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90자) · 헛밟은 오십 해
스물두 걸음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문주가 같은 해 오월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사겠다고 안 했다.
와서 물었다.
“연오야, 우리 마당을 봐 주겠느냐?”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 봅니까?”
문주가 말했다.
“몇 자까지 서늘한지 봐 다오?”
연오가 무영곡에 갔다.
가서 마당에 섰다.
신을 벗었다.
마당 가운데가 제일 서늘했다.
정수리까지 왔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덜했다.
연오가 걸음으로 재 봤다.
가운데에서 열두 걸음까지가 정수리다.
열두 걸음에서 열여덟 걸음까지가 가슴이다.
열여덟에서 스물둘까지가 발목이다.
스물둘 밖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당이 서른 걸음이라고 했는데 실은 스물둘이다.
연오가 한 번 더 재 봤다.
이번에는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면서 쟀다.
발목에서 가슴으로 바뀌는 자리에 금이 없다. 조금씩 진해진다.
정수리로 바뀌는 자리도 그렇다.
연오가 이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연오네 밭은 안 그렇다. 밟은 데와 안 밟은 데가 한 걸음 사이로 갈린다.
여기는 스무 걸음에 걸쳐 흐려진다.
연오가 이 까닭을 생각했다.
스물이 같이 밟으면 자리가 흩어진다.
흩어진 것이 삼백 해 쌓이면 이렇게 된다.
가운데는 다들 밟으니 진하고, 밖으로 갈수록 밟는 사람이 줄어 흐려진다.
한 사람이 밟은 자리는 금이 선다.
여럿이 밟은 자리는 번진다.
연오가 이것을 알고 나서 마당을 다시 봤다.
번진 자리다.
삼백 해 동안 번진 자리다.
연오가 이것을 말했다.
문주가 물었다.
“…여덟 걸음이 비었느냐?”
연오가 말했다.
“비었습니다.”
문주가 마당 가장자리를 봤다.
말뚝이 서른 걸음에 박혀 있었다.
문주가 말했다.
“…말뚝이 틀렸구나.”
연오가 말했다.
“말뚝은 남 보라고 박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문주가 이 말을 기억했다.
“…내가 그랬지.”
연오가 말했다.
“그런데 안쪽 사람들도 그걸 봅니다.”
문주가 물었다.
“…그게 뭐가 나쁘냐?”
연오가 말했다.
“가장자리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헛수고를 합니다.”
문주가 마당을 봤다.
스물이 밟고 있었다.
스물 가운데 여섯이 스물둘 밖에 있었다.
문주가 이 자리에 섰다.
“…여섯이 헛밟고 있느냐?”
연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문주가 물었다.
“얼마나 됐겠느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문주가 말했다.
“…말뚝을 박은 것이 오십 해 전이다.”
연오가 셈을 했다.
“그럼 오십 해입니다.”
문주가 이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한참 있었다.
“…오십 해 동안 우리 문하 셋에 하나가 헛밟았구나.”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문주가 물었다.
“연오야, 이걸 어찌하면 되느냐?”
연오가 말했다.
“말뚝을 옮기시면 됩니다.”
문주가 말했다.
“옮기면 마당이 작아진다.”
연오가 말했다.
“원래 작습니다.”
문주가 말했다.
“…작아진 걸 남들이 보면.”
연오가 말했다.
“보겠지요.”
문주가 물었다.
“그럼 옆 골짜기가 온다.”
연오가 말했다.
“안 옮기셔도 오지 않습니까?”
문주가 웃었다.
“…너는 셈이 빠르구나.”
연오가 말했다.
“셈이 아니라 발입니다.”
문주가 이날 말뚝을 옮겼다.
서른 걸음에서 스물두 걸음으로 옮겼다.
옮기고 나서 문하 백이십을 마당에 세웠다.
세워 놓고 말했다.
“우리 마당이 오늘부터 스물두 걸음이다.”
문하가 웅성거렸다.
