘러갔을 방송을 생각하자 두름은 귀가 뜨거워졌다⁠. 닭들이 이 숫자를 마을 끝까지 옮길 것이었다⁠. 이미 마을 끝까지 방송이 옮겼지만⁠.

이장이 다시 나와 할아버지 팔을 잡았다⁠.

“⁠형님⁠, 이놈 오늘부터 우리 헛간에 묶어 둡시다⁠. 우리 헛간은 바닥이 시멘트라 못 파요⁠. 형님네 우리는 판자라 구멍 숭숭 나잖아⁠. 도망가면 회사 돈 날아가요⁠.⁠”

할아버지가 이장 손을 팔에서 떼어 냈다⁠.

“⁠잔칫날 아침까지는 내 돼지다⁠.⁠”

“⁠형님⁠, 회사가 벌써 오십 냈어요⁠.⁠”

“⁠그러니 잔칫날 아침에 데려가라 했잖나⁠.⁠”

이장의 입에서 박하 냄새가 확 끼쳤다⁠. 할아버지 몸에서는 짚과 쇠 냄새가 굳었다⁠. 둘 사이에서 두름은 저울판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현장소장이 수첩을 덮었다⁠.

“⁠그건 두 분이 정하시고요⁠. 이장님⁠, 어젯밤에 식당 뒤에 멧돼지가 또 왔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밤에 밖에를 못 나가요⁠. 군청 유해조수 구제단 좀 불러 주세요⁠. 엽사분들 개 데리고 오시는 거요⁠.⁠”

“⁠아⁠, 그럼요⁠. 내일 바로 전화하지요⁠.⁠”

두름은 저울판에서 내려오면서 엽사라는 말을 코에 담았다⁠. 냄새는 아직 없었다⁠. 화약과 개 냄새일 것이었다⁠.

돌아가는 고샅에서 연지가 뒤쫓아 왔다⁠. 앞치마를 두른 채였고 손에 밀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연지는 말없이 할아버지 손에서 새끼줄을 받아 쥐었다⁠. 할아버지는 줄을 놓아주었다⁠. 셋은 한 줄로 고샅을 걸었다⁠. 연지⁠, 두름⁠, 할아버지⁠. 개 넷인 집 앞에서 개들이 또 짖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서지 않았다⁠.

“⁠솥 두 개래⁠.⁠”

연지가 앞을 보고 말했다⁠.

“⁠백오십육 킬로를 솥 두 개에 넣는대⁠. 소장님이 수첩에 적었어⁠.⁠”

“⁠듣기 싫다⁠.⁠”

“⁠할아버지가 들어야지⁠. 할아버지가 약조했잖아⁠.⁠”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걸음을 늦췄다⁠. 두름 엉덩이 바로 뒤에서 할아버지 장화 소리가 났다⁠. 장화가 질척한 눈을 밟는 소리가 고샅 끝까지 따라왔다⁠. 할아버지는 집에 닿을 때까지 한 번도 두름을 앞질러 가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연지 손에 만 원짜리 석 장을 쥐여 주었다⁠.

“⁠더덕 판 거다⁠. 책값 해라⁠.⁠”

“⁠할머니⁠, 이걸로는 책 한 권도 못 사⁠.⁠”

“⁠한 권 못 사면 반 권 사라⁠.⁠”

연지는 돈을 들고 우리 앞으로 왔다⁠. 판자 사이로 손을 넣어 두름 머리를 쓸었다⁠. 만 원짜리 석 장이 두름 콧등을 스쳤다⁠. 함바 아주머니 손 냄새와 대파 냄새가 났다⁠. 두름은 만 원짜리 석 장이 제가 캐 온 더덕이라고 말했다⁠. 연지 귀에는 꿀⁠, 하고 들렸다⁠. 연지는 돈을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산신령님이 주셨대⁠. 너도 들었지⁠? 산신령님이 우리 집 편인가 봐⁠.⁠”

두름은 산신령이 오늘 밤에도 처마 곶감을 빼 먹으러 올 거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

밤이 되자 두름은 거름 더미 구멍으로 다시 나갔다⁠. 더덕 비탈로 올라가는 길에 언 흙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바위 밑에 닿았을 때 콧김이 먼저 맞았다⁠.

구릉이 바위 앞에 버티고 있었다⁠. 두름이 어젯밤 판 구멍 세 개를 앞발로 가리켰다⁠.

“⁠봄비가 알려 줬지⁠.⁠”

“⁠제가 냄새로 찾았어요⁠.⁠”

“⁠거짓말 마라⁠. 집돼지 코가 바위 밑까지 닿을 리 없다⁠.⁠”

구릉이 구멍 하나에 코를 박았다가 빼냈다⁠. 구멍 안에 굵은 칡뿌리 몇 가닥이 드러나 있었다⁠. 더덕을 캐면서 흙을 걷어 낸 자리였다⁠. 드러난 칡뿌리는 하룻밤 사이에 꽁꽁 얼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더덕은 우리 안 먹는다⁠. 그런데 더덕 옆에 칡이 있다⁠. 네가 흙을 걷어서 칡이 다 얼었다⁠. 언 칡은 썩는다⁠. 내 새끼들이 봄까지 캐 먹을 칡이었다⁠.⁠”

두름은 시커먼 칡을 내려다보았다⁠. 더덕 세 뿌리를 캐면서 옆은 보지 않았다⁠. 냄새가 하나만 났으니까⁠.

“⁠산 것을 사람한테 갖다 바쳤다⁠. 그 대가는 내 새끼들이 치른다⁠.⁠”

“⁠제가 갚을게요⁠.⁠”

“⁠또 그 소리냐⁠?⁠”

두름은 대답 대신 구멍에 코를 박았다⁠. 언 칡을 밀어내고 한 뼘 더 밑을 팠다⁠. 얼지 않은 칡이 거기 있었다⁠. 두름은 파고 또 팠다⁠. 코끝이 갈라져 피 냄새가 났다⁠. 칡뿌리 한 무더기가 바위 앞에 쌓였다⁠. 봄비가 어둠 속에서 새끼들을 데리고 나왔다⁠. 새끼들이 칡에 달려들어 씹었다⁠. 오도독 소리가 났다⁠. 봄비는 먹지 않고 새끼들을 지켜보았다⁠.

구릉이 칡 무더기를 보았다⁠.

“⁠한 끼다⁠. 겨울은 백 끼다⁠.⁠”

“⁠그럼 백 번 팔게요⁠.⁠”

“⁠네 코가 백 번 버티냐⁠? 너는 엿새 뒤에 솥에 들어간다⁠.⁠”

두름은 갈라진 코끝을 혀로 핥았다⁠. 소금 맛이 났다⁠. 구릉은 칡을 한 가닥도 먹지 않았다⁠. 새끼들 몫이었다⁠.

땅이 울렸다⁠.

발밑에서 먼저 왔다⁠. 발바닥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배로 올라오는 떨림이었다⁠. 다음에 소리가 왔다⁠. 산 너머에서 커다란 북을 땅속에 묻고 한 번 친 소리였다⁠. 나뭇가지마다 쌓였던 눈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새끼들이 칡을 문 채 봄비 배 밑으로 파고들었다⁠. 구릉의 등 갈기가 빳빳하게 일어났다⁠.

산 위 능선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두름은 코를 들었다⁠. 처음 맡는 냄새들이 바람을 타고 내려왔다⁠. 낯선 고라니⁠, 낯선 너구리⁠, 낯선 멧돼지⁠. 고개 너머 골짜기 냄새를 몸에 묻힌 짐승들이 능선을 넘어오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줄지어 넘어왔다⁠.

옆 바위 위에서 늙은 개가 고개를 들었다⁠. 산신령이 언제부터 거기 엎드려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산신령은 능선을 오래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했다⁠.

“⁠많이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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