하나가 물었다.
“…줄었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원래 스물둘이었다.”
또 하나가 물었다.
“…그럼 저희가 오십 해 동안 속았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속인 것이 아니라 몰랐다.”
문하 하나가 말했다.
“…저는 가장자리에서 삼십 년 밟았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문주가 이 사람을 봤다.
“…미안하다.”
이 사람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시면 됩니까?”
문주가 말했다.
“안 된다.”
“…”
“그런데 그것 말고 할 말이 없다.”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울었다.
삼십 년 가장자리에서 밟은 사람 이름은 하윤이다.
마당에서 운 뒤로 사흘을 안 나왔다.
나흗날에 도갑이 하윤을 찾아갔다.
방에 앉아 있었다.
“…하윤아.”
“…예.”
“나와서 밟아라.”
하윤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안 밟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가운데가 비었다. 나온 놈이 많아서.”
하윤이 고개를 들었다.
“…가운데요?”
도갑이 말했다.
“가운데 서라.”
하윤이 한참 있다가 물었다.
“…삼십 년을 밖에서 밟았는데 이제 와서 가운데 서면 뭐가 됩니까?”
도갑이 말했다.
“나오지.”
“…”
“가운데 서면 나온다. 그게 다다.”
하윤이 말했다.
“…그러면 제 삼십 년은 뭡니까?”
도갑이 대답을 못 했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
“내 사십 년도 모르겠다.”
하윤이 이날 저녁에 마당에 나왔다.
나와서 가운데 섰다.
손을 뻗었다.
나왔다.
하윤이 제 손을 보고 한참 서 있다가 다시 가장자리로 갔다.
가장자리에서 밟았다.
도갑이 물었다.
“…왜 도로 나가나?”
하윤이 말했다.
“…거기가 제 자리 같습니다.”
연오가 이것을 마당 밖에서 봤다.
도갑이 옆에 서 있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가운데서 밟았다.”
연오가 말했다.
“…그러셨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사십 년 가운데서 밟았다. 운이 좋았지.”
연오가 물었다.
“가운데는 어떻게 정해집니까?”
도갑이 말했다.
“들어온 순서다.”
“…”
“먼저 들어온 놈이 가운데 선다.”
연오가 이 말을 오래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나중에 들어온 놈이 가장자리에 서고, 가장자리는 안 서늘하다.”
“…”
“그러니 나중 놈은 평생 약하다.”
연오가 물었다.
“…그럼 그게 자리 때문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자리 때문이다.”
연오가 말했다.
“그런데 다들 사람 탓으로 압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렇지.”
“…”
“나도 사십 년 그렇게 알았다.”
연오가 이날 밤에 밭 북쪽 귀퉁이에 갔다.
등을 안 들고 갔다. 달이 있었다.
신을 벗고 대 봤다.
정수리까지 서늘했다.
이 자리가 연오네 밭에서 제일 서늘하다. 마을 전체에서도 제일 서늘하다.
연오는 이 자리를 작년 가을에 콩 턴 자리로 알았다.
한 달 도리깨질한 자리다.
그런데 한 달로는 정수리까지 안 온다. 한 달이면 발목이다.
연오가 이것을 이제 안다.
어머니가 밭둑에 나와 있었다.
“…거기서 뭐 하냐?”
연오가 물었다.
“어머니, 여기 몇 해 다니셨습니까?”
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연오가 한 번 더 물었다.
“열두 해라고 하셨지요.”
어머니가 밭둑에 앉았다.
“…열두 해다.”
“어디를 다니셨습니까?”
어머니가 손으로 그었다.
“저 아래 우물에서 여기까지.”
연오가 이 선을 봤다.
밭 아래 우물에서 북쪽 귀퉁이까지가 예순 걸음쯤이다.
“…물을 이고 다니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이고 다녔지.”
“…왜 여기로 다니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리로 다녔다니까.”
“…”
“그리고 여기 너희 아버지가 묻혀 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 밑에다 묻었다. 세 자쯤.”
연오가 발밑을 봤다.
“…어머니, 저는 여기서 콩을 털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알지.”
“…”
“내가 여기서 털라고 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멍석 깔고 도리깨질하면 발이 많이 간다.”
연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열두 해 동안 나 혼자 다녔다. 그러다 너 열다섯 되고부터 네가 거기서 콩을 텄다.”
“…”
“그러면 스물몇 해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손으로 흙을 짚었다.
흙이 검다.
무영곡 마당 흙만큼 검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비가 밟은 데는 저 위쪽이다. 두 달 하다 말았으니 없어졌겠지.”
“…”
“여기는 내가 밟았다.”
어머니가 일어섰다.
“나는 밟은 줄도 모르고 밟았다.”
연오가 물었다.
“…어머니, 여기서 초식이 나오는지 해 보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안 해 봤다.”
“…해 보시겠습니까?”
어머니가 호미를 들었다.
“뭐 하러.”
“…”
“나는 여기서 물 이고 다녔지 사람 치러 다닌 게 아니다.”
어머니가 밭둑을 내려갔다.
연오가 이 자리에 남았다.
남아서 한 번 더 발을 대 봤다.
제일 서늘한 자리다.
이 자리를 만든 사람은 제 밭에서 초식을 안 써 봤고, 앞으로도 안 쓸 것이다.
같은 해 유월에 무영곡 문하 열둘이 마을로 내려왔다.
가장자리에서 밟던 사람들이다.
와서 연오한테 물었다.
“…여기서 밟으면 됩니까?”
연오가 말했다.
“밭이 있어야 합니다.”
“…밭이 없는데요.”
연오가 말했다.
“만드시면 됩니다.”
“…어떻게요?”
연오가 말했다.
“땅을 얻어서 한 달 밟으시면 됩니다.”
하나가 물었다.
“…땅을 어디서 얻습니까?”
연오가 마을 위쪽을 가리켰다.
“저 위에 묵은 땅이 많습니다.”
“…누구 땅입니까?”
연오가 말했다.
“임자가 없습니다.”
“…임자 없는 땅이 있습니까?”
연오가 말했다.
“물이 안 와서 아무도 안 씁니다.”
하나가 물었다.
“…물이 안 오면 밟아도 소용없지 않습니까?”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 물이 안 빠집니다.”
열둘이 서로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비가 한 번 오면 그게 고입니다.”
열둘이 같은 해 여름에 위쪽 땅을 밟았다.
한 사람이 한 마지기씩 맡았다.
열두 마지기다.
한 달 뒤에 열둘 가운데 아홉이 서늘해졌다.
셋은 안 됐다.
연오가 가서 봤다.
셋 가운데 둘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밟았다.
하나는 신을 신고 밟았다.
연오가 말했다.
“맨발로 한자리만 하십시오.”
셋이 한 달 더 했다.
다 됐다.
가을에 이 열두 마지기에 메밀을 심었다.
메밀은 늦게 심어도 된다.
가을에 메밀이 났다.
열둘이 이것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했다.
하나가 연오한테 물었다.
“…연오 선생.”
연오가 웃었다.
“선생 아닙니다.”
이 사람이 말했다.
“…무영곡에서 저는 삼십 년 밟았습니다.”
“…예.”
“삼십 년 동안 아무것도 안 났습니다.”
연오가 말했다.
“마당이니까요.”
이 사람이 말했다.
“…여기는 넉 달 만에 났습니다.”
연오가 말했다.
“밭이니까요.”
이 사람이 물었다.
“…그럼 초식도 나옵니까?”
연오가 말했다.
“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메밀밭에서 손을 뻗었다.
나왔다.
밭둑이 파였다.
이 사람이 제 손을 봤다.
“…삼십 년 만에 처음입니다.”
연오가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이 사람이 말했다.
“…메밀밭에서 나오네요.”
연오가 말했다.
“메밀밭이 밭이니까요.”